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6화 (86/86)

[앞으로는 절대 물을 필요 없소. 절대로. 절대로 묻지 마. 그냥 마음대로 하면 돼.]

그는 눈을 감고 불규칙한 숨결을 애나의 얼굴에 뿜었다.

[칼, 난 당신이 몸을 구부리고 불을 피울 때마다 당신을 이런 식으로 어루만져 보고 싶었어요.]

[난 당신이 그 바지를 입고 내 앞을 지나칠 때마다 여기를 이렇게 만져 보고 싶었소. 여기도, 여기도...]

그가 애나의 가슴과 배와 엉덩이를 차례로 쓰다듬었다.

[당신도 이젠 내게 물어 볼 필요 없어요, 칼.]

그의 손이 자유 자재로 움직이도록 내버려 두며 그녀가 속삭였다.

[애나, 지금 불을 피우겠소. 내가 불을 피우느라 몸을 구부리고 있는 걸 보고 싶지 않소?]

[보고 싶어요.]

[난 늘 불 꿈을 꾸었소.]

[그래요.]

[내가 불을 피우는 동안, 빗장 끈을 안으로 들여 놓아 줘. 그리고 커튼도 치고. 난 커튼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는데 당장 첫날부터 필요하게 됐군.]

그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애나를 억지로 돌려세워서 문 쪽으로 보내고 벽난로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차례차례 커튼 닫히는 소리가 속삭이듯 들리고, 헤이즐넛이 참나무 문에 부딪히는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타오르는 불길만을 응시하고 있는 그는 등뒤에서 사각거리는 옥수수 침대 소리와 함께 뭔가 바닥을 스치는 야릇한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는 한쪽 무릎을 세운 채 구부리고 앉아 애나의 손길이 목덜미와 어깨에 닿는 순간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래로 내려온 애나의 손이 그의 셔츠를 바지에서 뽑아냈다. 그녀는 셔츠를 들어올리고 따스한 그의 피부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햇빛 아래에서 빛나는 당신의 어깨에 손을 대고 싶어서 혼났어요.]

애나는 그의 귓가에 속삭이며 셔츠를 목덜미까지 들어올린 뒤 어깻죽지 위에 입술을 댔다. 그녀의 혀가 그의 등에서 춤추기 시작하자 칼은 환희를 느끼며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얼마나 강렬한 눈빛으로 당신을 보았는지 모를 거예요.]

칼은 그녀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애나는 어느새 침대에서 걷어온 물소 가죽을 깔고 그의 바로 뒤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가 돌아앉아서 그녀의 엉덩이를 잡아 바짝 끌어당겼다.

[바지를 입은 당신이 구부릴 때마다 당신 엉덩이를 바라보던 내 눈빛과 같았을까?]

그의 손이 다시 위로 올라와 그녀의 옆구리와 젖 무덤을 애무했다.

[당신이 그 동안 동생의 헐렁한 셔츠에 이렇게 탄력 있는 몸매를 숨기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소.]

애나는 그의 손바닥에 가슴을 더욱더 밀착시켰다. 짜릿한 열기가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속았다고 생각해요?]

그는 한 손 가득 그녀의 가슴을 잡고 있으면서도 짓궂게 대답했다.

[기억이 흐려질 땐 확인하는 것이 최고지. 당신이 애써서 이렇게 예쁜 드레스를 만들었는데 별로 소용이 없다니 안타깝군.]

그가 빠른 속도로 드레스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구겨지고 주름살이 생기기보다는 얌전하게 바닥에 놓여 있는 게 더 나아요.]

애나가 그의 입술에 대고 속삭였다. 칼이 완전히 드러난 그녀의 가슴을 만지다 그의 손길에 굶주려 있는 아래쪽의 깊은 곳으로 손을 미끄러뜨렸다. 그녀가 천천히 눈을 감으며 숨을 죽였다. 이번엔 그녀 차례였다. 애나는 눈을 뜨고 그의 얼굴을 향해 미소 지으며 그의 남성을 두 손으로 감쌌다. 그들은 서로의 손에 몸을 밀착시켰다. 칼의 손이 대담하게 움직였다. 애나가 따라 했다. 그들은 입을 맞추고 서로를 만지며 서로의 몸을 배워 갔다.

[따뜻해.]

칼이 그녀의 귓가에 중얼거렸다.

[단단해요.]

애나가 답했다.

[아름다워.]

그는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당신도 아름다워요.]

서로의 손길에 불이 붙기 시작한 그들은 남아 있는 옷의 단추를 모두 풀었다. 그가 살며시 무릎을 벌리고 그녀를 좀더 가까이 끌어안았다. 그녀의 드러난 어깨에 주황색 불길이 일렁거렸다. 그는 애나의 드레스 자락을 들어올려 머리 위로 완전히 벗겨냈다. 그들은 한동안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서로를 마주 보며 그 순간을 만끽했다. 차츰 흐트러지는 호흡 속에서 칼이 그녀의 마지막 속옷을 벗기고 그녀의 엉덩이를 두 손으로 감쌌다. 긴 여름 동안 인내한 사랑의 힘으로 애나는 그를 순수했던 태초의 인간으로 되돌려 놓았다. 이제 세상엔 두 연인만이 존재했다. 그들은 서로를 경배하고 경이에 눈뜨며 새로운 육체의 신비를 감상했다. 드디어 눈을 들어 애나의 얼굴을 마주 본 칼의 표정엔 숨막히는 경이로움이 가득했다. 자신도 모르게 여체의 신비에 압도당한 그가 모국어로 중얼거렸다. 그의 혀에서 미끄러져 나오는 언어는 그대로 사랑의 가락이었다. 애나는 문득 노랫가락처럼 들려 오는 그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고 싶었다.

[뭐라고 그런 거예요, 칼?]

그는 애나의 턱을 감싸 안았다가 그녀의 목덜미와 가슴, 배, 허벅지, 무릎을 어루만지며 영어로 다시 말했다.

[애나, 아름답소.]

[다시 스웨덴어로 해보세요. 내게 스웨덴어로 그 말을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줘요.]

그녀는 이상한 발음을 내는 그의 입술을 지켜보았다. 섬세하고 감각적인 활 모양의 입술이 노래하듯 벌어졌다.

[듀 아르 바커, 애나.]

그의 입술과 얼굴을 매만지며 그녀가 따라 했다.

[듀 아르 바커, 칼.]

아직도 애나의 손가락을 입술에 느끼며 그가 다시 말했다.

[자그 알스카 딕, 애나.]

눈을 살며시 감고 그녀의 손바닥에 뜨거운 호흡을 내뿜으며 한 그의 말은 이미 그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자그 알스카 딕, 애나.]

그가 독특하게 발음하는 자신의 이름을 들으면 그녀는 언제나 미칠 것 같았다.

[자그 알스카 딕, 칼.]

애나가 부드럽게 속삭였다. 발음이 서투르든 아니든 그녀는 남편의 모국어를 배우고 싶었다.

[지금 내가 뭐라고 한 거죠?]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소.]

그녀는 두 손으로 그의 얼굴을 잡고 키스했다.

[자그 알스카 딕, 자그 알스카 딕, 자그 알스카 딕.]

애나는 그의 눈을 감기며 수없이 사랑의 고백을 되풀이했다. 따뜻한 두 사람의 몸이 만났다. 그가 애나를 푹신한 물소 가죽위로 살며시 누이고 그 위를 자신의 몸으로 덮었다. 칼은 그녀를 세차게 안고 애무하고 키스했다. 그녀에게 현기증을 일으키는 쾌락의 순간을 맛보게 해주었다. 그는 다시 그녀를 안고 옆으로 누워 애나가 전하는 손길과 입술의 감촉에 몸을 맡겼다. 이번엔 애나가 그의 몸 위로 올라가 가슴과 배와 엉덩이를 눌렀다. 땋아 올린 그녀의 머리가 헝클어져 선이 가는 그녀의 얼굴에 흘러내렸다. 칼은 손가락으로 풀어진 그녀의 머리채를 빗기기 시작했다. 그녀가 그의 목덜미와 가슴에 키스하고 조금씩 아래로 입술을 미끄러뜨렸다. 곧 그는 애나의 머리채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말았다. 두 사람은 다시 몸의 방향을 바꾸고 서로에게 녹아 들었다. 절정에 도달하기 직전 그가 애나에게 부탁했다.

[다시 한번 말해 줘, 애나 내가 당신을 사랑하듯 당신도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 줘.]

[자그 알스카 딕. 사랑해요, 칼.]

그들은 처음으로 서로의 몸을 섞던 그날의 합일 감과 충족감을 다시 한번 느끼며 감각적인 율동에 따라 서로의 몸 깊숙이 들어갔다. 그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주고받으며 환희에 찬 신음과 중얼거림과 육체의 떨림으로 또 다른 언어의 세계를 경험하며 절정의 순간에 올랐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함께 혼절하듯 쓰러져 잦아드는 호흡 속에서 매끄러운 피부에 일렁이는 불길의 그림자를 감상했다. 칼은 그녀의 몸 안에서 참으로 오랜 만에 평화로운 휴식을 취했다. 애나는 땀에 젖은 그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촉촉했던 그의 어깨가 애나의 손길과 불길에 조금씩 마르고 있었다. 그의 입술이 애나의 목덜미를 자근거렸다. 오랫동안 휴식을 취하고 났을 때 애나가 천장의 그림자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칼, 당신 몸이 어떤지 알아요?]

[어떤데?]

그녀는 맨 처음 그의 몸에 손을 댔을 때부터 느꼈던 그 느낌을 표현해도 좋을지 순간 망설였다.

[당신이 내 몸 안에 있을 때, 그건 당신이 쓰는 도끼자루 같아요.]

[도끼자루라고?]

어리둥절해진 그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길고, 단단하고, 유연하고...언젠가 당신이 말했던 것처럼 신축성이 있어요.]

[이젠, 아니야.]

그가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말하고 나면 분명히 당신이 놀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

그가 애나의 콧날에 입을 맞추었다.

[앞으로는 우리 애나가 도끼자루의 감촉이 어떤지 절대로 잊지 못하게 계속 놀려 댈 생각이오.]

[오, 칼.]

그녀가 까르륵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의 웃음소리가 그리웠소.]

[난 당신의 놀림이 그리웠어요.]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미소 지었다.

[오, 애나, 당신은 정말 대단해.]

그는 행복하고 황홀한 표정으로 그녀의 얼굴과 머리칼을 훑어보았다.

[어떤데요?]

칼은 자신이 느끼는 그대로의 애나를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어떤 말로도 애나의 존재를 단정 지을 수 없었다.

[당신이 어떤지는 모르겠소. 난 당신이 확실하게 아닌 점만 알아. 당신은 스웨덴 사람이 아니고, 이렇게 따는 머리 모양은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 아일랜드인이지. 아까 머리를 풀어 보려고 했는데 더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소. 아니, 지금은 아니오. 그래 봤자 더 헝클어지기만 한다니까. 그냥 내버려 둬요. 당신은 뚱뚱하지도 않고 빼어난 요리사도 아니고 밭일에도 소질이 없지만, 난 상관없소, 애나. 난 지금 그대로의 당신을 원하는 거요.]

[알겠어요, 칼, 절대로 변하지 않겠다고 약속할게요.]

애나는 그의 목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좋소.]

[그런데요, 칼?]

[음?]

[어차피 이번 겨울에 내게 글을 가르쳐 주려면 매우 골치가 아플 거니까, 이왕이면 두 가지 말을 다 가르쳐 주세요. 까막눈만 아닐 정도로.]

그는 기분 좋게 웃으며 그녀에게 다시 입을 맞추었다.

[오, 애나. 당신은 정말 대단한 여자요.]

밤이 깊어 야행성 짐승들도 잠자리에 들 무렵에야 애나와 칼은 사랑을 마쳤다.

[제임스를 위해서 빗장의 끈을 밖으로 내려뜨려 줘, 애나.]

그가 바닥에서 무거운 물소 가죽을 집어 들고 구석에 있는 침대로 향하며 말했다. 애나는 문을 열고 잠깐 동안 어두운 밤의 세계를 내다보았다.

[칼, 난 당신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을 때까지도 이 땅에 대한 당신의 진정한 애정과 풍요로움을 느끼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알아요. 정말로 알 것 같아요.]

[어서 침대로 와요, 애나.]

그녀는 어깨너머로 미소 지으며 문을 닫고, 매끄럽게 다듬어진 마룻바닥을 지나 촛불이 밝혀져 있는 침대로 걸어갔다. 칼이 그녀를 기다리고 서있었다. 그리고 침대 머리의 베개 한가운데에는 그들의 저녁 식탁을 향기롭게 지켜 주었던 스위트 클로버 한 줄기가 앙증맞게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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