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라이가 어떤 반응을 보이거나, 전화로 부르지는 않을까 내내 노심초사했지만, 그 날 아침은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갔다. 여자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야 할지는 전적으로 그렉의 경고에 달려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전화기는 여전히 조용했다. 브롬이 일 때문에 LA로 떠나 그들의 작은 칸막이 공간은 고요하기만 했고, 그녀는 긴장으로 신경이 다 닳을 지경이었다. 라이와 마주칠 수도 있기 때문에 감히 카페테리아를 간다거나 건물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고, 점심은 책상에 앉아 먹은 사과가 전부였다. 마치 감옥에 갇힌 죄수처럼 느껴졌다.
점심시간 후 그렉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 방으로 올라와, 샐. 전화로 말할 내용이 아니야"
심장이 튀어나을 만큼 놀란 샐리는 위층으로 가는 계단 을 뛰어 올랐다. 그렉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가 읽고 있던 서류에서 눈을 들어 정색을 하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라이의 비서가 막 전화했어. 자네 신상 파일을 요청하더군, 선택의 여지없이 서류를 보내야만 했어. 아직 점심 먹고 돌아오지 않았을 테니 몇 분간의 유예는 있는데… 자네에게 말해 줘야 할 것 같아서."
그녀는 목이 메는 것을 억누르며 간신히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고마워요. 어쨌든 그에게서 숨는다는 생각 자체가 바보 같았어요. 뭐, 아마 그는 크게 상관하진 않을 거예요."
그렉은 미소를 지었지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녀가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라이가 너무 빨리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한 나머지 무의식중에 계단으로 가는 대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갑자기 그녀는 자신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와 동시에 버튼이 깜박이며 올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렸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급히 돌아서서 계단으로 향했지만 그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샐리 제롬! 기다리시오!"
그녀는 공포로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고개를 돌리고 한동안 라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달아날 생각으로 문을 열고 한 걸음 내디뎠지만 헛된 일이었다. 라이는 이미 그녀를 제대로 관찰한 뒤였고, 그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그녀가 이젠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더 이상 피할 수 없었다. 이제 그는 그녀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고 절대로 그 문제를 가만히 두고 볼 남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문에서 손을 떼고 돌아서서 이를 악물고 틱을 들어 올린 채 그를 마주보았다.
"날 보자고 했나요?"
그녀가 도전적으로 말했다. 그가 몸을 움직여 그들 사이의 짧은 거리를 단숨에 걸어왔다. 광대뼈가 더욱 도드라지며 굳게 입을 다문 그는 긴장한 듯 보였다.
"사라"
격렬함이 드러나는 회색 눈동자로 그녀를 응시하면서 그가 거친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샐리예요"
그녀가 땋은 머리를 어깨 너 머로 넘기면서 정정했다.
"이제는 샐리 라는 이름을 쓰고 있어요."
그가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긴 손가락이 치수를 재기라도 할 것처럼 연약한 손목을 감쌌다.
"사라 대신에 샐리라는 이름을 쓸 뿐만 아니라, 성조차도 베인즈에서 제롬으로 바꿨더군."
거세게 비난을 쏟아내는 그의 기색에 샐리는 흠칫 놀랐다. 너무나 잘 기억하고 있는 허스키한 음성. 샐리는 기분에 따라 변하는 라이의 목소리를 구별할 수 있었다. 화났을 때는 속삭이는 듯하면서도 위협적이었고, TV에서 그가 올바르지 않다고 여기는 사실에 대해 맹공을 퍼부을 때는 거칠고 차가웠으며, 사랑을 나눌 때는 낮고 거칠면서도 매우 유혹적이었다. 지금의 목소리로 볼 때 라이는 무척 화가 나있었다. 그렇다면 몸을 사리는 게 좋겠지.
"나와 함께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
그가 여전히 그녀의 팔목을 잡아 엘리베이터 앞으로 이끌어 가면서 씹어뱉듯 말했다.
"할 이야기가 많아. 하지만 복도에서 하고 싶지는 않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그는 그녀의 팔목을 가볍게 그러나 단단하게 움켜잡고 있었다. 복사 심부름을 하는 아르바이트 직원이 그들을 힐끗 쳐다보면서 복도를 걸어가 한 사무실로 들어갔다.
"놔줘요"
그녀가 속삭였다.
"싫소, 베인즈 부인"
그가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는 벨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렸다. 그는 그녀를 먼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여보낸 후에 문을 닫았고, 작은 공간에서 완전히 그와 단둘이만 있게 쥐었다. 그가 중역실이 있는 층을 누르자 엘리베이터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뱃속에서 스멀거리는 공포를 감추기로 결심하고, 침착함을 모두 그러모아 그에게 예의바르게 미소 지었다. "무슨 말을 하자는 거죠? 벌써 7년이나 지난 일이에요."
그 역시 미소를 지었지만 난폭함마저 느껴지는 그 미소를 보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렇다면 옛날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
그가 잇새로 말했다.
"기다릴 수는 없나요?"
"없어"
그리고 조금 부드럽게 다시 말했다.
"지금 당장 해야 해. 물어 볼 것도 많고 그 질문들에 대한 답도 듣고 싶군."
"일하러 가야 하는데…"
"입 다물어."
그의 경고에 그녀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그녀의 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라이의 태도는 그녀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와 단둘이 있고 싶지도 않은데 이런 식으로 취조할 듯이 끌고 가 취조할 듯 몰아붙이다니! 정말 싫었다. 그는 그녀를 엘리베이터 밖으로 데리고 나와 그의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그들을 보고 그의 비서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하려고 하자 라이가 가로막았다.
"방해하지 마시오."
그는 샐리를 안내하면서 어깨너머로 소리치고는 세게 문을 닫았다.
샐리는 그에게서 몇 발자국 떨어진 거리에 서서 눈을 깜빡이며 눈앞에 실제로 서 있는 그의 모습에 익숙해지려고 애썼다. 그의 부재를 받아들이기 일해서 얼마나 노력했던가, 그런데 지금은 눈앞에 그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신기루 같고, 그녀의 상상 속의 허구가 만들어낸 환영인 것만 같았다. 실제의 라이는 머릿속에서 그리던 것 보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남성적이고 힘이 넘쳤다.
하지만 그는 그 무자비한 회색 눈동자로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문 옆에 서 있었고, 너무나 생생하고 확실했다. 시선을 그에게 마주치는 대신 그녀는 그의 전신을 훑어보았다. 흠잡을 데 없이 꼭 들어맞는 짙은 갈색 정장이 그의 건장한 체격을 돋보여주고, 바지는 근육질의 긴 다리를 꼭 맞게 감싸고 있었다. 맥박이 더 빠르게 고동치기 시작하자그녀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라이"
목소리가 떨려 나오자 그녀는 목을 가다듬고 다시 입을 열었다.
"라이, 왜 이러는 거예요?"
"당신이야말로 왜 이러는 거야?"
위험스럽게 눈을 빛내며 그가 물었다.
"당신은 내 아내야. 그리고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야겠어. 당신은 분명히 나를 피했지. 당신은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당신을 무시하라고 하는 건가? 내가 이해하는 것이 늦었다면 부디 용서해 줘. 하지만 베이비, 당신을 보고 놀라서 평정을 잃은 터라, 당신을 보고도 모른척해야 한다는 생각은 도저히 못했지."
그녀는 안도감에 심호흡을 했다.
"아, 그건"
그녀는 이제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요, 당신을 피하고 있었어요. 내가 당신 밑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당신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랐고, 직장을 잃을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도 않았거든요."
"우리가 결혼했다고 누군가에게 말했어?"
그가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모든 사람이 날 샐리 제롬으로 알고 있어요. 당신 이름이 가진 영향력을 이용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결혼 전에 썼던 이름을 쓰기로 했죠."
"굉장히 너그러우시군, 베인즈 부인"
책상으로 걸어가면서 그가 냉소적으로 중얼거렸다.
"거기 앉아. 물지 않을 테니까"
그녀는 그의 말대로 의자에 앉아 그의 질문에 대답할 준비를 했다 만일 그녀를 해고하려고 했다면 벌써 그렇게 했을 것과 일자리가 안전하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긴장이 풀렸다.
라이는 의자에 앉는 대신 긴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채, 책상에 비스듬히 기대었다. 그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지만 날카롭게 빛나는 회색 눈동자는 그녀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세밀하게 훑어보고 있었다. 샐리는 다시 긴장되기 시작했다. 이유는 몰랐지만 그는 전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도 그녀를 위협할 수 있었다. 그의 침묵은 그녀를 초조하게 만들어 샐리는 오히려 신랄하게 말했다. "도대체, 무슨 대화를 하고 싶은데요?"
"당신은 변했어, 사라… 아니 샐리 "
그가 정정했다.
"너무 철저하게 변했다고 해야 할까? 단순히 이름만 변한 것이 아니라, 머리도 길게 길렀고, 바람이 불면 금세 날려갈 것처럼 살도 너무 많이 빠졌어. 무엇보다도 당신이 절대 하지 않을 거라고 맹세할 수 있는 일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니…. 어떻게 기자가 된 거지?"
"아, 운이 좋았죠."
그녀가 기분 좋게 말했다.
"다리 위를 운전해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다리가 무너졌어요. 그 일을 기사로 써서 신문 편집장에게 보냈더니 제 일자리를 사무원에서 기자로 바꿔 주더군요."
"일류 잡지의 최고 특파원이 된 사연을 이렇게나 논리적으로 설명하다니, 놀랍군,"
그가 냉담하게 말했다.
"일은 좋아해?"
"물론이죠!"
그려가 열정적으로 커다란 눈동자를 반짝이며 대답했다.
"일을 너무 사랑해요! 과거에는… 당신이 항상 빨리 일터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나도 같은 열병을 앓고 있는 걸요. 당신을 사로잡고 있는 열정 말이에요. 점점 중독되다 보니까, 여기 사무실에 머물러 있을 때는 반쯤 죽은 것 같은 느낌이죠."
"눈동자는 변하지 않았군."
시선을 그녀의 얼굴에 고정시킨 채, 그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여전히 바다처럼 짙푸른 색이야, 너무 크고 깊어서 빠져들고 싶을 정도로. 이름은 왜 바꾼 거지?"
그가 갑작스럽게 물었다.
"말했듯이 당신 이름을 쓰고 싶지 않아서요."
그녀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변화를 주고 싶었고,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고 싶었어요. 샐리 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한 것은 대학 때부터였어요. 사라 대신 샐리로 바꿨는데, 그 후로는 계속해서 샐리를 사용하고 있어요."
"대학?"
날카롭게 쳐다보며 그가 물었다.
"네, 결국 학위를 땄죠."
살짝 웃으면서 그녀가 말했다.
"당신이 떠난 후에 외국어, 작문 과정 등 많은 과목을 들었죠. 어쨌든 내게 글재주가 있다는 것을 수업을 통해서 알게 되었어요. 하지만 여기 잡지사에 기사를 쓰는 기자가 되는 바람에 학위를 따는 데 시간이 꽤 걸렸어요."
"다이어트도 했나? 당신 삶에서 다른 모든 것들을 바꿨으니, 새로운 외모를 가지려고?"
그는 거의 화난 듯이 말했고 그녀는 당황해서 그를 쳐다보았다. 설마 그녀가 살이 빠진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건가? 그런 모델들과 다니면서?
"아니, 그건 아니에요. 그저 어떻게 하다 보니 살이 빠진 것뿐이에요"
질문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심정을 담아 그녀가 말했다.
"너무 바빠서 밥 먹을 시간도 없었고, 그런 생활이 계속 되다보니 자연스럽게 빠지더군요. 그 뒤론, 일정하게 지금의 체중이 저절로 유지되고 있는 거죠."
"왜? 왜 그렇게 완전히 스스로를 바꾼 거지?"
라이가 그 질문을 하는 순간, 샐리는 그들이 나누었던 대화가 결국 과거를 돌아보는 일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그런 질문을 하기 위한 라이의 계획된 포석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하게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그에게 진실을 말해 줘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녀는 그를 극복했고, 이제 웃을 수 있으니까 그녀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라이, 당신이 내 곁을 떠날 때 당신에게 어울릴 만한 여자가 되면 당신에게 전화하라고 말했었죠? 그 이후로 난 거의 죽을 뻔했어요. 아니, 사실 거의 죽고 싶었죠. 하지만 당신을 다시 내 인생에 되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당신이 원할 만한 여성이 바꾸기로 결심했어요. 그래서 대학에도 등록하고, 많은 강의를 듣고, 그 전엔 몰랐던 많은 것들을 배웠죠. 그런데 그렇게 살다 보니까 당신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배우게 되더군요. 그게 이야기의 끝이죠."
"아직 끝은 아니지"
그가 냉소적으로 말했다.
"당신의 악랄한 남편이 다시 돌아와서 이야기는 계속되고. 더욱 플롯이 흥미롭게 된 것은 그가 바로 당신의 보스회사의 사장님이라는 사실이지. 그런데…"
그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을 이었다.
"인척을 고용하면 안 된다는 회사 정책이 있던가?"·
"만일 있다고 해도, 이 회사에 내가 더 오래 있었어요."
그녀가 분명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회사 사장은 나지"
그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일깨워 주었다.
"뭐,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라고, 샐리. 당신을 해고할 생각은 없으니까. 다른 경쟁자에게 빼앗기기엔 당신이 너무나 훌륭한 기자라서 말이야."
그가 일어서자 그녀도 덩달아 일어섰다.
"아, 다시 앉는 게 좋겠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그녀는 고분고분하게 의자에 앉았고, 그는 파일을 집어 들고서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샐리는 그 파일이 인사과에 속해 있는 파일이며, 자신의 기록임을 눈치 챘다. 하지만 굳이 그것을 읽지 못하게 막을 이유가 없었기에 그가 페이지를 넘기는 것을 잠자코 쳐다보았다.
"당신의 이력서가 궁금하군. 아무도 우리가 결혼했다는 것을 모른다고 말했는데, 배우자 유무 란에 뭐라고 써 왔지?"
그가 질문했다.
"아, 여기 있군, 매우 정직해. 결혼한 상태라는 걸 인정하다니. 하지만 남편 이름 란엔… 별거 중… 기밀 정도라."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잖아요."
그녀가 대답했다. 그는 그녀의 이력서를 찬찬히 살펴보다가 갑작스럽게 눈썹을 모았다.
"연고자는… 아무도 없다고?"
그가 거칠게 되물었다.
"당신이 다치거나 죽으면 어쩌려고? 이쪽 분야에선 그런 일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기 마련이야! 내가 어떻게 그 소식을 들을 수 있었겠어?"
"당신이 상관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녀가 방어적으로 말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정말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당신이 알고 싶어 할 수도 있었겠단 생각이 드네요. 언젠가 다시 결혼하고 싶을 수도 있고. 미안해요, 그 점에 대해서는 생각이 짧았어요."
그의 관자놀이의 혈관이 불끈불끈하자 그녀는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기억에 의하면 그가 엄청 화가 났다는 건데, 그렇게 화가 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그녀는 죽지 않았으니 걱정할 일도 아닐 텐데… 그는 입술을 꽉 다문 채 파일을 덮고 책상 위로 던졌다.
"다시 결혼을 하다니!"
그가 갑자기 소리쳤다.
"어째서 내가 그런 일을 할 바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런 건 한 번으로도 충분해!"
"확실히 그렇죠."
그녀가 마음 깊이 진심을 담아 동의했다. 눈을 가늘게 뜨며 인상을 찌푸리는 그의 얼굴에는 성질을 가라앉히려고 애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재혼하고 싶지 않은 거야?"
그가 왠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남편은 일에 방해가 될 거예요"
그녀가 말하고 나서 고개를 저었다.
"그래요, 차라리 혼자 살겠어요."
"당신은 평일이나 주말 같은 때에 쉬지 않는다고 뭐라고 하는 어떤… 그러니까… 가까운 친구 없어?"
그가 탐색하듯이 물었다.
"친구는 많지만, 대부분이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할 일이 있어 시간이 없다고 하면 다들 이해해요"
그녀는 차분히 대답하며, 뭔가 다른 의미를 부여하려는 듯한 그를 무시했다 연인이 있건 없건 그가 상관할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곧 샐리는 그녀와 사랑을 나눈 남자가 라이뿐이라는 사실을 그가 모르는 것이 그녀에게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도 수도승처럼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눈부신 코럴 월리엄스가 그 증거였다!
"당신이 쓴 기사를 많이 읽었어."
그가 갑자기 다른 주제로 전환하면서 평하듯이 말했다.
"꽤나 위험한 지역을 많이 다루었더군. 레바논이나 아프리카, 남미 등 말이야. 당신 친구들이라는 사람들은 당신이 다칠까 봐 걱정하지도 않아?"
"말했잖아요. 내 친구들도 이쪽 일을 하고 있어요. 우리들 중 누구라도 죽어서 돌아올 가능성은 늘 있는 거니까요"
그녀가 냉담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당신은 내가 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일을 계속해서 했잖아요. 그나저나 왜 특파원을 그만둔 거죠? 당신이 원하는 일만 골라서 할 수도 있고, 메인 뉴스의 앵커 자리까지 제의 받았다고 들었는데"
"아마 나이가 들었다는 징조겠지. 어쨌든 총알 맞는 것에 질렸다고 보는 게 옳겠지."
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게다가 점점 지겨워지기도 했고. 변화를 원했어. 그 동안 왜 괜찮은 투자를 했었고, 월드 인 리뷰지가 매물로 나왔을 때, 변화할 시기라고 결정하고 회사를 사들인 거야. 내년까지는 다큐멘터리 네 개를 더 찍기로 방송국과 계약이 되어 있어. 다큐멘터리엔 항상 흥미를 가지고 있으니까. 다루게 될 주제에 관해서 좀 더 깊이 있는 배경 조사를 할 시간적 여유도 더 생기고… 샐리는 믿기 어렵다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해외 뉴스 취재 관련 일이 더 좋을 것 같은데…"
그가 뭔가를 말하려고 할 때, 책장 위에 있는 인터폰이 울렸다. 짜증을 억누르면서 그가 인터폰의 버튼을 누른 후에 소리쳤다.
"방해하지 말했잖소!"
그와 동시에 문이 열리면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내가 방해하는 건 괜찮겠죠, 달링. 만일 당신이 불쌍한 기자 분을 꾸짖고 있었다면 지금쯤은 충분하지 않겠어요?"
샐리는 고개를 돌려 코럴 월리엄스를 쳐다보았다. 전형적인 금발 미인인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해 주는 단순한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당당한 자세로 서 있는 코럴은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두 팔 벌려 환영해 줄 거라고 확신하며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는 자신만만했고 당당했다.
"방해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겠어요, 미드 양"
라이는 단조로운 목소리로 말하고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는 코럴에게도 같은 어조로 말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중요한 일이어야 할 거야, 코럴. 지금 머릿속이 엄청 복잡하니까"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아내를 괴롭히는 일 같은 것 말이죠! 샐리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베인즈 씨, 이야기가 다 끝나셨다면…?"
이상하게도 그의 표정은 왠지 실망스럽고 화가 난 듯 보였다.
"나중에 다시 얘기합시다."
그의 날카로운 대답과 함께 살얼음을 걷는 같던 이른바 면담이 끝났다. 샐리는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인 코럴에게 미소를 지으며 방을 나섰고, 라이의 비서에게도 미소를 지어 보였다. 면담이 끝나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렉을 안심시키는 것이었다. 샐리는 내려가는 길에 그의 사무실에 들렀다.
"그도 이젠 알아요."
그녀가 사무실에 들어가지도 않고 문만 연 채로 말했다.
"이야기가 잘 됐어요. 해고하지 않는데요."
그렉은 잔뜩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거칠게 쓸어 넘겼다.
"자네 덕분에 족히 10년은 더 늙은 것 같아"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라이가 알게 되었다니 기쁘군. 부담을 덜게 됐어. 모두들에게 공표해야 하는 건가?"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그녀가 애매하게 말했다.
"그런 말은 하지 않았거든요. 지금 사무실에 코럴이 와있어요. 아마 그녀와의 관계를 망치고 싶은 것 같진 않더군요."
"정말이지 이해심 넘치는 아내로군."
빈정거리는 어조로 말하는 그에게 샐리가 혀를 쏙 내밀었다.
긴장감과 스트레스가 사라진 샐리는 잽싸게 부활한 생기와 재기를 총동원해 공격적으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그날 오후 기사 작성이 끝났을 즈음, 크리스가 찾아와서 그날 밤 마이애미로 출장을 갈 거라고 말했다.
"배웅해 줄 거야?"
그의 부탁을 그녀는 흔쾌히 들어주었다. 때때로 한밤중에 비행기를 타야할 때 군중 속에서 친숙한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래서 배웅해 줬으면 하고 은근히 바라는 크리스가 새삼스럽지도 별다르지도 않았다. 공항으로 향하던 중, 샐리는 최근에 크리스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면서 빈번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샐리는 자신이 그를 좋아한다는 것과 그가 매우 좋은 사람이고 믿을 수 있는 최고의 친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결코 더 심각한 관계로 발전할 수 없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상황이 더 진행되어 돌이킬 수 없어지기 전에 솔직히 그에게 물어 보기로 했다.
"저기, 요즘 들어 나하고 점심을 같이 먹거나 공항까지 배웅을 부탁하는 일이 잦아진 것 같지 않아? 혹시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
"당신을 이용하는 거야"
그가 솔직하게 시인했다.
"당신은 훌륭한 친구이고 우정 이상의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으니까. 게다가 미인이기 때문에 우쭐해지기도 하고"
그녀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패션 감각보다 그냥 활력이 넘칠 뿐인, 그냥 조그만 발전기 같은 여자일 뿐인 자신이 미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이성에게서 듣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고마워"
그녀가 명랑하게 말했다.
"하지만 아직도 내게 이유를 말하지 않았잖아."
그가 엷은 갈색 눈썹을 들어올렸다.
"물론 다른 여자 때문이지. 다른 무슨 이유가 있겠어?"
"내가 아는 사람이야?"
그녀가 물었다.
"아니. 이 업계에 있는 여자가 아니야. 내가 사는 아파트 같은 건물에 살고 있는데, 안정적인 생활을 좋아하는 스타일이야. 정시에 출근해서, 정시에 퇴근하는 남편을 원하지. 그리고 난 내 자신이 틀에 박힌 일에 머무를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서로의 의견이 그야말로 끝도 없는 평행선이지 그녀도 포기하지 않을 테고, 나 역시 그렇고…"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수밖에… 난 인내심이 많은 남자니까. 그녀가 생각을 바꾸거나, 아니면 함께 할 인연이 아니거나. 간단하지 뭐"
"왜 여자만 모든 것을 양보해야 하는 거야?"
분별 있는 남자라고 생각한 크리스 조차 여자가 모든 것을 순응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샐리는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아니까"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가 그녀의 항의를 무시하고 계속 말했다.
"난 내 한계를 잘 알아, 샐. 그러니 그녀가 어떻게든 마음을 바꾸길 바랄 뿐이지"
샐리는 바로 그게 크리스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나 싶었다. 얼마 후 크리스는 화제를 바꾸어 직장 생활에 대해서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것저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비행기 탑승 안내 방송을 기다렸다. 그녀는 그의 마음이 많이 약해져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배웅해 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 한밤의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것은 끔찍할 정도로 외로운 경험이기에, 적어도 외로움을 타고 있는 그에게 작별 인사로 손을 흔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그녀가 아파트로 돌아왔을 때는 밤 10시가 넘어 있었고 그녀는 재빨리 샤워를 마친 후에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막 램프를 껐을 때 전화벨이 울렸고, 그녀는 다시 불을 켠 후에 전화를 받았다.
"샐리? 도대체 어디 있었던 거야7"
조급함이 묻은 라이의 질문과 그의 음성에 샐리는 저도 모르게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공항에 갔었어요."
의식도 하지 못한 채 기계적이고 자동적으로 라이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었다.
"누구를 만나려고?"
그가 좀 더 날카로운 음성으로 물었다.
"아니, 배웅하는 길이었어요."
자신의 행동에 잠시 당황했지만 곧 안정을 되찾은 샐리가 재빨리 말했다.
"왜 전화했어요?"
"오늘 오후 우리가 어떤 결말을 짓기도 전에 당신이 나가버렸잖아"
그가 비난하듯이 말했다. 그의 말에 어리둥절해진 그녀가 되물었다.
"결말을 짓 다뇨? 무슨 결말을 지어요?"
"우선, 우리 결혼 문제"
그가 냉소적으로 응수했다. 갑자기 그가 하려는 말을 이해한 그녀는 자신이 그들 결혼 생활의 종결에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시켜 주기 위해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가 오랫동안 별거했던 점을 고려한다면 이혼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도 없을 거예요. 생각해 보면 이혼도 그렇게 나쁜 생각은 아니죠. 사실 좀 더 빨리 했어야 했죠. 7년은 너무 긴 시간이잖아요. 우리 결혼은 법적인 점만을 제외한다면 모든 면에서 끝난 게 확실하고요. 서류로 마무리 짓지 못할 이유가 없죠."
"당신은 말이 너무 많아"
거친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화가 난 것이 확연했다. 혼란스러워하면서 샐리는 침묵에 잠겼다. 그를 화나게 할 만한 말을 했던가? 만일 그가 이혼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 않았다면 도대체 왜 그런 말을 한 걸까?
"난 이혼하고 싶은 게 아냐"
그가 잠시 후에 말했다.
"어딘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아내가 있다는 것은 매우 편리하니까"
그녀는 소리 내어 웃으면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베개를 등 뒤에 받치고 앉았다.
"어디에 유용한지는 알겠네요."
그녀는 간 크게도 잠시 그를 놀려보았다.
"해변에서 서성대고 있는 남편감에 굶주린 여성들을 효
과적으로 막아주겠죠? 뭐… 하지만 우리가 계속 결혼을 유지하는 것은 너무 어리석은 일 같아요. 내가 서류를 제출할까요, 아니면 당신이 하겠어요?"
"일부러 바보처럼 구는 거야?"
그가 소리쳤다. "이혼하고 싶은 게 아니라고 말했잖아!"
샐리는 그의 고함 소리에 놀라서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라이!"
결국 그녀가 말도 안 되는 그의 주장에 항변했다.
"왜 이혼을 원하지 않는데요?"
"말했잖아."
그가 답답하다는 듯 설명했다.
"아내가 있는 것이 편리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거짓말하면 되잖아요!"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게다가 거짓말은 언제든 발각될 가능성이 있어. 어쨌든 당신의 제안은 고마워. 하지만 당신이 내 품을 떠나서 자기에게 오길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 해도 난 우리 결혼을 유지할 생각이야."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혼을 원하지도 않는다면서 전화는 왜 한 걸까? 게다가 누구한테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며 비난한단 말인가!
"당신은 정말 역겹군요!"
그녀도 화가 나서 소리를 높였다.
"뭐가 문제죠, 라이? 코럴이 당신에게 결혼하자고 칭얼대고 있나요? 방패막이에 편리한 아내가 필요해요? 그렇다면 다른 사람 뒤에 숨어야 할 거예요. 솔직히 당신과 이혼하는 데는 당신의 협조가 굳이 필요하지도 않으니까요! 나를 떠난 사람은 당신이에요. 그것도 7년이나 떠나 있었단 말이에요! 세상의 어느 판사라도 이혼을 판결해 줄 거예요!"
"그렇게 생각해?"
그가 크게 웃으면서 도전하듯이 물었다.
"해 보든지. 내겐 영향력 있는 친구들이 아주 많지. 나와 이혼하는 건 생각보다 더 힘들 거야. 일단 시작하기 전에 시간과 돈부터 많이 마련해 놓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좀 더 확실한 일자리가 필요하겠지. 다소 위태로운 위치에 있는 거 아냐? 생각해 보면, 당신에겐 당신 보스를 화나게 할 여유 따윈 없을 텐데."
"그런 보스… 지옥에나 떨어 지라죠!"
그녀는 화가 나서 소리치고는 거칠게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곧바로 다시 울리는 전화기를 잠시 노려봤다. 집요할 정도로 전화벨이 계속 울리자 코드 자체를 뽑아 버렸다. 시도 때도 없이 업무상 전화를 하는 그렉 때문에 거의 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램프를 끄고 베개를 두드려 편안한 형태를 만들었다. 하지만 잠은 이미 달아난 후였다. 그녀는 라이의 얼굴에 대고 직접 이 감정을 토해 내고 마구 화를 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어둠 속에 누워 화를 삭였다. 이혼에 대해서 전혀 말하고 싶지 않았다면 도대체 왜 전화했을까?
코럴과 좀 더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그녀를 이용하고 싶은 거라면 그 더러운 일을 위해서 다른 누군가를 찾아야만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녀는 코럴이 그에게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아내보다 일에 좀 더 흥미를 보인다 하더라도 상관하지 않을 정도로 침착하고 세련된 사람처럼 보였으니까.
그러다 마치 어두운 방 안에 갑자기 불이라도 켜진 것처럼 불현듯 그의 이상한 행동의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는 라이가 이혼을 하지 않겠다고 억지를 쓰고, 모든 것을 취조라도 하듯 캐묻고, 그녀의 친구들에 대해 암시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유를. 샐리는 그가 얼마나 자신의 것에 대한 소유욕이 대단한지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속한 그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았었다. 그 소유욕이 샐리에게도 미친것이다. 수천 킬로미터를 헤어져 있었고, 수년 동안 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는 상관하지 않았다. 한 번 그의 아내가 되었으면 평생 자신의 아내라는 것이리라. 그가 그녀를 더 이상 원하지 않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할 거라는 생각이 들자 고분고분 그녀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너무나도 대단하시니까.
하지만 그녀의 입장도 그와 똑같았다. 한 번도 너무 많았다. 라이를 사랑했던 것처럼 다른 남자를 사랑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비록 그가 준 정신적인 상처로부터 회복되었다 해도 또 다시 그렇게 정열적이고 미친 듯이 사랑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랑을 해본 자신이 자진해서 미적지근하고 편안한 관계가 던지는 허울 좋은 결혼의 덫에 걸리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그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서 이혼을 원하는 게 아니라는 걸 그는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그녀가 단지 자유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그는 결코 이해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가 멀리 있는 존재였을 때는 상관없었지만 이제 그는 샐리의 주변에서 버젓이 숨을 쉬고 그녀의 주변에서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점점 그녀의 숨통을 조여 올 것이다. 라이는 너무나 강압적이고 소유욕이 강했다. 만일 그가 그녀를 지배하고 억누를 수 있는 어떤 법적인 권리를 갖고 있다면 그는 망설이지 않고 그걸 이용할 것이다. 처음으로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샐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월드 인 리뷰지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샐리였지만, 다른 잡지사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혼을 종용한다면 해고하겠다고 위협하는 라이에게 대처하는 방법은 그가 그 위협을 실행하기 전에 그 위협 자체를 무위로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