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화.
그 오빠들을 조심해 134화
"페니, 맛있어? 오구, 간식도 잘 먹고 우리 페니 예쁘다."
"왈왈!"
오늘은 내가 페니에게 간식을 줬다.
에리히는 잠깐 페니를 전담하는 수의사와 이야기할 게 있어 자리를 비웠다.
검진 후 수의사의 표정이 괜찮았던 걸 보면, 페니의 건강 상태가 나쁘진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요즘은 페니가 다시 기운을 차렸는지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서 다행이었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우리랑 같이 오래오래 살자, 페니."
그렇게 속닥거리면서 페니의 털을 쓰다듬자 꼭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페니가 멍! 하고 짖었다.
달칵.
"페니 간식 다 먹었어?"
그때 에리히가 방으로 들어왔다.
"멍!"
페니가 기다렸다는 듯이 발딱 일어나서 에리히에게 달려갔다.
앗, 내가 방금 간식까지 줬는데 너무 순식간에 버리고 가는 거 아니니?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에리히였으니, 페니에게 내가 뒷전인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에리히가 문가까지 달려간 페니를 끌어안고 어화둥둥 얼렀다.
"잠깐 나갔다 온 건데 왜 이렇게 반가워해? 나 기다렸어?"
"멍!"
"간식도 이렇게 다 묻히고 먹고, 이번에 루이제가 새로 가져온 간식이 맛있었나 보네.
어디 보자. 지금 날씨도 좋은데 소화도 시킬 겸 산책갈까, 페니?"
"멍멍!"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훈훈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 에리히와 페니에게 다가갔다.
"에리히, 의사 선생님은 갔어? 뭐라셔?"
"지난번보다 검사 결과가 많이 좋아서 안심해도 된대."
"다행이다!"
좋은 소식이었다.
어쩐지 에리히의 얼굴이 활짝 갰더니만, 이런 기쁜 일이.
"물론 주의해야 할 점은 몇 가지 있지만, 그래도 페니가 나이에 비해 엄청 건강한 편인가 봐."
"네가 잘 돌봐줘서 그래."
페니를 향한 에리히의 정성이 어느 정도인지 그동안 옆에서 지켜봐 온 사람들은 모두 잘 알고 있었다.
특히 학술원을 졸업한 뒤에는 어미새처럼 거의 24시간 내내 페니의 옆에 붙어 있었으니까.
혹여 페니의 몸이 조금이라도 불편할 때에는 에리히의 생활도 밤낮의 구분이 따로 없어졌다.
그러니 내가 한 말에는 한 점의 과장도 없었다.
"아냐.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인데."
하지만 에리히는 담담하게 말했다.
분명 강아지를 키우는 모든 주인이 에리히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닐 텐데 말이다.
"그리고 내가 없는 동안에는 네가 잘 돌봐줬잖아. 휴버트에게 들었어."
동네 사람들, 우리 에리히가 이렇게 잘 컸답니다!
어릴 때는 그렇게 얄밉던 꼬맹이가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공로도 돌릴 줄 알게 되었다고요.
이제는 새삼스러웠지만, 에리히가 이렇게 잘 큰 모습을 볼 때마다 뿌듯해졌다.
나는 에리히와 페니를 보고 방긋 웃었다.
"지금 페니랑 같이 산책 갈 거야?"
"너도 같이 갈래?"
"그래!"
페니도 좋다고 멍멍 짖었다.
에리히와 나, 그리고 페니는 셋이 함께 오순도순하게 산책을 나갔다.
"와, 오늘 날씨 진짜 좋다."
한동안 페니의 몸이 안 좋기도 했고, 결혼식 준비로 나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기 때문에 이렇게 셋이 함께 산책을 가는 건 오랜만이었다.
"그런데 아직 초봄이라 그런지 그늘진 곳은 좀 쌀쌀하네. 햇볕 있는데로 가자."
결혼 후에는 신혼여행으로 또 얼마간 집을 떠나 있을 테니 이런 시간을 갖지 못할 테고.
"이렇게 같이 나오니까 좋다. 페니도 나랑 산책 나오니까 좋지? 그치?"
"왈왈!"
"내가 그랬잖아. 페니는 금방 털고 일어날 거라고."
"응, 네 말이 맞네."
얼마 전에야 유진과 농담으로 결혼식을 앞당기고 싶네 어쩌네 했지만, 사실은 페니의 몸이 많이 안 좋으면 결혼식을 미룰 생각도 하고 있었다.
유진도 동의한 일이었다.
에리히는 전혀 그럴 필요 없다고 했지만.
"페니는 더 건강해질 거야. 네 말처럼 내가 열심히 돌보고 있으니까."
하지만 지난 생에서도 페니가 우리 곁을 떠난 건 더 나중이었고, 이번에도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 페니는 또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으니.
"그리고 페니도 형이랑 네 결혼식 기대하고 있을걸. 당연히 나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페니는 다른 가족들도 좋아하고 있으니까."
게다가 에리히를 포함해서, 에른스트의 모두가 이렇게 페니를 소중히 여기며 살뜰히 보살피고 있으니까.
그러니 분명 에리히의 말처럼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소 충동적으로 손을 들어서 에리히의 머리를 마구 비볐다.
"아유, 착하다. 우리 에리히, 누굴 닮아서 이렇게 착할까? 역시 페니인가?"
"아, 뭐 해? 손 안 치워? 머리 다 헝클어지잖아."
하지만 까칠한 말과는 달리 에리히가 내 손을 뿌리치지는 않아서, 나는 그를 보며 별수 없이 작게 소리내 웃고 말았다.
"멍멍!"
그때 페니가 돌연 어딘가를 향해 짖었다.
"어어? 너희 둘이 페니 산책시키는거야? 나도 끼워줘, 나도!"
예고도 없이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카벨이었다.
이토록 이른 카벨의 귀가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기 때문에 나와 에리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라, 카벨 오빠 지금 아예 집에 들어온 거야?"
"뭐야, 형 오늘 왜 이렇게 빨리 왔어?"
"아예 들어온 건 아니고, 조금 이따가 또 나가 봐야 해! 저녁에 갑자기 밖에 나가야 할 일이 생겨서,
지금 집에 가서 잠깐 쉬고 오라고 단장이 보내줬어!"
카벨이 우리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면서 구시렁거렸다.
우리 둘째도 기사단의 최연소 부단장이 되고 나서 많이 바빠졌다.
난 카벨이 권력 지향적인 인간인 줄 진짜 꿈에도 몰랐는데, 알고 보니 꽤 오래전부터 부단장을 목표로 했던 것 같아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래도 둘째가 그동안 남모르게 열심히 노력한 게 기특해서 당연히 난 그를 폭풍 칭찬해 줬고.
에리히는 한동한 우쭐한 얼굴로 돌아다니는 그를 보며 짜증스러워했다.
그런데 막상 원했던 자리에 오르게 되니 뭔가 카벨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모양이던데······.
보아하니, 카벨은 권력자가 되면 아랫사람들에게 하기 싫은 일은 죄다 떠맡기고 탱자탱자 놀 수 있을 줄 알았다가 기대에 배신당한 눈치였다.
우리 둘째는 이제 자신이 부단장이 되어 기사단이 깨끗해졌으니 나한테 언제든 놀러 와도 된다고 몇 번이나 의기양양하게 말했지만
택도 없는 소리였다.
부단장이 된 카벨은 엄청나게 할 일이 많아져서 내가 놀러 가도 얼굴 한번 비추기 어려워졌다.
당장 전 부단장에게 인수인계를 받는 기간에도 거의 기사단에 살다시피 했을 정도니까.
어느 날인가에 핼쑥한 몰골로 집에 돌아와서 저 혼자 사기라도 당한 양 억울함에 몸소리치는 카벨을 보고 내가 얼마나 황당했었는지.
아니, 높은 직책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바쁘게 지내는지 유진 오빠를 보고도 느끼는 게 없었단 밀이야?
그래도 요즘은 나름대로 적응했는지 기사단 일로 전만큼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지만.
그런데 우리 둘째는 이번 일로 얻은 교훈을 통해 왠지 또 이상한 방향으로 헛다리를 짚기 시작한 눈치였다.
"역시 우리 단장이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나한테 죄다 떠넘기는 게 틀림없어. 이 악덕 상사! 더러운 세상! 대머리나 돼라!"
자기야말로 악덕 상사가 될 생각이 굴뚝같았던 주제에 카벨이 치를 떨었다.
이거······ 역시 나 혼자 오해하는 게 아닌 것 같은데······.
왠지 둘째가 이번에는 눈을 번뜩이면서 단장 자리를 노리는 것 같은 느낌이······. 쿨럭.
물론 자기 발전을 이룰 목표가 있다는 건 좋은 거지만, 혹시 저러다 진짜 단장이라도 되면 그 생활을 어떻게 견딜까 몰라.
아니면 정말 개혁해서 탱자탱자 놀고먹는 기사단을 만드는 거 아냐?
크윽, 아를란타, 이대로 괜찮은 건가?
"그래도 멋있어, 카벨 오빠! 최연소 부기사단장인 것도 대단한데, 이렇게 일도 열심히 하고!"
갑자기 국가적 위기의식을 느낀 나는 카벨이 아를란타의 기사단을 풍비박산 내기 전에 뭐라도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오빠처럼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기사단에 있어서 나도 그렇고, 다른 아를란타 사람들도 다들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거지."
좀 띄워주자 단순한 카벨이 금방 투덜거리던 걸 멈추고 입꼬리를 꿈틀거렸다.
"흐음, 큼! 내가 좀 많이 믿음직스럽고 멋있긴 하지."
"그래도 너무 무리하진 마. 오빠가 힘든 건 싫으니까."
"그런데 단장이 되면 더 멋있을 것 같지 않아?"
헉!
설마 하긴 했지만 진짜 단장 소리를 입에 올리다니!
아무리 카벨이 검술 천재라지만, 최연소 부단장 배지를 단 걸로도 모자라 단장까지 되려면······.
정말 하극상이라도 일으키는 것 말고는 답이 없을 텐데.
게다가 솔직히 카벨이 지금보다 더 높은 직위에 앉게 되면 분명 스트레스를 받아서 죽으려고 할 거다.
"아아니? 단장보다 부단장이 더 멋있는 것 같은데? 어감도 그게 더 좋고, 배지랑 제복도 부단장 게 더 멋있어!"
"어, 그래?"
내가 얼른 꺼낸 말에 카벨이 주춤했다. 아직 입고 있는 제복을 쓱 내려다보는 눈에는 내 말에 혹한 기운이 가득했다.
"그래, 카벨 형. 부단장 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단장 소리야?"
에리히도 옆에서 내 말에 맞장구쳤다.
그래, 둘째야.
단장은 좀 나중에, 네가 지금보다 나이와 관록이 더 늘면 다시 생각해보자.
"아무튼, 오빠! 오늘 잠깐이지만 집에 일찍 와서 좋다. 날씨도 좋은데 오빠도 같이 산책하자."
"헤, 그래!"
카벨은 부단장 제복이 더 잘 보이게 하려는 듯이 가슴을 활짝 펴고 나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걸 본 에리히가 못 볼 걸 본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는 건 당연히 비밀이었다.
***
"으음······."
그날 밤, 누군가 얼굴을 스치듯이 부드럽게 쓰다듬는 느낌에 잠에서 깨어났다.
묵직한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어스름한 시야에 유진의 얼굴이 비쳤다.
나는 아직 잠이 덜 깬 상태로 그를 보고 배시시 웃었다.
"왔어, 오빠?"
유진이 한숨 섞인 얕은 숨결을 내뱉으며 낮게 속삭였다.
"이렇게 밖에서 기다리지 말라고 했는데."
언뜻 시계를 보니 벌써 밤 2시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유진도 결혼식을 앞두고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하느라 바빠져 몸이 열개라도 모자를 판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늦게 귀가하는 날마다 이렇게 복도에 있는 소파에서 그를 기다리곤 했다.
층계참에서 바로 보이는 위치에 있는 휴식 공간이라서, 혹시 내가 지금처럼 깜빡 잠들어도 유진이 방으로 올라가는 길에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방에 있으면 그냥 잠들 것 같아서."
"그냥 자면 되지."
나는 일으켜 달라는 듯이 유진에게 팔을 뻗었다. 유진이 내 손을 맞잡고 부드럽게 끌어당겼다.
"하지만 오빠가 오는 거 보고 자고 싶었단 말이야."
나는 소파에 파묻혀 있던 상체가 들어 올려지자마자 어리광을 부리듯이 말하며 유진의 목에 팔을 둘렀다.
사실은 아직 잠이 덜 깨서 약간 비몽사몽 상태였다.
"그러다 감기 들어."
유진의 상체가 익숙하게 내 쪽으로 기울었다. 그는 나를 떼어 내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그를 끌어안을 수 있게 몸을 숙여 주었다.
내가 유진의 목덜미와 귓가에 얼굴을 비비자 그가 부드럽게 내 등을 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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