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화 (22/86)

"내일부터 통나무집을 지을 나무를 베기 시작할 거야. 아주 고된 일이지. 내일 저녁에도 네

가 지금처럼 이렇게 신바람이 나 있을지 모르겠구나."

"누나도 함께 가나요?"

"그건 누나에게 달렸지."

애나는 동굴처럼 어두운 이 집에 하루 종일 혼자 갇혀 있느니 차라리 뙤약볕 아래에서 노동

을 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간절한 표정으로 칼에게 물었다. 

"가도 되나요?"

그녀는, 집에 남아서 염소 젖으로 치즈 만드는 과정이나 지켜보라는 대답이 나올까 봐 내심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칼은 오히려 함께 따라 나서겠다는 신부의 대답에 흡족한 얼굴이었다

"물론이오. 하지만, 세 사람이 함께 하더라도 아주 힘든 일이라는 걸 명심해요."

"거봐요, 내가 큰 힘이 될 거라고 그랬잖아요."

제임스가 생색을 냈다. 

그래, 맞아. 하지만 오늘 밤은 사정이 다르지.

칼은 소년의 존재와 그 애와의 대화가 즐거웠지만, 신부와의 첫날밤을 생각하면 난감했다. 

벽난로 안에서 장작이 탁탁 소리를 내며 타오르고 있었다. 칼은 불길 쪽으로 다리를 길게 뻗

으며 의자에 편안하게 기대 앉았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파이프와 담배주머니를 꺼냈다. 

애나는 그의 움직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남편이 담배를 피운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

다. 

그는 천천히 파이프를 채우며 새로 지을 통나무집에 대해 제임스에게 설명했다. 제임스는 식

탁에 턱을 괴고 앉아, 느릿느릿 천장으로 올라가는 담배 연기를 졸린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

다. 칼이 이따금씩 애나에게 시선을 돌렸지만, 그녀는 그때마다 벽난로를 보고 있는 척 황급

히 외면했다. 그 안에는 저녁을 먹은 후에 칼이 물을 부어 놓은 커다란 솥이 걸려 있었다. 

애나가 몇 개 안 되는 접시를 치우느라 내는 소리에 제임스 는잠간 졸음에서 깨어나는 것 같

더니,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삐그덕 소리를 내며 칼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저러다 의자에서 떨어지기 전에 어서 잠자리를 마련해 줘야겠군. 헛간에 가서 건초를 가져 

오겠소."

애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를 보며 대답했다. 

"그러세요."

그녀가 여전히 엉거주춤하게 서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 동안, 그가 쇠스랑 한 가득 풋풋한

 향내가 나는 건초를 담아 가지고 돌아왔다. 칼이 두툼하게 간 건초 더미 위에 물소 가죽을 

두 곁으로 깔고 나자, 제임스는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다가가 곧장 자리에 누웠다. 칼은 쇠

스랑에 기대어 서서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신발도 안 벗고 잘 생각이야?"

제임스가 마지못해 구두를 벗었다. 

칼은 흘금 애나를 쳐다보고는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쇠스랑을 도로 갖다 놓아야겠군."

그가 밖으로 나가자마자 애나는 벽난로로 다가가 물이 데워졌는지 손가락을 넣어 보았다. 생

각보다 빨리 따뜻해져 있었다. 

"애나?"

등뒤에서 들려오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그녀는 기절 초풍할 듯이 놀랐다 그가 돌아오는 소리

를 듣지 못했던 것이다. 

"네?"

칼은 처음으로 두 사람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는 생각에 묘하게 가슴이 설레었다. 서로 친

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그는 머리를 짜내느라 고심했다. 

남편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기절할 듯이 놀라는 신부와 무엇을 해야 하나.

"차 한 잔 들겠소?"

"차요? 아, 네, 그러죠."

뜻밖의 제의에 애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앉아요. 어떻게 만드는지 보여 주겠소."

그녀는 얌전히 앉아서 부엌을 오가는 칼의 움직임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가끔씩 불안한 눈초

리로 동생을 돌아다보았다. 제임스는 벌써 깊은 잠에 빠진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드디어 

칼이 찻잔 두 개를 들고 와서 하나를 그녀에게 건넸다. 

"장미차요."

나직하게 그가 설명했다. 

"네?"

깜짝 놀란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장미꽃으로 만든 차란 말이오. 먼저 컵에 꽃잎을 넣고 으깬 다음 뜨거운 물을 부으면 완성

되는 거요."

"아, 그렇군요."

"전에도 장미로 만든 차를 마셔 본 적이 있소?"

"차라면, 홍차밖에 몰라요. 그것도 많이 마셔 보지는 않았지만

"이곳에선 홍차나 커피가 무척 귀해요. 하지만 장미차가 홍차보다 훨씬 낫죠. 겨울이 길어져

서 오랫동안 채소를 먹지 못하게되었을 때, 장미차를 마시면 괴혈병이 예방되거든요."

애나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맛이 어떻소?"

입 안에 감도는 향긋한 맛이 애나의 표정을 부드럽게 만들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칼

은 흡족해했다. 

"애나, 미네소타는 참으로 좋은 곳이오. 지금 당장이라도 밖에 나가면, 당신이 들어 보지도 

못한 갖가지 과일과 약초를 구할 수 있을 거요. 야생 딸기, 캐머밀, 선모초…… 컴프리차를 

마셔 본적이 있소?"

그녀는 말없이 고개만 저었다. 

"컴프리차 끓이는 법도 가르쳐 주겠소. 우리 밭에서 자라는 컴프리는 향이 아주 그만이오. 

잎을 말리는 법도 알려 주겠소. 당신도 틀림없이 컴프리차를 좋아하게 될 거요."

"기대되네요."

애나는 칼이 자신만큼이나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신에게 보여 주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소. 혹시 농어 낚시를 해봤소? 팽팽해진 낚싯줄을 

잡아당길 때 느껴지는 쾌감이란말로 형언할 수가 없어요. 당신도, 제임스도 분명히 낚시질을

 좋아하게 될 거요. 스칸에서 자랄 때, 난 아버지를 모시고 형들과 함께 자주 낚시하러 다니

곤 했었소. 여긴 스칸보다 훨씬 더 물고기가 많아요. 야생 정이며 노루, 사슴도 지천으로 깔

려 있소. 얼마 전에 근처 숲에서 사슴을 보았는데, 특이하게 생겨서 처음엔 사슴인 줄도 몰

랐소. 나중에 인디언 친구가 가르쳐 주더군 그 친구 이름은 '두개의 뿔'이오. 당신은 이런 

땅을 상상도 하지 못했을 거요. 가을이면, 캐나다에서 청둥오리가 떼를 지어 날아오지.

총 한 방에 한 마리씩 잡을 수 있을 정도요. 게다가 여기에서 자라는 곡식은 정말 대단하오.

 당신도 눈으로 직접 보기 전에는 믿을 수가 없을 거요. 감자가 얼마나 큰지 호박만하게 자

라고, 호박은 또 수박만하게…… ."

갑자기 칼이 말을 멈추었다. 문득 계속해서 혼자만 지껄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내가 너무 수다스럽게 떠든 것 같소."

칼은 꾸지람 듣는 아이처럼 머쓱한 표정이 되어 식탁 건너편에 앉은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았

다 컵을 꼭 그러쥐고 있는 애나의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보였다. 

"괜찮아요. 재미 있는걸요."

두 사람은 동시에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지었다. 순간, 애나는 다시 고개를 떨구고 자신의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보스턴과는 많이 다른 곳이네요. 벌써 차이를 느끼고 있어요.

제임스에게도 아주 좋은 곳이라고 생각해요. 동생은 이곳이 정말로 마음에 드나 봐요."

잠시 동안 불편한 침묵이 흐르고 나서 칼이 조용하게 물었다. 

"그런데, 당신 생각은 어떻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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