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4/86)

애나가 떨리는 손가락을 펼쳤다. 두툼한 징으로 만든 반지를 그녀의 손가락에 끼워 넣는 칼

의 손도 떨리고 있었다. 너무 크게 만든 반지가 미끄러질 것 같아 그녀는 얼른 손가락을 구

부렸다. 

주먹 쥔 애나의 손을 칼이 다시 잡았다. 그리고는 다른 손으로 반지가 끼워진 애나의 손가락

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애나 레어든, 이 반지로 당신을 나의 영원한 아내로 맞이하겠습니다."

그녀는 그의 목소리가 이상스레 떨리는 것을 감지하고,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 그리고 그의 양손에 자신의 오른손을 올리며 말했다. 

"칼 린드스트롬, 이 반지로 당신을 나의 남편으로 맞이하겠어요, 영원히."

칼은 살짝 치켜 올라간 그녀의 귀여운 코와 자신의 입술을 기다리고 있는 예쁜 입술을 내려

다보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이제 이 여인이 진정으로 자신의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

에, 갑자기 그는 소심해지는 것을 느꼈다. 

애나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 칼의 손에 잠깐 힘이 들어갔다고 생각

한 순간, 그가 머리를 수그렸다. 눈도 감지 않은 그의 얼굴이 다가왔고, 그의 입술이 애나의

 입술을 스치듯 지나갔다. 

"다 됐군"

피에럿 신부는, 신랑 신부가 시선을 둘 곳을 몰라 이리저리 방황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부드

럽게 말했다. 애나가 동생을 향해 돌아섰고, 두 남매는 꼭 껴안았다. 

"아, 누나, 누나…… ."

애나는 동생의 귀에다 낮게 속삭였다. 

"우린 이제 안전할 거야, 제임스."

제임스는 누나를 다시 한 번 힘껏 안았다. 

"나도 내 몫은 하겠어."

애나의 손을 잡고 있으면서도, 재임스는 칼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알아."

애나도 칼을 돌아다보았다. 

놀랍게도 피에컨 신부는 그녀를 따뜻하게 포옹하고 볼에 축하의 키스를 해주었다. 

"건강하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 그리고 아이들도 많이 낳을 수 있도록 내가 기도해 주

지."

그런 다음, 신부는 칼과 굳게 악수를 나누었다. 양손을 마주 잡은 채, 신부가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도 마찬가지네, 친구."

"감사합니다. 신부님 기도 덕분에 벌써 아이가 하나 생긴 것 같은데요."

칼은, 활짝 미소 짓고 있는 제임스를 의미 심장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렇군."

피에럿 신부는 제임스와도 힘찬 악수를 나누었다. 

"자, 젊은이, 저 두 사람이 내가 시킨 대로 잘 사는지 지켜보는 일은 자네의 몫이네."

"네, 알겠습니다!"

제임스가 큰소리로 대답하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자, 이젠 나와 제임스를 증인 삼아 두 사람이 서류에 서명하는 일만 남았군. 그런 다음엔 

곧장 길을 떠나야겠지. 갈 길이 멀지 않은가."

칼은 애나의 손을 자신의 팔꿈치에 걸치게 한 후, 어정쩡하게 서 있는 제임스의 손을 잡았다

"우린 갈 길이 멀어. 알겠니, 제임스?"

"네, 알겠습니다!"

소년이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우린 함께 가는 거야. 너와 애나와 내가 함께 말이지."

신부가 세 사람을 건물 뒤켠의 작은 방으로 안내하는 동안, 애나는 칼의 단단한 팔을 잡고 

걸으며 또다시 조바심을 쳤다. 

피에럿 신부는 펜촉을 잉크에 적신 뒤, 그녀에게 내밀며 책상 위에 펼쳐져 있는 양피지를 가

리켰다. 

"자, 먼저 서명해요, 애나."

바로 곁에서 칼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이름

조차 쓸 줄 몰랐다. 

"칼이 먼저 하는 것이 좋겠어요."

머뭇거리며 그녀가 말했다. 

"얼마든지."

칼은 흔쾌히 펜을 받아 들고 종이에 조심스럽게 서명을 했다. 

애나는 그의 목덜미를 바라보다가 제임스를 돌아보았다. 소년은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

다. 애나는 칼과 자리를 바꾸어 선 뒤, 어깨 너머로 자신의 동작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느

끼며 서류에 커다랗게 ' ㄲ' 표시를 했다. 

또 다른 거짓말이 너무도 빨리 탄로 난 것이다. 

애나가 글을 안다고 생각했던 칼은, 그녀의 서명을 보고 기절할 듯 놀랐다. 하지만 그녀는 

칼의 분노를 무마하려는 듯 환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나 칼의 분노는 쉽게 무마될 수가 없었다. 애나가 숨겼던 또 하나의 진실이 드러난 것이

다 하지만 피에런 신부 앞에서 또다시 우스운 꼴을 연출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애나의 팔

을 낚아채듯이 잡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여기서 기다려요. 마차를 가져 오겠소."

그는 애나와 제임스를 남겨 둔 채 뚜벅뚜벅 걸어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누나,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 누나 대신 내가 서명할 수는 없잖아. 그러니까 미리 다 얘기

해야 한다고 내가 그랬었지 이제 어쩌지?"

"괜찮아. 어찌 되었건, 지금은 저 사람도 알고 있잖아."

"그런데 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걸까? 어쩌면, 별로 화가 나지 않았는지도 몰라."

"아니, 아주 많이 화가 났어, 조금 전에 이리로 나을 때, 내 팔을 으스러뜨릴 정도로 세게 

잡아당겼는걸. 하지만 난 앞으로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정말로 그럴 생

각이야.

한꺼번에 나에 대한 진실을 모조리 털어놓겠다고 약속한 적은 없다구. 한꺼번에 알게 되면 

그 사람도 분명히 충격을 받을 거야."

"난 그 사람이 모든 사실을 다 알고 난 뒤에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

애나는 동생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그애의 여비와 새 옷을 자신이 어떻게 마련했는지 혹시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다. 다행히도 그때 피에럿 신부가 그들을 위해 준비한 음식 

꾸러미를 들고 나타났고, 칼도 마차를 몰고 다가왔다. 이제는 작별 인사를 나누고 불투명한 

결혼 생활을 위해 길을 떠날 시간이었다. 

나무들의 천국

마차를 출발시키고 나서 채 1마일도 가기 전에, 칼은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를 꺼

냈다. 그는 팽팽하게 당겨진 고삐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계속 마차를 몰며 낮게 깔린 목소리

로 말을 시작했다. 

"나에게 할말이 있을 것 같은데, 지금 하겠소?"

애나는 흘긋 곁눈질을 했다. 생각했던 대로 그의 턱은 바위처럼 경직되어 있었다. 

"벌써 알고 있으면서 무슨 말을 하라는 거죠?"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로 낮게 대꾸했다. 

"그럼, 그게 사실이란 말이오? 편지는 당신이 쓴 것이 아니었나?"

애나는 고개를 끄덕여 시인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른단 말이오?"

애나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편지는 누가 썼소?"

칼은 애나의 손길이 닿았던 자리라고 생각하며 편지지를 쓰다듬던 자신의 바보 같은 행동을 

떠올렸다. 

"제임스가요."

"제임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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