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잘했어! 조금만 더!"
기다란 통나무가 허공에 매달려 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말들이 계속해서 앞으로 움직이자 사람과 말은 집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말이 히잉거리는
울음소리와 남자들이 독려하는 외침이 계속해서 들리고, 마침내 대들보가 통나무집 중앙에
자리를 잡았고, 덜그럭거리며 사슬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칼이 외치는 소리가 집 뒤편에서
들려 왔다.
"해냈어! 우린 해냈어, 제임스!"
제임스는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하늘을 향해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놀란 벨이 몇 발자국 뒷
걸음질을 쳤다.
애나는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달려가 동생을 끌어안고 진심으로 그의 성공을 축하했다.
"네가 해냈어! 아주 잘했다구!"
그녀는 훌륭한 마부임을 여실히 보여 준 동생이 대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 정말 잘했지?"
"그래, 벨이 잘 도와 주기는 했지만 아주 훌륭해."
"그건 그래."
제임스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벨의 통통한 배에 입을 맞추었다.
"벨, 난 널 사랑해!"
바로 그때 칼이 모퉁이를 돌아왔다.
"이게 뭐하는 거야? 세상 사람들, 여기 좀 보세요. 내 처남이 말에게 키스하고 있어요!"
다시 한 번 웃음이 터졌다.
"제가 해냈어요, 칼."
제임스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래, 잘했어. 스웨덴에서 내가 알던 친구들에게 한 수 가르쳐주어도 되겠는걸."
제임스는 그것이 최상의 칭찬임을 잘 알았다. 두 사람은 동시에 반듯하게 제자리를 잡은 대
들보를 올려다보았다.
"솔직히 전 겁이 났어요."
"가끔 겁이 나더라도 꼭 해야 할 일이 있는 거란다. 겁이 난다는 걸 솔직히 인정하는 남자가
더 대범한 사나이야."
"처음에 고삐를 잡았을 때 얼마나 겁이 났는지는 말 안 할래요."
칼은 그러한 소년의 태도가 무척이나 흐뭇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들보를 올릴 때면 나도 굉장히 겁이 난단다. 하지만 우린 해냈잖아, 그렇지?"
"그럼요."
마지막 비밀
특별한 의식은 없었지만 통나무집의 상량식은 칼과 제임스 사이가 돈독해지는 데 촉매 작용
을 톡톡히 했다. 그날 이후 둘 사이엔 묘한 동지 의식이 흘렀다. 주변에서 남자다운 남자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제임스에게나, 수두룩한 형과 동생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자란 칼에게
나 그 감정은 형제애와 서로 통했다.
제임스가 당당히 정식 마부 시험에 합격한 이후, 그들은 사내들끼리의 스스럼없는 대화를 나
누게 되었다. 자연히 함께 일하고,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 전보다 훨씬 쉬워졌다. 두 사람은
이제 비슷한 감정과 희망을 품고 추억거리를 함께 만들어 나갔다.
칼은 제임스에게 스웨덴에서 살 때의 일과 사랑이 넘쳤던 가족에 대해서, 그리고 제임스와
애나가 오기 전까지 외롭고 삭막했던 2년간의 이민 생활에 대해서 끊임없이 얘기해 주었다.
칼은 더 이상 혼자 잠자리에 들지 않아도 되고, 홀로 식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들은 애나에 관해서도 자주 대화를 나누었다. 칼이 누나를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임스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지난날 제임스가 깨닫지 못했던 그 사랑의 감정은 물질적인 풍요로움보다 훨씬 더 소년의 마
음을 안정시켰다. 소년은 따뜻한 가정에서 사내로 씩씩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칼은 서서히 제임스와 애나가 살아온 지난날에 대해 털어놓도록 소년을 부추겼다. 하지만 제
임스의 설명은 극히 단편적이었다. 소년은 과거를 회상하는 게 불쾌한 듯 대답을 회피하는
경우가 많았다. 두 남매가 특히 피하고 싶어하는 화제는 그들의 어머니에 관한 것이었다. 어
머니 얘기가 나올 듯싶으면 제임스는 궁지에 몰린 고슴도치처럼 움츠러들었다. 애나 역시 입
을 다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칼은 여기저기에서 조금씩 얻어들은 얘기로 그들이 '바바라'라고 부르는 여인에 대해
서 그가 아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일부러 그 문제를 꼬집지는 않았지
만 제임스와 대화하면서 보스턴에 대한 얘기를 꺼내도록 유도했다. 어떠한 얘기를 해도 좋다
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애썼다.
제임스와 애나에게 각각, 또는 함께 주어지는 사소한 일거리는 끊임이 없었다. 벌집에서 밀
을 채취하는 일도 그 중 하나였다. 밀은 양잿물을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원료였
다. 가을까지 잘 보관해 두었다가 운이 좋아서 살찐 곰이라도 잡게 되면 곰의 기름과 혼합해
서 수지 양초를 만들 수도 있었다. 밀은 마구를 손질하는 윤활제로도 유용할 뿐만 아니라 저
장 음식을 만들어 보관할 때나 약초를 다릴 때에도 요긴했다.
칼은 애나에게 빨래를 삶고 세탁해서 나뭇가지에 널어 말리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세탁은
애나에게 무척 고된 일이었다. 그녀는 양잿물로 만든 비누 때문에 손이 벗겨지는 것처럼 아
프다고 불평을 했다. 그녀가 계속 불만을 터뜨리길래 그녀의 손을 자세히 살펴보니 '초원의
선물'이라고 부르는 피부병이 문제였다. 도시에서 초원으로 처음 온 사람들에게 주로 걸리는
병인데, 딱하게도 별다른 치료법이 없었다. 살갗이 부어 오르고 못 견딜 만큼 가려운 것이
주증상인 그 피부병 때문에 애나와 제임스는 신경질적으로 손을 긁어 댔다. 칼은 병의 원인
이 비누가 아니라 채소밭의 흙을 만지는 데서 온다고 애나에게 설명했다. 병명을 알았다고
해서 그녀를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고, 애나의 기분이 나아지지도 않았다. 어쨌
든 빨래와 채소밭 가꾸기는 그녀의 기본 임무였다.
칼은 보다 못해 인디언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두 개의 뿔'의 아내가 알려 준 대로 민
간 요법을 실시했다. 그는 숲을 헤매고 다니며 창살 모양의 월계수잎을 따다 말려서 가루로
빻은 다음, 돼지기름에 섞어서 연고를 만들었다. 애나와 제임스는 잠자리에 들 때마다 그 연
고를 발랐고, 낮에는 월계수잎 가루를 엷게 물에 타서 손을 담갔다.
말에 대해서 인간이 알아야 할 사항은 끝이 없는 것 같았다.
마구를 제대로 관리하는 것 자체도 세심한 주의가 요구되었다.
마구에 묻은 말의 땀을 제때에 닦아주지 않거나 헛간을 깨끗하게 청소하지 않으면, 오줌 썩
는 냄새처럼 고약한 악취를 풍기며 가죽이 썩어 들어갔다. 게다가 말발굽도 언제나 깨끗하게
해줘야 말이 일하는 데 지장이 없었다. 말발굽의 청결 문제 이외에도 말을 병들게 되는 이
유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았다.
어느 날 칼과 제임스는 헛간에서 말발굽을 청소하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제임스는 칼 옆에 앉아서 말이 균형을 잃지 않도록 발목을 잡고 발굽을 청소하
는 칼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칼은 몸을 웅크리고 앉아 가느다란 쇠막대기로 움푹 들어
간 말굽에 박힌 흙과 돌 조각을 파냈다.
"난 네가 말 돌보는 일도 아주 빠르게 배워 주어서 정말 기쁘다. 말을 모는 법만큼이나 빨리
익혔더구나.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네가 여기 오기 전에 말을 많이 몰아 보았을 거라고 생
각할 정도야."
"전혀 못 해봤어요."
제임스가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뭔가가 기억났는지 재빨리 덧붙였다.
"아 참, 한 번 몰아 봤어요. 보스턴에 있을 때 그 남자가 딱 한번 자기의 말과 이륜 마차를
몰게 해 주었어요."
"그랬어? 지금까지 한 번도 마차를 몰아 보지 않았다고 하길래 그런 줄만 알았지."
"이런 짐마차가 아니었어요. 말도 한 필이고 한 칸 짜리였는데요, 뭐. 하지만 정말 근사한
마차였어요. 지금까지 본 말 중에서 가장 멋진 말에다가 희한한 빨간색 가죽으로 고삐를 연
결했죠. 얼마나 멋이 있는지, 혹시라도 볼 수 있을까 해서 가끔 마차 대여소엘 기웃거리기도
했어요. 그런데 어쩌다가 기회가 온 거예요.
그날은 무슨 일로 사울이 나한테 마차를 태워 주었는지 모르겠어요. 다른 때는 내가 공짜로
말을 대신 마구간에 옮겨 준다고 해도,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했거든요. 그 남자가 나한테
와서 마차를 줄 테니 한 번 타보라고 했을 때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누가 슬쩍 밀기만 해도
나가자빠질 정도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