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화 (49/86)

칼은 날카롭게 벌어진 까뀌(나무를 찍어 깎는 연장의 하나)를 가져와서, 독특한 사용법을 설

명하며 통나무를 다듬기 시작했다. 애나와 제임스가 보기엔 매우 어렵고도 위험한 작업이었

다. 낙엽송 위에 올라서서 통나무 옆면에 까뀌를 대고 짧은 발판을 눌렀다. 그러면 칼날이 

그의 발끝을 향해 움직였다. 애나는 칼의 장화 바로 밑을 후려치는 칼날의 움직임에 경악했

다. 그는 I0센티미터 간격으로 까뀌질을 했고, 칼날이 지나간 자리는 평평한 나뭇결이 우윳

빛으로 드러났다. 

"칼,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요!"

애나가 소리쳤다. 

"내가 다칠 것 같소?"

그는 말끔하게 깎인 통나무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장화 신은 발을 움츠렸다. 

"숙련된 까뀌공은 구두를 통나무 위에 올려놓고 상처 하나 없이 구두창을 둘로 자를 수도 있

소. 한 번 보겠소?"

"싫어요! 참 잘났어요, 정말."

"하지만 정말이오."

"거짓이라도 난 상관 안 해요. 난 발가락이 온전하게 10개인 남편을 원한다고요!"

"누나는 내 발가락이 좋은 모양이야. 그러니 짜릿한 시범은 보여 줄 수가 없겠는걸."

칼은 제임스를 향해 미소지으며 얘기하다 다시 애나를 쳐다보며 쾌활하게 말했다. 

"자, 제임스와 함께 이 통나무를 굴리도록 도와 줘요."

세 사람은 버팀목을 이용해서 평평한 면이 아래로 가도록 통나무를 굴렸다. 나머지 한 면을 

다듬는 작업이 끝나고 나자, 칼은 양쪽 가장자리를 직각 쐐기 모양으로 잘라 냈다. 세 사람

은 다시 힘을 모아 목재를 운반해 새집의 첫 번째 벽을 쌓았다. 칼이 잘라낸 직각 모양의 끝

부분은 기가 막힐 정도로 아귀가 잘 맞았다. 

날이 거듭될수록 벽은 쑥쑥 높아만 갔다. 옷이 땀으로 흠뻑 젖고 근육이 당길 정도로 혹독하

게 고된 노동이었지만 그만큼 만족감도 컸다. 칼은 사소한 일을 성취하고서도 커다란 만족감

을 느끼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그는 제임스에게 도끼 자루를 자처럼 이용해서 통나무의 길이

를 재고 정확한 각도로 통나무 끝의 아귀 맞추는 방법을 설명하거나, 잠깐 쉬는 시간에 샘터

에서 갓 퍼올린 시원한 물을 마시면서도 무한히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졌다. 

그에게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소중했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는 고귀한 가르침이 담

겨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 한 교훈은, 인생을 절대로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사람의 인생은 치열하게 살아가도록 주어진 자연의 선물이었다. 죽을 것 처럼 힘겨운 노동

 다음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달콤한 보답이상으로 주어졌다. 

어느덧 그들의 머리 높이로 쌓인 통나무 위로 힘겹게 또 하나의 통나무를 올리고 나서 그가 

외쳤다. 

"정말 근사한 집이 될 거요? 나무가 얼마나 곧은지 봐요."

머리칼은 땀에 젖어 휘감기고 팔은 뻐근했지만 그의 표정은 더없이 밝았다. 

애나는 눈에 손 그늘을 드리운 채 튼튼한 나무벽을 올려다보았다. 예전엔 상상도 못했던 고

단함이 엄습했지만 그녀는 얼마든지 더 일을 도울 용의가 있었다. 통나무를 하나 더 들어올

리고 나면 그만큼의 뿌듯한 성취감이 가슴에 밀려들 테니까.

통나무집의 뼈대가 거의 완성된 어느 날, 그녀는 남편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정말 멋지기는 할 거예요. 하지만 내 눈엔 집이라기보다는 새장 같아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칼이 정성 들여 깎아 내고 맞춘 통나무들도 높이 올라갈수록 완벽하게 

아귀가 맞지는 못했다. 모든 통나무집은 대개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 애나는 공연히 칼을 놀리고 싶었다. 

"잘됐군. 내겐 빼빼 마른 새 한 마리가 있는데, 이 새장에 넣고 모이를 잘 먹여서 통통하게 

살을 찌워야겠소."

"장에 내다 팔 암탉처럼 말이죠!"

"오, 아니오. 이 새는 팔지 않소."

"그렇더라도 새장에 잡아 넣는 것이 문제겠군요. 문도 없는 새장에 어떻게 집어넣을 생각이

죠?"

그는 고개를 젖히고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새파란 하늘과 강렬한 햇빛에 그의 금발이 

찬란하게 빛을 발했다.

"그전 것을 발견하다니 당신은 아주 영특한 새인 모양이오. 이 멍청한 스웨덴 남자는 문을 

다는 것도 잊고 있었소."

"창문도요!"

"아, 그렇던가"

칼은 장난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창문이라면, 통나무 틈새로 밖을 내다보면 되잖겠소?"

"안에 들어 가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밖을 내다봐요?"

"벽을 넘어서 위로 들어가면 되지 않소."

"그럼 지붕 없는 집이 되겠군요!"

"한 번 해보겠소, 암탉 아가씨?"

"해보다니, 뭘요?"

"새장에서 탈출하는 거 말이오."

"안에 들어가 보자는 말이에요?"

"그렇소."

"하지만 어떻게요?"

"이리로 올라와요. 이 빼빼 마른 햇병아리 아가씨, 내가 가르쳐 주겠소."

"거길 올라가라구요?"

애나는 자신의 머리보다 한참 더 높은 벽을 걱정스레 올려다보며 물었다. 

"당신이 그 보기 끔찍한 바지를 입고 있는 걸 할 수 없이 참았는데, 처음으로 편리한 점도 

있군. 통나무 벽은 올라오기 쉬우니 걱정 말고 올라와 봐요. 어서 올라오라니까."

애나는 도전이라면 절대로 포기하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다. 일단 굳게 마음먹은 그녀는 서슴

지 않고 두 손과 발을 차례로 움직이며 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조심해요, 병아리는 날지 못한다구?"

마지막으로 열두 개째의 통나무를 짚은 애나의 팔을 칼이 잡아당겨 말 안장에 앉듯 담 꼭대

기에 걸치고 앉도록 도와 주었다. 그는 애나와 마주보고 앉으려고 팔을 이끌었지만, 애나가 

고집스럽게 방향을 틀어 그를 등지고 앉는 바람에 칼은 균형을 잃고 흔들거렸다. 이렇게 높

은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니 세상이 완전히 깃달라 보였다. 똑바로 줄을 맞춘 채소밭의 이랑과

 키가 큰 옥수수가 사열하는 병정처럼 가지런히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밀밭은 저 아래에서 

초록색 바닷물처럼 물결쳤다. 빌과 벨의 잔등이 그렇게 넓은 줄은 처음 알았다. 그들이 지금

 살고 있는 오두막 지붕에는 굴뚝이 솟은 부분에 다람쥐 등지가 깃들어 있었다. 마당에서 숲

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은 자로 잰 듯 곧고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녀의 등뒤에서 칼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모든 것이 다 우리 거요, 애나. 이만하면 풍요롭지 않소?"

그는 앞으로 당겨 앉으며 그녀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애나의 엉덩이가 그의 허벅지에 닿

았고, 그녀는 그의 어깨에 뒷머리를 기댔다. 칼은 싱그러운 나무 냄새와 말에게서 풍겨 오는

 친근한 짐승의 냄새, 그리고 그녀의 체취를 함께 맡으며 행복에 젖었다. 

칼이 그녀의 가슴 바로 아래의 갈비뼈 부분을 어루만지자, 애나가 한 팔을 그의 목에 둘렀다

"그래요, 칼. 당신이 말하는 풍요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아요. 그건 얼마나 많이 가

졌는지를 셈하는 양적인 것과는 달라요, 그렇죠?"

대답대신 그는 애나의 허리를 더 힘차게 끌어안은 다음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자, 이젠 안쪽으로 내려가 봅시다."

두 사람은 함께 통나무를 타고 내려가 네 개의 벽으로 둘러쳐진 공간에 섰다. 통나무 틈새로

 가느다랗게 스며든 햇빛이 그들의 그늘진 어깨와 얼굴을 비추었다. 푸르른 하늘을 천장으로

 삼은 초록의 성벽처럼 느껴졌다 향긋한 내음을 풍기는 나무에 포위된 기분은 아늑하면서도 

은밀했다. 

두 사람은 자석에 이끌리듯 함께 위를 쳐다보았다. 벽 위로 무성한 이파리를 단 나뭇가지들

이 여름 미풍에 하늘하늘 흔들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