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86)

"그렇소.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될 거라고 편지에도 써 보냈잖소."

"그렇지만…… 천주교 성당이라는 말은 없었어요."

"물론 여기는 성당이오. 나는 개신교인이고 당신은 천주교인이기 때문에 신부님이 주례를 서

 주시지 않을까봐 걱정하는 거요? 그런 걱정은 말아요. 신부님은 벌써 크레틴 주교님께 우리

의 결혼 서약에 증인이 되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놓으셨소. 하지만 결혼 서약이 있을지 없

을지도 아직 모르는 판국에 그런 걱정은 정말이지 쓸데없는 것이오."

애나는 동생과 함께 보스턴으로 돌려보내지는 일이 더 두려운지, 자신의 또 다른 거짓말이 

폭로되는 것이 더 공포스러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칼이 좌석에서 뛰어내려 고삐를 묶은 뒤, 애나를 마차에서 내려 주었다. 가냘픈 그녀의 허리

에 손을 대는 순간, 그는 언제나 풍족한 음식을 먹었을 거라고 비난하던 애나의 말이 떠올랐

다. 

그녀의 몸매는 서글프도록 가늘었다. 

작은 건물로 다가간 그들은 몸소 문을 열어 준 피에럿 신부의 환대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신부님."

"자네 얼굴을 보니 기쁜 마음이 이를 데가 없네, 칼. 이 아가씨는 물론 애나겠지?"

애나는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신부에게 고개만 까딱해 보였다. 

"이 젊은이가 얼마나 당신을 기다렸는지 아시오? 만날 때마다 당신 얘기밖에 없었다오. 귀여

운 빨간 머리 아가씨, 애나라고 부르면서 말이오. 당신이 바로 오지 않았더라면, 아마 칼이 

집을 내팽개치곤 당신을 찾으러 길을 떠났을 거요."

칼은 신부님의 입을 틀어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성직자를 무조건 존경해

야 한다고 배웠다 그러니 그가 종파를 떠나서 수백 마일 근방에서 유일한 성직자인 천주교 

신부와 남다른 우정을 쌓아 온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의 친근감을 이런 식으

로 폭로하다니,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제가 그 정도로 신부님을 괴롭혀 드렸나요?"

"오, 그렇게 걱정스런 표정 짓지 말게, 칼, 그냥 자네를 놀려주려던 것 뿐이야."

제임스를 발견한 신부가 물었다. 

"그런데 이 젊은이는 누구지?"

"제 동생 제임스입니다."

애나가 재빨리 대답했다. 

"애나의 동생이라고? 음…… 칼은 당신에게 동생이 있다는 말은 하지 않던데…… 어쨌거나 

좋은 소식이야. 미네소타에는 자네 같은 젊은이가 많이 필요하다네, 제임스. 소년에서 청년

으로 성장하기에도 나쁜 곳은 아니지. 이곳이 마음에 드나, 제임스?"

"네, 신부님. 하지만 배울 것이 아주 많은 것 같습니다."

제임스가 지체없이 대답했다. 

신부는 고개를 젖히고 호탕하게 웃었다. 

"아주 좋은 선생을 골라잡았어, 젊은이. 미네소타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있거들랑 이 덩치 

큰 스웨덴 청년에게 물어 보게. 무슨 일이든 즉각 답을 해줄 걸세."

돌연 칼이 헛기침을 했다. 

"전 말을 풀어 놓고 오겠습니다. 신부님은 두 사람과 함께 보스턴과 동부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 계십시오."

"제가 도와드릴까요?"

제임스가 따라나섰다. 

칼은 너무도 가냘프고 어린 소년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가득 넘쳐흐

르고 있었다. 그는 애나에 대한 자신의 결정에 이 소년의 영향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신부님과 누나와 함께 있어. 지치도록 오랫동안 여행을 했잖아. 게다가 앞으로도 갈 

길이 먼데…… 그냥 쉬고 있어."

소년의 눈빛은 칼에게 묻고 있었다. 앞으로 남은 여행이 보스턴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지, 아니면 그의 집으로 가는 길을 의미하는지…… .스스로도 그 대답을 알지 못했으므로 칼

은 시선을 피했다. 

문 쪽으로 걸어가는 그의 널찍한 어깨를 바라보며, 애나는 제임스를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그

의 호감을 사고 싶었다. 아버지를 모르고 자라 온 제임스에게 칼 린드스트롬이라면 더할 나

위 없이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칼이 문 밖으로 사라지고 나서도 그의 단단해

 보이는 뒷모습이 애나의 뇌리에 남아 있었다. 

인디언 여인이 옥수수와 고기가 섞인 맛있는 요리를 손님에게 대접했다. 애나와 제임스는 맹

렬한 속도로 접시를 비우고 있었다. 식탁 건너편에 앉은 칼은 애나를 좀더 세밀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얼굴은 분명 끌리는 데가 있었지만, 그는 그녀의 드레스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듯한 그녀 애나는 무심코 고개를 들다가 그의 시선을 의식하

고, 포크의 속도를 늧췄다. 

칼의 머리속에는 '굶주림'이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떠다니고 있었다. 드레스 밖으로 드러난 

앙상한 어깨와 가느다란 손가락을 쳐다보며 칼은 그녀가 보스턴에서 도대체 어느 정도로 굶

주렸을지를 상상했다. 소년도 비참할 정도로 말라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식사를 하면서

 그런 생각을 지워 버리려고 애를 썼지만, 그럴수록 자꾸만 뇌리 속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저녁 식사가 끝나자, 피에럿 신부는 인디언 여인에게 교실 바닥에 세 사람의 잠자리를 준비

하도록 부탁했다. 

잠시 후, 인디언 여인이 애나와 제임스를 임시로 만든 침대로 안내했다 칼은 뒤에 남아 피에

럿 신부와 얘기를 나눌 모양이었다. 갈대와 물소 모피로 만든 간이 침대에 누운 두 남매는 

오랜만에 아늑함을 느꼈다. 그러나 자신들의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은 편치가 않았다. 

고요한 어둠 속에서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이윽고 제임스가 물었다. 

"우릴 돌려보낼 거라고 생각해?"

"모르겠어."

애나의 맥빠진 대답에서 제임스는 누나도 몹시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난 무서워, 누나."

"나도 그래."

"그래도 좋은 사람 같더라."

제임스가 일말의 희망을 품으며 말했다. 

"아침이면 알게 되겠지."

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쉽사리 잠이 올 것 같지는 않았다. 

"누나?"

한참만에 제임스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고요를 깨뜨렸다. 

"왜 또?"

"아까 다른 거짓말을 털어놓지 그랬어. 그 사람이 물어 봤을 때 다 얘기했으면 좋았잖아."

"다른 거짓말이라니, 무슨 소리야?"

애나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행여 자신이 저지른 용서받지 못할 잘못을 동생이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제임스는 다른 것들을 주워섬겼다. 

"글을 쓸 줄 모른다는 것도 그렇고, 편지는 내가 대신 쓴 거라는 사실도 그렇고, 우리가 살

던 집 얘기도 지어낸 거잖아."

"사실을 말하기가 겁이 났어."

"그렇지만 결국엔 다 드러나고 말 거야. 틀림없이 들통이 날 거라구."

"하지만…… 운이 좋으면, 일이 다 끝나고 난 다음에야 알게되겠지."

"그건 옳지 못해, 누나."

애나는 서러움이 복받쳐 오르는 것을 느끼며 어둠뿐인 천장을 응시했다. 

"알아. 하지만 우리가 옳은 일을 하려고 할 때, 세상은 언제나 우리편이 아니었잖아."

"그래."

제임스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직하게 살려고 하면, 세상은 언제나 그들에게 등을 돌

렸다. 하지만 거짓으로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라는 것 역시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이 나타났을 때 칼 린드스트롬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지, 제임스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가엾은 제임스는 누나가 스물다섯 살이 아니라 열일곱 살이라는 사실도 오늘에야 처

음 알았다. 어쨌든, 오늘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누나가 큰소리를 칠 입장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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