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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117화 (117/138)

# 117화.

그 오빠들을 조심해 117화

아무래도 내가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냥 잠깐 눈만 감았다 뜬 것 같은데 언제 이렇게 밖이 깜깜해졌지?

"지금 몇 시야?"

"10시 반. 피곤할 텐데 침대에 제대로 누워서 자."

눈을 뜬 나를 보고 유진이 내게서 손을 거두었다. 소파에 누워 잠든 나를 그가 침대로 옮겨 주려고 했던 것 같았다.

그나저나 10시 반이라니. 그럼 벌써 두 시간은 지났잖아? 으윽, 그럼 그냥 깜빡 존 수준이 아니라 아예 푹 잔 거네.

나는 뻑뻑한 눈을 비비며 내 앞에 서 있는 유진을 올려다보았다.

유진의 행색을 보아하니 지금 막 저택으로 돌아온 참인 것 같았다.

그가 손을 뻗어 헝클어진 내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봄이라고 해도 밤에는 제법 쌀쌀했기 때문에 이마에 닿은 그의 손은 약간 서늘했다.

나도 모르게 한순간 몸을 작게 움찔하자 유진이 곧바로 내게서 손을 거두었다.

"오빠 손 차가워."

"미안."

하지만 이번에는 그의 손을 내가 먼저 붙잡아 당겼다.

물론 유진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제자리에서 버틸 수 있었을 테지만, 그래도 그는 내가 원하는 대로 잠자코 가까이 끌려와 주었다.

하지만 그런 유진도 설마 내가 자신을 덥석 끌어안아버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다가온 유진의 목에 그대로 팔을 감아 끌어당기자 어쩔 수 없이 그가 내 위로 몸을 허물어뜨렸다.

유진이 밖에서 묻혀 온 서늘한 공기도 같이 내 품에 안겼다.

"하리······."

"조금만 이러고 있자."

내 행동이 조금 갑작스러웠는지 맞닿은 몸이 경직되어 있는 것이 느껴져서 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그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하지만 그런 내 노력이 무색하게도 유진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차갑다며."

"싫다고는 안 했는데?"

아, 혹시 자기 몸이 차가워서 나한테 안 닿으려고 그러는 건가?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렇게 그를 끌어안고 있는 동안 기분이 좋아졌다.

나 때문에 유진이 따뜻해지고 있잖아.

그것만으로도 몹시 배부른 기분이 들어서 나는 유진을 끌어안은 채로 후후 웃었다.

그러자 유진이 내 숨이 닿은 목이 간지럽다는 듯이 작게 몸을 뒤척였다.

물론 나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팔에 더욱 힘을 주어서 유진을 세게 껴안았다.

내 품 안에 있는 유진의 고개가 살짝 옆으로 비틀어졌다. 그 직후 그의 입에서 나직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혼자서 술 마셨구나."

아, 테이블 위에 있는 술잔하고 술병을 이제 봤나 보다.

유진은 지금의 내 행동이 술에 취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어차피 내가 마신 건 고작해야 와인 한 잔이 전부였기 때문에 그런 생각은 오해였다.

그래도 유진이 포기한 듯이 나한테 안긴 몸에 힘을 풀어서 그건 마음에 들었다.

"오늘 벨론티아와 바스티에에 다녀왔지?"

"응."

"좋은 시간 보내고 왔어?"

"그럼, 언제나처럼 즐거운 시간이었지."

우리는 소파 위에서 몸을 겹친 채 소소한 대화를 나누었다.

로자벨라의 웨딩드레스가 아주 예뻤다는 것과 바스티에 부인과 함께 차를 마신 일,

그리고 루이제의 피아노 실력이 아주 많이 늘었다는 이야기 등.

유진도 오늘 황궁에서 다이스를 만난 일과 로웬그린 씨가 요즘 맡게 된 어린 조카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사실 등을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오늘 오래 외출해서 피곤할 텐데 그만 자."

그러다가 유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시간은 금세 11시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 너무 평온하고 따뜻해서 어쩐지 움직이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유진의 목에 얼굴을 파묻은 채 조금 고집스럽게 웅얼거렸다.

"그냥 이대로 잘까?"

이렇게 꼼짝도 하기 싫은 걸 보니 아까 돌아오자마자 씻고 잘 준비를 하길 잘한 것 같았다.

"그냥 여기서 이러고 자자."

그 순간, 어째서인지 유진이 잠깐 몸을 움칫했다.

"그래······? 괜찮겠어?"

지금까지 온순하게 내게 몸을 맡기고 있던 유진이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다음 순간 등허리를 매만지는 그의 은근한 손길이 느껴져 나는 무의식중에 움찔했다.

으, 응······? 갑자기 뭐지?

노곤함에 젖어 멍했던 머릿속에 갑자기 반짝 불이 켜졌다.

유진이 자신의 목을 감싸고 있던 내 팔을 잡아 내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 직후 아주 가까이에서 눈이 마주쳤다.

"지금 이 방에는 우리 둘 밖에 없고. 마침 시간은 늦은 밤이고."

그가 한 마디씩 내뱉을 때마다 내 얼굴에 간지러운 숨결이 닿았다. 내 눈을 마주하고 있던 유진의 눈동자가 뒤이어 아래로 미끄러졌다.

"게다가 넌 잠옷 차림이지."

앗······.

유진의 말이 맞았다. 아까 저택에 돌아와서 씻은 후 나는 곧바로 옷을 갈아입은 상태였다.

이 얇은 실크 잠옷은 촉감이 특히 부드러워 내가 애용하는 것이었는데, 다른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에는 다소 부적절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몸의 곡선이 거의 그대로 드러나는, 거의 속옷 같은 잠옷이었으니까.

그래서 이제까지 잠옷 차림을 하고 잠깐이라도 방 밖으로 나갈 일이 있을 때는 꼭 이 위에 무언가를 걸치고 나가곤 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내 방에서 혼자 술을 마시다가 소파 위에서 잠든 상황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지금 내가 입고 있는 것은 이 얇은 잠옷 한 장이 전부였다.

그제야 나는 조금 전 내가 유진을 끌어안았을 때 그가 굳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런데 그걸로도 모자라서 무방비하게 같이 자자는 권유까지 하는 너를······."

유진의 입에서 조용히 흘러나온 음성이 귓전에 울려 퍼졌다.

"그냥 두고 갈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롭지가 않은데, 내가."

정면에서 마주한 눈빛에 어쩐지 숨을 크게 쉴 수가 없었다. 귓가에 번진 나직한 속삭임에 약간 목이 마른 느낌이 들었다.

"그게······."

"물론 넌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니겠지만."

내 입에서 나올 변명이 무엇인지 안다는 듯이 유진이 앞질러 말했다.

"모른 척 내 멋대로 오해하고 싶다고 하면, 넌 어떻게 할 거야?"

나를 내려다보는 그의 검은 눈동자가 더없이 고요했다.

유진과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연인 관계가 된 지도 시간이 제법 지났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처럼 이런 묘한 분위기가 조성된 것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물론 그동안은 유진이 늘 나를 배려해 중간에 멈춰 주었지만, 실제로 상당히 아슬아슬한 상황까지 간 적도 있었다.

그러니 이처럼 단순히 몸을 맞대고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지금은 사실 전혀 긴장할 필요가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유진의 눈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어쩐지 가슴이 서서히 불규칙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직감했기 때문이다.

이대로 무언가를 시작한다면 이번에는 유진이 절대로 먼저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나 역시도 그런 그를 거부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니까······.

"형! 하리야! 나 왔어!"

그러니 어떤 의미로는 때마침 카벨이 저택으로 돌아온 것이 다행인 일일지도 몰랐다.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꽉 닫힌 문 너머로도 가감 없이 전해져 왔다.

예전에 한 번 갑자기 들이닥쳐 유진과 내가 같이 손을 붙잡고 있는 모습을 본 후로 카벨은 이런 식으로 자신의 등장을 요란하게 알리곤 했다.

유진의 입에서 야트막한 숨이 흘러나왔다.

그 후 천천히 이마 위로 눌러 찍히는 입술에 나는 무의식중에 눈을 감았다.

그러나 유진은 내게 짧게 입을 맞춘 뒤 여운을 남기지 않고 떨어져 나갔다.

다시금 눈을 뜨자 어렴풋이 미소 짓고 있는 유진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잘 자."

나직한 인사를 남긴 뒤 그가 내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텅 빈 품에 약간 서늘한 공기가 밀려들었다.

나는 유진이 문을 나설 때까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어, 형. 아직 외출복 차림인 거 보니까 금방 왔나 보네? 하리는?"

"지금 자. 조용히 쉴 수 있게 목소리 좀 낮춰."

"헉, 알겠어. 하리가 오늘 바스티에에 다녀온다고 했던가? 피곤했나 보네."

밖에서 두런두런하게 들려오던 목소리가 서서히 멀어졌다.

나는 소리 낮춘 음성과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뒤로도 한동안 소파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그리고 복도에 있는 괘종시계의 종이 12번 울린 후에야 멍하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나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은 채 멍청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금방 잠들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심장이 아직도 자신의 존재감을 주장하며 두근두근 뛰고 있었으니까.

다행이다······ 마침 시기 좋게 카벨이 와 줘서 다행이야.

좀 갑작스러웠는데, 적어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은 조금 더 생긴······.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나는 일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만 참지 못해 이불 위에서 방방 몸부림을 치고 말았다.

잠깐만, 마음의 준비라니? 마음의 준비라니······?! 마음의 준비는 무슨 놈의 마음의 준비?

나는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 손으로 마구 베개를 두드렸다.

얼굴뿐 아니라 귀까지 전부 뜨끈뜨끈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쉽게 잠들 수 없을 것 같은 밤이었다.

***

"냠냠냠. 응? 너 얼굴이 왜 그래?"

다음 날 아침, 카벨이 식탁에 있는 빵을 주워 들어서 열심히 씹어 먹다 말고 나를 향해 물었다.

막 식당 안으로 들어서는 나를 보고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 얼굴이 왜?"

"거울 안 봤어? 날밤 깐 것처럼 칙칙하잖아."

큭, 둘째야. 그 표현은 너무 적나라하지 않니?

물론 나도 방에서 나오기 전에 거울을 봤으니 내 얼굴이 다소 초췌하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원래 그런 건 모르는 척 배려해 주는 게 신사다운 건데 말이야!

하기야 그 대상이 카벨인 만큼 애초에 그런 걸 기대하면 안 되는 것이긴 했다.

"너 어제 일찍 자지 않았어? 집에 오니까 넌 벌써 자고 있다고 형이 그랬는데."

자긴 뭘 자, 결국 네 말처럼 날밤 깠는데.

하지만 그런 말을 굳이 내 입으로 하기는 좀 뭐했다.

"그냥 피로가 좀 덜 풀려서 그래."

"그럼 고기 먹어! 피곤한 데는 고기가 최고야!"

카벨은 피곤하다는 내 말에 '고기 만병통치설'을 주장하며 큰 소리로 주방장을 불렀다. 당연히 나는 그런 그를 말렸다.

내가 카벨도 아니고, 아침 댓바람부터 고기를 먹었다가는 속이 더부룩해질 것이 분명했다.

"오빠야말로 좀 더 제대로 식사해야지. 왜 앉지도 않고 그렇게 서서 먹어?"

"나 오늘 좀 빨리 나가야 돼서."

오늘 기사단에서 아침 일찍부터 무슨 일이 있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자리에 선 채로 우적우적 빵이나 씹어 먹고 있다니.

심지어 카벨은 먹던 빵을 제대로 다 해치우지도 않고 급히 몸을 움직였다.

"나 그엄 아여올게(나 그럼 다녀올게)!"

"벌써?"

정말 급하긴 급한지, 카벨은 빵 하나를 입에 물고 한 손에는 사과 하나를,

다른 손에는 기사단의 제복 윗도리를 든 채로 급히 식당을 빠져나가려 했다.

"카벨, 지금 나가?"

그때, 막 식당 안으로 들어서던 유진과 카벨이 마주쳤다.

나는 어젯밤 이후로 처음 만나는 유진을 보며 나도 모르게 흠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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