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7화 (57/86)

"이곳에 정식으로 이주하신 건가요?"

"그렇소. 나와 우리 가족 모두 옮겨 왔소."

"다른 분의 도끼 소리도 들리는군요."

칼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시선을 들었다. 

"그래요. 나와 아들들이 집을 짓기 위해 땅을 다지고 있소."

요한슨의 스웨덴 억양은 칼보다 훨씬 더 심했다. 

"저희도 집을 짓는 중입니다 이쪽은……. 이쪽은 제 가족입니다."

칼이 마차를 향해 돌아섰다. 

"아내 애나와 처남 제임스입니다."

올라프 요한슨은 아직도 모자를 가슴 앞으로 든 채,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건넸다. 

"케이트린이 당신들을 보면 얼마나 기뻐할까! 아내와 두 딸들은 ―커스틴과 네다인데― 이웃

이나 친구가 없으면 어떻게 사느냐고 계속 걱정했소. 세 여자는 노상 외로워서 죽을 지경이

라고 불평이 대단했다오, 우리처럼 식구가 많은 가족과 함께 살면서 어떻게 외롭다는 것인지

, 원."

말을 마친 그가 너털웃음을 웃었다. 

"식구가 많으신가 보죠?"

칼이 물었다. 

"그렇소. 다 큰 사내놈이 셋이고, 딸이 둘이오. 다 자라지는 않았지만 꽤나 큰 여자 아이들

이지. 그래서 우린 아주 은 통나무집을 세울 생각이오."

칼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이웃뿐 아니라 친구도 생긴 것이다. 

"자, 가서 내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 봅시다. 내가 이렇게 근사한 선물을 가지고 돌아올 줄은

 아마 상상도 못하고 있을 거요."

"저희 마차를 타고 가시죠."

"물론이오!"

요한슨이 흔쾌히 대답하며 마차 뒤에 실은 삼목 위로 올라섰다. 

"곧 친구들을 만날 테니 조금만 기다려요! 우리 가족도 당신들을 만나면 이게 꿈인가 생신가

 할 거요."

칼이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조금 전에 지붕 널로 쓸 삼목 한 그루를 베었는데, 선생님 땅인 줄 모르고 실례를 했군요. 

먼저 여쭤 봐야 하는 건데, 주인이 계신 줄 몰랐습니다."

"이웃 사이에 삼목 한 그루 가지고, 뭘!"

올라프는 손을 들어 숲을 가리키며 목청을 돋구어 말을 이었다. 

"이렇게 많은 삼목 가운데 한 그루쯤이야 무슨 대수겠소?"

"이곳 미네소타는 정말로 좋은 땅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스웨덴에 있는 기분이 들었어요."

"난 여기가 더 비옥한 것 같소. 내 평생 이렇게 울창한 낙엽송은 처음 봤으니……."

"네, 곧고 바르게 자라서 아주 똑바른 집을 지을 수가 있습니다."

좁은 마당 저편에서 들려 오는 도끼 소리에 칼과 올라프는 서로 마주 보며 함께 웃었다. 캔

버스천으로 덮개를 씌운 마차가 마당 한가운데 서 있고, 대가족이 정착을 시작한 흔적이 여

기저기 눈에 띄었다. 집을 짓기 전이라 가재 도구가 한쪽으로 즐비하게 널려 있고, 가운데에

는 모닥불이 지펴져 있었다. 임시로 지은 축사에 갇혀 있는 가축들도 눈에 들어왔다. 거풍擧

風,을 하려는지 옷을 담았던 나무 상자의 뚜껑이 열려 있고, 침구와 옷가지는 커다란 마차 

바퀴와 주변의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다. 

한 여인이 모닥불 위에 얹혀진 삼각다리가 달린 프라이팬을 휘휘 젓고 있었고, 또 다른 여인

은 덮개가 씌워진 마차에서 내려왔다. 제임스 또래의 소녀는 블루베리를 다듬고 있었다. 마

당 끝쪽 에서는 세 남자가 웃통을 벗어젖힌 채 뒷모습을 보이며 도끼를 휘두르고 있다가 마

차 소리에 모두들 일제히 행동을 멈추었다. 

올라프가 큰 소리를 지르며 손을 젓자 단숨에 식구들이 마차가 서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케이트린, 내가 누굴 데려왔는지 봐요. 이웃이 생겼어!"

올라프는 신이 나서 외치며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이웃이라구요!"

중년 여인이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소리쳤다. 

"그것도 같은 고향 사람이야! 스웨덴 사람이라구!"

갑자기 마당은 스웨덴 사람들로 가득 찼다. 애나와 제임스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동시에 탄

성을 질렀다. 일일이 활기찬 악수를 나눈 칼이 마침내 애나를 내려 주러 마차로 돌아왔다. 

"이 사람은 제 아내, 애나 입니다. 하지만 스웨덴어는 하지 못해요."

아쉬움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쪽은 처남, 제임스고요."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가 갑자기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지만 애나는 그 모든 말

들이 환영의 인사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다행히도 그들은 그녀와 제임스에게는 영어로 말

을 걸었다. 

"우리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해요, 음식은 충분하니까."

"고맙습니다."

애나가 대답했다

올라프가 자신의 가족을 나이 순으로 한 사람씩 소개했다. 그의 아내 케이트린은 몸집이 통

통하고 인상 좋은 중년 여성이었다. 그녀는 말을 할 때마다 볼우물을 패며 쾌활하게 웃었다.

 언젠가 칼이 설명했던 그의 어머니가 아마 저런 모습일 거라고 애나는 생각했다. 긴 머리채

를 단정하게 땋아 내린 케이트린은 깨끗한 앞치마를 두르고 사과처럼 붉은 뺨에 사랑이 넘치

는 눈빛을 가진 사람이었다. 

맏아들 에릭은 칼과 비슷한 또래인 것 같았다. 사실 그는 키가 좀 작고 외모가 빠진다는 점

만 제외하면 여러 가지 면에서 칼과 아주 똑같았다. 

맏딸 커스틴이 다음 차례였다. 그녀는 어머니 케이트린의 젊었을 적 모습이라고 여겨질 만큼

 어머니를 빼 닮았다. 

다음은 레이프와 찰스가 소개되었다. 스무 살과 열 여섯 살 정도의 건장한 청년이었다. 

열네 살이라는 막내딸 네다가 마지막으로 인사를 건네자, 제임스의 목소리가 갑자기 소프라

노로 바뀌었다. 그 바람에 모두들 웃었다. 

애나는 이토록 건강하고 활기찬 사람들을 한꺼번에 만난 적이 없었다. 여자들까지도 건강미

가 넘쳐흘렀고 장밋빛 뺨이 사랑스러웠다. 그들은 모두가 눈부신 금발이었다. 새로운 친구들

을 반갑게 맞이한 그들은, 쓰러뜨린 통나무를 의자로 쓰고 있는 식탁으로 안내했다. 모두들 

흥분된 목소리로 스웨덴에서의 생활과, 놀랍도록 풍요로운 미네소타에 대해서 칼과 얘기를 

나누었다.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애나와 제임스는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들으며, 그들이 뿜어내는 열

기에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애나는 모닥불을 가운데 두고 동그랗게 둘러앉은 사람들을 돌아

보았다. 

대책 없이 헝클어져 제멋대로 휘날리고 있을 자신의 머리칼과 대조적으로 차분한 그들의 단

정한 머리를 바라보며 애나는 조금 시무룩해졌다. 

맏딸 커스틴이 일어나 커다란 무쇠 프라이팬에 담긴 음식을 저었다. 그녀의 뒤에서 애나는 

두상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한 오라기의 흐트러짐도 없이 꽁꽁 땋아 내린 거스틴의 머리채를 

바라보았다. 뒤통수 꼭대기에서부터 정 가운데로 땋아 내린 그녀의 머리채는 로마의 여신을 

연상시켰다. 커스틴은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드레스 위에 눈부시게 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있

었다. 환상적인 냄새를 풍기며 익고 있는 음식을 향해 상체를 구부린 그녀의 풍성한 몸매는 

퍽 인상적이고 여성스러웠다. 

애나는 문득 동생의 바지를 아무렇게나 입고 있는 자신이 말괄량이처럼 여겨졌다. 그녀는 슬

며시 등뒤로 손을 숨겼다. 흡의 덩굴을 파느라고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커스틴의 손은 그녀

의 드레스만큼이나 깨끗했다. 그녀는 요리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녕 잘 아는 사람처럼 능

숙하게 모닥불 주변을 오갔다. 

음식은 모두가 애나에게 생소한 것들 뿐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 애나는 짐작조

차 할 수 없었다. 먼저 스웨덴식으로 만든 발효빵이 선보였는데, 그 빵을 보자마자 칼은 '림

파다!'하고 외쳤다. 진짜 버터도 보였다. 요한슨네 가족은 소도 여러 마리 가지고 있었으므

로 우유로 만든 진기한 버터가 있었다. 기막히게 맛있는 소시지로 만든 스튜를 맛본 애나가 

재료를 묻자 케이트린은 사슴 고기로 만든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양념 맛이 풍부하고 쫄깃

한 소시지에서는 조금도 사슴 고기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들은 두툼하고 바삭거리는 와

플에 블루베리와 생크림을 듬뿍 얹은 과일 파이를 마음껏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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