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화 (25/86)

"잘 자요, 칼."

"잘 자요, 애나."

그러나 칼은 제대로 잠을 이를 수가 없었다. 밤이슬이 내린 밖으로 뛰어나가 참을 수 없는 

열기를 식히고 싶었다. 아니면, 얼음처럼 차가운 샘물에 머리를 담그거나 마구간으로 달려가

 말들에게 얘기를 걸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목석처럼 가만히 누워 있을 뿐이었다. 잠들 수

도 없었다. 그녀의 부드러운 살결을 만지는 기분이 어떤 건지, 그녀의 입술에서 느껴지는 감

미로움이 어떤 건지, 침대 한 켠을 차지한 자그마한 몸에서 전달되는 온기가 어느정도 인지

를 이미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참담한 마음으로 생각에 잠겼다.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얼마나 오랫동안 구애 작전을 펼쳐야 신부의 기꺼운 사

랑을 얻어 낼 수 있을까?

도끼를 내 몸과 같이

다음날 아침 제임스와 애나가 잠에서 깨었을 때, 칼은 이미 염소를 데리러 가고 없었다. 두 

사람은 서둘러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했다. 

그가 돌아왔을. 무렵, 그들은 골칫거리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염소의 목에 매단 종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자 둘은 매캐한 연기 속에서 낙심한 표정으로 서

로를 쳐다보았다. 애나는 연기를 피하느라 눈앞에서 손을 휘저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머, 어떻게 해. 그가 돌아왔나 봐."

애나가 조바심을 쳤다. 

"차라리 잘 됐지 뭐."

제임스는 오히려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칼이 문가에 나타났다. 

"두 사람,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요? 우리 집을 태워 버릴 작정이었나?"

"장작이…… 잘 타지 않아요."

애나는 기침을 토해내며 간신히 대답했다.

"집 없는 이재민이 되기 전에 제때 돌아왔으니 다행이로군. 당신들은 바람문이라는 것도 모

르오?"

물론 그들도 바람문에 대해 알기는 했다. 하지만 무쇠 난로는 바람문이 연통 안에 있기 때문

에, 칼이 만든 벽난로에 그런 장치가 되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는 연기가 

펄펄 쏟아져 나오는 화덕으로 다가가 뭔가를 매 만지더니, 연기가 사라질때까지 나가 있으라

며 두 사람을 밖으로 내몰았다. 

"또 다른 골칫거리를 만들기 전에 두 사람을 잘 감시해야겠는걸."

미소를 머금으며 칼이 말했다. 

"불을 피워 놓으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랬어요."

제임스가 대꾸했다. 

"알아, 모깃불이 아니라 제대로 모닥불을 피워 놓았으면 도움이 되었겠지. 하지만 모기를 쫓

을 땐 두 사람이 아주 쓸 만하겠어, 하하. 오늘 밤에 제대로 불 피우는 법을 가르쳐 줄게. 

자, 이젠 이리 와서 우리 나나를 만나 보라구."

제임스의 관심은 곧장 염소에게로 쏠렸다. 

"나나, 이쪽은 제임스야."

칼은 염소의 귀를 뒤로 접으며 애정이 담긴 목소리로 설명했다. 

"앞으로는 제임스가 네 젖을 짤 거야. 젖 짜는 솜씨도 불을 피우는 것처럼 형편없다면, 넌 

인디언 친구들에게로 도망가는 편이 나을 거다."

마지막 말은 나나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애나가 깔깔거리며 웃자, 칼이 드디어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여전히 염소의 분홍색 귓

바퀴를 어루만지며 그가 미소를 지었다. 

"잘 잤소, 애나."

"네, 당신도 잘 잤어요, 칼?"

염소가 손에 머리를 비비며 응석을 부리자 그는 염소의 목덜미. 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

다. 염소를 쓸어 주면서도 그의 시선은 줄곧 애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과자를 구울 줄 알아요?"

"아뇨."

"염소 젖을 짤 수는 있겠소?"

"아뇨,"

"돼지고기 소금구이와 옥수수 수프를 만들 수는 있겠소?"

"그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신은 없지만…… ."

이렇게 해서 아침마다 염소 젖을 짜는 일은 제임스의 차지가 되었다. 칼은 소년에게 손쉽게 

염소를 다루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칼이 샘터에서 말에게 먹일 물과 부엌에서 쓸 식수를 길

어 오는 동안, 애나는 옥수수 수프를 만들었다. 

그는 문 옆에 놓인 긴 의자에서 몸을 씻었다. 셔츠를 벗고, 살을 에일 것처럼 차가운 물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서슴없이 몸에 끼얹었다. 애나는 몸을 씻는 그의 동작을 호기심 어린 눈

으로 관찰했다. 칼이 네모난 면도칼을 꺼내 가죽 끈에 문지르자 제임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

고 쳐다보았다. 

"면도할 때 아프지 않아요?"

"날만 잘 서 있으면 아프지 않아. 면도날이 잘 서야 잘 깎여지거든. 나중에 도끼날 가는 법

도 가르쳐 줄게. 나무꾼이라면 어딜 가나 숫돌을 가지고 다니며 한 시간에 한 번 정도는 도

끼날을 갈아야 하는 거야. 네게 가르쳐 줄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와! 빨랑 배우고 싶어서 못 기다리겠어요."

"기다려야지. 적어도 누나가 옥수수 수프와 돼기고기 소금구이를 다 만들 때까지는 말이야."

"저기요, 칼."

"왜 ?"

제임스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사실은, 우리 누나가 처음 만들어 보는 거거든요. 아마 맛이 형편없을 테니까 각오하세요."

"맛이 없다고 해도, 누나한테 솔직하게 얘기하면 안 된다. 네가 처음 도끼날을 갈 때도 난 

잘 못한다며 구박하지 않을 거야."

당연히 요리는 형편없었다. 돼지고기는 질겼고 간도 맞지 않았으며, 수프는 옥수수와 밀가루

가 엉겨붙어 숟가락으로 잘 떠지지도 않았다. 놀랍게도 칼은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다. 대

신에 그는 화창한 날씨와 오늘 하루 계획하고 있는 일거리에 대해서 대화를 이끌어 갔고, 함

께 식사를 할 가족이 생겨서 기쁘다고 말했다. 하지만 칼과 제임스는 애나가 모르는 비밀을 

나누듯 가끔씩 의미 심장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어쨌거나 애나는 칼이 자신의 동생을 대하는

 스스럼없는 태도가 무척이나 고맙게 느껴졌다. 

보석처럼 찬란한 날씨였다. 

사파이어처럼 파아란 하늘과 에메랄드 빛깔의 나뭇잎, 황금처럼 눈부신 태양이 세 사람을 비

추고 있었다. 태양이 중천에 떠오르기 전에 세 사람은 집을 나섰다. 칼은 헛간의 선반에서 

대형 도끼를 꺼내 들었고, 작은 손도끼를 애나에게 건네 주었다. 제임스는 자랑스럽게 장총

을 어깨에 둘러멨다. 

"우선, 새 통나무집을 지을 장소를 보여 주겠소."

그는 넓은 마당을 가로질러, 평평하게 고른 땅에 돌덩이로 직사각정의 집터를 표시해 놓은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돌덩이 위에 한 쪽 발을 걸치고 서서 도끼날로 땅 위에 표시를 

해 보였다. 

"이쪽에 문을 달 거요, 정확하게 동쪽을 향해서. 집을 정남향으로 들어 앉히기 위해서 나침

반을 사용했소."

애나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칼이 말했다. 

·"새집은 흙바닥이 아니오, 애나. 전체에 쪽마루를 깔 거요. 그리고 이 돌들은 주춧돌로 쓰

기 위해 들판과 계곡에서 가능하면 평평한 것으로 골라 온 거요."

그는 뒤로 돌아 도끼 자루로 숲 쪽을 가리켰다. 길게 두 줄로 깔린 통나무가 기찻길처럼 북

쪽 숲길로 이어져 있었다. 

"여기서부터 숲까지는 재목을 옮기기 쉽도록 길을 닦고 침목을 깔아 놓았소. 우리 땅에는 곧

게 자란 낙엽송이 지천이오. 튼튼한 집을 지으려면 똑바로 자란 재목이 있어야 하는데, 그 

점에서 우린 아주 행운인 셈이지, 반으로 쪼갠 통나무는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오. 완전한 통

나무를 조금만 다듬어서 붙이면, 벽이 두텁고 따뜻한 집을 지을 수가 있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