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화 (30/86)

그는 벗은 셔츠를 손에 들고 애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고

집을 피우고 있었다.

"사람은 항상 몸을 깨끗이 해야 하는 거요."

그의 대답은 간단 명료했다. 

"그렇겠죠."

애나도 맥없이 동의했다. 

"제임스와 함께 물에 들어가 있을 테니 그 동안 버드나무 덤불 뒤에서…… 옷을 벗는 게 어

떨까?"

그는 갑자기 수줍어져서 말을 더듬었다. 

애나는 아무 말 없이 등을 돌리고 덤불로 향했다. 

"자, 들어가자, 제임스."

그의 목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물 속으로 첨벙대며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누나가 들어올 때까지 우리는 비버가 만든 둑 뒤에 숨어 있는게 낫겠다."

서둘러 옷을 벗은 그녀는 살며시 덤불 뒤에서 나왔다. 벗어 놓은 옷가지만 바위 위에 올려져

 있을 뿐 두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애냐는 망설였다. 발가락을 물에 넣어 보니 짐작대로 얼음처럼 차가웠다. 

하지만 사람은 몸을 깨끗이 해야 한다니 별 수 없지.

그녀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 물에 몸을 담갔다. 

그녀가 비명을 지르자 남자들의 웃음 소리가 터져 나왔고, 곧이어 제임스가 소리쳤다. 

"누나, 이리 들어와 조금 움직이고 나면 금방 익숙해진다구!"

물 속에 주저앉은 그녀는 다시 한 번 소리를 질렀다. 

"제임스 레어든! 칼 린드스트롬! 이 순 거짓말쟁이들!"

대답 대신 커다란 웃음 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바람에 놀란 날짐승들이 푸드득 날아올랐다.

"이제 물에 들어왔으니 두 사람 다 나와도 돼요!"

칼과 제임스가 다가오자, 애나는 어쨀 수 없이 목까지 물 속에 담갔다. 두 남자에게 얇은 속

옷 밑으로 내비치는 알몸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제임스, 이 배신자! 넌 나보다 더 목욕하는 걸 싫어 했잖아!"

"지금은 상황이 다르잖아, 누나. 자꾸 까불면 물 밑에서 잡아당긴다!"

제임스는 물 속으로 잠수했다가 이를 드러내며 불쑥 솟아올랐다. 

"그래? 한 번 해볼 테야?"

장난스럽게 물 속으로 따라 들어갔던 애나는 부르르 몸을 떨며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는 흘러내리는 물줄기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종알거렸다. 

"난 당신의 연못이 마음에 안들어요, 칼 린드스트롬! 나를 위해서 물을 좀 데워 줄 수는 없

나요?"

"내려가서 한 번 물어 보겠소."

그가 물을 튕기며 잠수했다. 저 멀리에서 물 위로 나온 그가 소리를 질렀다. 

"미안하오, 애나. 비대들이 안 되겠다는군. 이 정도가 딱 알맞은 온도라는데…… ."

칼이 익숙한 솜씨로 팔을 저으며 그녀에게로 헤엄쳐 왔다. 

"이리 와요.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가 이쪽으로 다시 돌아올 때는 수영을 해서 오는 

거요. 겁내지 말아요."

그는 물 속에서 애나의 손을 잡고 천천히 끌어당겼다. 그녀는 순순히 그가 이끄는 대로 몸을

 맡겼다. 그녀의 속눈썹과 머리칼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바라보며 칼이 미소 지었다. 

"너무 먼데까지는 가지 말아요."

"걱정 말라니까. 내가 당신을 위험에 빠뜨릴 것 같소?"

"그럴지도 모르죠. 스튜 하나도 제대로 만들 줄 모르는 여자를 어디에 쓰겠어요?"

"나름대로 다 생각이 있지."

그는 제임스가 들을세라 조용하게 말했다. 물 위로 젖은 머리를 내민 두 사람은 손에 손을 

잡고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며 조용히 흐르는 물살에 몸을 맡겼다. 물에 젖어 진하게 변한 애

나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빵도 만들 줄 모르는 여자는 어떻죠?"

"가르치면 되지."

입술로 물거품을 만들며 그가 대답했다. 

"비누는요?'

"그것도 가르치면 되지"

"만드는 방법을요, 아니면 사용하는 방법을요?"

"둘 다."

그리고 나서 칼은 입 안에 한 가득 물을 머금더니 그녀의 얼굴위로 내뿜었다. 

"이 나쁜 사람!"

애나는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는 그를 따라갔다. 그러나 그는 날쌔게 헤엄쳐 제임스가 있는 

깊은 곳까지 단숨에 이르렀다. 

"착하게 굴겠다고 약속하면, 내 다시 가서 수영을 가르쳐 주리다."

"뭐하러요? 난 이 끔찍한 개울이 싫다구요!"

갇자기 칼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애나의 뒤쪽을 손가락질하며 제임스에게 물었

다. 

"저기 물뱀 아냐?"

가엾은 애나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고는 정신없이 물 밖으로 달아났다. 경황없이 둑 위

로 올라가느라 그녀의 속바지가 말려 올라갔고 하이얀 엉덩이가 살짝 드러났다. 젖은 옷을 

잡아당기며, 애나는 등뒤에서 깔깔거리고 있는 두 남자에게 소리쳤다. 

"내 다시 들어가기 만 하면 가만 안 둘 거야! 뭐가 우스워요!"

하지만 노발대발하고 있는 애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칼과 제임스는 물 위로 펄쩍펄쩍 뛰어오

르며 웃어 댔다. 그녀는 참담한 심정으로 팔을 감싼 채 개울가 바위에 걸터앉았다. 두 남자

는 다이빙을 하고 헤엄을 치며 비버가 만들어 놓은 환상적인 수영장을 구석구석 탐험했다. 

이윽고 고집스럽게 앉아 있는 그녀에게로 칼이 헤엄쳐 왔다. 

"애나, 들어와요. 다시는 놀리지 않을 테니."

그녀는 양팔로 가슴을 단단히 가렸다. 추위로 도드라진 유두를 감추기 위해서였다. 

"내가 나가서 잡아 와야겠소?"

그가 한 걸음 더 다가서며 위협했다. 물 밖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그의 하체에 그녀의 시선이

 머물렀다. 

"아뇨! 내가 가겠어요."

그녀는 벌떡 일어나 물 속으로 몸을 숨기고, 이번에는 좀더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칼이 다

가와 등을 손으로 받치며 배영을 가르쳐 주었다. 물고기처럼 양팔을 저으라는 그의 가르침을

 순순히 따라하다 보니, 섬처럼 물 위로 솟아오른 그녀의 양쪽 가슴에서 중앙의 짙은 부분이

 눈에 도드라져 보였다. 당황한 애나는 황급히 몸을 뒤집었다. 

수영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애나는 칼과 함께 여러 번 개울을 가로질렀다. 다시 한 번 배영

으로 물가로 향하던 그녀는 균형을 잃고 발이 땅에 닿지 않자 공포에 사로잡혀 비명을 질렀

다. 칼이 튼튼한 팔로 뒤에서 그녀를 감싸 안자 금세 발이 바닥에 닿았다. 

애나가 균형을 잡은 뒤에도 그는 한동안 팔을 풀지 않았다. 허리에 감긴 그의 팔과 손에 그

녀의 가슴 아랫부분이 닿아 있었다. 그는 물 속에서 그녀의 등을 자신의 몸 쪽으로 살며시 

끌어당겼다. 

제임스가 다가오는 바람에 칼은 마지못해 팔을 풀었다. 

세 사람은 함께 개울가로 나갔다. 

지금쯤이면 스튜가 맛있게 요리되었을 거라고 칼이 얘기했다. 

애나는 함께 웃고 떠들며 헤엄치는 동안 피로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이 놀라

웠다. 세 사람은 각자 흩어져서 몸을 닦고 옷을 입은 뒤 집으로 가는 길목에서 다시 만났다.

 그들이 오두막으로 돌아가는 동안, 개구리와 맹꽁이가 합창으로 연주를 들려 주었다. 

문에 들어서자마자 맛있는 냄새가 그들을 반겼다. 족히 5인분은 될 법한 저녁 식사를 말끔히

 해치우는 애나와 제임스를 바라보는 것이 칼에게는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스튜 냄비가 바닥

을 드러내기도 전에 제임스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고, 그의 누나도 마찬가지였다. 칼은 미

소를 지으며 두 남매를 일으켜 세운 뒤 침대로 안내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