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결혼-8화 (8/11)

8장.

자선 무도회 날 아침에 샐리는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었다. 이틀 동안 작은 방 안에서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결과이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다시 라이와 대면하는 것이 너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는 당연히 사카리아를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무도회에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단단히 화가 나 있겠지.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를 좀 더 진하게 보이게 해 주는 라벤더 빛깔 실크 드레스를 입었다. 연한 자주색 아이섀도는 그녀의 눈동자를 신비롭게 느껴지도록 했고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 단정하게 위로 틀어 올린 뒤 세 개의 나비모양 자수정 핀으로 고정해서 세련된 분위기를 강조했다.

거의 택시가 올 시간이 되었다. 무도회가 끝난 후에 다시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녀는 여행 가방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좁은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하이힐 때문에 발목을 다치고 싶지는 않았다. 사카리아인 주인이 계단의 오른쪽에 앉아 있다가 그녀가 내려오자 벌떡 일어섰다. 그의 눈빛은 그녀를 샅샅이 훑고 있었고 그녀는 그가 긴장하는 것을 감지했다. 혹시 이 사카리아 인이 그녀를 그의 첫 번째 첩으로 삼아 하렘을 시작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서투른 불어로 말했다.

"이 지역에서 당신 같은 사람이 혼자 있으면 위험하오. 택시까지 당신과 함께 가주겠소, 알겠소?"

"네, 고마워요."

그녀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가방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챘지만 그녀는 밖에 기다리고 있는 택시까지의 짧은 거리라도 그가 에스코트해 준다는 것이 고마웠다. 그들이 다가가자 운전사는 싱글거리면서 밖으로 나와 차 문을 열었다.

운전사는 궁전 안으로 들어올 수가 없어서 그녀는 입구에서 내려야만 했다. 그녀의 이름이 손님 명단에서 표시되어 있어서 매처럼 날카로운 표정의 경비병이 그녀를 궁전으로 안내했다. 무도회를 위해 장식된 거대한 방으로 가기 전에 작은 벽장에 그녀의 가방을 집어넣었다.

제법 일찍 도착했는데도 벌써 쾌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세련된 여성들의 옷차림과 화려한 보석들에 눈이 휘둥그레질 지경이었다. 이슬람 쪽 손님들도 쾌 많이 있었는데 그 중 몇몇은 고유의 머리장식을 착용하고 있었고, 몇몇은 유럽식 정장을 입고 있었다. 아마도 라이는 그들 대부분의 이름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좋은 옷을 입고 차분하며 크고 투명한 눈동자로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 몇몇 이슬람 여성들도 있었다. 그녀는 그들의 삶에 대해 물어보며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녀의 참견이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았다.

샐리는 얼굴 왼쪽으로 따끔거리는 시선을 느끼며 손으로 뺨을 어루만졌다. 그제야 그녀는 약간 고개를 돌려 라이의화가 난 눈빛을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얼음처럼 냉혹했고, 그의 턱은 돌로 만들어 놓은 듯 단단했다. 샐리는 턱을 약간 기울여 그녀가 그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그가 겉으로 드러난 흉폭 함을 억누르며 그가 그녀에게로 걸어왔다.

그는 샐리가 서 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와 그녀의 허리를 감았다. 움켜잡은 곳이 아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벗어날 수 없으리란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의 음성은 분노로 거칠어져 있었다.

"당신에겐 누가 보스인지 보여줄 필요가 있어, 베이비. 그리고 내가 그 일을 할 사람이고. 도대체 어디에 있었어?"

"다른 호텔에 있었어요."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에게 알려 주었다.

"처음부터 당신에게 말했잖아요, 우리 결혼을 되돌리고 싶지 않다고. 그대로 한 거예요."

"사흘 간 유예 기간을 주기로 했잖아."

그가 그녀에게 무서운 어조로 일깨워주었다.

"그랬죠. 나를 지켜보는 당신의 눈길을 돌리기 위해서라면 은행을 턴다 해도 동의했을 거예요. 그래서 어쨌다고요?"

그녀가 고개를 들고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나도 당신에게 거짓말했고, 당신도 나에게 거짓말을 했으니… 이제 우린 비긴 셈이에요"

"내가 무슨 거짓말을 했다고 그래?"

그가 날카롭게 물었다. 그는 분노로 얼굴이 석회처럼 굳어가면서도 여러 사람들 앞이라 애써 분노를 자제하는 것 같았다.

"코럴에 대해서요."

그녀가 그에게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 다른 여자를 만난다 해도 내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모르나 봐요? 난 정말로 상관 안 해요."

물론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난 내게 거짓말하는 사람들은 싫어요. 그러니까 당신이 실제로 수도승처럼 살았다고 했죠? 코럴이 그 예쁜 눈동자에 눈물을 담고 사카리아로 당신을 쫓아온 것이 플라토닉 한 관계에 기반을 둔 거라고 믿어야 하나요?"

"당신이 어떻게 코럴에 대해 알았는지 모르겠군.…"

그가 성급하게 말을 꺼내자 그녀가 그의 말을 중단시켰다.

"당신을 쫓아갔어요. 참견하는 게 내 천성이잖아요. 기자로서의 자질의 일부분이기도 하고요. 친애하는 남편님, 난당신이 당신 정부를 위로하면서 그녀의 방으로 데려가는 걸 봤답니다. 즉시 떠나지 않았으니까 당신이 다른 짓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떠나는 걸 잡을 수도 있었어요!"

"내가 코럴을 자기 방으로 데려다 준 건 다 당신 때문이야"

그가 그녀의 허리를 더 강하게 움켜잡으면서 소리쳤다.

"난 그녀에게 날 따라오라고 부탁하지 않았고 당신에게 거짓말하지도 않았어. 그녀는 내 정부도 아니거니와 그랬던 적도 없었어, 하지만 그녀는 호텔로 와서 울고 있었지. 그래서 혹시 당신 말대로 그녀가 나를 사랑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어. 한 번도 그녀가 나를 사랑한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그녀도 다른 남자들과 외출했고 나도 다른 여자들과 데이트를 했으니까. 하지만 당신이 내가 놓친 무언가를 봤을 가능성이 있었지. 그래서 난 그녀에게 사실을 말해 줘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그녀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 가서 당신과 나에 대한 진실을 말해 주었어. 15분 후에 우리 방으로 돌아가니까 당신이 적어 놓은 그 빌어먹을 쪽지만 있더군! 만약 그 때 당신이 옆에 있었다면 당신을 어떻게 했을지 나도 모르겠어. 당신이 걱정돼서 미쳐버리는 줄 알았어!"

"내가 당신에게 말했었죠! 난 스스로를 돌볼 수 있어요."

그의 설명이 사실일지, 그를 믿을 수는 있을지 궁금해 하면서 그녀가 퉁명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그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가 여자와 섹스에 어떤 자세로 임하는지 알고 있었다.

사카리아의 국왕 아부 하룬 알 마흐디 폐하의 입장으로 더 이상의 대화는 할 수 없었다. 모두가 그에게 경의를 표하며 절을 했다. 전형적인 사카리아인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5백 년의 예절과 규칙은 그의 자부심이 묻어나는 몸가짐과 정면으로 응시하는 시선 속에 명백히 드러났다. 그는 먼저 완벽한 영어로 손님들을 환영했고 그 다음은 불어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랍어로 인사했다.

샐리는 그를 좀 더 잘 보려고 발끝을 세우며 목을 길게 내밀었다. 그러던 중 그녀의 눈동자와 왕의 눈동자가 한 순간 맞닥뜨리고 말았다. 잠시 머뭇거린 후에 그가 그녀에게 목례하며 희미하게 수줍은 미소를 지었고, 그녀도 그에게 따뜻하고 친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 후 그들의 시선은 왕에게 더 가까이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차단되었다.

"왕의 호감을 얻었군."

라이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내가 한 거라고는 그에게 미소 지은 것뿐이에요."

마치 그의 말이 마치 비난처럼 여겨지자 그녀가 대뜸 날카로운 목소리로 반박했다.

"당신 미소는 공개적인 유혹이야, 베이비."

그가 느리게 말했다. 그는 작정하고 불쾌하게 굴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자신의 힘이 닿는 한 그녀를 괴롭히기로 작심을 한 듯했다.

"패션쇼를 시작할 시간이 아닌가요?"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어떤 것이라도 감사했다.

"30분 안에 시작하겠지,"

라이는 퉁명스런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하고는 그녀를 패션쇼가 열릴 방으로 끌고 갔다.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마리나를 위해 쇼를 구성했고, 가설무대 주위에 배치된 좌석에 사람들이 벌써 반쯤 채워져 있었다. 친절한 남성 동반자들이 은근히 흥미로워하며 둘러보는 동안 화려한 드레스로 성장한 여자들은 웃고 떠들고 있었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샐리는 라이에게 속삭였다.

"혹시 코럴도 모델로 무대에 서 나요?"

"물론."

그가 냉정한 목소리로 단언했다.

"그러면 어서 앉을 자리를 찾는 게 나을 것 같네요."

그녀가 비난했다.

"야생마도 당신을 끌어 낼 수 없을 테니"

그가 세게 그녀의 팔을 움켜쥐었다.

"제발 좀 그만해 !"

그가 호통 쳤다.

"당신 입 좀 다물 수 없어?"

그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고 그녀가 미처 저항하기도 전에 그녀를 단단히 잡고 방을 빠져 나왔다. 그는 재빨리 그에게 경례하는 경비병에게 소리 지르듯이 뭔가를 물었고, 통로를 지나 그녀를 작은 방으로 데리고 갔다. 라이는 몸으로 그녀를 방에 밀어 넣고 문을 닫았다. 그의 얼굴에서 보여 지는 어두운 분노가 사라지기를 희망하면서 샐리가 다급하게 말했다.

"이건 무슨 방이죠?"

그러면서 그녀는 마치 매우 흥미가 있다는 듯이 작은 방을 둘러보았다.

"관심 없어."

라이가 대답했는데 그의 목소리는 너무 거칠어서 단어들이 거의 불분명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얼굴에 명백한 목적을 드러내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샐리는 놀라서 뒷걸음치기 시작했지만 불과 몇 걸음 가지 못해 그에게 잡혔다. 그는 더 이상 어떤 말도하지 않았다 간단히 그녀를 끌어당겨 입술을 덮었고, 그녀가 저항하는 것을 잊을 만큼 뜨겁고 굶주린 욕구로 키스했다. 어쨌든 저항은 쓸모없었다. 그녀는 그의 힘에 상대가 되지 않았고, 그가 그녀를 너무나 가깝게 잡고 있어서 그들의 육체가 어깨에서 무릎까지 서로에게 붙은 듯 맞닿아져 있었다. 귓가로 피가 확 몰리자 그녀는 그에게로 무너졌다. 오랜 시간이 지나 그가 입술을 들고 그녀의 사랑에 취해 붉어진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다른 여자들에 대해서 내게 말하지 마."

그가 낮은 음성으로 명령했고, 그의 고르지 않은 숨결이 그녀의 입술을 어루만졌다.

"어떤 다른 여자도 당신처럼 나를 흥분시킬 수 없어, 심지어 당신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아도 말이지. 당신은 작은 마녀야. 지금 당장 당신을 갖고 싶어… 그가 미처 다 끝맺지 못한 말을 신음으로 끝내며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스치듯 키스했다.

"그건… 그건 불가능해요."

그녀가 속삭였지만 그녀의 저항은 오직 말뿐이었다. 관능의 불길이 그와 그녀를 태우고 있었다. 그가 끝까지 갈 생각이라면 그녀는 저항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곧 그들이 어디 있는지 깨달은 라이는 떨리는 손으로 그녀를 놓아주었다.

"나도 알고 있어, 젠장."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이 패션쇼를 보고 싶다면 돌아가야 할 거야. 하지만 코럴에 대해서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마."

그가 험악하게 경고했다. 그녀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그가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입술에 립스틱을 다시 바르고, 그의 입술에 묻은 립스틱을 닦으라고 티슈를 건네주었다. 그는 입술을 닦고 나서 티슈에묻어 나온 색깔을 보고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경비병에게 뭐라고 했어요?"

뭔가 중요하지 않은 대화를 나눠야 할 것 같은 압박에 그녀가 결국 물었다.

"당신이 현기증을 느낀다고 말했지."

그가 대답했다.

"당신의 얼굴이 창백해 보였거든."

"지금도 그래요?"

그녀가 자신의 뺨을 만지며 큰 소리로 물었다.

"아니, 키스한 것처럼 보여."

그가 느리게 대답했다. 갈구하는 뜨거운 욕망의 불길이 아직 그녀의 전신에 맹렬히 흘러, 자리에 앉아 패션쇼를 볼 때도 모델들의 행진은 거의 그녀의 의식 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옆에 있는 라이의 육체를 너무 의식한 나머지, 그의 온기와 그의 독특하고 남성적인 체취만 느낄 뿐이었다. 그녀의 심장은 여전히 격렬하게 뛰고 있었다. 그 외에 그녀의 기억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은 코럴이 유일했다. 마치 빨아들일 것처럼 라이에게 고정된 눈동자로 오직 그에게만 의미가 있을 약간은 토라진 듯 감각적인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옆으로 라이를 힐끗 쳐다본 라이의 얼굴은 미세하게 턱 주위의 근육에 힘이 들어간 것을 제외하곤 무표정해 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코럴을 보았고, 속이 뒤집힐 것 같은 구토 감을 느꼈다.

행사의 프로그램은 매분매초까지 완벽하게 순서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패션쇼 후에는 한 끼에 천 달러나 하는 저녁식사 시간이었다. 모든 수익은 전액 자선 사업에 쓰일 예정이었다. 그러고 나서 춤추는 시간이 이어졌고, 그 후에는 유명 가수의 공연이 있었다. 샐리는 마치 물밑을 걷고 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그 시간들을 견디고 있었다. 라이는 그녀와 매순간 같이 있었지만 그녀는 그가 코럴을 보았을 때의 아주 잠깐 스쳐 갔던 그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샐리는 그가 왜 이처럼 자신을 괴롭히도록 놔두는 건지자문하고 있었다. 이제 그에 대해 환상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그녀의 행동 방향은 이미 다 결정해 놓았다. 그들이 뉴욕으로 돌아가면 그녀는 그곳을 떠날 것이다. 그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몇몇 이유들 때문에 그녀는 마음 깊은 곳에서 번져 나오는 비참함을 떨쳐 버릴 없었다. 그 결과 생각한 것 보다 샴페인을 너무 많이 마셨다. 그녀의 주변이 빙빙 도는 것처럼 느껴진 후에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샐리는 구명줄처럼 그의 팔을 꽉 붙잡았다.

"그만 마셔."

그가 그녀의 손가락에서 술잔을 빼서 내려놓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케이크 조각 같은 거라도 먹어야 견딜 수 있을 거야. 이리 와."

그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그녀가 먹는 것을 확인했고 먹는 내내 가까이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기분이 훨씬 좋아지자 그녀는 그에게 고마워하며 미소 지었다.

"인터뷰하려면 얼마나 더 있어야 해요?"

그녀가 불평했다.

"그다지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허니"

마치 그녀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그가 안심시켰다. 얼마 후 모든 프로그램이 끝이 났고, 샐리와 마리나는 국왕이 그들을 위해 제공해 준 방에서 둘만이 따로 있게 되었다.

"국왕은 정말은 귀여운 사람이야."

마리나가 설명했다.

"수줍어하는 것 같은데, 너무 강하게 그걸 숨기려고 노력해, 그리고 물론 왕은 육체적인 걸 제외한 모든 면에서 여자들을 무시하라고 양육 받았겠지. 영국에서의 교육에도 불구하고 사교적으로 여자들을 만나는 일에 익숙해질 수 없나봐 "

"네 남편도 같은 학교를 다녔어?"

자인은 여자들과 어떤 문제도 없어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샐리가 물었다.

"아니, 그래도 그의 사고방식은 어느 정도의 진보는 견딜 수 있어."

마리나가 즐거운 듯 말했다.

"들어 봐, 우리가 약혼할 때까지 그 사람도 하렘이 있었다고. 내가 그와 결혼을 약속하기 전에 모두 포기하게 만들었지!"

그녀가 흐뭇한 미소로 설명했다. 샐리는 웃다가 숨이 막혀 헐떡였다.

"하렘이라고? 농담이지! 아직도 그런 게 있단 말이야?"

"물론이지, 왜 왕가에 그렇게 많은 왕자들이 있다고 생각해? 이슬람교에서는 아내를 세 명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부양할 수 있는 만큼의 많은 첩을 가질 수 있어. 그리고 자민은 확실히 그와 밤을 보낼, 아름답고 예쁜 첩들이 있었어!"

"무슨 말을 했기에 그들을 포기하게 만든 거야?"

"선택권을 줬지. 나를 선택하거나 아니면 다른 여자들을 선택하라고. 그를 다른 여자들과 나눠 가질 의사가 없다는 걸 그야말로 확실히 했지. 하렘을 포기한다는 생각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결국 무지한 미국인의 정서로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걸 깨달았지."

그들의 눈이 마주쳤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바로 그 순간 그들은 라이와 자인이 들어와 그들의 대화를 방해했다.

"이건 심각한 인터뷰라고 생각했는데."

라이가 큰 걸음으로 샐리 곁을 향해 걸어오면서 말했다.

"우리 두 사람만 인터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요."

그녀가 반박했다. 마리나에게 팔을 뻗는 자인의 강한 입술이 보기 좋게 휘어지며 미소를 지었다.

"도저히 참지를 못하겠더라고요."

자인이 설명했다.

"라이를 폐하께 소개시켜 줬지."

그가 떠오르는 기억에 키득거리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 바람에 몇몇 외교관들을 굉장히 질투 나게 만들었지 뭐야. 특히 두 사람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아주 길게 대화를 했을 때는 말이야!"

"미 국무부가 내게 보고를 들으려고 할지도 모르겠어."

라이가 덧붙였다. 샐리는 예전 기억이 생각나 무심코 자인에게 물었다.

"어떻게 라이와 만났어요?"

"그가 내 생명을 구했죠."

자인이 그녀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긴 했지만 그 뒤로 설명이 없었다. 샐리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은 알 필요가 없어."

라이가 놀리듯 말했다.

"당신들 둘 다 있어서는 안 될, 그리고 상상도 못할 곳에 있었어. 거기서 살아나간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기적이었지. 이쯤에서 이 이야기는 그만하자고. 대신 당신과 마리나가 어떻게 만났는지 말해 줘."

"아, 그건 간단해요."

마리나가 어깨를 으쓱했다.

"대학에서 만났죠. 별다른 건 아무것도 없어요. 자, 두 사람 다 나가 주지 그래요? 이렇게 증인들이 있는데, 샐리와 내가 어떻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겠어요?"

두 남자는 웃기만 할 뿐 자리를 비켜 주진 않았다. 결국남자 둘까지 대화에 동참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들을 배제시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라이는 인터뷰를 하기 위해 온 사람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뼛속까지 기자인 사람이었다. 결국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인터뷰 형식으로 바뀌어갔다. 그런 라이의 행동에 화가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가 자인에게 질문하는 방식이나 태도를 보면서 기자로서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로는 단도직입적으로 핵심을 집어 질문했고, 어떤 때는 넌지시 질문을 던져 자인으로 하여금 대답의 수위를 조절해 질문을 피하거나 답하도록 놔두었다. 그러한 배려에 대한 보답으로 자인은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했고 샐리는 자신이 잠재적으로 다이너마이트가 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듣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인은 주요 외무 채널들조차 모르고 있을 사실들을 말하면서도 라이가 보도해야 할 것과 잊어야 할 것을 구별하리라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샐리는 급속히 발전하는 한 국가의 재정과 경제를 다루며, 자신의 조국을 선진국으로 진입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그 남자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는 모험가이자 애국자였다. 아마도 국왕이 젊은 재무장관에게 그처럼 커다란 신뢰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카리아의 정책을 서방 친선 노선을 따라 만들도록 허락한 것도 아마 그러한 믿음에서 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정책들이 실행되는데 마리나의 역할은 작지 않음을 깨달았다. 자인이 왕에게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면, 마리나는 자인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자인이 그것을 인정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최근까지 하렘을 두었던 남자가 그의 아내가 그의 정책노선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것 같지는 않았다. 또한 국왕도 그의 권좌 뒤의 간접적인 영향력에 마리나의입김이 닿아 있다고 생각하면 행복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이 아름답고 젊은 여인은 너무나 확실히 남편과 사랑에 빠져 있으며, 사카리아의 석유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통해 전 세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시나리오 상의 중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마침내 대화는 점점 더 평범해졌고 마리나는 샐리가 올해 안에 사적으로 편하게 방문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샐리가 받아들이려고 입을 열려 할 때 라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올해 늦가을이나 겨울쯤 유럽에서 다큐멘터리를 찍을 예정 입니다."

그가 말했다.

"그리고 샐리도 나와함께 있을 겁니다. 아직 일정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알려드리죠."

마리나가 마음을 담아 말했다.

"우린 지금 너무 뜸하게 봐요. 적어도 내가 뉴욕에 있을 때는 한 달에 한 번은 서로 만나려고 애썼는데 말이죠."

샐리는 뭐라고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라이가 아주 많은 것을 당연히 받아들인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그의 삶에게 걸어 나와 영원히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그가 과연 놀라기는 할까?

그들은 저녁 늦게야 궁전을 떠났다. 그리고 곧 비행기를 타야 했기 때문에 자인이 에스코트를 동반해 공항까지 바래다주었다. 샐리와 라이는 자인의 개인 리무진을 탔고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의 짐은 곧바로 비행기에 실린 후 곧장 비행기를 탔다.

라이는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불길할 정도로 깊은 침묵에 잠겨 있었고 그들이 비행기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맬 때도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녀로서도 그게 좋았다. 피곤했고 그와 다툴 기분도 아니었다. 솔직히 그와 싸우고 있을 때면 샐리는 자신이 쳐진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라이가 냉정하게 미리 각각의 행동을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반해, 그녀는 충동적이고 무모하며 감정을 조절할 수 없어 흥분하기 일 수였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스튜어디스가 승객들에게 베개와 담요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너무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샐리도 자야겠다고 결정하고 그것들을 받아들였다. 그러고 나서 그녀의 의자를 뒤로 눕혔다.

"피곤해요."

그녀가 라이의 옆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잘 자요."

그가 고개를 돌려 이글거리는 눈길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고서 그도 의자를 뒤로 눕히고 팔을 그녀의 머리 밑으로 가져가 그녀가 그의 어깨 위에서 기댈 수 있도록 끌어당겼다.

"당신이 어디에 있을지 걱정하면서 지옥 같은 이틀 밤을 보냈어."

그가 그녀의 정수리에 대고 화난 목소리로 투덜거리면서도 그녀의 몸 위로 담요를 펴주었다.

"이제 당신이 속한 곳에서 쉬어."

그리고서 그는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 입술을 가까이 댔다. 강한 소유욕이 담긴 키스로 그녀의 관심을 요구했다. 그는 그녀가 반응을 보일 때까지 키스를 계속했다. 그 후 그가 고개를 들고 그녀의 머리를 자신의 어깨로 받쳐주었다. 샐리는 방금 나눈 정열적인 키스로 잔뜩 달아오른 얼굴을 감출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왜 그녀는 이다지도 약하고 바보 같은 걸까? 도대체 어째서 그의 유혹에 반응하는 것을 자제할 수 없는 걸까?

키스 후에 그녀는 자신이 잠을 잘 수 없을 거라고 확신했지만, 어쩐 일인지 금방 잠에 빠져 들었다. 긴 비행 동안그녀가 깨었던 적은 단 한 번이었다. 그녀가 몸을 뒤척이자 라이가 담요를 덮어주었던 때였다. 어둑한 기내에서 가늘게 눈을 뜬 채 그녀가 그를 올려다보며 속삭였다.

"안 잤어요?"

"잤었어."

그가 중얼거렸다.

"단지 우리가 단 둘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지."

그가 그녀를 가깝게 끌어당겨 다시 키스했다. 왜 그가 단둘만 있고 싶어 하는지는 의심의 여지도 없었다. 결국 그가 욕구불만에 사로잡혀 욕설을 지껄이며 머리를 뒤로 기댈 때까지 그는 굶주린 듯 몇 번이고 그녀에게 열정적으로 키스했다.

"기다릴 수 있어."

그가 으르렁거렸다.

"간신히 말이지."

샐리는 그의 어깨에 기대어 혀끝에서 맴도는 사랑한다는 말을 속삭이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를 사랑했다! 너무 고통스러워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그를 사랑했지만 사랑하는 그를 믿을 수 없다니….

그들은 다시 파리에서 비행기를 갈아탔다. 사카리아에서 보냈던 날들은 정확히 휴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시차 때문에 두 사람 모두 무척 무리하고 있었고 때문에 매우 피곤했다. 마침내 JFK공항에 착륙했을 때 샐리는 머리가 쪼개질 것 같은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라이의 얼굴에 나타난 긴장되고 피곤한 표정으로 보아도, 그 또한 별로 상태가 좋은 것 같지는 않았다. 만일 그가 고집을 계속 부렸더라면 그녀는 히스테리를 부렸겠지만, 그는 그녀를 아파트에 데려다 주고 심지어 키스도 하지 않은 채 떠났다.

하지만 그 때문에 그녀는 오히려 울고 싶어졌다. 슈트케이스를 질질 끌고 올라가 난폭하게 가방을 비웠다. 신속하게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잠이 달아나 버렸다는 사실에도 분노했다. 기내에서잠결에 받았던 라이의 감각적이고 열정적인 키스들이 떠올랐다. 그의 팔베개를 벤 채 안겨 있는 것이 어떤 기분이었는지, 그의 품이 얼마나 안전하고 편안했는지를 기억했다. 그녀는 너무 화가 나서 결국 소리 내어 흐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울다 지쳐 잠이 들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잠을 깼을 때에야 겨우 맑은 정신과 이성을 찾을 수 있었다 라이는 점점 그녀를 미치게 만들고 있었다. 계획한 대로 당장 떠나지 않으면 결국 그녀를 지치게 만들어 그의 뜻대로 할 것이다. 출근해서 마리나와 가졌던 인터뷰 기사를 작성해서 넘긴 뒤 그렉에게 조용히 사직서를 제출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아파트의 계약을 종료하고 짐을 싸서 버스를 타고 어디로든 떠나기로 했다.

옷을 입고 회사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사고 때문에 교통 체증이 생겨 약간 늦게 도착했다. 그녀가 늘 시끌벅적했던 기자실로 들어갔을 때, 소란스런 잡담들이 일순 멈추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영문을 몰라 얼굴을 붉히며 샐리는 칸막이가 있는 자신의 자리로 서둘러 갔다. 브롬이 바쁘게 기사를 작성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자 하고 있던 일을 멈추고 의자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뭐가 잘못됐어?"

샐리가 반쯤 웃으면서 물었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대답하는 대신 브롬은 몸을 앞으로 숙여 나무로 된 그녀의 명패를 돌려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샐리는 너무 놀라서 그것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새로운 명패였다. 샐리 제롬대신 샐리 베인즈 라고 쓰여 져 세상 모두에게 선언하고 있는 듯했다. 마치 그 명패가 금세라도 그녀를 물러 달려들 것처럼 그녀는 의자에 주저앉아 공포에 가까운 눈빛으로 그것을 바라봤다.

"축하해."

브롬이 말을 건넸다.

"여행 중에 있었던 일인가 봐."

샐리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단지 명패를 계속 쳐다보기만 했다. 명백히 오늘 아침에 새로 놓인 것 같았다. 그녀는 라이가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가 그물을 더 단단히 조이며 끌어당기고 있는 것을 감지하고 자신이 너무 오래 기다리는 실수를 범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해 볼 수도 없었다. 게다가 그 빳빳한 직업 정신 때문에 마리나와의 인터뷰 기사를 끝내지 않고는 떠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브롬이 계속해서 물었다.

"사실이야?"

"결혼했냐고?"

그녀가 분명하게 되물었다.

"사실이긴 하지만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해."

"그게 무슨 소리야, 웬 스핑크스 흉내?"

"결혼식이 결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지."

그녀가 조롱하듯이 말했다.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 "

"이봐, 반쯤 결혼한 상태는 없어. 결혼을 했거나 안 했거나 둘 중 하나가 있을 뿐이야."

그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무척 긴 이야기야."

그녀가 회피했고, 전화기가 울려서 더 많은 질문을 피할 수 있다는 것에 안도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녀가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샐리 제롬입니다."

"틀렸어."

그렉이 낮게 투덜거렸다.

"샐리 베인즈겠지. 자네의 비밀 남편님께서 공표하시는 바람에 난 한시름 덜었어. 내가 자네와 그의 사연에 대해 알고 있다는 걸 그가 알았다면, 상당히 힘들 뻔했어. 하지만 다 끝났고 이제 당신들 두 사람 사이의 문제니까…"

"무슨 말이에요?"

라이가 혹시 그녀가 모르는 방법으로 그녀를 포위하려 했는지 궁금해 하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게 다야, 미녀 기자 씨, 내게 있어서, 이제 자네는… 아니 샐리 베인즈 부인께서는 내 스텝 중 최고의 민완 기자가 아니고, 보스의 아내라는 거지."

맹목적인 분노 속에 샐리는 어쨌든 자신이 사직서를 낼 계획이었다는 걸 잊어버리고 이를 악물로 소리쳤다.

"그러니까, 당신 말은 더 이상 현장 업무를 주지 않겠다는 뜻인가요?"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러니 빨리 그와 친해지도록 해요. 어쨌거나, 당신 남편이고 내가 보기엔 화해하려고 노력하면 그가 좀 더 기뻐할 거요."

"난 화해하고 싶지 않아요."

그녀가 화를 억제하고, 음성을 낮춰서 브롬이 엿듣지 않도록 하며 말했다.

"하지만 경력 증명서를 주시면 고맙겠어요. 한 장 써 주실 수 있죠?"

"할 수 없소, 그가 당신이 그의 아내라고 공표한 지금은 안 돼. 그는 내 보스라고."

그렉이 냉정하게 설명했다.

"그가 당신 일은 무조건 그에게 개인적으로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명확히 했어"

"그가 그랬어요?"

그녀는 분노로 자제심을 잃으면서 화가 나서 물었다.

"그랬단 말이죠? 그래요, 어디 두고 보자고요."

그녀는 수화기를 소리 나게 내려놓고 애꿎은 전화기만 노려보았다 그리고 나서 고개를 돌려 브롬을 쳐다보자 브롬은 장난스럽게 손을 들어 항복의 표시를 하고 여봐란듯이 다시 자신의 일로 돌아갔다.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라이에게서 호출이 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보고 싶은지 아닌지도 결정할 수가 없었다. 억눌린 분노를 해방시켜 그에게 소리라도 치면 기분이 훨씬 나아지겠지만 라이라면 아마도 그녀를 화나게 해서 뒷일은 생각지도 않고 모든 계획을 드러나게 할 거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상의 행동은 인터뷰 기사를 완벽하게 작성하고 떠나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약점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 최악의 두 가지 약점은 그녀의 성질과 라이였다. 그에게 우위를 얻기 위해선 두 가지 다 조절하는 수밖에 없었다.

노력했지만 집중하는 것이 어려웠다 마음만 바빴다. 짐을 꾸리고 아파트 계약을 해지한 뒤 어딘가로 가야만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계획들 한 가운데로 그녀를 잡으려고 손을 뻗는, 굶주린 눈빛을 한 라이와 그의 매력적인 육체가 선명한 영상처럼 획 떠올랐다. 그리고 그녀의 몸은 그의 손길을 기억하고 그에 대한 반응으로 몸을 떨었다. 그녀는 그가 몹시 그리웠다. 왜 지난 밤 그녀와 함께 아파트에 머물지 않았을까? 물론 둘 다 피곤했고, 기진맥진했고 신경질적이었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녀는 정말 바보였다! 그와 다시 또 중독성 짙은 사랑의 행위를 나누는 것은 그야말로 치명적인 덫 이었다! 그를 극복하고 그들이 나누었던 그 미칠 것처럼 달콤했던 행위들을 잊는 것은 지금가지고 있는 추억과 감각만으로도 충분히 힘들 것이다.

아침 시간이 지나고 점심시간까지 굳건하게 일을 하려고 했지만 크리스가 그녀의 자리에 들리면서 포기해야 했다. 조용히 그녀의 명패를 들어 올려 쳐다보는 그의 갈색 눈동자에는 어떤 표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명패를 그녀의 책상에 다시 내려놓았다.

"잠시 시간 낼 수 있어?"

그가 조용히 물었지만 샐리는 그의 음성에서 그의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 스스로 너무 불행한 나머지 다른 사람들의 불행에도 민감해졌기 때문인 것 같았다.

"어차피 점심시간이니까."

그녀가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그리고 컴퓨터의 전원을 껐다.

"어디로 갈까?"

"그가 신경 쓰지 않을까?"

크리스가 말하는 그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았다.

"아니"

그녀는 조금은 뻔뻔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거짓말을 했다.

"물어 보지도 않을 건데, 뭐."

건물을 나갈 때까지 그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서두르며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에서 사람들 사이를 누비고 지나갔다. 그는 고개를 들어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는 태양을 눈을 가늘게 뜨고 올려다보며 말을 꺼냈다.

"정말 그와 결혼했어? 라스베이거스를 돌아서 오지 않은 이상 그렇게 빨리 결혼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8년 전에 결혼했었어."

그녀는 그가 자신을 뚫어질 듯이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그의 시선을 마주보지 않은 채 시인했다.

"그리고 7년 동안 별거했었지."

그들은 잠시 침묵 속에 걸어갔고, 크리스가 그녀의 손을 잡아 한 커피숍을 가리켰다 어디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그들은 안으로 들어가서 벽 쪽의 작은 테이블에 앉았다. 샐리는 배가 고프지 않았기 때문에 과일 주스와 거의 먹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샐러드를 골랐다. 크리스도 그리 배가 고프지 않았는지 음식이 나왔을 때 그는 그저 커피만 마신 채 접시에 담긴 참치 샌드위치를 시큰둥하게 쳐다만 볼뿐이었다.

"이제 함께 살기로 했나 보네."

그가 말했다. 샐리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가 원하는 거지."

"당신은 원하지 않고?"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

그녀가 슬픈 어조로 말했다.

"나는 그에게 그저 도전일 뿐이야. 전에 말했듯이 잠시가지고 놀고 싶을 뿐인 거야. 그 과정에서 내 삶을 파괴된다고 해도 그는 상관하지도 않을 사람이고. 벌써 내 경력을 엉망으로 만들었어. 게다가 날 블랙리스트에 올려서 기자로서 다른 곳에서 일자리를 얻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했어."

크리스가 좀처럼 하지 않는 욕을 내뱉었고 갑작스런 분노로 일렁이는 어두운 그의 눈동자를 본 샐리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당신에게 그럴 수가 있지?"

그가 화를 내며 말했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의 말로는 내가 죽을까 봐 두렵데. 혁명의 한복판에 내가 있다는 생각만 해도 견딜 수가 없다나.… 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걱정으로 제정신이 아닌 그녀를 남겨 두고 그 위험한 일을 하기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얼마나 많이 떠났던가?"

"건 나도 이해할 수 있어."

크리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도 당신 시체를 보게 될까 봐 걱정하고 있었거든. 그래서 내가 당신과 결혼하지 않는 거지."

"하지만 당신도 에이미를 위해서도 그만두지 못하잖아."

그녀가 퉁명스럽게 상기시켜줬다.

"나도 라이를 위해서 그만두지 못해. 내게 선택권아 있다고 해도 말이지. 그는 나를 포위하고 있어, 크리스. 나를 구속하고 점점 숨이 막히게 해."

"당신은 그를 사랑해."

"그러지 않으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중이야.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그러고 나서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내 일은 잊어버려, 에이미와는 아직도 똑같은 상황이야?"

그가 한쪽으로 약간 고개를 기울였다.

"난 여전히 그녀를 사랑해. 여전히 그녀와 결혼하고 싶고. 하지만 내가 기자를 그만두지 않는 한, 그녀는 나와 결혼하진 않을 테고. 그래서 9시부터 5시까지 근무하는 일반사무직을 생각해 봤는데…  생각만 해도 식은땀이 흘러."

"일을 포기하겠다고? 하긴 그렉은 아이들을 위해서 그만뒀었지."

"하지만 아내 때문은 아니었지."

크리스가 지적했다.

"그는 현장을 떠나기 전에 부인을 잃어야 했어. 만일 부인이 여전히 살아 있다면 아마 아직도 현장에서 사건을 쫓아다니고 있을걸."

그것이 사실이기에 그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들 때문이라면 어른들의 요구보다 거부하기가 훨씬 어려웠다. 아이들은 오직 자신들과 관련된 일만 보고 부모의 욕구가 그들의 욕구만큼 중요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명확하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말하고 보살핌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그에 반해 어른들은 몇몇 이유 때문에 참거나 강하게 요구를 관철하는 것을 자제하는 것은 아무도 그들에게 빚지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 쉽게 부탁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예외적으로 그녀는 라이에게 직업을 바꾸고 곁에 있어달라고 부탁했었다. 아니 요구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라이는 그녀의 행복은 그의 책임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행복을 위한 삶을 살았다. 그녀 스스로도 아무 해결책이 없는 문제이기에 크리스에게도 희망이나 해결책을 제공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행동하더라도 비참한 결과밖에 보이지 않았다.

"난 떠날 거야."

그녀가 큰 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사실을 말할 생각이 아니었기 때문에 두려운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그 표정을 보고 손을 내저었다.

"괜찮아. 더 이상은 묻지 않을 거야."

그가 그녀를 안심시켰다.

"어쨌든 당신이 그렇게 하지 않을까하고 생각은 했었어. 당신은 해야만 하는 일은 꼭 하고 마니까… 얼마나 상처를 받던지 말이야. 실패한 부분은 과감히 잘라 버리고 다시 시작할 줄 아는 그 배짱. 나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어."

"준비가 되면 당신도 그렇게 될 거야. 내가 그 사람 없이도 7년을 살아왔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그녀가 작게 미소를 지었다.

"우리 사이가 이미 끝났다는 걸 나 스스로 확신하기까지 했으니까. 하지만 라이가 그 확신을 산산조각 내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더라고."

그의 눈은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지만 그녀를 보고 있지는 않았다 그의 어두운 눈동자는 뭔가 마음속에 생긴 벽을 내면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만큼이나 그도 상처를 받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은 변해야만 해요' 라고 말할 때처럼 사람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것도 없었다. '난 지금의 당신은 사랑하지 않아요. 당신은 별로 훌륭한 사람이 아니잖아요.…' 라는 말을 달리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더 깊이, 더 폭력적으로 상처받을 일도 있지만 어쩐지 그 자존심에 입은 상처는 그렇게나 찌르듯이 사람을 아프게 했다. 그것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그녀이기에 누구에게도 변하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했다. 라이도 변하라는 그녀의 주장에 상처받았을까? 혼란스러워하고 상처받은 라이의 모습을 그려보려고 노력했지만 전혀 그릴 수가 없었다. 강철 같은 그의 성격은 절대로 주춤하거나 상처를 입을 정도로 연약하지 않았다. 매달리는 그녀를 마치 거미줄을 치워 버리듯 간단하게 무시하고 자신의 길을 갔다.

"나도 그녀를 극복해야겠어."

크리스가 조용히 말했고 그의 얼굴에는 그 사실을 받아들인 듯 부드럽지만 공허한 표정이 돌았다. "그래야 할 것 같아, 그렇지?"

그들은 침묵 속에 사무실로 돌아왔고 크리스가 텅 빈 엘리베이터 문을 고정시킨 채 뚫어지게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연락하자고."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당신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샐."

그가 그녀의 목을 감싸고 가볍게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그녀는 눈물이 맺히는 걸 느꼈다. 왜 라이 대신 크리스는 안 되는 걸까? 그녀는 원한다고 해도 연락할 거라고 약속할 수가 없었다. 일단 이곳을 떠나게 되면, 그녀를 발견할 수 있는 단서는 조금도 남기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크리스가 폭로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녀는 잠자코 이별을 고하는 침묵의 표정으로 한동안 그를 바라보곤 엘리베이터를 내렸다. 그리고 책상으로 돌아와 다시 확고한 결심으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자 샐리는 기사 작성에 완벽하게 집중할 수 있었다. 한 시간 안에 기사를 작성해서 그렉의 사무실로 보냈다. 그녀는 피곤한 듯 경련이 이는 근육들을 주물러 펴 주고 마치 단순히 약속 때문에 나가는 것처럼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별 일 없는 것처럼 지갑을 들고 사무실을 나왔다. 사실 그녀는 결코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그렉에게 아무 말 없이, 떠나야 하는 것이 유감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충성심이 라이에게 향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만약 그가 그녀의 사표를 본다면 보는 즉시 라이에게 보고할 것이다.

조심에 조심을 더해 지갑 속에 넣어 가지고 다니던 현금수표를 현금으로 바꾸고 또 대부분의 돈은 여행자 수표로 바꾸었다. 그녀를 잡기 위해 라이가 무슨 방법을 쓸지 누가 알겠는가? 그녀는 나가야만 했고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그녀가 아파트에 도착한 시간은 거의 3시 30분이 될 때였다. 그리고 문을 열었을 때 그녀는 본능적으로 목뒤의 솜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친숙한 가구들을 둘러보는데 뭔가가 분명 달랐다. 이리저리 둘러보고서 몇몇 물건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그녀의 개인적인 상장들이 사라졌고, 그녀의 책들도 없어졌으며, 그녀의 골동품 시계도 없었다. 도둑이었다.

침실로 달려간 그녀는 깜짝 놀라서 텅 빈 공간을 쳐다보았다. 벽장문이 열려진 채로 없어진 내용물들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의 화장품과 목욕용품들도 욕실에서 사라졌다. 심지어 칫솔까지 없어졌다! 그녀의 모든 개인 물품들이사라진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완전히 창백해져서 침실로 다시 가서 그녀의 노트북 컴퓨터가 놓여 있던 공간이 그야말로 깨끗해진 것을 공포 속에 쳐다보았다. 심지어 프린트로 뽑아놓은 그녀의 원고까지 도둑맞았다! 현관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만일 도둑이 들어온 지라면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지만 현관에는 집주인이 서 있었다. "당신을 본 것 같았어요."

랜디스 부인이 기분 좋게 말했다.

"당신이 잘 돼서 너무 행복해요. 정말 훌륭한 아가씨인데 항상 결혼은 언제 하나 궁금했었거든. 당신이 떠난다는 건 슬프지만 그런 잘생긴 남편하고 라면 누군들 당장이라도 함께 살고 싶지 않겠어."

한기가 샐리를 엄습했다.

"남편이라뇨?"

그녀가 힘없이 되물었다.

"그는 내가 만난 첫 번째 명사예요."

랜디스 부인이 거침없이 말했다.

"무척 친절하더군요. 이번 주말까지는 당신의 가구들을 보관할 곳을 알아봐 준다고 했어요. 내가 아파트를 새로 임대 줄 수 있게 말이에요. 그래서 내가 아파트를 다시 내놨어요. 당신이 일하는 동안 당신을 위해서 모든 것을 처리해주다니 얼마나 사려 깊은 남편이에요? 정말…."

어느 정도 자제심을 되찾은 샐리는 겨우 랜디스 부인을 향해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확실히 그래요."

그녀가 양 옆으로 주먹을 꽉 움켜쥐며 동의했다.

"라이는 정말 세심해서 별걸 다 생각하죠."

하지만 아직 그가 이긴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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