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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112화 (112/138)

# 112

그 오빠들을 조심해 112화

그제야 주변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짐승이 아닌 사람들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멀리서 발포된 총성이 숲속에 울려 퍼졌다.

다시 한번 익숙한 목소리가 내 이름을 소리쳐 불렀다.

유진에게 내가 여기에 있다고 알려 줘야 하는데. 어서 일어나 그를 만나러 가야 하는데.

하지만 꽉 막힌 목에서는 아무 소리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나무에 기대어 주저앉아 있던 다리도 힘이 풀린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혹시 이대로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가 버리면 어떡하지?

그러나 유진은 바로 다음 순간 마법처럼 내 눈앞에 나타났다.

거의 무릎까지 올라오는 거친 풀을 헤집고 나타난 유진이 나무 둥치 뒤에 숨어 있던 나를 찾아냈다.

그리고 허공에서 눈이 마주친 순간, 마치 숨이 멎은 것 같은 표정을 짓는데······.

"하리······."

누군가 목을 조르고 있는 것처럼 거칠게 가라앉은 음성이 내 귀에 흘러들었다.

나는 색색 숨을 몰아쉬며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현실감이 들지 않아서 혹시 이게 꿈이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을 파고들었다.

마침내 성큼 다가온 유진이 내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는 피투성이가 된 나한테 망설임 없이 손을 댄 것 치고는 무척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나를 만졌다.

마치 상처 입은 동물에게 손을 뻗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한 몸짓이었다.

나는 내게 닿은 유진의 손이 떨리고 있는 것을 깨닫고 겨우 소리를 쥐어짜 작게 그를 불렀다.

"유진 오빠."

그제야 망연히 얼어붙어 있던 유진의 얼굴이 변했다.

다음 순간 그는 자신의 옷과 몸에 피가 묻는 것도 개의치 않고 그대로 나를 으스러지게 끌어안았다. 나 못지않게 흐트러진 숨소리가 귓가에 번졌다.

단단한 팔이 내 몸을 감싸고, 여전히 작게 떨리는 손이 내 등허리를 쓸어내렸다. 마치 내가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듯한 손길이었다.

"하리, 하리······."

애간장이 녹을 정도로 절박한 목소리가 내 이름을 몇 번이나 반복해 불렀다.

"이제 괜찮아."

쿵쾅거리며 뛰는 심장이 누구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왔으니까 이제는 괜찮아."

유진은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이 그렇게 내 귓가에 쉼 없이 속삭여 주었다.

그와 맞닿은 곳에 따뜻한 온기가 스몄다. 그렇게 안겨 있는 동안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던 몸에서 서서히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 놔도 돼."

유진의 손이 내 손을 감싼 것은 잠시 후였다.

나는 그제야 아직도 내가 뼈마디가 불거질 정도로 세게 총을 쥐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진이 조심스러운 손길로 굳은 내 손을 펼쳤다. 얼마나 세게 힘을 주고 있었는지, 손가락이 다 얼얼할 정도였다.

나는 여전히 조금 멍한 기분으로 눈앞에 있는 그를 바라보다가 무의식중에 입을 열었다.

"나 잘했어······?"

다소 뜬금없다고도 할 수 있는 내 자그마한 물음에 손에서 총을 빼내 가던 유진이 멈칫했다.

다시 한번 허공에서 눈이 마주쳤다. 곧 유진이 무언가를 억누르듯이 잠깐 이를 악문 뒤, 입을 열었다.

"그래."

그의 손이 내 손을 아프도록 꽉 움켜잡았다.

"잘했어. 충분히, 넘치도록 잘해 줬어."

몇 번이고 반복해 속삭이는 유진의 말을 듣는 동안 손에서 천천히 힘이 풀렸다.

"정말 잘 버텨 냈어, 하리."

총을 완전히 놓고 나자 그제야 현실감이 들면서 가슴이 아까와는 다른 박자로 뛰기 시작했다.

"그러니 이제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뒷일은 나한테 맡겨."

단지 유진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세상 그 어디보다 안전한 장소가 된 것 같았다.

저 멀리서 우리를 발견하고 달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사이에는 에리히와 에단도 속해 있었다.

나는 유진이 나를 안아 드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때까지 겨우 붙잡고 있던 의식의 끈을 비로소 완전히 놓아버렸다.

32. 그 오빠들과 그녀를 조심해!

"배고파? 죽 가져다줄까?"

"이제 죽 질렸어. 난 고기가 먹고 싶은데."

"소화가 잘되는 걸 먹어야지!"

"아니, 그러니까 난 병자가 아니라고······."

오늘도 시작된 카벨의 호들갑에 나는 차게 식어서 말했다. 하지만 역시 녀석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뭐? 지금 물이 마시고 싶다고? 내가 떠 줄게!"

아니, 그런 말 안 했어.

기다렸다는 듯이 부리나케 발을 놀린 카벨이 테이블 위에 있는 물병을 들어 컵에 콸콸 들이부었다.

그러다가 물을 엎질러서 그것을 닦는다고 또다시 수선을 피우는 등, 보통 소란이 아니었다.

뭐, 그런 둘째 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었더니 어째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비단 우리 집 둘째뿐만이 아니라 첫째와 셋째 모두 마찬가지였다.

사냥제에서의 일 이후 다들 어찌나 살뜰히 내 수발을 들던지. 나를 금이야 옥이야 하며 바람 불면 날아갈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에 조금 멋쩍어질 정도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은 나를 너무 심각한 병자 취급했다! 물론 그날의 일로 다소의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도 사실이고 부상을 입은 것도 맞지만······.

그래도 저렇게 과보호하면서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게 할 필요까지는 없는데 말이야.

아무래도 그들은 사냥터에서의 내 몰골을 보고 심하게 놀란 것 같았다. 하긴 그때 내 꼴이 좀 지독하기는 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피에 흠뻑 젖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막상 그중에 내 피는 별로 많지 않았다.

가장 큰 상처는 짐승의 발톱에 할퀴어진 어깨의 상처였고, 그 밖에는 구둣발에 밟힌 손등이나 접질린 발목, 또 자잘하게 긁힌 자국이 전부였으니까.

위험한 맹수가 득실거리는 북 구역을 혼자 헤매고 다녔던 것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멀쩡한 상태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형, 시끄럽게 굴지 마. 하리에게는 안정이 필요하다는 거 잊었어?"

마찬가지로 내 옆을 지키고 있던 에리히가 카벨을 힐책했다.

"그렇게 뭐라도 하고 싶으면 형 옆에 있는 창문이라도 닫아. 가뜩이나 심신이 쇠약해진 애가 감기라도 걸리면 어떡할 거야?"

"앗, 그래! 네 말이 맞아!"

하지만 알고 보면 이놈이 한술 더 떴다. 나 참, 무슨 '이불 밖은 위험해!'도 아니고.

"이 날씨에 창문 좀 열었다고 감기에 걸릴 리가 없잖아."

내가 투덜거렸으나 카벨과 에리히, 둘 다 내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카벨은 워낙 호들갑을 떠는 구석이 있으니 그렇다 쳐도 에리히까지 이러는 것은 솔직히 특이한 일이었다.

게다가 평소에 사냥도 피도 싫어하던 에리히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 숲까지 직접 나를 찾으러 왔던 것을 생각하면······.

그래서 나도 어쩔 수 없이 그들이 원하는 대로 꼼짝 않고 방에 틀어박혀 수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그날 점심에도 죽을 먹어야 했다.

물론 온갖 몸에 좋은 재료는 다 쓸어 넣은 보양식 죽이었고 주방장이 총력을 기울여 만들어 맛도 있었지만······.

크흑, 그래도 나는 고기가 먹고 싶다!

저 둘의 등쌀에 밀려 좀 더 강력히 주장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었다. 오늘 저녁에는 기필코 고기를 섭취하고야 말겠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눈물에 젖은 죽을 먹었다.

***

"하리."

"유진 오빠, 잘 다녀왔어?"

해가 질 무렵 귀가한 유진은 여느 때처럼 곧장 하리의 방부터 찾았다. 하리는 침대에 앉아 그런 그를 맞아주었다.

다른 때 같으면 아마 그녀가 현관 앞까지 마중을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삼 형제 전부 그녀가 방문만 열어도 신경을 예민하게 곤두세웠기 때문에 하리도 두 손 두 발을 다 든 상태였다.

하리는 그것을 조금 답답하게 여기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결국은 못 이긴 듯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잘 쉬고 있었어?"

유진은 하리에게 다가가 그녀가 있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조금 전까지 누워 있었는지 하리의 머리카락이 약간 헝클어져 있었다.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정리해 주며 물었다.

그러자 하리가 그의 손길을 받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잘 쉬어서 문제지."

그 투덜거림에 유진이 여트막하게 웃었다.

사실 그녀를 과보호하는 것은 유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냥제 이후, 유진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야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한시도 하리의 옆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 그가 그녀를 다른 형제들에게 맡기고 외출하게 된 것은 이틀 전부터였다.

"날짜는 정해졌어?"

하리가 잠깐 유진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지나가듯이 물었다. 그 말을 듣고 유진은 하리의 머리에서 천천히 손을 뗐다.

그녀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듯 물끄러미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유진이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벌렸다.

"난 네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잇따른 그의 음성은 조용했지만 그 무게만큼은 묵직했다. 그의 눈동자 역시 목소리 못지않게 가라앉아 있었다.

하리는 차가운 빛을 발하는 유진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녀가 손을 들어 그런 그의 얼굴을 매만졌다.

"네가 그 여자와 만나기를 원하지 않아."

"내가 가야 해."

달래듯이 조곤조곤하게 울리는 음성에도 유진의 얼굴에 어린 한기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아직도 지난 사냥제 때의 일을 떠올리면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그가 없는 사이에 그녀는 납치당해, 맹수들이 득실거리는 그 숲에 혼자 남겨졌다.

수색대와 함께 미친 듯이 숲을 헤매다가 가까스로 발견한 하리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유진은 살면서 그때처럼 강렬한 공포를 느꼈던 적이 없었다. 다행히 그 피는 대부분 하리의 것이 아니었지만, 다시 생각해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정도로 참혹한 모습이었다.

하리에게 약물을 넣은 차를 내온 것은 벨론티아의 하녀였다.

그녀는 유진에게 안겨서 숲을 빠져나온 피투성이의 하리를 보고 비정상적일 정도로 몸을 덜덜 떨어 댔다.

그것을 수상하게 여긴 다이스가 추궁하자 그녀는 처음에 발뺌하다가, 황실 기만죄로 죽고 싶으냐는 협박에 결국 진실을 실토했다.

집안의 빚 때문에 라벤더 코르디스에게 돈을 받고 하리가 마실 차에 약을 넣었긴 하지만 자신은 그 약이 무엇인지 잘 몰랐고, 또 설마 라벤더가 하리를 죽이려 할지는 몰랐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로자벨라 벨론티아의 얼굴도 새하얗게 질렸다.

하녀의 처분은 벨론티아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그 후 다른 사용인들을 추궁하자 라벤더 코르디스의 동선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뻔뻔스럽게도 사냥터에서 유유히 빠져나가 코르디스의 저택으로 돌아가 있었다.

유진은 직접 코르디스의 저택으로 찾아가 그런 라벤더의 멱살을 잡고 방 밖으로 끌어냈다.

코르디스의 사람들은 느닷없이 저택 안에 들이닥쳐 무도한 짓을 벌이는 그를 보고 몹시 경악한 눈치였다.

하지만 오금이 저릴 정도로 살벌한 유진의 분위기에 차마 그런 그를 말리지도 못 하고 혼비백산하기만 했다.

라벤더 코르디스는 설마 그가 자신에게 이럴 줄 몰랐다는 듯이 충격 어린 눈으로 그를 보았는데, 유진으로서는 실로 웃기지도 않은 일이었다.

그녀는 모든 것은 로자벨라 벨론티아의 사주로 일어난 일임이 분명하며 자신은 그 누명을 쓴 것뿐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하리 에른스트의 죽음과 자신은 조금도 관련이 없다고 계속해서 무고함을 주장했다.

마치 하리가 그 숲에서 죽은 것을 확신하는 듯한 어투여서, 당연하게도 유진의 분노는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었다.

그 자리에서 라벤더 코르디스를 죽이지 않은 것은 엄청난 인내심을 발휘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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