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86)

잘생겼을까? 목소리는 어떨까? 성격은? 어떤 남편이 될까? 사려 깊고 부드러운 남편? 아니면

, 무뚝뚝하고 완고한 남편? 관대하고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좋겠는데…… .

무엇보다도 애나의 마음을 괴롭히는 문제는, 자신이 순결을 잃었다는 점이었다. 

신부가 순결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남편이 어디 있겠는가?

그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애나는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위장이 비비꼬이는 것 같았다. 

자신의 수두룩한 거짓말 중에서도 순결 문제는 특히 용서받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물론, 그 문제는 결혼 서약서에 서명을 하고 난 다음에야 밝혀질 것이다. 그때는 이미 결혼

을 없던 일로 할 수도 없는 상황이겠지만, 애나는 그 생각만 하면 등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제임스 레어든은 누나의 계획에 기꺼이 동조한 공범자였다. 따지고 보면, 애초에 일을 벌인 

사람도 바로 제임스였다. 그는 린드스트롬이 신문에 낸 광고를 애나에게 보여 주었다. 애나

는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문맹이었으므로, 린드스트롬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당연히 제

임스의 몫이었다. 처음엔 린드스트롬이 바라는 여자의 틀에 맞추어 가상의 신부감을 만들어 

내고 편지를 쓰는 일이 쉽고, 또 재미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자신들이 

만들어 낸 덫에 꼼짝없이 걸려들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제임스는 린드스트롬에게 적어도 동생을 데리고 간다는 사실정도는 알려야 한다며 누나와 여

러 번 말다툼을 했었다. 하지만 결국 애나의 승리였다. 그녀는 린드스트롬이 그 사실을 알게

 되면, 결국 두 사람이 보스턴을 탈출하려는 희망도 산산조각이 날게 분명하다고 동생을 설

득했다. 

짐더미와 술통, 곡식 꾸러미가 잔뜩 실린 역마차 뒤칸에 올라앉은 제임스는 몹시 걱정이 되

는 듯 실각한 표정이었다. 정부에서 새로 닦았다고는 하지만 울퉁불퉁 형편없는 도로를 덜컹

거리며 움직이는 역마차의 흔들림에 온몸을 내맡긴 채, 제임스는 자신의 운명이 어느 쪽으로

 홀러갈지 생각하고 있었다. 

누나와 결혼을 약속한 린드스트롬이라는 남자는 불청객인 처남을 별 문제 없이 받아들여 줄

까?

정수리를 내리쬐다가 이제는 한켠으로 넘어간 오후의 태양을 바라보며, 제임스는 인상을 찌

푸렸다. 눈썹까지 푹 눌러 쓴 낡은 모자 밑으로 황갈색 머리카락이 조그만 귀를 덮고 있었다

. 아직 솜털도 가시지 않은 소년의 얼굴엔 깊은 수심의 그늘이 드리워져있었다. 

"다 잘 될 거야."

애나는, 관절뼈가 불끈 튀어나와 기형적으로 보이는 동생의 야윈 손등을 가볍게 두들겨 주었

다.

하지만 제임스는 여전히 바깥을 내다보며, 바퀴가 돌덩이에 걸릴 때마다 심하게 흔들리는 마

차의 기둥에 머리를 기댔다. 

"그럴까? 그 남자가 우릴 돌려보낸다면 어쩔 건데? 그 다음엔 어떻게 하느냐 말이야, 누나."

"설마…… 우릴 돌려보내지는 않을 거야. 어쨌든, 우리 둘이 상의해서 결정한 일이잖니."

제임스는 누나를 흘끗 돌아다보았다. 

"상의라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같이 온다는 얘기를 미리 해두는 건데 그랬어. 그 정

도는 알려 뒀어야 했다구."

"그랬다면…… 우린 늙어 죽을 때까지 보스턴에서 썩었을 거야!"

애나의 대답은 지난 몇 달 동안 수백 번도 넘게 되풀이했던 얘기였다. 

"이젠 미네소타에서 늙어 죽을 때까지 썩게 되겠지, 결국 뭐가 다르냔 말야!"

애나는 이런 식으로 동생과 말다툼을 하는 것이 몹시도 싫었다. 그녀는 동생의 팔에 난 솜털

을 간지럽혔다

"제임스, 너무 그러지 마. 지레 겁부터 집어먹을 필요는 없잖아?"

"누난 두렵지 않단 말야?"

다른 때 같으면 누나의 화해 몸짓에 금세 마음을 누그러뜨렸을 테지만, 지금 제임스는 농담

할 기분이 아니었다. 그는 언제부턴가 누나가 배를 움켜 쥐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있었

다. 어색하게 미소를 짓느라 일그러진 누나의 얼굴을 쳐다보며, 그는 또다시 쓸데없는 트집

을 잡기 시작한 자신이 미워졌다. 

"나도 너만큼 두려워, 제임스."

마침내 애나가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일부러 지어 보이던 밝은 표정도 사라지고 없었다. 

칼 린드스트롬은 애나 레어든이 보낸 편지의 내용에 대해서는 일말의 의구심도 품지 않았다.

 장래 신부감의 모든 얘기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는 생필품을 실어 나르는 역마차가 나타나기를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며, 모리셋의 가게 앞

을 서성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이미 몇 번이고 닦아서 반짝거리는 부츠를 다시 소매 끝으로 문질렀다. 초조한 듯 챙이

 좁은 검정색 중절모를 벗어서 허벅지를 두들기며 멀리 뻗어 있는 길을 바라보다가 다시 머

리에 썼다. 휘파람이 저절로 나왔지만, 너무 촐싹대는 것 같아서 곧 그만두었다. 그는 목청

을 가다듬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그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칼은 신부감을 생각할 때마다 '귀여운 빨간 머리 아가씨'를 떠올렸고, 이젠 그것이 당연한 

호칭처럼 여겨졌다. 그녀는 키가 큰편이고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주체할 수가 없다고 설명

했지만, 그는 고향 마을에서 보았던 여자들을 회상하며 그녀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 보았다

. 발그레한 뺨에 긴 금발 머리를 스웨덴 식으로 단정하게 땋아 내린 생기 발랄한 아가씨의 

모습을…… .주근깨가 조금 있지만, 봐 줄 만한 얼굴이라고 그녀는 편지에 적어 보냈다. 

봐 줄 만한 얼굴이라곤? 그게 무슨 의미일까?

칼은 솔직히 봐 줄 만한 얼굴이기보다는 신부가 예쁘기를 은근히 바랐다. 신부의 외모에 신

경을 쓰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찔끔 죄책감이 든 그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며 스스로를 꾸

짖었다. 

"칼 린드스트롬, 얼굴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 사람은 무엇보다도 마음이 중요한 거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칼은 아직도 예쁜 신부를 바라는 마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하

지만 그녀가 농장에서 큰 힘이 될 수만 있다면, 외모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의 마음에 걸리는 유일한 문제는, 그녀가 아일랜드 출신이라는 점이었다. 아일랜드인은 성

미가 급하고 참을성이 없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거

의 없는 두 사람의 오두막에서라면 쉽게 화를 내더라도 곧 풀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를 꽤나 붙임성이 있고 다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온유한 성품은 스웨덴 사람의 

일반적인 특징이었다. 그는 자신의 성격이 여자를 못 견디게 만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

담했다. 가끔 거울을 볼 때마다 얼굴 때문에 조금 자신감을 잃을 때는 있었지만…… . 그는 

애나에게 우유를 게워 낼 정도로 못생기지는 않았다고 선수를 쳐 놓았지만, 그녀를 만날 시

간이 다가올수록 초조해졌다. 그러나 그녀가 분명 미네소타를 좋아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는 변함이 없었다. 

칼은 드넓은 자신의 땅을 생각하자 흐뭇해졌다. 스웨덴에서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넓은 숲과

 목초지가 그의 소유였다. 말이 귀해서 대부분 소로 마차를 끄는 이곳에서 그는 거금 200달

러를 주고 프랑스 산 종마 두 마리를 구입했다. 손수 만든 마차와 함께 날씬한 두 마리의 말

은 그의 자랑이었다. 칼은 자신에게 비옥한 땅을 배당해 준 미국에 감사하는 의미에서, 말에

게 가장 미국적인 이름을 붙여 주었다. 한 쌍의 종마 이름은 벨과 빌이었다. 그는 또 말끔하

게 청소를 마치고 안주인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 자신의 오두막을 생각했다. 그리고 2년 

전만 해도 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던 숲을 밀고 일군 밭에서 자라고 있는 곡식의 새파란 이

파리들을 떠올렸다. 샘물과 개울, 연못, 단풍나무 숲, 낙엽송, 모두가 그의 것이었다. 비록 

비축해 놓은 식량이 많지 않고 외모에는 조금 자신이 없었지만, 칼 린드스트롬은 앞으로 아

내에게 내놓을 것이 무궁 무진했다. 

그래, 이래봬도 난 제법 부자라구.

그리고 이제 아내와 함께 더 많은 부를 쌓아 갈 꿈이 실현되려는 순간이었다. 

칼은 바지 주머니 깊숙이 넣어 두었던 애나의 편지를 꺼내 들고, 뿌듯한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들여다보았다. 글을 쓸 줄 아는 여자를 아내로 맞게 된다는 것은 분명 행운이었다. 이곳

에선 글은 고사하고 그저 같이 살 여자를 구하는 일도 힘이 들었다. 

그는 애나의 손길이 스쳐 갔을 편지지를 쓰다듬으며,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 갈 화목한 가정

과 아이들을 상상했다. 갑자기 목이 메어 왔다. 가축을 친구 삼아 허망한 대화를 나누는 일

도, 쓸쓸하게 혼자 식사를 하거나 싸늘한 잠자리에서 외로움을 달래는 일도 이제는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심장이 미칠 것처럼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 얼마나 오래 기다려 왔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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