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8화 (78/86)

애나는 입을 벌리고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그때 마침 제임스가 반짝반짝 윤이 나는 새 총을 셔츠 소매로 닦으며 헛간에서 나왔다. 그는

 무쇳덩이를 어깨에 메고 통나무집으로 들어가는 칼을 한참이나 지켜보다가 소리를 질렀다.

"그게 뭐예요?"

칼은 천천히 몸을 돌렸지만 쇳덩이에 가려져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음, 애나의 새 난로야."

그러고 나서 그는 더 이상 설명도 없이 통나무집 안으로 사라졌다. 

'애나의 새 난로라고?'

'애나의 새 난로라니?'

'애나의 새 난로야!'

칼이 '음, 그건 애나의 다이아몬드 왕관이야'라고 대답했더라도, 그녀가 이처럼 놀라지는 않

았을 것이다. 애나는 새 난로의 부품을 바쁘게 나르는 칼의 동작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반가움과 행복감이 그녀의 가슴에 번져 갔다. 칼은 아내가 있는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묵묵

히 짐을 나르고만 있었다. 애나는 뛰어 들어가서 난로를 조립하고 있는 칼의 곁에 서 있고 

싶었지만 어째야 좋을지 몰라 그냥 제자리를 지켰다. 칼이 마침내 그가 마차 의자 밑에서 진

한 회색 연통을 꺼내 들었을 때, 애나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내가 도와 줄게요, 칼."

'내 난로를 만져 봐도 되요? 이건 내 선물이죠? 이게 꿈은 아니겠죠?' 애나의 마음 속 질문

은 끝이 없었다. 

"이건 내가 들겠소. 당신은 거기에 있는 작은 꾸러미만 들어주면 되오."

"하지만 난 돕고 싶어요!"

그녀의 마음을 이해한 그는 연통을 그녀에게 안겨 주었다. 기쁨에 찬 그녀의 표정을 보는 그

의 마음도 흐뭇하기 그지 없었다. 

흥분된 그녀의 갈색 눈동자 아래에서 그녀의 주근깨가 춤을 추듯 반짝거렸다. 

"당신에게 줄 것이 더 있는데……."

"또요?"

"그렇소. 새 난로를 사니까 최신식 냄비들도 함께 주더군. 무쇠로 만든 솥보다 요리하기가 

쉽고 가벼워서 들기도 편하오. 저기 상자에 들었소."

"최신식 냄비라구요?"

"상자에 들었다니까."

"구리예요?"

"아니오. 옻칠 그릇이라고 하던걸"

"옷칠 그릇이오?"

"옻칠을 했기 때문에, 구리로 만든 냄비처럼 쉽게 타지도 않고 쇠솥처럼 녹이 슬지도 않는다

고 선전합디다."

애나는 타버린 음식의 이미지가 떠올라 시선을 떨구고 상자의 표면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언

제나 형편없는 음식만을 내밀던 자신의 모습이 새삼 부끄러웠다. 칼은 시선을 떨군 그녀를 

바라보며 자신이 또 무슨 실수를 했을까 고심했다.

다행히도 그때 제임스가 끼여들었다. 

"우와! 누나는 새 난로에다 새 냄비들이 생겼고, 난 새 총이 생겼어요. 이제부턴 매형이 읍

내에 자주 나가기를 빌어야겠네요."

칼이 빙그레 웃었다. 

"그런데 우린 언제 사냥 갈 수 있어요?"

"집 짓는 일이 끝나고 채소도 다 뽑고 나면"

"채소는 우리가 다 뽑았어요, 칼. 저랑 누나가 벌써 다 끝냈는걸요."

"순무도?"

"물론이죠. 벌써 다 물에 씻어서 지하 창고에 저장도 했어요.

누나가 만드는 오늘 저녁 메뉴도 순무예요."

"정말?"

칼은 발그레하게 홍조를 띤 아내의 얼굴을 기분 좋게 쳐다보았다. 

"우리 애나가 순무를 요리한단 말이야?"

칼이 그녀를 '우리 애나'라고 부를 때면 언제나 애나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하지만 제임스는

 계속해서 떠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큰 순무는 태어나서 처음 봤어요!"

"내가 뭐했어?"

칼은 제임스에게 싱긋 웃어 주고 나서 등을 돌린 뒤에 혼잣말을 했다. 

'애나가 순무 요리를 한다고?'

칼이 옻칠을 한 냄비들이 담긴 상자를 들고 통나무집으로 들어가자 애나가 동생을 향해 거칠

게 속삭였다. 

"제임스 레어든, 너 내 요리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얘기하지마, 알겠어?"

"내가 뭐랬길래 그래?"

"넌 신경쓰지 말란 말이야!"

바로 그때 칼이 돌아왔다. 그는 바지를 한 번 치키고 나서 샘터 움막이 있던 곳으로 걸어갔

다. 

"누군가 샘터에 대해서 얘기해 주기를 기다렸는데 아무도 말해 주지 않으니, 먼저 물어야겠

군."

애나는 순식간에 순무 따위를 잊어버리고 아연 긴장했다. 제임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떠들어 

댔다

"움막은 망가졌어요, 칼."

"어떻게 샘터에 가만히 서 있던 움막이 망가질 수가 있지?"

"내가 곰을 쏘았을 때 같이 산산조각 나 버렸어요."

제임스는 그 순간만큼 짜릿하고 흐뭇한 기분을 느낀 적이 없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의 

무용담을 털어놓는 순간의 행복감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칼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새로 사준 검정색 장총을 어루만지며 소년은 '별 것 아니었다'

는 듯이 얘기하고 있었다. 

"곰?"

"맞아요."

"네가 곰을 쏘았다고?"

"음, 저 혼자서 한 건 아니었어요. 누나와 제가 함께 곰을 잡았어요."

제임스의 표정엔 지금까지의 과장된 평정이 사라지고 있었다. 

활짝 미소를 짓는 소년의 입에서 술술 얘기가 풀려 나왔다. 

"그랬지, 누나? 우린 자고 있었는데 밖에서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어요. 우리 문을 송두리

째 갉아먹는 것 같은 엄청난 소리였어요. 그래서 우린 그게 뭘까 고민했죠. 조금 있으니까 

그게 샘터 쪽으로 움직였어요. 칼도 그 소리를 들었어야 하는 건데……. 덩치가 커다래서 문

으로 들어갈 수 없으니까 모조리 부수어 버린 것 같아요. 우린 움막의 벽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릇이란 그릇은 다 헝클어뜨려 놓고서 곰은 수박 시럽을 먹고 있었어요. 난 누

나에게 횃불을 붙여 달라고 했어요. 누나가 길을 잃었을 때 만들어 두었던 횃불 생각이 났거

든요. 우린 곰이 눈이 부셔서 제대로 보지 못하도록 갑자기 다가가서 놈이 무슨 일인지 생각

도 하기 전에 총을 쏘았어요. 곰은 한 번 먹이가 있는 곳을 알면 반드시 나타난다고 얘기해 

주셨잖아요. 그놈이 다시 못 오게 하려면 죽이는 수밖에 없었죠. 난 칼이 가르쳐 준 대로 한

 것뿐이에요. 곰의 눈 사이를 정확하게 겨누고 총을 쏘고 났을 땐 곰의 머리가 거의 다 박살

이 났어요."

드디어 제임스가 숨을 쉬느라 말을 멈추었다. 

칼은 소스라치게 놀라 소년을 향해 몸을 숙였다. 

"정말로 너와 누나가 그런 일을 했단 말이냐?"

"그럼요. 그렇지만 칼이 총알에 화약을 너무 많이 넣었나 봐요. 총을 쏘는 바람에 샘터의 뒷

벽도 날아가 버렸다구요. 저도 얼마나 놀랐는지 아세요? 그렇지 누나?"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제임스는 서둘러 얘기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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