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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2화 (2/463)

2화: 어머니

“낭자, 분명…….”

수련은 화가 나서 얼굴이 퍼렇게 질렸다. 그때 바로 이동의 뒤에 서 있어서 모든 걸 똑똑히 봤다. 강 이낭자가 일부러 이동의 치맛자락을 밟았고, 강 대낭자가 뒤에서 별안간 이동을 떠밀었다. 그때 강 대낭자의 얼굴이 얼마나 험악했던지, 몸이 저절로 부르르 떨렸었다.

“나도 알아. 그만 이야기해.”

이동은 마음이 심히 혼란스러워서 수련의 말을 잘랐다.

“나 피곤해. 잠시 잘 거니까, 누가 오든 깨우지 마.”

수련은 다급하게 등받이를 빼내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눕힌 다음 휘장을 내리고 살금살금 밖으로 나갔다.

이동은 눈을 뜬 채 붉은 비단 휘장을 바라봤다.

강환장은 처음부터 이런 무정하고 의리 없는 놈이었구나. 내가 정말이지 눈이 단단히 멀었었구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차라리 지금 머리 박고 죽는 한이 있어도 예전…… 혹은 꿈에서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강가를 위해 살림이든 서무를 돌보면서 소처럼 일하다가 마지막엔…….

갑자기 그날이 떠올랐다. 온 저택이 경사스러운 분위기로 시끌벅적한 가운데, 기개가 비범한 예부 관원이 그녀를 스치고 지나갔다. 고 이낭의 손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고명 복장이 전해졌다. 그녀는 자식들에게 둘러싸인 고 이낭, 고명 부인의 적의(翟衣: 명부에게 내리는 가장 높은 등급의 예복. 붉은 비단 바탕에 청색 꿩을 수놓고 깃 둘레에 붉은 선을 두른 옷)를 툭툭 털어 정이 넘치는 눈빛으로 고 이낭에게 걸쳐주는 강환장을 바라봤다.

그가 말하길, 강씨 가문의 자손 번성에 이바지하고, 뛰어난 아들을 키운 고씨의 공이 가장 크다고 했다.

왜 다시 살아 돌아온 거야. 살아 돌아올 거면 한 달 더 빨리 돌아올 것이지.

그랬다면 누가 뭐라고 해도 강씨 가문에 다시 들어오지 않았을 텐데.

이제 어쩌지?

화리(和離: 협의 이혼)? 경성의 명문가 중에 화리한 선례가 있던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화리한다면 온 경성이 금세 다시 강씨 가문을 주목할 것이고, 뒤에서 무수히 입방아를 찧어댈 것이다.

그 입방아에 그녀의 명성이 짓밟혀 버릴 것이며, 이미 아슬아슬한 강가의 명성도 짓밟힐 것이고. 강환장의 밝은 미래도 끊어 버릴 것이다.

나는 상관하지 않지만, 그도 그럴까?

내가 감히 밝은 미래를 방해한다면, 아무 거리낌 없이 나를 죽이려 들 거야.

몇십 년 동안 부부로 살아온 그녀는 강환장이 얼마나 악랄한지 너무나 잘 안다.

벗어나려면, 계획을 잘 세우고 길게 봐야만 해.

피를 많이 흘리고 신경을 바짝 곤두세운 이동은 한순간 피로가 몰려와서 금세 가물가물 잠들었다.

“우리 딸, 깼니?”

잘 자고 일어난 이동이 눈꺼풀을 깜빡이자마자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20년 만에 다시 듣는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눈을 뜨자, 꿈에서 수도 없이 그려온 어머니가 눈앞에 있었다. 들뜬 마음과 서러움이 가슴 가득 차올라 깊디깊은 한숨으로 터져 나왔다. 그녀는 어머니의 품으로 파고들어 서럽게 목 놓아 울었다.

“대내내, 왜 우세요? 우는 게 꼭 큰 서러움이라도 겪은 것 같잖아요. 대내내가 부주의하게 살짝 부딪혔는데도 우리 부인은 마음 아파서 밤새 잠도 못 주무시고 날이 밝기도 전에 대내내의 안일을 빌며 보살께 기도하셨답니다.

세자야가 아침 일찍 와서 미안하다고 했고, 대낭자, 이낭자는 좋은 마음으로 한 일이 이렇게 되어서 눈이 팅팅 붓도록 울고 계세요. 어젯밤에 대내내가 다친 뒤로 온 저택의 위아래가 조마조마하며 조심하는데, 이렇게 우시다뇨. 무슨 큰 서러움이라도 겪은 것 같지 않겠냐고요.”

오 어멈이 곁에서 늘어놓는 가시 돋친 말은 얼핏 들으면 장(張) 태태에게 설명하는 것 같아도 사실은 이동이 철없다고 질타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런 것에 가장 능한 사람이었다.

“법도를 매우 따지는 집안인 걸 나도 아네.”

장 태태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흐느끼는 딸을 끌어안고 오 어멈을 곁눈으로 바라보며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예의범절도 따져야겠지만 존비도 따져야지. 내가 대내내와 이야기 중인데, 자네가 끼어들 주제가 되는가?”

오 어멈의 미소가 굳더니 무심결에 뒷걸음질 치며 헛웃음을 흘렸다.

“소인은 부인의 분부를 들고 온 것입니다. 우리 부인께서…….”

“무슨 말인지 이미 알아들었네.”

장 태태가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네 부인께선 며느리를 아끼는 좋은 시어머니고, 자네 세자야는 큰일을 위해 치욕을 참는 분이고, 자네 대낭자, 이낭자는 천진하고 선량한데, 내 여식만 건방지고 철없다는 것 아닌가. 그런 뜻이지?”

오 어멈은 입을 딱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안사돈 태태를 만난 적이 많은 만큼 이 안사돈이 너그럽고 시원스러우며 통이 크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이런 각박한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자네도 그렇고, 자네 부인도 그렇고, 이건 똑똑히 기억해야 할 걸세. 가까운 사람에겐 먼 사람의 이간질이 통하지 않아. 말하기 전에 눈을 똑바로 뜨고 제대로 봐야지. 이 아이는 내 귀한 딸이고, 나는 이 아이의 어미일세. 친어미란 말일세! 아무리 그럴싸하게 혀를 내둘러도, 난 내 딸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네. 알아들었는가? 별다른 일 없으면 돌아가서 자네 부인께 내가 한 말, 그대로 전하게. 난 내 딸과 속 이야기를 좀 할 생각인데, 계속 여기에 서 있을 텐가?”

오 어멈은 얼굴이 화끈거려서 견딜 수 없었다. 그녀는 낭패스러운 꼴로 상방(上房)에서 물러났다.

“왜 이리 슬피 우는 것이야. 무엇이 이리 서러워서.”

이동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자, 장 태태가 손수건을 건네받아 이동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어머니!”

장 태태는 마음 아픈 듯이 딸의 얼굴을 바라봤다.

“다 들었다. 계집애 둘이 심술을 좀 부렸던데, 이렇게까지 울 것 있겠니. 어미가 호일첩(胡一貼)을 모셔 오라고 사람을 보냈다. 흉 지면 안 되지.”

“어머니, 그래서 우는 게 아니에요. 저는…….”

이동은 또다시 눈물을 뚝뚝 흘렸다. 20년 전에 그녀를 떠난 어머니를 다시 만나서 우는 것이었다. 그녀를 가장 아끼고 사랑하던 어머니였다.

“어머니를 만나서 그래요. 어머니, 보고 싶었어요. 매일 어머니 꿈을 꿨어요, 어머니.”

장 태태는 딸이 우는 모습에 콧날이 시큰해지더니 따라서 눈물을 흘렸다.

“이런 바보 같기는, 왜 이렇게 우는 것이야. 어미도 눈물이 다 나는구나. 혼인한 지 며칠 되었다고 이렇게 된 것이야. 매일 어미 꿈까지 꾼다고? 세자는? 너 혼자 자는 것이냐?”

장 태태는 보통 영리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에요. 나는…… 너무 오래된 것…… 너무 오래…… 된 것 같아서…….”

이동은 더 심하게 울면서 훌쩍이느라 말도 더듬거렸다.

“아이고, 이 녀석아! 수련, 차를 내어오렴. 너희 낭자, 차 좀 마시고 숨을 좀 돌려야겠구나.”

어이도 없고 우습기도 하고, 장 태태는 딸의 등을 쓸어주면서 분부했다.

이동은 차를 마시고 숨을 골랐다. 눈물은 멎었는데 장 태태의 팔을 붙잡고 놓지 않자, 장 태태는 울지도 웃지도 못할 기분이었다.

“어허, 이 아이 좀 보게. 혼인하더니 오히려 더 어린애 같아졌구나.”

“어머니, 할 말이 있어요.”

“그래, 듣고 있다. 내 딸, 말해 보렴.”

이동은 침묵하다가 말을 이었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녀는 이미 인생을 한 번 살았다. 한평생을 살았고, 한평생을 괴로워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말해야 할까?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 걸까? 아니면 모두 꿈일까? 이야기하면 어머니가 믿을까? 나도 아직 믿어지지 않는걸.

“부부 사이 문제이냐? 세자가 다정하지 않아?”

장 태태는 가장 먼저 그 문제를 떠올렸다. 이동은 어머니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강환장과 그녀의 부부 사이라……. 그녀는 마흔이 되기 전에 달거리가 끊겼고, 그때부터 그는 그녀의 거처에서 밤을 보내지 않았다. 두 사람의 잠자리가 어땠는지, 조금도 생각나지 않았다.

“다치지는 않고? 다친 것이야?”

딸이 입 다물고 있는 걸 본 장 태태의 눈썹이 치켜 올라가고 목소리도 높아졌다. 사위 녀석이 경험이 없어서 모르는 게야, 아니면 일부러 그런 것이야!

“아니에요!”

이동이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장 태태의 치켜뜬 눈이 내려오면서 안도하는 기색이었다.

아니라니 다행이었다. 사위 녀석이 보물 같은 딸을 침상에서 못살게 군 것이라면 끼어들기 난감한 문제였다.

“어머니, 강씨 가문과 혼인 맺는 게 아니었어요.”

이동이 말을 가늠하며 입을 열자, 장 태태가 놀란 얼굴로 딸을 바라봤다. 그동안 혼담을 넣으려고 다녀간 사람이 쇠털처럼 많았다. 강가는 보물 같은 딸이 직접 고른 상대였다. 그런데 혼인한 지 한 달도 안 되어서 벌써 후회한다?

“강환장이 홀대하느냐? 밖에 다른 사람이 있어? 고얀 병에 걸린 것이냐? 말 못 할 그런 고얀 병?”

장 태태는 머리를 재빠르게 굴리며 다급하고 빠르게 주르륵 물어댔다. 이동은 얼떨떨해졌다. 밖에 다른 사람이 있냐고……. 그건 맞았다.

고 이낭은 진 부인의 생질녀로 강환장은 이 외사촌 누이와 청매죽마(靑梅竹馬), 소꿉동무였다. 그녀가 강부로 들어온 지 딱 1년이 되었을 때, 강환장은 고 이낭을 집으로 들였다.

“어머니, 강가에서 못 해주는 게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아예 저를 강가 며느리로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우리 이씨 가문을 진정한 사돈으로 생각하지도 않고요.”

장 태태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강가는 고귀한 집안이고 네 시아버지 대에 이르러서는 더더욱 고귀해졌잖니. 네 시아버지는 돈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도 않을 정도고 고결한 분이다. 네 시어머니는…….”

장 태태가 입꼬리를 실룩이며 말을 이었다.

“빈한하지만 몹시 고귀한 국자제주(國子祭酒: 국자학이나 국자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관직명), 서생 가문 출신 아니냐. 그런 사람이 강가 같은 가문과 혼인했으니, 아무리 가난해도 아도물(阿賭物: 돈을 점잖게 가리키는 말)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래도 옥가아(玉哥兒)는 괜찮지 않으냐…….”

옥가아는 강환장의 아명이었다. 어머니가 그렇게 다정하게 강환장을 부르는 걸 보고 이동은 한순간 아련해졌다. 어머니가 갑자기 병으로 세상을 떠난 그해, 그녀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쓰러졌다. 어머니의 후사는 강환장이 매우 거창하게 치렀다고 들었다.

“강가야 당연히 우리를 무시하겠지. 혼인하기 전에 이 어미와 잘 이야기 끝내지 않았더냐. 어미는 강가에서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 지금 너는 강가의 며느리고, 강가의 모든 돈 들어갈 곳은 네 혼수에 의지해야 한다. 이 집안을 네게 맡긴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생각이라면…… 마음대로 안 될 것이다!”

장 태태가 담담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네가 살림을 관리하고 돈을 틀어쥐고만 있으면, 이 집안에서 아무리 널 무시한다 해도 다들 꾹 참아야만 할 것이다. 몇 년 지나면 이 집의 낭자들은 혼인할 것이고, 너는 자식이 생길 테니, 무시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사전에 다 상의한 일 아니냐. 갑자기 왜 또 꺼내는 것이야.”

어머니의 말에 이동은 무수한 옛일을 떠올리고 착잡해졌다.

“어머니, 강환장이 속셈이 많고 의뭉스럽고, 수그릴 땐 수그릴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었죠? 장차 큰 인물이 될 거라고도 하셨고요.”

이동은 마음이 쓰라렸다. 어머니는 사람을 잘못 보는 법이 없었다.

“이 아이 좀 보게. 옥가아의 이름을 어찌 함부로 불러. 누가 들으면 꼬투리 잡을라!”

장 태태가 이동의 이마를 콕 찔렀다.

“어머니, 세자가 날 무시하면요? 뼛속부터 날 무시하고, 어머니를 무시하고, 우리 집안을 무시하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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