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화 (39/86)

"제임스와 함께 미네소타로 오는 동안, 당신이 어떻게 생겼을까 내내 궁금했었거든요. 이곳

에 도착해서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 난 기뻤어요. 당신의 외모가 마음에 들었거든요. 하지

만 당신의 키와 몸집엔 조금 놀란 게 사실이에요. 조금…… 겁이 났었어요."

가슴을 간지럽히는 애나의 손길에 칼은 전율을 느꼈다. 

"당신은 참 커요, 칼."

칠흑 같은 허공에 대고 그녀가 속삭였다. 

"아버지를 닳아서 그렇소."

갑자기 애나는 손으로 한 뼘 한 뼘 그의 가슴의 넓이를 재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닿

는 부분마다 불이 붙는 것 같았다. 

"일곱 뼘이나 되네요."

"도끼를 사용해서 그럴 거요."

그녀의 손길은, 불규칙하게 뛰는 칼의 왼쪽 가슴에서 좀더 오래 머물렀다. 그러나 그는 여전

히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있었다. 이번에는 애나가 그의 두터운 팔뚝을 양손으로 감

쌌다. 

"그리고 아주 강인하죠."

"땅을 많이 일구었으니까."

쉰 목소리로 그가 간신히 대답했다. 

"이것도 당신 아버지를 닳아서 그런가요?"

"그렇소."

"그럼, 이 굵은 목도 당신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 거예요?"

그의 목은 애나의 양 손가락으로도 둘레가 닿지 않을 정도로 굵었다. 칼은 목덜미의 머리털

이 쭈뼛거리며 일어서는 것 같았다. 

"아마 그럴 거요."

"내 손으로는 닿지도 않네요, 느낌이 어떨지, 오래전부터 한번 재 보고 싶었어요."

이런 식으로 얼마나 더 나를 고문할 작정일까.

그녀의 손길이 이번에는 그의 머리카락으로 건너갔다. 

"당신의 머리칼은 정말로 눈부셔요. 이런 금발 머리는 난생 처음 봐요."

"스웨덴 사람이니까."

"스웨덴 사람들은 모두가 다 당신처럼 자신의 외모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나요?"

애나의 손길이 불러일으킨 감각에 온몸이 저려왔다. 하지만 그는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 있

을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잘 모르겠소."

그의 목소리는 이제 묘하게 떨리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우유를 게워 낼 정도는 아니란 말이죠?""그렇소."

애나는 그의 관자놀이 근처를 어루만지다가 손바닥으로 그의 뺨을 감싸 쥐었다. 그러더니 눈

썹 선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이며 낮게 속삭였다. 

"이런 얼굴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오랜 침묵이 뒤를 이었다. 두 사람의 심장 박동 소리가 오두막을 산산이 부서뜨리기라도 할 

듯 세차게 울려 퍼졌다. 

"글쎄…… ."

"적어도 우유를 게워 낼 정도는 아니에요."

그녀의 손가락이 그의 입술을 가볍게 스치더니 사라져 버렸다. 

칼은 가슴이 터질 듯 팽팽해지는 것을 느꼈다. 호흡도 제멋대로 흐트러져 있었다. 

"얼굴은 어머니를 닮았소."

"당신 어머니는 아름다운 분이셨을 거예요."

칼의 가슴이 전에 없이 거대하게 부풀었다. 

애나는 자신이 지금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칼의 마음과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스스로도 잔인한 짓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손길을 멈출 수가 없었다. 여성스

러움이라는 새로운 우주의 힘이 발휘하는 놀라운 결과가 새록새록 흥미로웠다. 하지만 위험

하고 무모한 행동이었다. 이러다가는 오늘밤에 그의 인내심에 한계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

을 하면서도, 애나는 그를 자신의 뜻대로 부리는 쾌감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이제, 애나는 그를 막다른 골목까지 몰고 간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머리 뒤로 양손을 깐지 

낀 채 온순하게 누워만 있던 칼이 돌연 한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움켜 쥐었다. 강철처럼 

단단한 힘이 느껴졌다. 이제, 단숨에 몸을 일으킨 그는 순식간에 그녀를 눕히고 격렬한 입 

맞춤으로 그 게임을 마감했다. 

오, 칼, 당신이 내일 아침까지 참으면 어쩌나 걱정했어요.

불 같은 그의 입술을 느끼며 애나는 생각했다. 

따뜻하면서도 굶주린 듯한 입맞춤이었다. 그의 혀가 그녀의 입술을 따라 등글게 움직였다. 

그의 입술 안쪽의 촉촉하고 매끄러운 살결이 혀 끝에 닿자, 그녀의 몸 속 깊은 곳에 숨어 있

던 강렬한 느낌이 하체를 전율시켰다. 그의 혀 끝이 애나의 이 사이를 헤집고 들어와 따스함

을 전달하더니, 다시 그녀의 윗입술을 간지럽혔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뒤틀었다. 

그녀의 어깨 밑에 깔려 있던 칼의 한 쪽 손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젖가슴으로 옮겨갔다. 그의

 다른 손은 그녀의 머리를 감싸 안고 있었다. 

칼이 숨을 몰아 쉬며 입술을 그녀의 뺨 위에 올려놓았다. 

"애나, 이런 식으로 게임을 하는 건 제발 그만둬 줘. 난 충분히 기다렸소."

지금 말해야 해!

애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그러나 그의 손길을 가슴으로 느끼고 있는 지금, 그녀는 천국에

라도 오른 것 같았다. 통나무를 들어올리거나 도끼를 다루던 그의 거친 손이 지금은 섬세하

리만큼 부드럽게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애나는 굳은살 박힌 그의 손바닥을 맨 가슴으

로 느끼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남자의 손길이 주는 쾌감과 자신의 육체가 갈망하는 달콤한 

즐거움을 처음으로 맛본 순간이었다. 

"오, 애나, 당신은 대체 어린아이요, 아니면 성숙한 여인이오? 아, 당신의 살결은 너무나 따

뜻해."

그의 손이 부드럽게 애나의 양쪽 가슴을 애무했다. 흥분으로 단단하게 일어난 유두가 그의 

손가락에 느껴졌다. 

"아마 난 그 중간인가 봐요. 기다려요, 칼!"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어. 두려워하지 말아요."

그는 입술로 애나의 입을 막으며, 손을 미끄러뜨려 그녀의 허리와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애나는 칼의 육체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에도 스스로 불을 붙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 

역시 간절하게 칼을 원하고 있었다. 

그와 장난스러운 애무를 주고받는 것은 이제 그녀에게도 고문이었다. 애나는 그의 손을 잡았

다. 

"칼, 잠간만요! 미안해요. 오늘 밤엔 이러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실…… 실은, 저 그날

이라 곤란해요."

그의 손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고, 그녀에게서 멀어졌다.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와 함께 그

가 넘어지듯 돌아눕더니 손목을 이마 위에 올려놓았다. 이를 악무는 소리마저 들리는 것 같

았다

"왜 처음부터 얘기하지 않았소? 왜 하필이면 오늘 밤에 이런 일을 벌이기 시작한 거지?"

딱딱한 그의 목소리에선 불쾌감이 역력하게 느껴졌다. 

애나는 간신히 화를 참고 있는 그의 모습을 어둠 속에서도 감지할 수가 있었다. 

"미안해요, 칼. 생각이 짧았어요."

냉랭한 침묵만이 그녀를 맞았다. 

"화내지 말아요. 나도 이러고 싶지는 않다구요."

애나는 침대 한 쪽 끝으로 가 모로 늘고는 가슴까지 이불을 끌어당겨 덮었다. 

"다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시작했단 말이잖소."

"미안하다고 했잖아요!"

"난 당신과의 게임에 지쳤소. 2주일 정도면 충분히 기다렸다고 생각하오. 지금 당신이 한 행

동이 내겐 전혀 재미있지 않아."

"그렇게 화내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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