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화 (19/86)

동쪽으로 이어진 넓은 마당에는 옥수수와 밀, 보리가 새파랗게 자라고 있었다. 마차로 들어

온 진입로의 정반대 쪽으로는 넓게 나무를 베어낸 길이 멀리 숲으로 이어지고 있었는데, 바

닥에는 껍질을 벗겨 낸 통나무가 기찻길처럼 길게 두 줄로 놓여 있었다. 

일을 나가거나 물건을 사러 갔다가 돌아올 때면, 칼은 언제나자신이 이룩한 보금자리에 대한

 경이로움과 자부심으로 마음이 뿌듯해지곤 했다. 따뜻한 친구처럼 환영해 주는 오두막과 하

루가 다르게 자라는 곡식들, 바람에 사각거리는 옥수수 잎의 노랫소리, 마구간에 풀어 놓은 

벨과 빌이 짚을 밟는 소리, 이 모든 것들이 그의 즐거움이었다. 나무를 운반하느라 깔아 놓

은 두 갈래 통나무는 그의 꿈으로 이어지는 환상의 길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의 신부는 그들의 보금자리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브레이크

를 당겨 마차를 고정시킨 후 고삐를 브레이크 손잡이에 맸다. 그가 느끼는 감정을 애나도 똑

같이 느낄 수 있으리라는 것은 무리였다. 이 모든 것을 자신의 손으로 이룩했을 때의 감동을

 그녀는 알 수 없으리라. 그녀의 눈에는 그저 외롭고 쓸쓸하고 초라한 오두막으로 보일는지

도 몰랐다. 

그가 말들에게 속삭였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애나와 제임스를 먼저 집 안으로 안내해야 해. 그렇다고 질투하지는 마

."

애나는, 칼이 초조한 듯 손바닥을 바지에 문지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애나로

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는 간절한 바람이 들어 있었다. 

"집에 다 왔소, 애나."

그녀는 뭔가 그의 기분을 북돋아 줄 만한 말을 찾으려고 마른침을 삼켰지만, 아무런 말도 떠

오르지 않았다. 애나는 겉모습이 이토록 형편없는 집이 내부라고 해서 별수 있을까, 하는 생

각에 온통 골몰해 있었다. 

이런 곳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다니…… .

아니, 평생이 아닐지도 몰랐다. 어쨌든, 숨막히게 다가오는 첫날밤을 치러야 할 곳이라는 사

실만은 분명했다. 

칼은 흔들리는 시선으로 집을 바라보았다. 침대 머리맡에 놓아둔 꽃 묶음이 다시 기억났다. 

애나를 기쁘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사심 없이 한 행동이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멍청한 

짓이었다. 

그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환쳔의 의미뿐만 아니라, 그의 땅과 집 전체가 그녀를 기쁘게 맞이

한다는 의미로 놓아 둔 꽃 묶음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가 문

제였다. 

진정한 의미를 알아 줄까? 아니면, 염치없이 신부를 침대로 유인하는 데에만 정신이 팔린 남

자의 서툰 장난쯤으로 받아들일까?

어쨌거나 애나는 집 안에 들어가자마자 그것을 보게 될 것이다. 

칼이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제임스도 맞은편에서 뛰어내려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애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칼이 잡아 주기를 기다렸다. 평소처럼 팔꿈치까지 소매를 걷어 올

린 칼이 두 손을 내밀었다. 그의 시선을 외면하며 애나는 그에게 몸을 맡겼다. 허리에 느껴

지는 그의 손길이 다가오는 첫날밤의 공포를 되살렸다. 그녀는 재빨리 칼에게서 몸을 돌렸지

만, 그의 손은 아직도 애나의 가녀린 허리에 걸쳐져 있었다. 그는 힐긋 소년을 쳐다보았다. 

다행히 제임스는 두 사람에게 조금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애나,두려워하지 말아요.당신도 이곳이 아주 마음에 들 거요. 나의 집에 온 당신을 환영하

오. 그리고 이젠 이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기도 해요."

"새로 배우고 익숙해져야 할 것들이 아주 많을 거예요. 너무 서툴러서 당신을 실망시킬지도 

몰라요."

칼에게도 배울 것은 있었다. 다가오는 밤을 생각하면, 그는 심장이 터질 것처럼 빨라졌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배워 나가면 된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달랬다. 

"이리 와요, 집을 보여 주겠소. 그런 다음엔 벨과 빌을 보살펴줘야 해요."

그는 애나와 단둘이 집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소년이 두 사람을 향해 열심히 달려

왔다. 이제 오두막은 제임스의 집이기도 했다. 소년은 한시라도 빨리 안을 보고 싶어 안달이

 난 표정이었다. 

마당을 가로지르며, 애나는 문 옆의 긴 의자에 놓인 물통을 발견했다. 외벽에는 나무못이 박

혀 있고, 가죽끈이 매달려 있었다. 

아마 칼이 세수와 면도를 하는 장소인 모양이었다. 장작 더미 옆에는 장작을 팰 때 쓰일 법

한 통나무 그루터기가 있었다. 

칼은 그녀와 나란히 걸었다. 문 앞에 당도하자 그는 문을 가로질러 막아 놓은 통나무를 뽑아

서 옆에 세워 놓았다. 

"인디언들이 집안에 들어가 물건을 훔쳐 가지 못하도록 하는 거요. 인디언들은 야릇한 명예 

의식을 가지고 있소. 주인이 집을 비운 것을 알면, 그들은 서슴없이 집 안에 들어가 닥치는 

대로 물건을 가져가요. 하지만 문에 빗장을 질러 놓아서 그들에게 외출했다는 것을 알리면, 

창문가에 놓인 말린 과일 정도만 가져 갈 뿐, 다른 물건엔 손을 대지 않소."

"이 근처엔 인디언들이 많이 사나요?"

"그렇소. 하지만 다들 내 친구니까 겁낼 필요는 없어요. 내가 집을 비운 사이에 염소를 대신

 돌봐 주기도 하는걸. 그러고 보니 내일은 가서 염소를 데려와야겠군."

빗장을 거두고 난 뒤에도, 그는 애나에게 집 안을 보여 주고싶지 않은 사람 마냥 오래도록 

머뭇거렸다. 작은 구멍에서 안쪽으로 연결된 끈을 잡아당겨 안쪽의 빗장마저 벗기고 나자 묵

직한 문이 활짝 열렸다. 열린 문을 등지고서, 칼은 애나와 제임스가 먼저 들어가도록 기대고

 서 있었다. 

내부는 어두웠고, 알싸한 흙냄새와 나무를 태운 연기 냄새가 났다. 애나는 토굴 같은 이 집

에서 그가 어떻게 2년을 버텄을지, 다시 한 번 의아해졌다. 칼은 잽싸게 수지 양초를 가져 

왔다. 애나는, 어슴푸레한 저녁 햇살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과연 무엇이 있

을까 궁금해하며 기다렸다. 

성냥 긋는 소리가 들리고, 곧 촛불이 밝혀졌다. 잘 다듬어진 나무 탁자와 의자가 보였다. 집

 밖에 놓여 있던 것과 비슷한 모양의 긴 의자도 있었다. 그리고 기이한 모양의 나무 상자가 

보였다. 다리가 넷 달린, 나무로 만든 여행 가방 같았다. 벽난로 안에는 무쇠 솥이 걸려 있

고, 갈고리처럼 생긴 청동 못에 걸려 있는 선반 위에는 각종 질그릇이 놓여 있었다. 나무 받

침대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다양한 크기의 나무 통과 말린 음식들이 매달린 천장도 어둠 

속에서 모습을 나타냈다. 고운 흙이 깔린 바닥에는 빗자루로 쓸어서 만들어진 부채살 모양의

 자국이 아련히 드러나 있었다. 그가 집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한 일이 비질이었던 모양이다.

칼은 줄곧 그녀의 시선을 좇으며 초조하게 서 있었다. 이윽고 애나의 눈길이 반대 방향에 있

는 침대로 향하자, 그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그는 애나의 가냘픈 어깨를 감싸며 이렇게 

말하고싶었다. 

'당신을 환영한다는 것 외엔 아무 의미도 없으니 오해하지 말아요.'

벽에 걸린 그의 옷가지로 재빨리 시선을 옮기며 애나는 괜스레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제임스

도 침대가 있는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칼은 꽃다발을 움켜 쥐고서 밖으로 달아나고만 싶었

다 대신에 그는 구실을 찾아냈다. 

"벨과 빌이 어서 무거운 마구를 벗고 싶어할 거요."

그가 밖으로 나가자 제임스는 집 안으로 깊숙이 들어서며 누나에게 말했다. 

"그렇게 나쁘지는 않지, 누나?"

"오소리가 사는 토굴을 예상했다면, 나쁘지 않을 수도 있겠지.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살았나 

몰라."

"하지만 누나, 이 집을 혼자 힘으로 세웠다고 생각해 봐!"

제임스는 눈앞의 모든 것이 마냥 신기할 뿐이었다. 그는 벽난로를 쌓은 돌덩이며, 움직이지 

않도록 널따란 판자에 고정시켜놓은 식탁의 다리, 왁스를 먹인 불투명 천으로 막아 놓은 창

문 따위를 하나하나 관찰했다. 창문이라고는 해도 빛이 조금도 들어올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두터운 천 조각을 바라보며, 애나는 어느 누가 저런 것을 창문이라고 부를까 한심했다. 

그러나 제임스는 즐겁기만 한 얼굴이었다. 

"이야, 겨울엔 토끼굴처럼 아늑하고 따뜻하겠어, 누나. 이렇게 벽을 두껍게 만들어 놓았으니

 눈이든 비든 절대로 스며들지 못할거야."

애나는 여행 보따리를 들어 침대 위에 올려놓고는 짐을 풀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꾸만 가라

앉는 마음을 달래려고 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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