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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122화 (122/138)

# 122화.

그 오빠들을 조심해 122화

뭐, 뭐야? 왜 저 두 사람이 여기에 있는 거야?

나는 가면 너머로 두 눈을 흔들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런데 저 두 사람은 여기가 가면무도회라는 자각은 있는 거야? 혹시 얼굴에 가면 하나만 쓰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이마에 대놓고 '카벨 에른스트!' 그리고 '에리히 에른스트!' 하고 이름이라도 써 붙인 것 같은데? 혹시 지금 나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나?

헉, 그러다 문득 카벨의 시선이 내가 서 있는 쪽으로 움직여서 나는 홱 고개를 돌렸다.

으, 으앗, 깜짝이야. 왜 넓고 넓은 연회장에서 하필 내가 있는 쪽을 쳐다보는 거야? 잠깐 눈이 마주친 것 같은데 착각이겠지?

잠시 후 '이쯤 하면 되었겠지' 하고 생각될 때쯤 나는 조심히 다시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카벨은 이제 다른 곳을 향해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휴, 그래도 눈치 빠른 에리히가 아니라 카벨이라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정말 저 두 사람은 여기 왜 온 건지 모르겠다. 음, 설마 카벨과 에리히도 이 파티에 놀러 온 건가?

요즘 귀족들 사이에서 이런 비밀 파티가 유행이라고는 들었지만 설마 저 두 사람까지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기 때문에 놀랐다.

하지만 기분 탓일까? 어쩐지 그들은 홀에 들어섰을 때부터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에리히가 걸음을 옮겨 어떤 은발 여자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확인했다.

"어머, 갑자기 뭐예요?"

"뭐야, 가발이잖아."

여자의 모습을 정면에서 한 차례 위아래로 훑어본 에리히가 더는 볼일이 없다는 듯이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난 기겁했다.

저, 저 자식, 뭐야. 설마 지금 날 찾는 건 아니겠지?

그런데 하필이면 은발 여자를 붙잡고 확인한 게 몹시 수상하고 공교롭잖아? 하지만 아닐 거야. 내가 여기에 있는 걸 저 두 사람이 어떻게 알고?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찜찜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때, 내 시야에 루이제의 모습이 잡혔다.

앗, 잠깐만, 루이제! 지금 네가 가고 있는 곳에는 에리히가 있는데! 그러다 만나면 들킬지도 몰라!

하지만 내 괜한 기우였다. 루이제는 애초에 에리히를 목표로 삼았단 듯이 곧바로 그를 향해 직진했다.

잠시 후 그녀의 손이 에리히의 팔을 붙잡았다. 에리히는 '이건 또 뭐야' 하는 눈빛으로 루이제를 내려다보았다.

잠시 후 그의 얼굴에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그 후 두 사람은 무어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당연하게도 내 귀에는 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에리히가 황당한 얼굴을 한 채로 루이제의 손에 끌려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오호라' 소리를 내고 말았다.

지난번에 에리히네 학술원에 루이제가 찾아갔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뭔가 알쏭달쏭했는데 이건 거의 그런 분위기가 아닌가?

아무래도 에리히를 여기로 부른 게 루이제인 것 같은데?

그렇지 않고서야 에리히가 파티장에 나타나자마자 저렇게 곧바로 찾아가서 낚아챌 수 있었을 리가 없었다.

아무래도 루이제가 나랑 같이 파티에 왔다는 말을 미리 에리히에게 해서 은발 여자를 찾고 있던 모양이고.

그럼 카벨은 그냥 에리히를 따라왔을 가능성이 컸다.

"응? 얘 어디 갔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카벨이 에리히를 찾아 어벙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이 보였다.

에리히는 조금 전에 루이제가 데려갔단다. 그러니까 너도 그 두 사람을 방해하지 말고 그냥 나처럼 적당히 다른 데서 시간을 때우도록 하렴.

사실 다른 때 같으면 내가 카벨을 거두러(?) 갔겠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내 행색이 다소 민망하다 보니 망설임이 생겼다.

하다못해 몸을 가릴 숄이라도 챙겨 왔으면 나았을 텐데 말이지.

나는 행여나 이러다 카벨이 나를 발견하기 전에 슬그머니 자리를 옮겼다.

떠들썩한 홀의 가장 구석진 곳으로 가서 어느 정도 신변의 안전을 확보하자 곧장 안도의 한숨이 입술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후아, 갑자기 아는 얼굴을 봐서 깜짝 놀랐네. 아무래도 시간이 될 때까지 여기에 얌전히 짱 박혀 있어야겠다.

"안녕, 혼자야?"

응? 그런데 갑자기 옆에서 누군가 나한테 말을 걸었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화려한 가면을 쓴 남자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언뜻 봤을 때 왜인지 첫인상이 유진과 닮은 것 같아서 한순간 흠칫했지만 당연히 유진은 아니었다.

뭐야, 다시 보니까 하나도 안 닮았잖아.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게 나 스스로 약간 양심에 찔려서 괜히 착각한 것 같다.

"아니, 혼자 아니야."

나는 남자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관심 없다는 투로 대답했다. 실제로도 나는 이 사람에게 흥미가 없었다.

같이 놀 상대를 찾는 거라면 다른 여자들도 많은데 굳이 벽 쪽에 있는 나한테 온 이유를 모르겠다.

그런데 남자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누구인지 알면 같이 온 사람 말고 나랑 가고 싶어질걸?"

아니, 그런데 왜 계속 반말이야? 이 파티에 온 사람들이 전부 다 이렇게 말을 편하게 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럼 나도 반말해 줄 테다.

"네가 누군데?"

나는 같잖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자 남자가 비스듬히 입꼬리를 틀어 올리며 내게 말했다.

"유진 에른스트."

뭐?

나는 뜻밖의 소리에 놀라 무심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그런 내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남자가 거들먹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 내가 바로 그 에른스트 공작이라고. 황실의 오른팔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아를란타 제일의 남자."

"······."

"놀랐어? 귀엽기는. 하긴, 다른 사람들도 다 같은 반응이더라."

나는 아까 무도회장에 입장하기 전에 루이제가 해주었던 말을 상기했다.

'가끔 다른 사람을 사칭하고 나서는 인간도 있는데, 어차피 다 별 볼 일 없는 놈들이 허세 부리는 거니까 그냥 무시해.'

하지만 정말 이런 사람이 있다니.

나는 이처럼 경박한 인간이 내 앞에서 유진의 흉내를 내는 것이 우스우면서도 황당했다.

그나마 이런 인간이 하는 소리는 누가 들어도 믿지 않을 테니까 그것만큼은 다행인가.

앗, 그러고 보니까 지금 이 사람이 머리에 쓰고 있는 갈색 가발도 그렇고, 옷차림도 그렇고, 묘하게 유진을 따라 한 것 같잖아?

아무래도 아까 내가 이 남자를 처음 봤을 때 언뜻 유진과 비슷하다고 느꼈던 건 단순한 착각이 아닌 듯했다.

아마 내가 하리 에른스트라는 걸 알았다면 이렇게 뻔뻔하게 사기를 치지는 못했을 텐데.

"아, 그래. 관심 없으니까 혼자 놀아."

이런 인간을 더 상대하는 건 바보 같았다. 이건 시간 낭비다.

비록 내가 지금 할 일이 없어서 남아도는 게 시간이긴 하지만 이런 작자에게 줄 시간은 없다!

"잠깐, 지금 날 두고 가려는 거야? 내가 유진 에른스트라니까!"

그런데 막 자리에서 발길을 떼는 나를 남자가 붙잡았다. 나는 어깨를 붙잡는 손길을 냉랭하게 쳐냈다.

"이게 무슨 짓이야? 함부로 건드리지 마. 그리고 내가 관심 없다고 했지? 여기서 쫓겨나고 싶어?"

역시 쭉정이 같은 남자답게 그는 내 말에 파티의 관리인을 떠올린 듯 흠칫하며 손을 놓았다. 나는 그를 등진 채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렇게 그냥 돌아서서 가려니 왠지 좀 짜증이 났다. 그래서 나는 다시 뒤돌아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남자는 뭣도 모르고 반색하며 입을 열었다.

"그럴 줄 알았어. 역시 그냥 한 번 튕겨 본, 으억······!"

콰직!

나는 발을 들어 올려 그의 발등을 세게 밟아주었다.

오늘의 내 의상이 파격적인 만큼 구두 굽 또한 평소의 배로 높은 상태였기 때문에 아마 이렇게 힘을 줘서 밟으면 엄청 아플 거다.

내 예상대로 남자는 나한테 공격받자마자 불똥을 맞은 것처럼 소리를 내지르며 허리를 굽혔다.

"흉내를 내려거든 좀 더 제대로 내든가. 어딜 봐서 당신이 유진 에른스트야? 발끝에도 못 미치는 게. 진짜 웃기지도 않아."

나는 약간 열이 받은 채로 그의 머리통을 내려다보며 쏘아붙였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났다.

참나, 오늘 처음 온 비밀 파티에서 별꼴을 다 보네. 뭐 저딴 인간이 유진인 척을 하고 있담?

더군다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앞에서 말이야. 지뢰를 찾는 능력도 이 정도면 수준급이 아닌가?

정말 귀찮게도, 나는 그 후로도 나한테 추파를 던지는 남자를 몇 명 더 만나야 했다.

그래도 이곳의 규칙이라는 게 꽤 중요하긴 한지, 다들 심하게 껄떡대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래도 역시 귀찮은 건 귀찮은 거라, 나중에는 아예 대답조차 하지 않고 무시한 채 자리를 옮겼다.

아니, 다른 예쁜 여자들도 많은데 왜 하필 나한테 집적거리는지 이유를 모르겠네. 이 중에 내가 눈에 띄게 예뻐서는 아닐 테고.

내가 혼자 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내가 쉬워 보이나?

음, 이상하네. 오늘 루이제의 하녀가 화장을 좀 세게 해줘서, 아까 거울을 확인했을 때 내 모든 도도함과 까칠함을 다 끌어모은 것처럼 보였는데.

크흑, 하긴 내 원래 인상은 다소 약한 편이었으니까 남들이 보기에는 그래 봤자일 수도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나는 홀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누군가를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아까 카벨과 에리히를 발견하고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는 많은 사람 속에서 단번에 내 눈을 비집고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멈칫한 직후, 아까 두 사람을 봤을 때 그랬던 것처럼 뒤돌아 이 자리를 벗어날까 하고 잠깐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그러기 전에 허공에서 눈이 마주쳤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도 수많은 사람 중에서 정확히 나한테 눈길을 고정했다.

그 직후 그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나는 잠깐 낭패 섞인 감정을 느끼다가 곧 포기하고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녕, 멋진 오빠."

거리가 좁혀지자마자 그가 내게 무슨 말을 할 듯 입을 벌렸다. 하지만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혼자 왔어?"

나는 아까 내게 다가왔던 남자들이 그랬듯이 추파를 던지듯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내 앞에 선 남자의 입이 다시 다물렸다.

그는 내 의도를 파악하려는 듯이 잠깐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을 받으며 나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잠시 후 나직한 숨결이 그에게서 흘러나왔다.

"그래, 혼자야."

"흠, 난 일행이 있는데 지금은 떨어졌어."

그는 결국 내 장단에 맞춰 주기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며 입술을 비집고 나오려 하는 웃음을 참았다.

아, 그런데 신기하네. 난 지금 가면으로 얼굴의 절반을 가린 데다 머리에는 가발까지 쓰고

평소랑 다른 옷차림에 화장도 진하게 했는데 어떻게 단번에 날 알아봤지?

"아까 보니까 무도회장을 살피고 있던데. 누구, 따로 만나기로 한 사람이라도 있어?"

나는 나와 마찬가지로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유진을 향해 물었다.

유진이 그런 나를 내려다보며 천천히 입술을 뗐다.

"없다고 하면?"

이렇게 각자의 얼굴을 숨기고 만나 서로 모르는 사람인 척 이야기하고 있으려니, 정말 그와 내가 가면 무도회장에서 처음 만난 남녀라도 된 것 같았다.

나는 유진의 말을 듣고 눈꼬리를 접어 웃었다. 그리고 그의 팔을 느리게 손으로 훑으며 속삭였다.

"그럼 나랑 재미있는 거 하고 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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