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화.
그 오빠들을 조심해 121화
이거 왠지 오늘의 외출을 위해 하루 이틀 준비한 게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고 잠시 후, 나는 루이제의 하녀가 들고 온 드레스를 보고 깜짝 놀라서 입을 벌리고 말았다.
"자, 언니! 빨리 이걸로 갈아입어!"
"잠깐, 진심이야?"
"당연히 완전 진심이지. 자자, 시간 없어! 빨리!"
"루이제······!"
기겁한 내 목소리는 루이제의 등쌀에 떠밀려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하지만 루이제의 충격적인 기행은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
한 시간 후, 나는 내 맞은편에 앉은 루이제를 보고 황망하게 중얼거렸다.
"루이제, 가끔 보면 넌 정말 대범한 것 같아."
좋게 말하면 대범이고, 나쁘게 말하면 대책이 없는 것이었다. 그녀의 과감한 행보에는 나도 모르게 혀를 내두르고 말 지경이었으니까.
"에이, 이 정도로 뭘. 쑥스럽게."
"아니, 칭찬은 아니거든······!"
나는 잔망스러운 루이제의 반응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도대체 루이제는 누구를 닮은 걸까? 내가 알기로 바스티에에는 이렇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의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으, 으음. 왜인지 보면 볼수록 루이제가 카벨을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건 기분 탓일 거야.
"그래도 막상 나오니까 기대되지 않아? 막 두근두근하고 설레지?"
현재 우리는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이었다.
나는 루이제가 내게 입으라고 준 드레스를 보고 놀라고, 그다음으로 그녀가 하녀를 시켜 내게 해준 화장을 보고 기함했다.
이렇게 과감하고 화려하고, 노출 또한 심한 드레스는 처음인 데다 색깔 또한 고상함 대신
어딘가 요사스러운 느낌을 풍기는 붉은빛이 도는 보라색이어서 평소라면 절대 입었을리 없는 의상이었다.
게다가 만만찮게 요망한 느낌을 주는 이 짙은 화장은 또 어떻고.
그렇게 치장한 뒤 우리가 향하고 있는 곳은 귀족들의 비밀스러운 밤 모임 파티였다.
나는 도대체 루이제가 어떻게 이런 파티를 알게 된 것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저 다 아는 방법이 있다며 끝까지 비밀스럽게 웃기만 할 뿐이었다.
루이제 역시 나 못지않게 파격적인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나는 앞으로의 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천진하게 반짝이는 그녀의 눈을 보고 급격히 머리가 아파지는 것을 느꼈다.
때마침 다른 바스티에의 가족들이 모두 약속이 있어 외출해서 다행이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이 꼴을 보고 도대체 뭐라고 했을지······.
잠깐. 그러고 보니 원래 루이제가 나와 함께 이 밤 모임에 참석하려고 했던 날에는 저택에 바스티에 부인이 있었잖아?
설마 그녀가 딸의 밤 모임 참석을 허락해 줬을 리는 없을 것 같은데······.
호, 혹시 그날도 엄마 몰래 나가려고 했던 건가? 그런 거라면 루이제는 정말 당돌한 아가씨였다.
그때 갑자기 날카로운 직감이 나를 스쳐 지나가서,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에게 물었다.
"너 솔직히 말해. 오늘이 처음 아니지?"
"음, 사실 전에 한 번 가 봤어."
"맙소사."
심지어 오늘이 첫 번째 일탈이 아니라는 루이제의 고백에 또 한 번 말문이 막혔다.
지난번에 소꿉친구인 마리안과 함께 파티에 가 봤는데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꼭 나를 데리고 가고 싶었다는 것이다.
사실은 나도 요즘 이런 비밀 파티가 귀족들 사이에서 성행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황손 다이스의 혼인을 맞아 제도로 몰려든 귀족이 많았기 때문에 참석자 또한 매번 늘어나는 추세라고 했다.
물론 신원이 확실한 귀족들이 즐기는 파티이기 때문에 과하게 난잡하거나 질이 나쁜 경우는 없었지만,
그래도 모두가 가면으로 정체를 감추고 있다는 점에서 루이제 혼자 보내기에는 걱정이 되었다.
루이제도 그런 내 마음을 꿰뚫어 봤는지, 오늘 파티에 함께 가지 않으면 자기 혼자서라도 몰래 참석할 것이라고 내게 당차게 선언했다.
그래서 결국 나는 하는 수 없이 지금 그녀와 나란히 마차에 타고 있게 된 것이었다.
달리는 마차 속에서 루이제는 '훗, 계획대로!'라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언니는 날 너무 어리게 보는 경향이 있다니까. 그래 봤자 언니랑 나는 고작 한 살 차이인데."
앗, 그 순간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그래, 루이제와 나는 겨우 한 살 차이였지. 어째서인지 그녀는 늘 나보다 한참 어린 동생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윽, 어쩌면 나는 지난 생의 기억까지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아, 이제 거의 다 왔다. 내리기 전에 얼굴 가리는 거 잊지 말고."
루이제의 말에 나는 미간을 좁히고 무릎 위에 있는 가면을 내려다보았다.
비밀 파티라는 이름에 걸맞게 참석자들은 모두 이런 가면으로 얼굴을 가려야 한다고 했다.
그 밖에도 강제로 다른 사람의 가면을 벗기거나 억지로 정체를 캐내려 하면 안 된다느니,
익명의 힘을 빌려 도가 지나친 행동을 하다가 적발되면 강제 퇴출이라느니 하는 몇몇 규칙이 있다며 루이제가 내게 설명해 주었다.
그녀의 말을 들으니 그래도 꽤 체계가 잘 잡혀 있는 파티인 것 같아서 안심이 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까지 해서 꼭 이런 파티에 참석해야 하나 싶어서 약간 떨떠름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가면 삐뚤어졌어."
그래도 어쨌거나 기왕 여기까지 온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와서 루이제를 설득해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나는 적당히 조금 어울려 주다가 루이제를 데리고 다시 바스티에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녀의 가면을 똑바로 만져 주었다.
그 후 나도 얼굴의 반을 가리는 가면을 썼다.
이런 곳에서 제대로 놀려면 정체를 잘 감춰야 한다며 루이제는 가발까지 준비했다.
나는 그녀의 철저한 준비성에 정말이지 두 손 두 발을 다 들어버렸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혹시 다른 사람들에게 내 정체를 들키는 것은 아닐까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루이제는 괜한 걱정이라며 웃었지만 말이다.
"그 망토는 벗는 게 좋을 텐데?"
"그냥 입고 갈래."
마차에서 내려서자 화려하게 반짝이는 불빛들이 단숨에 시야를 어지럽혔다.
루이제는 마차 안에서 겉옷을 벗고 내린 상태였다.
화려한 금색 가발을 쓰고 쇄골을 드러낸 푸른 드레스를 입은 루이제는 내 생각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성숙해 보였다.
얼굴을 가린 가면이나 짙은 화장 때문일까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루이제가 벌써 언제 이렇게 어른이 되었지?'라는 다소 아련한 생각을 하며 잠깐 멀거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앗, 그런데 잠깐. 이런 생각을 하니까 나 왠지 진짜 늙은 것 같지 않아? 내가 루이제의 엄마나 이모도 아닌데 이런 묘한 감상이라니?
어흑, 이런 건 별로 좋지 않아.
"뭐, 상관은 없지만 지금 언니 엄청 눈에 띄어."
루이제가 나한테 다가와서 속닥거리는 말에 나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곧바로 깨닫고 작게 신음했다.
과연 익명의 자유 때문인지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평소의 품위와 체면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망토로 몸을 꽁꽁 가리고 있는 내가 몹시 눈에 띄는 상황이었다.
결국 나는 옷자락을 여미고 있던 버튼을 풀고 망토를 벗었다. 그러자 대번에 푹 파인 등허리가 허전해졌다.
"괜찮아, 여기서는 이런 게 보편적이니까."
루이제가 나를 독려하듯이 웃었다. 그 말처럼 주변에는 나보다 더 파격적인 차림새를 한 여자들도 종종 보여서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그런데 겨우 두 번째 참석인 것치고 루이제는 엄청 자연스러워 보이는데? 설마 한 번이 아니라 더 많이 와 봤던 것 아니야?
나는 잠깐 의심의 눈으로 루이제를 보다가 이제 와서 그런 것을 캐내 무엇 하나 싶어져서 그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약속했던 것처럼 딱 두 시간만 있다가 가는 거야, 알았지?"
"알았어, 알았어."
루이제가 걱정 말라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후 우리는 화려한 불빛이 반짝이는 가면 무도회장 안으로 들어섰다.
***
하지만 십 분도 안 되어 나는 다시 마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자유분방한 파티의 분위기에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의 헐벗다시피 한 사람들도 그렇거니와, 파티장의 곳곳에는 놀랍게도 노골적인 애정 행각을 보이는 남녀들도 수없이 눈에 띄어서 당황스러웠다.
"이 파티 좀 이상한 것 같아."
"괜찮아, 다들 합의하에 저러는 거야. 억지로 저런 짓을 하면 곧바로 관리인이 와서 내쫓으니까."
하지만 루이제는 태연했다.
호, 혹시 내가 이상한 건가?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러고 노는 게 보편적인 거야?
으앙, 그런데 아무리 가면을 썼다고 해도 그렇지, 동전의 양면처럼 낮의 귀족 사회와 이렇게까지 모습이 달라지다니.
"아까 내가 말해준 규칙은 다 기억하고 있지? 그럼 이제부터는 따로 놀자. 언니도 즐거운 시간 보내."
"잠깐, 루······!"
그런데 내가 주변을 둘러보며 방심한 틈을 타서 루이제가 나를 떼 놓고 잽싸게 걸음을 옮겼다. 나는 무심코 그녀의 이름을 부르려다가 멈칫했다.
지금 우리는 정체를 숨기고 있는 중이니 여기서 이름을 부르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불만스럽게 입을 다물고 루이제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았다.
아, 정말이지. 내 옆에 얌전히 있겠다는 루이제의 말을 믿는 게 아니었는데.
물론 루이제가 내게 주장했듯이 그녀도 이제 충분히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는 나이인 데다 나는 그녀의 보호자도 아니었다.
그러니 이런 파티에서 따로 행동하는 것 정도는 사실 괜찮았지만 아무래도 나는 계속 루이제가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아서 영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윽, 하지만 이것도 결국은 괜한 간섭이려나. 루이제의 말처럼 어쨌거나 표면적으로 나는 그녀와 고작 한 살 차이였으니까.
그래도 역시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어서, 나는 파티장 안을 좀 더 면밀히 관찰했다.
만약 루이제가 있기에 다소 위험한 장소이다 싶으면 어떻게든 그녀를 데리고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생각만큼 찜찜한 파티는 아닌 듯했다.
참석한 사람들이 많은 것치고는 나름대로 관리도 질서정연하게 잘되고 있는 것 같고.
또 애정 행각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도 심하게 얼굴을 붉힐 정도로는 행동하지 않고 있었다.
루이제의 말처럼 다소 지나친 행동을 보이는 손님들은 곧바로 관리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제재받았고 말이다.
가면무도회라고는 했지만 분위기는 자유로워서 사람들은 단순히 술과 이야기를 즐기기도 하고,
아니면 무도회장의 본분에 맞게 홀에 나가 춤을 추거나, 또 가벼운 판돈을 걸고 포커 같은 게임에 참여하기도 했다.
나는 그중 어느 것에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파티장의 구석진 자리로 향했다.
비록 이런 비밀 파티에 참석한 것은 처음이라 신기하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딱히 여기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놀고 싶은 것도 아니었으니까.
"뭐야, 여긴. 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
"맞을걸. 형은 저쪽으로 가서 찾아봐."
하지만 그렇게 걸음을 옮기다 말고 나는 어딘가 익숙한 모습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그 직후 나는 흠칫 놀라 벽에 붙어 섰다.
그들은 파티에 참석한 다른 사람들처럼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그야 당연했다.
그들은 바로 우리 집 둘째와 셋째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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