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화 (47/86)

그녀의 속삭임이 그의 귓가에 허스키 하게 울려 퍼졌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어둠 속에서 벗어 던진 옷가지를 찾았고, 애나는 떨리는 손으로 벗겨

진 잠옷을 추스르고 단추를 채웠다. 곧이어 칼의 손이 그녀의 손을 잡아당겨 침대에서 빠져 

나오도록 도와주었다. 두 사람이 함께 움직이는 소리에 잠이 깬 제임스가 졸린 목소리로 물

었다. 

"거기 칼이에요?"

"그래, 누나랑 할 얘기가 좀 있어서 산책을 나갔다 오려구. 걱정 말고 어서 자라, 제임스."

그들은 등뒤로 문을 닫고서 맨발로 밤이슬에 젖은 풀밭으로 내려섰다.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

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영롱한 달빛이 살금살금 헛간으로 향하는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내리

비치고 있었다. 

애나는 팔에 스치는 손길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칼의 얼굴은 달빛에 하얗게 빛나는 머리

카락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가 갑자기 멈춰 서서 애나의

 어깨에 담요를 둘러 주고는 한 팔로 감싸 안았다. 오두막을 빠져 나오면서 그는 어느새 가

리개로 쳐 놓았던 담요를 가져 온 것이었다. 

애나는 두 팔을 그의 목에 두르며 칼이 휘청거리며 한 발자욱 뒤로 물러설 정도로 힘껏 안겼

다. 그리고는 서둘러 옷을 입느라 단추를 여미지 않은 셔츠 사이로 손을 집어 넣어 그의 가

슴과 등의 단단한 근육을 쓰다듬었다. 뒤로 젖혀진 그녀의 가느다란 목덜미에 칼이 열정적인

 입맞춤을 퍼부었다. 

"나한테는 지난 밤들이 고문이었소. 당신을 얼마나 갖고 싶었는지…… ."

칼이 신음처럼 내뱉었다. 

그가 힘차게 들어 올린 애나의 부드러운 곡선이 한치의 틈도 없이 그의 몸에 밀착되었다. 

"그저 당신을 만질 수 있기를 비랐…… ."

애나는 키스로 그의 말을 막았다. 이윽고 칼이 그녀를 땅에 내려놓았다. 그녀의 발 끝에 차

가운 이슬이 닿았다. 애나와 칼은 손을 맞잡고 담요 자락을 펄럭이며 헛간으로 달려갔다. 

향긋한 건초 냄새가 풍기는 어둠 속으로 그가 애나의 손을 잡고 인도했다. 담요가 확 펼쳐졌

다가, 건초 위로 사뿐히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성급하게 잠옷의 단추를 잡았다. 

그때 그의 손이 다가와 그녀의 손목을 잡더니 얌전히 옆으로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그가 직

접 그녀의 단추를 끄르기 시작했다. 

"이건 내가 할 일이오. 난 오늘 밤 나한테 주어진 즐거움의 순간들을 온전하게 만끽하고 싶

어."

칼은 그녀의 어깨에서 잠옷을 벗겨 내렸다. 그리고는 다시 그녀의 손목을 잡아 자신의 배 쪽

으로 이끌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요, 애나. 처음부터…… 아무 말 없이 애나는 떨리는 손을 진정

시키려고 애썼다. 그리고 그가 원하는 대로 그의 옷을 벗겼다. 마침내 두 사람의 나신이 서

로를 향했다. 터질 듯한 심장 박동 소리가 그들의 귀를 울렸다. 

잠간 동안 머뭇거리던 칼의 강인한 손길이 마침내 그녀의 어깨를 잡았고, 서로 끌어안은 두 

사람의 몸이 천천히 건초 위의 담요로 움직였다. 

그의 몸은 유연하고 강인하고 정열적이었다. 그는 애나의 몸 구석구석에 입을 맞추며 놀라운

 흥분과 쾌감을 가르쳐 주었다. 

그녀는 떨어질세라 그의 몸에 굳게 팔을 휘감고 그의 입술을 탐했다. 이윽고 그녀의 몸 위로

 올라탄 그가 균형을 잡았다. 

"애나, 난 당신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아,"

그녀는 칼이 절정의 순간에조차 그런 염려를 할 정도로 진지하게 자신을 생각하고 있을 줄은

 짐작도 하지 못했었다. 

"괜찮아요, 칼."

그녀는 두 사람의 몸이 하나가 되는 순간을 더 이상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칼은 떨리는 몸을 천천히 움직여 그녀의 몸 속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엉덩이에 와 닿는 

애나의 손길에 용기를 얻은 그가 좀더 깊은 곳으로 진입했다. 다시 한 번 그는 움직임을 멈

추고 그녀의 신호를 기다렸다. 그녀가 허리를 들어 그를 부드럽게 안쪽으로 인도했다. 두 사

람은 함께 리듬을 찾았다. 두 사람의 움직임은 발레처럼 우아하고 유연하게 이어졌고, 자연

의 놀라운 조화대로 일치의 순간을 향해 고조되었다. 리듬이 격렬해지면서 칼은 열기와 함께

 환락의 기쁨을 맛보았고,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환희의 신음 소리를 들었다. 갑자기 애나

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그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오, 멈추지 말아요."

그녀가 외쳤다. 

그러나 놀란 그는 얼른 몸을 빼냈고, 그녀는 그를 안고 다시 끌어당겼다. 

"왜 그러는 거지, 애나?"

"그대로 좋아요. 제발…… ."

절정의 순간이 지나가자, 칼은 온몸을 떨며 늘어지듯 그녀의 몸을 덮었다. 그리고 애나의 목

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는 땀에 젖은 그의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빗어 내리며, 지금 이 

순간에 울어도 좋은 것인지 망설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가슴은 벌써 터질 것처럼 들먹

이고 있었다. 애나는 울음을 참으려고 이를 악물었지만, 한 순간에 썰물처럼 터져 나온 흐느

낌이 어둠 속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칼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애나!"

그는 자신이 결국 애나에게 고통을 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옆으로 몸을 굴려 그녀를 껴

안았다. 그러나 애나는 그를 외면한 채 팔로 눈을 가리고 계속해서 흐느꼈다. 

"무슨 일이오? 내가 윌 잘못했나?"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는 안쓰럽게 애나의 팔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럼, 왜 우는 거요?"

"나도 몰라요, 모르겠어요."

정말로 애나는 자신이 우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당신도 모른다고?"

아무 말 없이 그녀는 고개만 끄덕였다. 

"아팠소?"

"아니, 아니에요."

그의 커다란 손이 안절부절 못하며 그녀의 머릿결을 쓰다듬었다. 

"아냐, 분명 아팠을 거요. 말해 봐요, 애나."

"행복해서 그래요, 칼. 기대하지 않았는데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났어요, 그것뿐이에요."

"그래서 운단 말이오?"

"난 바보잖아요."

"아니, 아니오.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애나."

"난…… 당신이 나를 싫어할 줄 알았어요."

"그럴 리가…… . 왜 그런 생각을 했지?"

하지만 애나는 진짜 이유를 고백할 수 없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전혀 알아채

지 못한 것 같았다.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걱정했던 사람은 바로 나요. 오늘 하루 내내 난 이것 때문에 조바심

을 쳤지. 그런데 우린 해낸 거요.

우린 어떻게 하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거야. 어떻게 알고있는지 놀랍지 않소?"

"네, 놀라워요."

"당신의 아름다운 몸도 그렇고, 우리가 서로 어쩌면 이렇게 잘 맞는지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오."

그가 소중한 보물을 대하듯 그녀의 몸을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오, 칼, 당신은 어떻게 이런 사람이 되었죠?"

애나는 그가 곧 떠나겠다고 위협이라도 한 것처럼 절박하게 그에게 매달렸다. 

"내가 어떤데?"

"당신은…… 뭐랄까…… 모든 면에 있어서 정말 대단해요. 당신에겐 모든 사물이 의미가 있

죠. 당신은 언제나 무엇에서건 좋은 면만을 찾아내는 사람인 것 같아요."

"당신은 좋은 면을 찾지 않는다는 말이오? 그럼, 지금 우리가 나눈 사랑도 좋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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