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그 오빠들을 조심해 137화
성대한 결혼식이었다.
원래는 신부의 아버지가 식장에서 신랑에게 신부의 손을 넘겨주는 게 정석적인 결혼식 순서였지만,
에른스트는 상황이 특수해 그냥 관례대로 식을 치르지 않았다.
유진과 나는 아예 처음부터 손을 붙잡고 결혼식장에 동반 입장했다.
우리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결혼식 서약을 하고 반지를 주고받았다.
그 후 내 머리에 씌워진 면사포를 걷은 유진이 고개 숙여 내게 입을 맞추었다.
아름다운 꽃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컹컹!
다른 가족들과 함께 결혼식에 참석한 페니가 우리를 축복하듯이 때맞춰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하고 우렁찬 소리로 크게 짖었다.
다른 어디도 아닌 에른스트의 결혼식이다 보니, 손님도 굉장히 많이 참석했다.
황손 다이스와 황손비 로자벨라까지 와서 우리를 위한 축사를 남겨주었다.
결혼식 이후 하객들에게 던진 부케는 루이제가 받았다.
카벨이 눈을 매섭게 번뜩이다가 먹잇감을 노리는 한 마리의 솔개처럼 잽싸게 몸을 날려 부케를 낚아채려 했으나, 루이제는 굉장히 강했다.
그녀는 앞쪽에 끼어드는 카벨을 인정사정없는 몸통박치기로 밀어낸 뒤 유유히 부케를 쟁취했다.
그때 카벨의 그 망연자실한 표정이란.
우리 둘째가 얼마나 불쌍해 보였으면, 루이제가 적선하듯이 부케에 있는 꽃을 한 송이 따로 빼내서 그에게 주었을 정도였다.
카벨은 분한 눈치였지만 그래도 루이제의 손을 뿌리치지 않고, 그녀에게서 낚아챈 꽃을 세상 소중하게 품에 꼭 끌어안았다.
"축하한다.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야."
"결혼 축하해, 하리."
"감사합니다, 아저씨. 고마워, 요한 오빠."
바스티에 백작과 요하네스도 와서 축하해 주었다.
루이제에 비하면 그들을 보는 건 좀 오랜만이었다.
언뜻 들어 보니 요하네스는 요즘 호감을 갖고 만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누구인지는 바스티에의 다른 가족들에게도 밝히지 않아서 다들 궁금해 하는 눈치던데,
그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야기해 주겠다며 아직까지 비밀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요하네스가 만나는 건 분명 좋은 사람일 것이다.
요하네스부터도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게다가, 오랜만에 본 그의 얼굴이 이렇게 햇빛을 한가득 머금은 것처럼 해사해 보이지 않는가.
"결혼 정말 축하드려요! 두 분 너무 잘 어울리세요."
이후에도 수많은 사람에게서 축사를 들었다.
그러다 내게 다가온 어느 한 여자를 보고 나는 반가움을 느꼈다.
노을을 닮은 주황색 머리카락과 따뜻한 갈색 눈동자를 가진, 맑고 순해 보이는 인상의 여인.
데이지 템페르토였다.
"안녕하세요, 템페르토 양. 오늘 와 주셔서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예전에 한 번 뵈었을 뿐인데 이렇게 기억하고 초대해 주셔서 제가 더 감사한걸요."
그녀는 내가 직접 초대했다.
원래 데이지 템페르토는 이전 생에 카벨과 떠들썩한 연애결혼을 했던 여자였으나 이번에는 아직 둘이 크게 엮인 일이 없었다.
예전에 그녀가 신랑감을 구하러 얼마간 제도에 올라왔던 일이 있었는데,
수줍음 많은 성격 때문인지 생각보다 너무 일찍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 버렸다.
그래서 당연히 카벨과도 마주칠 일이 없었고 말이다.
사실은 두 사람의 일에 괜히 오지랖을 부려 끼어들 생각이 없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괜찮겠지.
"카벨 오빠."
나는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둘째를 불렀다.
늘 그랬던 것처럼 카벨은 내가 부르자마자 꼭 기다렸다는 듯이 홀랑 뛰어왔다.
"나 여기 있어! 왜 불렀어?"
"여기는 데이지 템페르토 양이야. 내 초대로 오신 분인데, 제도에 오랜만에 올라오셔서 오늘 결혼식에 참석한 손님들도 낯설 테니까
오빠가 나 대신 안내 좀 해드려."
나는 카벨에게 데이지 템페르토를 얼추 소개해 주고 그에게 안내를 맡겼다.
데이지 템페르토는 괜찮다며 펄쩍 뛰었고, 카벨은 어째서인지 그녀를 보자마자 눈을 크게 떴다.
"어어?"
"앗, 저기······. 안녕하세요? 혹시 저를 기억······ 못 하시겠죠?"
응?
그런데 이거 뭐지? 둘이 어디서 만난 적이 있었나?
"기억은······ 하는데, 그, 예에에저어언에 그 가면무도회에서······."
카벨이 나로서는 생전 처음 보는 요상한 얼굴을 하고 말을 길게 끌면서 어물거렸다.
카벨의 답변을 들은 데이지 템페르토의 얼굴이 기쁜 듯이 활짝 피어났다.
"아! 오래전 일인데 기억하시는군요. 그때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기사님."
"으아아니요, 별말씀을. 뭐 그런 걸 가지고. 크흠!"
어라. 이 은근한 분홍 기류는······.
이건 확실히 뭐가 있네, 있어. 게다가 가면무도회? 언제 열린 가면무도회를 말하는 거지?
어쨌든 잘 됐다. 둘 다 서로를 보는 눈에 확실히 호감이 있는 듯하니.
"오빠, 그럼 부탁할게. 괜찮으면 피로연 때까지 대화 상대 좀 해드려. 그럼 편안한 시간 보내세요, 템페르토 양."
나는 두 사람을 보내놓고, 멀어지는 낯선 둘째의 모습을 재미있고 신기한 기분으로 지켜보았다.
"템페르토 자작 영애던가?"
그때 다른 곳에서 하객들을 상대하고 있던 유진이 내게 다가왔다.
놀랍게도 그는 예전에 한번 봤던 데이지 템페르토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전에 우연히 마주친 것 말고는 별다른 교분이 없던 걸로 알고 있는데 따로 초대까지 하다니. 그녀가 마음에 들었어?"
"그냥. 좋은 날인데 여러 사람이 와서 축하해 주면 좋잖아."
의외란 듯이 묻는 그에게 나는 그냥 적당히 웃으며 얼버무렸다. 유진이 뭔가를 감지한 듯, 약간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나는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웃으면서 그런 그를 마주했다.
그러자 유진도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속아주겠다는 것처럼 부스러진 웃음을 얕게 내뱉은 뒤 내 손을 잡았다.
손가락 사이로 파고드는 온기에 마음까지 간지러워졌다.
"피곤하지 않아? 조금 이따 피로연 자리도 있는데 너무 무리하지 마. 여긴 나 혼자 있어도 되니까 들어가서 좀 쉬어."
좀 더 유진 옆에 있고 싶었지만 피곤한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피로연용 드레스로 옷을 갈아입어야 하기도 했다.
유진이 내 뺨에 애정 어린 입맞춤을 남긴 뒤 루이제와 에리히가 있는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결혼식은 그렇게 무사히 끝났으나······.
역시 이렇게 마냥 조용하고 평화로운 건 우리 에른스트에 어울리지 않지.
사건은 얼마 후에 열린 피로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유진과 나는 피로연 후 바로 신혼 여행을 갈 예정이었다.
하객들과의 인사는 아까 결혼식이 끝나고 얼추 다 마쳤기 때문에 피로연은 그냥 오늘을 축하하며 식사하는 자리라 해도 좋았다.
개중 돈독한 친분이 있는 바스티에 가문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차피 우리보다 신분이 높은 건 황족뿐이어서 피로연 때 유진과 내가 따로 인사하러 갈 사람이 없기도 했다.
"오늘 결혼식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에른스트의 새로운 시작을 기념하며."
유진의 간단한 인사와 함께 모두 축배를 들었다.
유진과 나는 에른스트와 바스티에의 가족들이 모인 테이블에 앉았다.
다이스와 벨론티아 황손 부부는 피로연 자리까지 그들이 있으면 분위기가 딱딱해질 거라며 아까 결혼식이 끝나고 자리를 떠나 지금은 없었다.
"하리야, 배고프지! 이것 좀 먹어 봐."
그런데 둘째야. 왜 또 내 옆으로 와서 붙어 있는 거냐? 데이지 템페르토 양은 어디다 두고.
왠지 우리 둘째가 이번 생에 연애를 못 하면 그건 내 탓인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기분 탓이겠지? 그, 그렇겠지?
"카벨 오빠, 내가 알아서 먹을 테니까 내려 놓······ 우웁."
그런데 카벨이 내 앞에 가져다 놓은 음식의 냄새를 맡는 순간, 갑자기 헛구역질이 났다.
앗, 그런데 생각보다 소리가 컸나?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내 헛구역질 소리를 들었는지, 수많은 시선이 일제히 나한테 향했다.
"헉, 너 왜 그래?!"
거기에 더해 카벨의 우렁찬 목소리까지 피로연이 열린 회장 안을 가로질렀다.
으악, 좀 조용히 해, 이놈아!
"괜찮아, 하리?"
유진도 몸을 숙여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래도 카벨과 달리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 상태를 확인했다. 이런 일로 주목받고 싶지 않았던 나로서는 고마운 일어었다.
"속이 안 좋아? 안으로 들어갈래?"
"아니야······. 그냥 잠깐 속이 울렁거렸어. 읍, 카벨 오빠, 일단 미안하지만 이것 좀 옆으로 치울게."
말하는 동안에도 작게 헛구역질이 났다. 카벨이 얼른 내 앞에 있는 접시를 치웠다.
그래도 가까이에서 고기 냄새가 안나니까 좀 살 것 같았다.
"소화제라도 가져오라고 할까?"
옆에서 에리히가 시종을 불렀다.
"저기, 하리 언니? 어······. 혹시 모르니까 신혼여행 가기 전에 의사 한번 부를까?"
그때 루이제가 어쩐지 그녀답지 않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아니야. 그냥 소화제 가져오면 그거 먹으면 될 것 같아."
하지만 이 정도로 의사까지 부르는 건 너무 과한 것 같아서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루이제의 뒤를 이어 바스티에 부인까지 권유했다.
"그래도 하리야······. 정말 체한 건지도 확실하지 않고······. 몇 시간 후에는 신혼여행도 가야 하는데,
내 생각에도 일단 의사를 불러서 검진을 한번 받아보는 게 좋을 것 같구나."
그런데 기분 탓인가? 그녀의 태도도 루이제만큼이나 오묘했다. 그 두사람뿐만이 아니라, 바스티에 사람들 전체가 그랬다.
"소화제여도, 그게······. 몸에 안 좋을 수도 있으니까."
아, 잠깐만.
그러다 바스티에 부인이 덧붙인 말을 듣고 갑자기 뭔가 느낌이 왔다.
다들 이렇게 조심스럽게 얘기하는 이유가 뭔지.
눈치 빠른 에리히도 시종이 가져온 소화제를 막 건네받다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나를 휙 돌아보았다.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내 팔을 잡고 있던 유진의 손에도 한순간 지그시 힘이 들어갔다.
"아니······. 아니야. 그런 거 아니에요."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부정했다.
"진짜 그냥 갑자기 속이 안 좋아져서 그래요. 진짜 아니야."
지금 이 사람들, 혹시 내가 임신한게 아닌지 의삼하고 있었다!
세상에, 정말 너무 엄청난 오해라서 말문이 다 막힐 정도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잖아.
아니, 물론······.
아, 아이가 생길 만한 그런 일을 유진과 한 적 없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완전히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우리 둘 다 아직 그런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라 얼마나 꼼꼼하게 신경 쓰고 있는데?
내가 여러 가지 말 못 할 부끄러운 사정으로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유진이 항상 세심하게 뒤처리해 줬고······.
무엇보다도, 내 몸 상태는 내가 제일 잘 알았다. 그러니까 절대로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분위기는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정말 아니야! 아니라니까!"
"엥? 도대체 뭐가 아니야?"
오직 카벨만이 이 미치고 환장할 상황 속에서 어리둥절하게 의문을 표하는 중이었다.
결국은 굳어 있던 유진이 침착한 모습으로 돌아가 의사를 불렀다.
그래도 그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닌 듯했지만, 요즘 내가 무리한 것도 맞고
또 금방 먼 길을 떠나야 하니 혹시 몸에 다른 이상이 없는지 검사를 받아보는게 좋겠다는 말로 나를 달랬다.
그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내 말을 별로 믿지 않는 눈치였다.
결국 나는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잠시 후에 헐레벌떡 뛰어온 의사를 마주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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