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화 (60/86)

하지만 그녀가 길을 되돌아 갔을 때, 샛강은 두 줄기로 갈라져 있었고 두 갈래 모두 북쪽으

로 흐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양동이는 이제 돌덩이처럼 무거웠고, 태양은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 사방이 회색 어둠에 휩싸

였다. 애나는 버드나무 가지를 하나 꺾어서 달려드는 모기를 쫓았다. 개구리들이 울기 시작

했고, 윙윙거리는 모기 소리가 바람소리처럼 따라왔다. 애나는 시끄러운 개구리 울음과 극성

스러운 모기의 공격에 완전히 넋이 빠졌다. 그녀가 정말로 길을 잃었나 보다고 체념할 무렵

엔 서쪽 하늘에만 희미하게 주황색 기미가 남아 있을 뿐 숲 속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길

게 팔을 뻗은 나뭇가지가 마귀의 손가락처럼 무시무시해 보이기 시작했다. 

칼과 제임스는 굴뚝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오르고 벽난로 안에는 저녁 식사가 따뜻하게 요리

되고 있으리라고 기대하면서 요한슨의 오두막에서 돌아왔다. 그러나 벽난로 안의 재는 차디

찼고, 요리를 시작한 흔적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밭을 돌아본 칼은 말끔하게 잡초가 뽑혀 

가지런히 키를 자랑하는 채소들을 보고는 새로 지은 통나무집으로 들어갔다. 해가 져서 안은

 캄캄했다 구석 쪽으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애나? 안에 있소?"

열린 굴뚝을 통해 들어온 새들이 그의 목소리에 놀라 푸드득 날아올랐다

그는 마당에서 제임스와 만났다. 

"샘터에도 없어요."

"헛간에 있을지도 모르지."

"제가 벌써 가 보았는데 거기에도 없었어요."

칼은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럼 연못에 갔나 보다."

"누나 혼자서요?"

"생각나는 곳은 그곳밖에 없잖아."

그들은 총을 들고 연못으로 향했다. 숲 속에 혼자 들어가면서 애나는 왜 총을 가져가지 않은

 것일까? 지금은 들짐승들이 먹이를 사냥하는 시간이었다. 연못은 사나운 짐승들이 목을 축

이러 나타나는 장소였다.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을 가진 짐승들을 생각하자 등골이 오싹했다.

 그러나 연못에는 들짐승도, 애나도 없었다. 

그는 그녀가 갈 만한 곳을 도무지 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 제임스는 거의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이었다. 그는 누나가 나무 그늘에 숨어 있다가 살짝 나와 주기를 바라면서, 칼보다 몇 

발자국 앞서 걸었다. 그들이 오두막에 도착했을 때는 어슴푸레한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혼자서 요한슨 씨댁으로 걸어간 게 아닐까요?"

제임스가 희망을 품으며 물었다. 

"그랬더라면 우리가 오는 길에 만났을 거야."

칼의 눈썹이 걱정으로 일그러졌다. 

"저 위쪽으로 난 길은 뭐예요?"

"아무것도 아니야. 그 길로 쭉 가면 캐나다의 포트 펨비나 라는 곳에 도착해. 누나가 왜 그

런 길로 갔겠어?"

"매형, 전 겁이 나요."

"그럴 때일수록 더욱더 정신을 가다듬어야 하는 거야."

"누난 요즘 들어서 많이 울었단 말이에요."

칼은 제임스가 뜨겁게 달군 쇠꼬챙이로 그의 가슴 한복판을 찌른 것 같았다. 그는 이를 악물

고 소년을 응시했다. 

"생각 좀 하게 조용히 해라."

제임스는 정신을 가다듬을 수가 없었다. 이마를 문지르며 안절부절못하고 왔다갔다하는 칼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더 불안해졌다. 칼은 불을 지피고 나서 무릎을 꿇고 앉아 불길을 가

만히 들여다보았다. 제임스가 더 이상 침묵을 견디지 못하겠다고 생각한 순간 칼이 벌떡 일

어서며 외쳤다. 

"양동이 개수를 세어 봐!"

"뭐라고요?"

"샘터에 가서 양동이 개수를 세어 보란 말이다! 지금 당장!"

"네."

제임스가 밖으로 뛰어나가자, 칼은 헛간으로 들어가 안에 남아있는 양동이의 개수를 확인했

다. 

그들이 다시 마당 한가운데에서 만났을 때, 어둠은 완연했다. 

"네 개예요."

"이쪽엔 세 개야. 그렇다면 하나가 모자라!"

"하나가 모자라요?"

"누나가 양동이를 들고 나갔다면 무언가를 가지러 갔다는 얘긴데……. 뭘까? 통나무 벽 틈새

를 막을 진흙을 가지러 갔을까? 아니야, 진흙을 팠던 곳엔 벌써 다녀왔잖아. 베리를 따러 갔

나? 말도 안 돼. 블루베리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텐데……. 잠깐!"

두 사람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우리 땅에도 북서쪽에 가면 블루베리가 있다고 얘기했잖아요."

"맞았어! 말과 마차를 끌고 나와서 요한슨 씨댁에 다녀와야겠다, 제임스. 애나가 숲 속에서 

길을 잃었다면 여러 사람이 필요해. 숲은 밤에 치명적이야."

칼은 제임스가 가져갈 수 있도록 말린 버들가지 잎을 장작개비에 감아서 횃불을 만들었다. 

"가서 최대한 빨리 요한슨네 사람들을 이리로 데려와. 총과 등불을 가져오라고 말하고. 서둘

러, 제임스!"

"네 !"

건장한 남자라고 해도 해가 진 뒤에 홀로 숲 속을 헤매는 일은 무모한 짓이었다. 칼은 그것

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침착하려고 애쓰며 제임스가 요한슨 가족들을 데리고 돌아오기를 기

다렸다. 

그 동안 그는 숱 속에 들어갈 때 쓸 횃불 뭉치를 여러 개 만들었다. 여덟 개의 막대기를 준

비한 그는 한꺼번에 묶어서 등에 짊어졌다. 드디어 제임스가 요한슨 가족들과 함께 돌아왔다

. 그들은 쓸데없는 질문으로 시간 낭비를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다. 그들은 애나를 한

다가 다른 사람도 길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칼의 주의 사항에 귀를 기울였다. 

"먼저 샛강을 따라 내려갈 생각입니다. 강에 도착하면 서로 횃불이 보일 정도로만 거리를 두

고 퍼져 주십시오. 횃불이 꺼지면 옆 사람에게 신호를 보내세요. 애나를 찾게 되면 옆 사람

을 통해서 그 소식을 전체에게 알려 주십시오. 숲이 너무 깊어서 애나가 들어갔을 것 같지 

않은 지점에 이르면 제가 총을 한방 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모두 오른쪽으로 돌아서 

팔백 걸음을 옮긴 후 다시 샛강 쪽을 살펴봐 주십시오."

"너무 걱정 말게, 칼. 우린 반드시 찾을 거야."

올라프가 말했다

"모두들 들통에서 재를 꺼내다가 얼굴과 손에 바르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모기들이 여러분을

 통째로 삼키려 들 겁니다. 애나를 찾으면 얼굴과 손을 비벼서 그녀에게도 재를 묻혀 주세요

. 벌써 모기한테 끔찍하게 당했을 것 같아 걱정입니다."

칼이 일사 불란하게 명령을 내렸다. 

그들은 칼과 제임스를 따라 숲으로 들어갔다. 졸졸졸 흐르는 샛강을 따라 깊이 들어간 그들

은 흩어지라는 칼의 지시를 받고는 간격을 넓혔다. 그들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깜박이는 횃

불 하나를 높이 든 채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들은 각자 애나를 몹시 걱정하고 있었다. 지독한 모기를 쫓을 잿가루도 바르지 않은 채 작

은 등불 하나도 없이, 숲 속을 어슬렁거리는 야행성 들짐승의 위험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는 

그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 그들은 눈과 귀를 긴장시키며 목이 터져라 애나의 이름을 

불렀다. 

칼과 제임스의 머리 속에는 애나가 다쳐서 꼼짝도 하지 못하거나, 겁에 질려 울고 있거나, 

죽은 듯 쓰러져 있는 광경이 자꾸만 떠올랐다. 

칼은 어떻게 해서든 함께 데려가지 않고 그녀를 집에 홀로 내버려 둔 자신을 호되게 나무랐

다. 말끔하게 정돈된 채소밭을 생각하니 목이 메었다. 칼은 자신들의 불편한 관계가 얼마나 

지속되었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사랑을 나눈 지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를 생각했다. 요

즘 들어 애나가 많이 울었다는 제임스의 말이 떠올랐다. 애나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

지는 그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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