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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119화 (119/138)

# 119화.

그 오빠들을 조심해 119화

"오빠, 내일 시간 괜찮으면 파티에 같이 갈래?"

"파티 따위······ 난 필요 없어!"

"앗, 잠깐, 카벨 오빠!"

아니, 진짜 왜 저럴까?

내 말을 듣자마자 카벨이 또다시 비운의 주인공 흉내를 내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내일 있는 파티에 템페르토 양도 참석한다고 해서 그냥 한 번 물어본 건데 말이지.

이틀 전에 꽃 시장에 갔다가 그녀를 만났을 때, 옆에 있던 칼루아 공자가 지나가듯 말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카벨이 떠난 자리를 보며 의아하게 미간을 좁혔다. 옆에서 페니와 함께 있던 에리히가 덩달아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형은 또 왜 저래?"

"몰라. 파티에 안 좋은 기억이라도 있나?"

아니면 이틀 전 일의 연장선으로, 파티가 아니라 여자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매일 연무장에서만 사는데 여자를 어디에서 만나겠느냐고 카벨이 자기 입으로 그랬잖아?

혹시 연무장에 찾아오던 영애들하고 무슨 일이 있었나?

"오빠가 왜 저러는지 혹시 들은 거 없어?"

"같이 사는 너도 모르는 걸 학술원에 있는 내가 어떻게 알아?"

그건 그렇지만, 혹시 여동생한테는 말하기 좀 그래도 남동생한테는 말할 수 있는 내용일 수도 있잖아?

"그냥 내버려 두면 괜찮아지겠지."

주말을 맞아 학술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에리히가 나를 보고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오랜만에 에리히를 만난 페니는 신이 나서 헥헥거리며 연신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에리히가 그런 페니를 쓰다듬으며 슬쩍 나를 비웃었다.

"넌 지금까지 같이 보낸 세월이 얼마인데 아직도 형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헛된 기대를 못 버렸어?"

아니, 반대로 말하면 같이 보낸 세월이 얼마인데 넌 아직도 둘째에게 그렇게 야박한 거니?

어흑, 시간이 지나도 우리 집 둘째의 취급이란 너무나 변함이 없는 것.

나는 잠깐 아련한 눈빛으로 에리히와 페니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폭 내쉬었다.

"집에 온 김에 루이제한테 연락 한 번 해줘. 요즘 네 얼굴 보기 힘들다고 섭섭해하더라."

"무슨 소리야? 지난주에도 학술원에서 봤는데."

"뭐? 학술원에서?"

나는 처음 듣는 소식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에리히가 여전히 페니를 어화둥둥하며 투덜거렸다.

"갑자기 찾아와서 얼마나 귀찮게 굴었는지 모른다고."

"그으래?"

요하네스도 진작 졸업해서 이제 루이제가 학술원에 아는 사람은 에리히밖에 없을 텐데.

그런데 굳이 거기까지 따로 찾아갔다는 건······ 뭔가 좀 의미심장하지 않나?

더군다나 바스티에에서 학술원까지는 그렇게 가까운 거리도 아닌데.

"그 표정 뭐야?"

"내 표정이 뭘?"

"이상한 생각하고 있는 얼굴이잖아."

"네 착각이야."

하지만 에리히는 내 말을 믿지 않는 듯이 얼굴을 구겼다.

"난 방에 가 볼 테니까 네가 페니랑 놀아줘."

나는 그런 에리히를 두고 호호 웃으며 계단을 올라갔다.

아무래도 다음에 만나면 루이제를 슬쩍 떠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

다음 날 파티에 갈 준비를 마치고 방에서 나오니 유진이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오늘 좀 공들여 꾸몄는데, 어때? 예뻐?"

나는 그를 두고 자리에서 한 바퀴 빙글 돌아 보였다. 그러면서 웃음 띤 얼굴로 묻자 유진이 나를 따라 작게 웃으면서 가까이 다가왔다.

"응, 항상 예쁘지만 오늘은 특히 더 예쁘네."

관자놀이에 가벼운 입맞춤이 내려앉았다.

사실은 당연히 예쁘다고 말해줄 줄 알고 물어본 거지만, 그래도 역시 유진의 입으로 직접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오빠도 오늘 멋있어."

"그거 기쁜데."

우리는 사이좋게 칭찬을 주고받으며 얼굴을 맞대고 웃다가 방문 앞에서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층계참의 난간에 나른히 몸을 기대고 서 있는 에리히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우리를 발견하고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왜 항상 파티는 늦은 저녁 시간부터 밤까지 열리는 거야? 다들 기운도 좋아."

"에리히, 그렇게 말하니까 너 엄청 늙은 것 같아."

나는 애늙은이 같은 에리히의 말에 얼굴을 찡그리며 웃었다. 그는 난간에 팔을 올려 거기에 고개를 괸 채 잠깐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슨 할 말이 있나 싶었지만 그는 입을 열지 않고 가만히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래서 나도 의아하게 그를 응시했다.

잠시 후, 에리히가 나한테서 시선을 떼며 툭 내뱉듯이 말했다.

"잘 다녀와."

"다녀올게. 페니랑 같이 집 잘 보고 있어."

언제 이상한 행동을 보였냐는 듯이 여상한 인사말이 이어졌다.

그래서 나도 그냥 그에게 마주 인사한 뒤 유진과 함께 자리에 멈추었던 걸음을 뗐다.

여전히 계단 난간에 기대 있는 에리히를 막 지나치기 직전에 유진이 손을 뻗어 말없이 그의 뒷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그러자 에리히가 잠깐 움찔하다가 이내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혹시 나만 모르는 뭔가가 두 사람 사이에 있나 싶어서 알쏭달쏭해졌으나 이후로 그들 사이에 오가는 다른 대화나 행동은 없었다.

그래서 나도 그저 혼자서 고개를 갸웃하다가 유진과 함께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

이번 파티에는 요하네스와 루이제도, 또 결혼식이 얼마 안 남은 로자벨라도 참석하지 않아 다소 허전했다.

그래도 인사를 나눌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듯 많았기 때문에 나는 유진과 함께 온갖 사람을 만났다.

그러다 잠깐 떨어져 각자 다른 사람들을 상대하던 어느 순간이었다.

"에른스트 양!"

갑자기 옆에서 나를 부르는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앗, 이렇게 나를 반가워할 사람이 있었던가? 누구지?

나는 의아함을 느끼며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목소리가 상당히 커서 나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다 같이 옆으로 시선을 움직였다.

곧 사람들을 헤치고 내게 다가온 사람은 얼마 전 꽃시장에서 만났던 테오도르 칼루아였다. 그는 내가 퍽 반가운지 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온 그를 향해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칼루아 공자. 템페르토 양과 함께 오셨나요?"

"네, 지금은 다른 영애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어서 잠시 떨어졌지만요."

데이지 템페르토와 테오도르 칼루아는 곧 있을 황손 다이스의 성혼을 축하하기 위해 제도로 올라왔다고 했다.

물론 그들이 다이스나 로자벨라와 달리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황손의 결혼은 확실히 아를란타인 모두가 축복할 만한 일이었다.

그래서 아마 시일이 조금 더 지나면 제도는 각 지역에서 올라온 사람들로 지금보다 더 북적이게 될 것이었다.

그러니 두 사람이 다이스의 결혼식 때문에 먼 길을 떠나온 것은 특별히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이 제도로 올라온 데에는 내게 굳이 밝히지 않은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데이지 템페르토의 혼처를 찾기 위해서였다.

내 기억에 의하면 템페르토 가문은 자작의 계속된 사업 실패로 빚더미에 올라 재정 사정이 무척 좋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템페르토 자작가에서 딸을 이용해 한 밑천 잡아 볼 생각을 하고 그녀를 떠나보낸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들의 고향에는 이미 템페르토 가문이 몰락 직전이라는 소문이 자자하게 퍼져 있어서

데이지에게 도무지 괜찮은 혼담이 들어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성격이 다소 소심하고 수줍음이 많아 낯을 심하게 가리기는 해도, 데이지 템페르토에게는 사랑받고 자란 사람 특유의 느낌이 났다.

카벨과의 결혼식 날 보았던 그녀의 부모님은 실제로도 딸을 많이 아끼는 듯이 보였다.

그러니 그런 딸에게 조금이라도 괜찮은 사람을 짝지어주고 싶어 큰마음을 먹고 제도로 보냈을 터다.

그 정성이 대단하여 그나마 교류가 있던 육촌 테오도르 칼루아에게 동행을 부탁했고, 지금은 또 이렇게 나란히 파티에 참석하기에 이른 것이다.

물론 지난 생에서는 이 시기에 황손 다이스의 결혼이란 큰 사건이 없었으니 그들이 제도로 올라온 계기가 지금과는 달랐다.

그러나 두 사람이 이렇게 나란히 제도로 올라온 것 자체는 내 기억과 동일했다.

그래서 나도 예전에 테오도르 칼루아를 몇 번 본 적이 있어 낯이 익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와 나는 지난 생에 이렇다 할 교류가 없었다.

게다가 데이지와 카벨이 결혼한 이후 테오도르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기에 나도 지금껏 그를 잊고 지냈다.

하지만 며칠 전 우연히 바람에 날아가는 숄을 붙잡아주었던 일이 새로운 계기가 되었던 것일까?

테오도르 칼루아가 나를 향해 반갑게 다가와 인사한 것으로도 모자라 노골적인 호감을 드러내며 말했다.

"실은 오늘 파티에서 에른스트 양을 다시 만나 뵐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지난 며칠간 제멋대로 실없는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바람이 이루어져 무척 기쁘네요."

단정한 금발 머리 아래로 수줍음을 품은 검은 눈동자가 도드라졌다.

나를 향한 그 표정이나 눈빛은, 영락없이 사모하는 여인에게 용기를 내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청년의 것으로 보였다.

나는 그의 눈을 마주한 직후 한순간 말문이 막히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테오도르 칼루아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일에 서툰 것인지,

아니면 굳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숨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인지,

당황스러울 정도로 솔직한 얼굴로 나에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문제는,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어머나?"

조금 전까지 나와 담소를 나누던 귀부인과 영애들이 대번에 호기심을 표하며 두 눈을 빛냈다. 그들의 반응을 보고 나는 다소 난감해졌다.

"에른스트 양과 칼루아 공자님······ 이라고 하셨나요? 일전에 따로 만나신 적이 있나 보네요."

"아까 템페르토 양과 함께 계실 때 분명 제도로 올라온 지 며칠 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요."

그들은 나와 테오도르 칼루아가 알게 된 경위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게다가 사교계에 어울리지 않게 풋풋한 모습을 보이는 그에게 흥미가 동하기도 한 것 같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들에게 재미있는 건,

이 순박한 청년이 가뜩이나 보는 눈과 듣는 귀가 많은 파티장에서 나에게 노골적인 이성적 호감을 표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게······ 일전에 우연히 데이지와 함께 외출했다가 밖에서······."

테오도르는 갑자기 자신에게 몰린 사람들의 관심에 당황한 듯했다. 그는 그제야 주위의 시선을 느낀 것처럼 다소 뻣뻣하게 굳어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듯해서 내가 도와줘야 할 것 같았다.

"하리."

하지만 내가 입을 열기 전에 어느덧 가까이 다가온 유진이 먼저 나를 불렀다. 어깨에 닿는 손길에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올려다보았다.

"오빠."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반갑게 유진을 향해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에른스트 공작님."

"그렇지 않아도 언제 인사를 나눌 수 있을까 기다리던 참이랍니다."

그런 우리를 동그랗게 뜬 눈으로 바라보던 테오도르 칼루아가 별안간 화색이 도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 에른스트 양의 오라버니 되시나요? 어쩐지, 많이 닮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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