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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124화 (124/138)

# 124화.

그 오빠들을 조심해 124화

[ 외전 2. 오늘도 바쁜 남자들 ]

"뭐야, 다들 어디로 간 거야?"

카벨은 넓은 홀 안에서 혼자 미아가 된 기분을 느끼며 얼굴을 구겼다.

주위를 열심히 두리번거려 보았지만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와 함께 이 가면무도회까지 동행한 에리히도 어느덧 눈앞에서 사라진 뒤였다.

"저쪽으로 갔나?"

카벨은 아까부터 그의 가족들을 찾고 있었다. 하리가 바스티에 가문의 루이제와 함께 이 가면무도회에 참석했다는 소식을 입수했기 때문이다.

그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루이제가 에리히의 앞으로 보내온 한 통의 서신 덕분이었다.

그녀는 이제부터 하리와 단둘이 비밀 파티에 갈 생각이니 관심이 있으면 늦지 않게 오라며 친절하게 파티장의 위치까지 자세히 적어주었다.

공교롭게도 오늘은 카벨도 일찍 퇴근해 저택에 있었기 때문에, 형제는 두말하지 않고 곧장 서신 속에 있는 장소로 향했다.

물론 그것은 이 가면무도회장에서 하리를 데리고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비밀 사교 파티라니! 그 어감에서부터 뭔가 이상야릇한 느낌을 풍기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카벨과 에리히 역시 귀족들 사이에서 요즘 성행하는 밤 파티에 대해서는 대충 알고 있었다.

카벨 같은 경우에는 기사단의 사람들에게 파티장에서의 화끈한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얼추 들어 본 적도 있었고 말이다.

그런데 그런 곳에 여자 둘이 가다니! 절대로 안 돼!

그런 생각은 가면무도회장에 도착해 홀 안에 들어서자마자 더욱 강렬해졌다.

"뭐야, 여긴. 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

"맞을걸. 형은 저쪽으로 가서 찾아봐."

모두 익명의 힘을 빌리고 있기 때문인지, 파티장 안에 있는 사람들의 옷차림에서부터 행동거지까지 보통 자유분방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카벨과 에리히는 평소에 사교 활동을 그다지 즐기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비밀 파티에 참석한 것도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더욱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리를 찾던 중에 에리히가 사라지고, 카벨은 그 후로 한참이나 시끄러운 연회장 안을 떠돌았다.

하지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가 아는 사람은 아무 데도 보이지 않았다.

시끌벅적한 사람들 사이에서 카벨은 자신이 이방인 같다고 생각했다.

크으, 이런 것이 바로 군중 속의 고독인가?

그는 잠시 자신의 생각에 심취해 손으로 이마를 짚고 고뇌하는 자세를 취했다.

툭!

"뭐야, 무도회장 한복판에서."

"행위예술인가?"

그러다 옆을 지나던 사람들과 몸을 부딪치고 말았다.

카벨은 약간 머쓱해져서 괜히 자신을 치고 간 사람들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그러자 가면 너머로도 그의 흉흉함이 전해지는지, 곧 그들이 수군거리며 자리를 피했다.

아오, 여기 개 복잡하네. 잠깐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올까.

카벨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한 차례 더 무도회장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역시 기가 질릴 정도로 화려한 풍경만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그는 진저리를 치며 테라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끼익.

멀리 자리를 옮기기는 귀찮았기 때문에 카벨은 일단 가장 가까이에 있던 테라스의 문을 밀어젖혔다.

"그만 방으로 갈까?"

"아이, 몰라. 아앗, 잠깐, 손이 어디로 들어가는 거야! 으응······."

하지만 누가 안으로 들어오는지도 모르고 뒤엉켜 있는 한 쌍의 바퀴벌레가 곧바로 그의 눈을 파고들었다.

으악, 내 눈!

카벨은 곧바로 문을 쾅 닫고 테라스를 빠져나왔다.

아, 제기랄, 눈 버렸네.

그는 얼굴을 왕창 구긴 채로 이번에는 옆에 있는 테라스를 향해 다가갔다.

그래도 조금 전의 일이 있었기 때문인지 아까보다는 퍽 조심성이 있는 손길이었다.

"이, 이러지 마세요."

"왜 그래, 누가 들으면 내가 잡아 먹으려는 줄 알겠네. 그냥 같이 좀 놀자는 거야."

아나, 여기도 바퀴벌레인가? 뭐 이렇게 테라스마다 죄다 포진해 있어?

지금 막 보고 왔던 격렬한 커플에 피하면 이곳은 그나마 조용했다. 기사단 사람들은 이런 분위기를 밀고 당긴다고 표현했던 것 같다.

그렇게 카벨이 짜증스러운 얼굴로 다시 테라스의 문을 닫으려고 할 때였다.

"글쎄, 내가 유진 에른스트라니까? 아가씨, 날 잡으면 완전히 팔자 피는 거라고."

그 순간 카벨의 걸음이 멈칫했다.

엥? 이게 웬 개 풀 뜯어 먹는 소리? 혹시 내가 잘못 들었나?

그는 귀를 의심하며 문을 약간 더 활짝 열었다.

테라스를 등지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카벨이 얼간이도 아니고, 저게 자신의 형일리 없다는 사실을 모를 수가 없었다.

"당신, 데이지 템페르토 맞지? 어차피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것도 남자 잘 물어서 팔자 고치려고 한 거 아니야?"

"아, 아니에요. 전 그저 오늘 유익한 파티가 열린다고, 소개를 받아서······."

게다가 아무래도 저 둘은 쌍방 동의하에 야릇한 분위기를 생성하고 있던 것이 아닌 듯했다.

물론 설령 그렇다 해도 카벨이 지금 깽판을 놓을 작정이었지만.

"유익하다면 유익한 파티 맞지. 나 같은 거물도 있는 파티니까······."

"야, 너 잠깐 나 좀 봐봐."

카벨은 계속 유진의 행세를 하며 여자에게 껄떡거리는 놈팡이를 불렀다.

등 뒤에서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테라스 난간 끄트머리에 붙어 서 있던 남녀가 화들짝 몸을 떨었다.

그들은 카벨이 테라스 안으로 들어온 것을 몰랐던 듯했다.

"이건 또 뭐야?"

요란한 금색 가면을 쓴 남자가 카벨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난간과 남자의 사이에 껴 있던 여인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녀는 당혹감과 두려움이 뒤섞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카벨의 관심은 오직 그의 형을 사칭한 남자에게만 향해 있었다.

"너 나 몰라?"

"네가 누군데?"

"진짜 몰라?"

"뭐야, 이 자식은."

느닷없이 들이닥쳐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카벨에게 황당한 시선이 날아가 꽂혔다.

그러나 뒤이어 카벨이 툭 내뱉듯 읊조린 소리에 남자는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나 카벨 에른스트."

헉!

급히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달빛 고인 테라스에 번졌다.

경악해 굳어진 남자를 보고 카벨이 가면을 벗었다.

하얀 달빛 아래로 카벨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웃으며 눈앞에 있는 남자를 향해 말했다.

"형, 가면 좀 벗어 봐."

하지만 그것은 실로 악마 같은 미소였다.

카벨의 웃는 얼굴을 보는 순간, 그와 마주한 남자는 온몸에 오싹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파르르 몸을 떨고 말았다.

"가면 좀 벗어 보라니까?"

카벨은 동공을 흔들며 주춤 뒷걸음질 치는 남자에게 느긋이 재촉했다.

그런 그의 모습은 마치 사냥감을 구석에 몰아넣고 유유히 다가가는 맹수 같았다.

"왜 못 벗어?"

"그, 그게······."

아직까지도 테라스 난간에 기대서 있는 여자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아, 설마 우리 형이 아닌 건 아니겠지?"

그러다 카벨이 스치듯 꺼낸 말에 남자가 경기하듯이 크게 소스라쳤다.

"그럼 우리 형도 아닌 주제에 나한테서 형 소리를 들은 이 죗값을 어떻게 치르려고. 응, 안 그래?"

그리고 마침내 카벨의 푸른 눈동자가 섬뜩한 안광을 발하는 순간,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도주를 감행했다.

"이게 어딜 토끼려고."

"으아악! 죄,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카벨의 손이 남자의 뒷덜미를 잡아채는 것이 먼저였다.

"아주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지? 감히 우리 형을 사칭해? 뒤지고 싶냐? 어쭈, 게다가 이 머리도 가발이네?"

"자, 잠깐!"

카벨은 다시 코앞으로 끌고 온 남자의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환한 금발이 눈앞에 드러났다.

"어디 보자, 금발에 검은 눈을 가진 영식이 아를란타에 누구누구 있더라? 코파니스 가문 형제?

세리자드 가문 차남? 아니면 얼마 전에 제도로 올라왔다는 린델 가문 방계인가 뭔가? 우리 기사단에도 한 명 있는데 설마 그놈은 아닐 테고."

이번에는 카벨의 손이 남자의 황금색 가면 위로 닿았다.

"가, 가면을 억지로 벗기는 건 규칙에 어긋나는······!"

"X발, 그딴 규칙 난 모르거든?"

결국 카벨은 남자의 가면을 무자비하게 벗겨 버렸다.

"쭉정이같이 생긴 게 얻다 대고 남의 형 행세야? 이걸 그냥 확!"

"으악, 사람 살려!"

평소 카벨의 위명을 잘 아는 남자는 그가 자신을 향해 손을 들어 올리자마자 겁에 질려 죽어라 비명을 질러 댔다.

"아, 이 새끼가 아직 때리지도 않았는데 왜 소리는 지르고 지랄······."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그 고성을 듣고 테라스 안으로 누군가가 들어섰다. 카벨은 얼굴을 구기고 방해꾼을 돌아보았다.

반면 카벨에게 멱살을 잡혀 있던 남자는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단번에 얼굴이 환해졌다.

카벨은 몰랐지만 그는 오늘 가면무도회의 관리인이었다.

"도, 도와줘! 이 사람이 날 죽이려고 해!"

오늘의 참석자들과 마찬가지로 얼굴을 검은 가면으로 가린 관리인이 잠시 그들의 모습을 살폈다.

"규칙 위반은 곧바로 퇴장 조치됩니다. 가면을 쓰고 저를 따라와 주시죠."

물론 어디로 봐도 카벨에게 불리한 모양새였다. 카벨은 아까부터 도대체 뭔 놈의 규칙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애초에 아무런 정보도 없이 오늘의 비밀 파티에 입장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지금 자신을 이 파티장에서 쫓아내려고 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더러워졌다. 게다가 아직 이 망할 놈을 한 대도 때리지 못했는데!

"저, 저를 도와주신 거예요!"

그때, 가냘픈 음성이 밤공기를 갈랐다.

테라스 구석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줄도 몰랐던 여자였다.

그녀는 이 상황이 몹시 당황스럽고 불안한 듯이 안절부절못하면서도 카벨을 두둔하며 말했다.

"저 남성분이 저를 억지로 이 테라스에 끌고 와서 곤란했는데 때마침 이분이 도와주셔서······."

그 말에 관리인은 상황을 다시 파악하려는 듯이 세 사람을 차례로 훑다가 이윽고 바닥에 떨어진 가면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러고 보니 저 가면은······ 아까 두 차례 경고를 받으셨던 분이었군요."

"아, 아니······."

"실례했습니다. 이분은 저희가 곧바로 퇴장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결국 퇴장당하는 것은 카벨이 아닌 황금색 가면의 남자가 되었다.

카벨은 아직 한 대도 때리지 못한 남자를 보며 관리인에게 잠깐 뒤로 빠져 있으라고 말하려다가 일단 지금은 그냥 관두기로 했다.

어차피 얼굴도 알고 있으니 나중에 찾아가서 족쳐도 될 일이었다.

카벨은 때마침 눈이 마주친 남자에게 눈을 부라리며 입을 뻐끔거렸다.

넌 나중에 보자, 이 쭉정이 새끼야.

그리고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까지 하자 남자의 얼굴이 대번에 창백해졌다.

그는 관리인이 나서기도 전에 테라스에서 줄행랑을 쳤다.

그 후 관리인도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자신을 부르라는 말을 남기고 테라스를 빠져나갔다.

아씨, 나도 나가야지. 오늘 별 같잖은 놈을 다 봤네. 내일 저놈은 나한테 뒈졌어. 아, 아니다. 내일 바로 찾아가지 말고 한 일주일 정도 피를 말릴까?

카벨은 그렇게 사악한 생각을 하며 막 자리에서 걸음을 떼려고 했다.

털썩!

그때, 그와 함께 테라스에 남아 있던 여자가 다리에 힘이 풀린 듯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죄, 죄송해요. 방금까지 조금 긴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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