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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135화 (135/138)

# 135화.

그 오빠들을 조심해 135화

유진에게서는 밖에서 묻혀 온 밤공기 냄새가 희미하게 났다.

이렇게 그를 끌어안고, 또 그에게 안겨 있으니 이제야 좀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사실은 요즘 유진이 좀 부족했다.

우리 둘 다 바쁘기 때문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요즘 날씨가 얼마나 따뜻해졌는데. 오늘 밖에 나가니까 꽃도 다 폈더라."

"그래도 밤은 아직 쌀쌀하잖아."

"유진 오빠가 안아줘서 따뜻한데?"

유진이 내 말에 후우, 부스러진 웃음을 내뱉었다.

내 등을 감싼 채 뒷머리를 몇 번 부드럽게 쓸어내리던 유진이 이내 손을 움직여 소파에서 나를 완전히 안아 들었다.

내 잠이 완전히 깨기 전에 이대로 방까지 데려다 주려는 것이다.

예전에야 그가 이럴 때마다 당황해서 내려달라고 하곤 했지만 이제는 이것도 익숙해졌다.

유진이 내가 껴안으려고 할 때마다 곧장 허리를 숙여주곤 하는 것처럼.

사실은 얘기하는 동안 잠기운은 거의 다 달아났는데······.

그래도 지금 유진과 떨어지긴 싫은 기분이라 그냥 못 이긴 척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몸이 더 바싹 맞붙으면서 피부 위로 한결 더 촘촘하게 체온이 스몄다.

전 같으면 혹시라도 누가 볼까봐 부끄러워 행동을 조심했겠지만 지금은 늦은 밤이라 우리를 목격할 사람도 없었다.

또 설령 누가 본다 해도 우리가 내외하는 관계도 아니었고, 얼마 후에는 결혼도 할 텐데, 뭐.

이걸 보면 나도 예전보다 조금은 뻔뻔해진 것 같다. 하지만 역시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어?

그래도 이렇게 유진에게 안겨 있는 동안, 얼마 전부터 은근히 신경 쓰이던 부분이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유진의 눈치를 보다가 슬쩍 지나가듯이 말을 꺼냈다.

"그런데 나 요즘 좀 살찐 것 같지 않아?"

역시 요즘 삼 형제 등쌀 때문에 밥을 너무 많이 먹은 것 같다.

에리히까지 학술원을 졸업하고 와서 집에 있으면서 같이 삼시 세끼 밥을 먹다 보니 나도 전보다 입맛이 돌아서 과식하게 된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가장 큰 원흉은 오래전부터 주야장천 '고기 만병통치설'을 주장해 왔던 둘째인 것 같았다.

부기사단장이 되고 나서부터 카벨이 영 흐물흐물해져서 맥을 못 추기에,

힘 좀 나게 해주려고 식단을 그가 좋아하는 육류 위주로 바꾼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덩달아 나도 다른 때보다 고열량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그 영향이 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탓에 가뜩이나 결혼식 준비를 하면서도 신경이 쓰였는데, 오늘은 이렇게 유진에게 안겨 있기까지 하니까 아무래도 좀······.

"역시 한 치수 정도는 줄여야지 드레스 입을 때 딱 예쁠 것 같은데."

게다가 이번에 웨딩드레스를 맞추러 가서 보니까, 아니나 다를까. 역시 살이 좀 찌긴 쪘더라.

크흑, 체감한 것보다는 아니어서 다행이었지만, 그래도!

하긴 그렇게 먹어놓고 살이 안 찌기를 바라는 것도 양심 없는 일이긴 하겠지만 말이야.

그러나 유진에게 내 입으로 직접 이런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 지금, 사실 그에게 듣기를 바라는 대답은 따로 있었다.

자, 정답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당신은 그걸 말하기만 하면 돼!

나는 속으로 유진에게 신호를 보내면서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아니, 오히려 더 찌워야 할 것 같은데. 지금도 너무 가벼워."

눈치가 빠른 건지, 아니면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 유진은 뜸 들이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었다.

으앗, 역시 내 남자! 어쩜 대답도 이렇게 예쁘게 잘한다지요?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지만 나는 괜히 투덜거리듯이 말했다.

"다 오빠들이랑 에리히 때문이야. 특히 카벨 오빠 따라서 요즘 고기를 너무 많이 먹었어."

그러자 유진이 피식 웃었다.

"카벨이 요즘 유일하게 잘하고 있는 일이잖아. 언제 한번 칭찬해 줘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그, 그건 좀 참아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우리 단순한 둘째가 유진의 칭찬에 오두방정을 떨면서 내 접시 위로 고기의 산을 쌓을 모습이 너무 쉽게 상상되었다.

"아니야, 그러지 마. 그럼 카벨 오빠는 분명 신나서 더 먹이려고 할거란 말이야."

유진과 나는 그렇게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면서 내 방까지 함께 갔다.

바로 잠자리에 들려니 뭔가 아쉬워서 유진과 함께 침대에 누워 좀 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눈꺼풀이 깜빡깜빡 감기더니, 그만 밀려드는 수마에 장렬히 패배해 버렸다.

잠결에 유진이 내게 이불을 덮어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느낌이 들었다.

"잘 자, 하리."

마지막으로 이마에 다정한 입맞춤이 내려앉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며 나는 기분 좋게 잠이 들었다.

***

"에단 경, 왔어요?"

다음 날 저녁, 휴가를 갔던 에단이 돌아왔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반가워서, 나는 1층 로비까지 내려가 막 문 안으로 들어오는 그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그러자 에단이 잠깐 멈칫하다가 나를 향해 작게 묵례해 인사했다.

"다녀왔습니다."

이번 휴가는 에단이 그동안 단 하루의 휴식도 없이 내 옆에 붙어 일만 하는 게 딱해 보여 내가 먼저 강력히 주장한 것이었다.

벌써 꽤 오래전 일이 된 라벤더 코르디스 사건 이후로 삼 형제를 비롯해 에단까지 나를 호호 불면 날아갈 민들레 홀씨 같은 인간으로 취급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직후 휴가를 냈던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니.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내가 아무리 쉬라고 말을 해도 도무지 듣지를 않아서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난 그냥 휴가 좀 내라고 한 것 뿐인데, 꼭 비 맞고 버려진 강아지라도 된 것처럼 처량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지를 않나······.

아,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아무래도 이제 좀 쉬어도 된다는 내 말을 해고 통보로 오해한 것 같았는데, 그건 정말 억울한 오해였다.

아무튼, 평소에 표정 변화가 거의 없던 남자가 쉬라는 말을 할 때마다 그런 반응을 보이니 나도 점점 말을 꺼내기가 좀 그랬고.

그러다 보니 어영부영 이렇게 긴 시간이 흐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악덕 고용주가 될 수 없었던 나는 이번에야말로 정말 에단의 권리를 찾아주기로 굳게 결심하고 그에게 강제 휴가를 안겨 주었다.

심지어 신혼여행 때도 그가 호위로 따라온다 하니, 그 전에 한번은 정말 쉬게 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쉬니까 좋았죠? 다시 복귀할 때 되니까 막 가슴이 갑갑하고 일분일초가 조금이라도 느리게 갔으면 싶고, 그러지 않았어요?"

나는 다 안다는 듯이 그를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역시 사람은 적당한 휴식을 취해야 하는 건가? 왠지 에단 얼굴이 전보다 신수가 환해 보이는데.

자, 이참에 당신도 꿀 같은 휴일의 맛에 한번 눈을 떠보라고요!

"정확히 휴가를 가기 직전에 제 상태가 그랬습니다."

하지만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돌아온 에단의 대답은 내 기대와 달랐다.

으, 으음. 에단은 사회생활을 굉장히 잘하는 사람이구나. 이렇게 진심같이 얘기하다니.

그때 에단이 나를 보고 희미하게 입매를 올려 미소 지었다.

"그래도 제게 마음 써 주신 것 알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가씨."

우와······. 에단이 이렇게 웃는 건 진짜 드문 일인데. 역시 말만 그렇지, 휴가 때 좋았던 거 아니야?

"뭘요. 앞으로도 종종 이렇게······."

"그건 아닙니다. 휴가는 이번으로 충분합니다."

하지만 내가 말을 꺼내자마자 에단의 얼굴에서 미소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괴, 굉장히 정색하고 말하시네요. 혹시 휴가 때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그래도 가끔은 쉬어줘야죠."

"전 아가씨 옆에 있을 때가 가장 좋습니다."

헉.

이번에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이런 말을.

왠지 사회생활의 애환이 묻어나는 빈말이 아니라 진짜 같은데?

에단은 일하는 걸 굉장히 좋아하나 보다. 이런 걸 일중독이라고 하는 건가?

"뭐야, 호위 기사 돌아왔네? 이참에 아예 쉬어도 되는데."

그때 에리히가 계단을 내려오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도 셋째가 에단에게 이런 식으로 까칠하게 구는 것도 예전에 비하면 고양이 솜 발바닥 힘 정도로 약해진 상태였다.

우리 에리히도 알고 보니 정이 깊은 녀석이니, 시간이 지나면서 에단에게 나름대로 마음을 열게 된 게 아닐까?

"에단 경, 정식 복귀는 내일부터니까 오늘은 이만 가서 쉬어도 돼요."

"예. 휴가 선물만 드리고 가겠습니다."

오잉, 휴가 선물까지 가져왔다고? 어쩐지 손에 뭘 들고 있더니만.

에단이 옆에 있던 휴버트에게 선물을 넘겼다.

"공작님과 하리 아가씨 선물은 한 상자에 같이 들어 있고, 다른 두 개는 도련님들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뭐, 뭐? 내 것도 있다고?"

예상치 못한 말에 놀랐는지 에리히가 움찔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에단만 보면 으르렁거리기만 할 뿐, 그에게 좋은 소리 한마디 해준 적이 없었으니 당황스럽기도 하겠지.

물론 요즘은 거의 안 그러긴 했지만.

그런 그를 향해 에단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예. 에리히 도련님이 뭘 좋아하시는지 몰라서 페니의 물건으로 준비했습니다."

그 기사, 유능!

에단은 에리히의 심쿵 포인트를 놀랍도록 잘 잡아냈다.

에리히가 어울리지 않게 당황해 버벅거리는 사이 에단이 우리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럼 전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그래요, 에단 경. 내일 봐요."

"내일 뵙겠습니다."

내일 보자는 소리가 좋은 건지, 에단이 또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물러났다.

"뭐야, 휴가 가서 뭘 잘못 먹었나?"

그가 사라지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듯, 에리히가 얼떨떨하면서도 찝찌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우워어어어어! 에단 비숍 왔다며!"

바로 그때 카벨이 사자후를 내지르며 등장했다.

"어디 있어?! 어디?! 마침 잘 왔다! 이번에야말로 이 부기사단장님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지!"

"에단 비숍 방금 갔어, 카벨 형."

"뭣?!"

어이구, 마음은 알겠지만 뒷북이구나, 둘째야.

에단이 휴가를 가기 전 마지막으로 대련한 날에도 그를 이기지 못해서 이를 가는 것 같더니만.

그나저나 카벨도 이런 데서는 참 끈기가 있었다. 에단에게 싸움을 거는 족족 무참히 깨지면서도 포기를 모른단 말이지.

한편으로는 이제 최연소 부기사단장 배지를 단 카벨조차 매번 이겨버리는 에단의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놀라울 정도였다.

그, 그런 사람이 내 호위 기사나 하고 있어도 되는 건가?

"카벨 오빠, 무슨 퇴근하고 오자마자 또 대련하려고 그래?"

"내가 에단 비숍이 다시 돌아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내일은 진짜 딱 목 씻고 기다리고 있으라 그래!"

"에단 경한테도 숨 돌릴 시간은 좀 줘야지. 이제 막 복귀한 사람 붙잡고 대련은 무슨 대련이야? 아직 몸도 덜 풀렸을 텐데.

난 잘 모르지만 그런 상태에서 겨루는 건 공평하지 않은 거 아니야? 우리 멋진 카벨 오빠는 그런 치사한 거 싫어하잖아?"

그러자 카벨이 흠칫했다. 그런 쪽으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가, 내 말을 듣고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 그건 그렇지. 기사단 놈들도 휴가 보내고 오면 몸이 굳어서 원래대로 돌아오는  데 시간이 좀 걸리던데······.

흥, 별수 없네! 공정하고 인내심 많은 카벨 님이 좀 더 기다려 주는 수밖에!"

"그래그래, 에단 경이 휴가 가서 선물 사 왔으니까 같이 열어 보자. 오빠 것도 있어."

나는 좀 귀찮아져서 적당히 맞장구 쳐주며 얼른 화제를 바꿨다.

"앗, 설마 이거 다음 대련 땐 좀 살살 봐달라는 뇌물인가?!"

"참나, 그런 거라면 형이 에단 비숍한테 줘야 하는 거 아니야?"

"뭐?! 너 그게 무슨 뜻이야?"

"무슨 뜻이긴, 말 그대로······."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

그때 유진이 귀가했다.

"유진 형!"

"오빠 어서 와."

"형도 이리 와봐. 에단 비숍이 선물 주고 갔어."

유진까지 합세하자 에른스트의 풍경이 더 복작복작해 보였다.

저절로 웃음이 나는 정겨운 모습이었다.

그렇게 모두와 함께 하는 즐거운 일상이 하루하루 지나갔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내 결혼식도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왔다.

"일어나, 하리 언니······!"

이른 아침, 나는 기시감을 느끼며 부스스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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