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화 (37/86)

집 안으로 돌아온 칼은 화가 나서 씩씩거리는 그녀를 건드리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칼과 제

임스는 인디언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칼은 친구들이 조만간 자신의 '스콰우'

를 보러올 줄 알았노라고 설명했다. 

칼마저 자신을 '스콰우'라고 부르자, 머리끝까지 화가 난 애나는 침대에 올라가 벽을 보고 

돌아누웠다. 

난롯불이 잦아들고 오두막이 어둠에 횝싸이자, 칼은 그녀 곁에 몸을 눕혔다. 그리고는 애나

의 귓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우리 '통카 스콰우'가 남편한테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군?"

애나는 이를 악물고 속삭였다. 

"두 번 다시 나를 '스콰우'라고 부르지 말아요! 당신의 그 뻔뻔스런 친구들한테서 하루 종일

 지긋지긋할 정도로 들었다구요!"

"그래, 당신을 '통카 스콰우'라고 부르다니 우린 뻔뻔한 남자들이야. 하긴 당신은 그렇게 불

릴 자격도 없지, 뭐."

그의 대답에 애나는 의아해졌다. 

"자격이라뇨?"

"당신 생각엔 그럴 자격이 있는 것 같소?"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데…… ."

"큰 여자라는 뜻인데, 인디언들에게는 최고의 찬사지. 아무래도 당신이 내 친구들을 감동시

킬 만큼 대범한 행동을 보였던 것 같은데…… ."

"대범하다구요?"

그 인디언들을 만난 이래 내내 뽀족하게 날카로워져 있던 감정과 긴장이 일시에 풀어졌다. 

"샘터에서 그 사람들을 처음 보았을 때, 난 정말 겁이 났었어요. 씻고 있던 콩이 수십 미터 

밖으로 튕겨져 나갔을 정도라구요."

"그래서 샘터 주변에 콩들이 떨어져 있었군."

"얼마나 무서웠다구요."

"다 내 친구라고 얘기했잖소."

"하지만 난 한 번도 인디언들을 본 적이 없었어요. 아직도 누가 누군지 모르겠는걸 요. 한 

'두개의 뿔'은 내 바지를 가리키면서 비웃었어요. 예의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그 사람들을 다

루느라고 내가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당신은 모를 거예요."

"그랬을 거요, 당신은 그들의 사고 방식을 잘 모르니까. 인디언들은 권위를 소중하게 여기지

.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당신은 그냥 당신의 자리를 지키면 되는 거요. 그렇게만 하

면, 그 사람들은 당신을 존경하게 되어 있소."

"정말요?"

"그래서 그들이 당신을 '통카 스콰우'라고 부른 거요. 당신이 그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들었

으니까 말이오. 인디언 남자들은 나름대로 여자를 다루는 방식이 있는데, 당신은 어딘가 달

랐던 거지."

"그래요?"

"그렇소."

그제서야 애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까, 왜 그랬는지 알겠어요. 내가 비버 코를 닮은 인디언의 손을 숟가락으

로 힘껏 때려 줬거든요. 아까 보니까 맞은 부분이 시퍼렇게 멍이 들었더라구요."

"정말 그랬소, 애나?"

"고기 파이 반죽에 더러운 손을 대려고 하잖아요."

"그렇다고 숟가락으로 때렸단 말이오?"

"그래요, 내가 너무 심했죠?"

애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반사적으로 저지른 자신의 행동을 떠올리며 깔깔거리기 시작했다

"당신이야말로 인디언들이 원하는 씩씩한 여성이라고 생각했을 거요. 하지만 어림없지. 버젓

이 이렇게 남편이 있는 여자인걸, 뭐."

"어쨌거나 나를 '통카 스콰우'라고 부를 생각은 말아요. 난 내 이름이 훨씬 더 좋으니까."

"싫소, 통카."

"당신은 내가 그 상황을 즐겼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사실은, 얼마나 

겁이 났었는지 모른다구요. 게다가 내 바지랑 머리칼에 대해서 어떻게나 놀려 대는지 참을 

수가 없었어요."

"당신 머리칼에 대해서도 놀렸단 말이오?"

"네, 당신 머리칼도 함께요."

순간, 애나는 피해야 할 화제를 잘못 꺼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라고 그랬는데?"

칼은 궁금해서 몸이 달았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라구?"

"네, 그렇다니까요."

어둠 속에서 그가 애나의 귓불을 살짝 잡아당겼다

"아무것도 아니라니, 정말 뭔가가 있긴 있었던 모양인데? 남편이 알면 곤란한 얘기인가?"

칼이 입술로 그녀의 턱을 가볍게 꼬집었고, 애나는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 거예요."

"좋아, 말하지 않겠다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다음번에 생선을 잡아 올 땐 당신이 직접 손

을 봐야 할거야. 어때, 재미 있겠지?"

칼은 애나가 미소 짓고 있다는 것을 입술에 느껴지는 감촉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럼, 숟가락으로 세게 때려 줄 거예요. 내가 '통카 스콰우'라는 사실을 잊었어요?"

"난 하나도 무섭지 않은데? 내가 지금 몸을 흔들고 있는 건 절대 무서워서가 아니라구."

"그럼 왜죠, 하얀 머리?"

"아무것도 모르면서 당신을 '큰 여자'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인디언들이 우스워서 그래."

그의 손이 애나의 가슴을 찾았다. 그녀의 가슴은 칼의 커다란 손에 반도 차지 않았다. 

애나는 그의 손을 잡아 올렸다. 

"인디언들의 생각이 맞다는 걸 증명해 보여야겠네요."

그녀는 칼의 손을 세게 물었다.

칼이 비명을 지르자 제임스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통카 스콰우가 힘자랑을 하고 있단다."

"맨 처음에 당신 친구들한테 화가 났던 이유는, 물어 보지도 않고 우리 집에 쳐들어왔기 때

문이었어요."

칼은 와락 그녀를 껴안고 꼼짝도 하지 못하게 짓눌렀다. 씨름을 하는 사람들처럼 두 사람은 

몸을 굴렸고, 마른 옥수수 잎이 침대 아래에서 요란한 소리를 냈다. 깔깔거리며 서로를 놀리

던 두 사람은 입맞춤으로 싸움을 마감했다. 

칼이 애나의 귓가에 속삭였다. 

"아, 당신은 정말 대단해."

"그래도 '통카'는 못 된단 말이죠?"

조그만 유방이 드넓은 칼의 가슴에 납작하게 눌리는 것을 느끼며, 애나는 낮은 목소리로 속

삭였다. 

"난 상관 안 해."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애나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그들은 문 앞에 매달려 있는 꿩 두 마리를 발견했다. 해도 뜨기

 전에 인디언들이 어떻게 꿩 사냥을 했는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미지수였다. 어제 애나가 보

여 주었던 호의에 대한 인디언들의 보답이라고 칼이 설명해 주었다. 

게다가 그 선물에는, '통카 스콰우'에 대한 그들의 인정과 환영의 뜻이 담겨 있기도 했다. 

인디언들은 절대로 친구의 호의를 그냥 받아들이는 법이 없고,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선물로

 은혜에 보답한다는 것을 애나는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결혼 2주째

애나와 칼이 결혼한 지 2주일이 지났다.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그 동안 두 사람은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셀 수 없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서로를 절실

하게 원했다. 신혼 부부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두 사람은 매일매일 서로에게 자신의 실체를 

조금씩 드러냈다. 서로에게서 발견한 가장 매력적인 공통점은, 하루하루 반복되는 친근한 농

담과 건강한 웃음을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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