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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4화 (4/463)

4화: 그도 돌아왔구나!

청휘원.

이동은 침상 앞에 서 있는 강환장을 힐끔 보고는 시선을 내렸다. 내색을 내지 말아야 하는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강환장 앞에서는 마음 깊이 치솟은 증오를 감출 수가 없었다. 눈빛이 자기를 배신할까 봐 걱정이었다. 강환장이 얼마나 영특하고 예민한지, 평생 봐 온 그녀는 너무나 잘 알았다.

“수련, 네가 본 것을 세자야께 말씀드리렴.”

수련은 ‘예’ 하고 대답하고는 간결하고 깔끔하게 그날 본 대로 낭자가 어떻게 밟히고 어떻게 떠밀렸는지, 강환장에게 아뢰었다.

이동의 시선이 강환장의 옷자락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옥패는 강환장의 조부의 조부 때부터 내려오던 물건이었다. 강환장의 부친에서 강환장에게로 내려왔고, 고 이낭의 장자가 글공부를 시작한 그 날, 강환장은 그 옥패를 장자에게 주었다.

그때 그녀는 겨우 스물다섯이었다. 그때 벌써 그녀가 적장자를 낳을 수 없다는 걸 알았을까?

이동은 굳어버린 마음으로 시선을 서서히 위로 향해 강환장의 허리춤을 바라봤다. 염낭, 향낭, 부채 주머니, 그리고 손…….

강환장이 쉴 새 없이 왼손가락을 쥐었다 펴는 걸 본 이동의 눈동자가 순간 수축했다.

진왕 밑으로 들어간 지 몇 년 지나지 않았을 때, 그는 황하 범람으로 인한 재난 구제를 위해 하북에 갔었다. 중간에 누군가의 계략에 당해서 곡물 수송 선박은 황하에 가라앉고, 그는 농민에게 납치되었다. 구조되어 나왔을 때, 너무 오래 묶여 있었던 탓에 왼손에 마비가 오면서 굳어 버렸다.

의원이 수시로 손가락을 움직이라고 했고, 그 후로 몇십 년 동안 그는 틈만 나면 왼손을 지금처럼 계속해서 쥐었다 폈다가 했다.

하지만 지금은 막 혼인한 때라, 재난 구제하러 가기까지 아직 서너 해가 남았고 왼손은 멀쩡해야 맞았다.

이동은 목이 턱 막혀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이마의 상처가 쿡쿡 쑤셨다. 눈앞이 시커메지고 목에서 긁는 소리가 났다.

“낭자!”

수련이 날카롭게 비명을 질렀다.

“어서 가서 의원을 모셔와라!”

강환장이 고함치더니 휙 돌아서서 칼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누이들을 직시했다. 조마조마하게 앞뒤로 서 있던 강완과 강녕은 다리에 힘이 빠져 털썩 무릎을 꿇었다.

“오라버니, 우, 우린…….”

“나가라!”

그녀들이 뭐라고 말을 하기 전에 강환장이 휘두른 소매가 강완의 얼굴을 후려쳤다. 강완은 날카롭게 비명을 지르고는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강녕을 끌고 비틀비틀 밖으로 나갔다.

막 모퉁이를 돌자마자, 부들부들 떨던 두 사람은 누군가와 부딪칠 뻔했다.

부딪칠 뻔한 사람은 열일고여덟 살쯤 된 용모가 아름답고 분위기가 우아한 여인이었다. 여인이 입은 남청색 주단 긴소매 옷은 얼마나 빨아댔는지 색이 바랬고, 소맷자락은 곧 뜯어질 듯이 나달나달했다.

“아완, 아녕, 이게 무슨 일이니?”

듣기 좋고 온화한 목소리였다.

“언니!”

외사촌 언니 고 낭자와 원래 가깝게 지낸 강완과 강녕은 고 낭자의 손을 잡자마자 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고 낭자는 두 사람을 근처에 있는 정자로 데리고 가서 앉혔다. 강녕은 고 낭자에게 기댄 채 쉴 새 없이 울어댔다.

“무슨 일이야. 누가 아녕을 이렇게 서럽게 했어?”

고 낭자가 묻자, 강완이 눈빛을 빛내며 대답했다.

“새언니가 넘어진 일 때문이지 또 뭐겠어. 그냥 조금 까진 걸 가지고……. 굳이 나랑 아녕이 밀어서 그런 거라고 하잖아. 자기가 조심하지 않아놓고……. 오라버니가 끼고돌면서 사과하라길래, 하면 되지 싶어서 나랑 아녕이 찾아갔는데, 우리를 보자마자 눈을 까뒤집고 쓰러지지 뭐야. 오라버니가 우리를 내쫓았어.”

고 낭자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자꾸 피하는 강완, 그리고 울음소리가 순간 작아진 강녕을 빤히 바라보다가 눈을 내리깔았다. 그러다가 잠시 후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오라버니가 감싸더라도 너희를 더 감싸겠지.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오라버니가 물었어?”

“아니. 우리랑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어. 사실…….”

강완은 입술을 깨물었다. 어머니를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큰 오라버니를 속일 수는 없었다. 오라버니는 외사촌 언니의 말을 잘 들으니까, 차라리…….

“언니, 사실, 나랑 아녕이 밀었어…….”

“쉿!”

고 낭자가 손으로 강완의 입을 막았다.

“너랑 아녕, 다 솔직하고 착한 아이야. 알아들었어. 아완, 아녕, 이 언니를 믿지? 언니가 시키는 대로 해.”

고 낭자는 강완과 강녕을 잡아당기며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새언니는 상인 집안 출신이라 어릴 때부터 오냐오냐 자랐잖아. 우리 집안은 또…….”

고 낭자는 괴로운 듯 한숨을 내쉬었고, 강완과 강녕은 분통 터지는 표정이었다.

그 상인 집안 여식이 은자로 협박해서 강제로 큰 오라버니와 혼인한 거잖아. 그 바람에 어머니가 매일 눈물로 세수하고.

어디 한 군데 우리 강씨 가문과 어울리는 곳이 있어서? 우리 큰 오라버니와 도저히 어울리지도 않는데!

“우리 가문의 빌미를 잡은 것도 없는데 이렇게 난리를 부리는 걸 보면, 나중에 강씨 가문의 빌미라도 잡으면 분명 너희 둘을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고 낭자는 마음 아픈 듯 한숨을 또 내쉬었다.

“너희 둘, 잘못하면 안 돼. 조금도 잘못하면 안 돼. 그래서 큰 오라버니가 한마디도 묻지 않은 거야. 너희들은 솔직한 아이라서 거짓말하지 않을 걸 안 거지. 그래서 오라버니도 물을 수 없었던 거야. 그러니까 너희들도 말하면 안 돼.”

강완과 강녕의 표정이 얼떨떨해졌다.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다.

“오라버니는 너희 둘이 잘못한 게 없다고 믿고 있어. 새언니는 혼자 넘어진 거야. 묻지 않아도 잘 알고 있는 거야. 그런데 혹시 아니면 어떡해? 혹시 혼자 넘어진 게 아니라면? 큰 오라버니는 성품이 고결한 사람이라 분명 공정하게 처리하려 할 거야. 너희들도 알지? 몇 년 전에 집안에 첩의 자식을 다치게 했던 사람이 어떻게 됐는지 알지? 첩의 자식인데도 어떻게 처리했어?”

고 낭자의 귓속말처럼 작은 목소리에도 강완과 강녕은 부르르 부르르, 몇 번이나 몸서리쳤다. 첩의 자식을 거의 죽기 전까지 해친 강가 며느리는 그달 ‘병사’했다.

“기억해! 새언니는 혼자 넘어진 거야! 누가 물어도, 혼자 넘어진 거야. 사실이 그러니까! 알았어?”

고 낭자가 진지하게 당부하자, 강완과 강녕은 쉴 새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 안심해. 기억했어. 새언니 혼자 넘어진 거야! 언니, 고마워. 역시 언니가 최고야. 언니가 우리 새언니라면 얼마나 좋을까!”

강완과 강녕은 감동해서 눈이 그렁그렁해졌다.

청휘원. 수련은 이동의 인중을 힘껏 꼬집었다. 이동이 길게 숨을 내쉬며 나지막이 말했다.

“머리가 아파서 조용히 쉬고 싶어요.”

“알았소. 푹 쉬시오. 이미 사람을 보내 의원을 불렀소.”

강환장의 손가락이 쉴 새 없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눈이 아른거릴 정도로 정신없이 움직이는 걸 보면 기분이 지극히 좋지 않다는 뜻이었다.

이동은 혼란스러워졌다. 이런 작은 동작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 정도로 몇십 년 동안 그에게 온갖 정성을 쏟았었다.

설마 강환장도…… 나와 같은 상황인 건가?

그 생각에, 이동은 두려워져서 목이 바짝 말랐다. 강환장의 상황이 정말로 그녀와 같다면…… 그녀에게 활로가 있을까?

침착해, 침착해야만 해. 어머니가 그러셨어.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일단 침착해야 해.

이동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청휘원에서 나간 강환장은 얼마 멀리 가지 않아서 외사촌 동생 고 낭자가 저쪽에 앉아서 강완, 강녕과 이야기 중인 걸 발견했다.

“오라버니!”

강환장을 본 고 낭자의 얼굴에서 빛이 났다. 그녀는 서둘러 일어서서 그에게 다가갔다.

“왔어? 어째서 들어가지 않고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어.”

고 낭자 앞에 선 강환장은 얼굴을 간질이는 봄바람처럼 다정했다.

그는 줄곧 이 외사촌 동생이 애틋했다. 용모와 품성 모두 갖추고 재능도 출중한데 하필 변변찮은 가문에서 태어난 외사촌 동생. 자기 본인이 애틋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용모와 품성이 뛰어나고 재능이 출중하면 무얼 할까. 그 모든 것도 지참금을 이길 수가 없는걸!

“새언니가 괜찮아졌는지 보러 왔다가 마침 아완과 아녕을 만나서요. 두 사람…….”

“아!”

강환장이 눈살을 찌푸리며 강완과 강녕을 매섭게 노려보자, 두 사람은 목을 움츠렸다.

고 낭자가 강완과 강녕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두 사람, 많이 놀랐어요. 오라버니, 혼내지 말아요. 새언니가 잠시 화가 나서 그렇지, 생각을 끝내고 나면 깨달을 거예요. 우리 같은 집안에서는 큰일은 작은 일로 만들고, 작은 일은 없는 일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가문을 흥하게 하는 길이라는 걸요.”

“저 사람이 너처럼 이치에 밝으면 좋겠구나.”

강환장은 웅얼거리고는 한숨을 내쉬며 손을 치켜들었다. 고 낭자의 뺨을 쓰다듬으려는 듯 손을 들다가, 뻣뻣하게 다른 쪽으로 돌렸다.

“이왕 왔으니 새언니 만나고 가라. 가서 설득도 좀 해 보고. 난 일이 있어서 먼저 간다. 별다른 일 없으면 온 김에 며칠 있다가 돌아가라. 어머니 곁에도 좀 있어 드리고. 아, 그리고, 이 두 녀석을 잘 좀 가르쳐다오.”

강환장은 강완과 강녕을 매섭게 노려봤다. 얼마나 빤히 노려보는지, 두 사람은 목이 쏙 들어갈 지경이었다.

강환장의 말에, 고 낭자의 얼굴에 광채가 흐르고 함박웃음이 퍼졌다.

청휘원 안, 고 낭자는 침상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서 무릎을 구부리며 예를 갖췄다.

“새언니, 안색이 좋아졌네요. 오는 길에 보니까 치자나무에 꽃이 예쁘게 피었더라고요. 그래서 새언니 보여주려고 꽃바구니를 엮어 왔어요.”

고 낭자는 시녀 옥묵에게서 작고 정교한 꽃바구니를 건네받아서 이동 앞에 양손으로 내밀었다.

개나리 가지로 엮은 작은 바구니에 반쯤 핀 치자꽃 몇 송이가 들어 있는, 몇 푼 안 될 꽃바구니였다.

청아하고 고결한 고 이낭의 품격이 아닌데? 고 이낭이 보낸 꽃은 언제나 영롱하고 우아한 옥 그릇에 가득 담겨 있었는데.

‘꽃은 아름다우면서도 저속해서, 옥에 담아야 그나마 완화되죠.’

고 이낭은 그렇게 말했었다.

이동의 시선이 꽃바구니에서 고 낭자에게로 향했다.

손바닥만 한 작고 아름다운 얼굴, 산처럼 날렵한 눈썹, 그렁그렁한 눈. 머리엔 색이 바랜 금비녀가 꽂혀 있었다.

고 이낭이 금장식을 썼었던가?

세상에서 가장 저속한 것이 황금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진청색 주단 긴소매 옷은 너무 빨아서 색이 고르지 않았고, 백주(白綢) 치마는 누렇게 얼룩졌다. 치마 아래 반쯤 나온 신발은 여기저기 기운 것이 비뚤비뚤, 참으로 보기 흉했다.

그녀의 시선에 신발 끝이 안으로 움츠러들고, 다시 움츠러들어서는 치마 안으로 자취를 감췄을 때, 이동은 고개를 들고 고 낭자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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