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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109화 (109/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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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 109화

나는 호호호 웃는 마조람 영애를 따라 미소를 짓다가,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무의식적으로 멈칫했다.

"에른스트 경은 오늘 사냥제에 참석하지 않으셨죠? 경의 취미가 사냥이라고 해서 오늘 만나 뵐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쉽네요."

사실 마조람 영애는 지난 신년제 때 자신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카벨에게 전해 달라고 했던 사람이었다.

그 후에도 그녀는 우리 집 둘째를 향해 꾸준한 관심을 내비쳤으나 결국은 지난달에 다른 공자와 약혼을 하게 되었다.

으음, 지난번에 마조람 영애가 해맑게 웃는 얼굴로 나한테 뭐라고 했더라.

대충 '카벨을 좋아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내 남자로 삼고 싶은 경우는 아니고, 그냥 지금처럼 가끔 눈요기를 하면서 안구 정화를 하면 족하다'라는 식의 말을 하며 지금처럼 발랄하게 호호호 웃었던 것 같은데. 쿨럭.

나는 마조람 영애와 헤어져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침 카벨의 이야기를 하면서 잠깐 잊고 있던 사람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바로 라벤더 코르디스였다.

하지만 역시 그녀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어제 들었던 마음에 걸리는 소문을 다시금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것은 바로 얼마 전에 있던 가든 파티 때, 카벨이 라벤더 코르디스의 팔을 붙잡고 어디론가 끌고 갔다는 소문이었다.

가든 파티의 날짜를 들어 보니 카벨이 갑자기 외출했다가 후련한 얼굴로 돌아온 날과 일치했다.

게다가 그날 카벨은 어째서인지 나한테 이상한 소리를 하지 않았던가?

더군다나 그때 카벨이 만난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라벤더 코르디스라는 점에 마음이 다소 불안했다.

하지만 듣기로 라벤더 코르디스는 그 이후 자택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다고 하니, 오늘 사냥제 때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 어떤 의미로는 당연할지도 몰랐다. 무언가 심적인 충격을 받은 것 같다고 하던데······.

그 이유가 카벨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도대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자세한 정황을 알 수가 없었다.

오늘 집으로 돌아가면 슬쩍 카벨에게 물어볼까?

"하리, 어서 와요."

그런 생각을 하며 중앙 천막으로 들어서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한가운데에는 로자벨라가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원래도 사교계의 중심에 있던 로자벨라는 황손 다이스와 약혼한 이후 전보다 더한 관심을 받게 되었다.

게다가 한동안 저택 밖으로 잘 나오지 않던 그녀가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내서 그런지 그녀 주위에는 사람들이 벌떼같이 몰려들어 있었다.

그리고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나 역시 에른스트의 일원으로서 어디를 가나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끌곤 하지 않았던가? 나와 로자벨라의 만남에 주위의 시선이 순식간에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로자벨라. 지난번 화랑에서 뵙고 처음이네요."

"네, 오늘 하리 양이 사냥제에 참석할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 만나서 반가워요."

그녀와 나의 화기애애한 대화에 주변에서 작게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풍문으로만 듣던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해서 그런 것 같았다.

지난번 의상실에서의 우연한 만남 이후 나는 꽤 정기적으로 로자벨라와의 만남을 가져 왔다.

사실 로자벨라가 유진의 약혼녀라는 이름표를 벗은 후부터 그녀와 나, 둘 다 서로를 대하는 것이 전보다 편해진 것 같았다.

내가 그녀에게 은연중에 거리감을 느끼고 있던 것처럼 아마 로자벨라 역시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만약 그녀가 그대로 유진과 결혼하게 되었다면 나는 로자벨라의 시누이가 되는 셈이었으니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관계에서 벗어나자 로자벨라와 나는 비로소 순수하게 서로를 마주 볼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우리는 취미나 관심사 등 통하는 부분이 은근히 많았다. 좀 더 깊게 알고 나니 로자벨라는 내 생각과 달리 은근히 털털하고 시원시원한 구석이 있기도 했다.

나도 전보다 더 그녀를 편하게 대해서 그런지, 로자벨라도 내가 그녀에게 느낀 것과 비슷한 감상을 받은 듯했다.

그래서 오히려 유진의 파혼 후 로자벨라와 나는 사이가 더 가까워졌다고도 할 수 있었다.

유진은 그 사실에 어쩐지 오묘한 기분을 느끼는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벨론티아에 방문하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아마 이 자리에 모인 귀족들은 생각 이상으로 돈독해 보이는 로자벨라와 내 모습에 저마다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을 터였다.

"에른스트 양, 이쪽으로 와서 앉으세요."

"그래요, 마침 벨론티아 양의 옆자리가 비어 있어요."

"오늘 공작님은 함께 오지 않으셨나요?"

"그러고 보니 아까 막내 공자님과 함께 계시던데······."

나는 사람들의 속 보이는 환대를 받으며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러고 난 후 한동안 영양가 없는 대화가 오갔다. 미래의 황손비가 될 로자벨라와 친분이 있어 보였던 모습 때문인지 나에게도 전보다 과한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그러면서도 이따금 불편한 듯이 내 뒤를 힐끔거렸다.

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이 에단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눈치챘다. 그리고 그들의 눈빛에 담긴 감정이 무엇인지도 깨달았다.

아마 그들은 에단이 비숍이라는 성을 가지기 전에 슈마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었다.

전에도 그와 함께 외출할 때면 가끔 이런 시선을 받고는 했지만 오늘은 특히 보수파 귀족들이 많이 모인 자리라 그런지 그 태도가 유독 노골적이었다.

나는 웃는 얼굴로 핑계를 대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오빠에게 가 봐야 할 것 같아서 이만 실례할게요."

"하리, 저도 지금 일어날 생각이었는데 같이 나가요."

뜻밖에도 로자벨라가 그런 내 뒤를 따라왔다.

순식간에 대화의 중심을 잃게 된 사람들이 술렁였으나 로자벨라는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여서 우리 두 사람은 함께 천막을 나섰다.

"드디어 해방이네요. 조금 전까지 갑갑해서 혼날 뻔했어요."

"로자벨라 양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오랜만이라 다들 흥분한 것 같아요."

한숨을 내쉬며 읊조리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하리, 잠깐 같이 차라도 들지 않겠어요?"

"좋아요."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어서 나는 로자벨라의 권유를 수락했다.

그리고 우리는 벨론티아의 개인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방금 전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인 자리에서도 이미 차를 마신 참이었지만 어차피 대화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딱히 상관은 없었다.

"하리도 내가 다이스 전하께 심했다고 생각하나요?"

시중을 드는 하녀가 우리의 앞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찻잔을 놓고 사라진 뒤, 로자벨라가 입을 열었다.

"실은 요즘 틈만 나면 어머니께 잔소리를 듣고 있거든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말을 잇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나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사교계를 주름잡는 레이디이자 미래의 황손비로 밖에서 언제나 품위 있고 성숙한 모습만 보여 오던 로자벨라가 집안에서는 어머니에게 꾸중을 듣기도 한다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런 건 제가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친구로서의 생각을 말하자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로자벨라의 마음이 아닐까요?"

그러자 마주한 얼굴이 다소 부드럽게 풀어졌다. 그녀는 그동안 집안에서 꽤 시달렸는지, 내 말을 고맙게 여기는 눈치였다.

"다이스 전하와 제 사이에서 하리 양이 고생하는 것 알고 있어요. 이런 사적인 일에 말려들게 해서 미안해요."

"아니에요, 그저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것뿐인데요."

나는 그런 로자벨라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후 우리는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와 내가 있는 장소에 누군가가 들이닥친 것은 잠시 후의 일이었다.

"로자벨라!"

입구 쪽의 천을 휘날리며 안으로 들어선 것은 다름 아닌 다이스였다.

아니, 그런데 이 사람은 지금 숲에 있어야 하는데? 아까 분명히 숲에 사냥을 하러 들어가는 사람들의 선봉에 다이스가 자리해 있는 것을 보았던 기억이 있었다.

"다이스 전하?"

나와 마찬가지로 로자벨라 역시 황당한 듯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아, 하리 양도 같이 있었네."

다이스는 나를 잠깐 아는 척한 뒤 로자벨라에게 성큼 다가갔다. 그러고는 그녀의 손을 꼭 붙잡으며 말했다.

"로자벨라, 보고 싶었어."

앗, 그 순간 로자벨라의 표정이 흔들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다이스를 보고 황당해하던 그녀는 생각지 못한 다이스의 말에 당황한 눈치였다.

하기야 나도 설마 지금 다이스가 로자벨라를 보자마자 저렇게 다가가 애절한 말을 속삭일 줄은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그것보다 전하께서 왜 지금 여기에······."

"계속 얼굴을 보고 사과하고 싶었는데 좀처럼 기회가 나지 않아서, 사냥터에서 나 혼자 빠져나왔어."

그 말을 듣고 '아, 역시 그렇게 된 거였구나' 싶었다.

사냥제가 시작될 때부터 로자벨라와 따로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어 싶어 몸이 단 눈치더니, 결국 다이스는 다른 사람들을 따돌리고 혼자 숲을 빠져나와 그녀를 만나러 온 모양이다.

"내 철없는 행동으로 그대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 전부 반성하고 있어. 정말 미안해, 로자벨라. 부디 용서해 줘. 그대가 나를 멀리하는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

다이스의 절절한 고백은 계속되었다. 나는 대부분 로자벨라 때문에 징징거리는 다이스만 봐 왔기 때문에 이렇게 진지한 그의 모습이 의외라고 생각되었다.

아니, 그런데 그건 그렇고······ 이 두 사람, 혹시 내가 여기에 있는 걸 잊은 건 아니겠지?

왜인지 지금 서서히 둘만의 세계로 빠져들어 가는 것 같은 느낌인데······.

나는 다소의 민망함을 느끼며 큼큼 헛기침을 했다.

"저어, 그럼 저는 그만 나가 볼게요."

그제야 로자벨라는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그때까지도 자신의 손을 부여잡고 있는 다이스를 향해 말문이 막힌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가 움찔하며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반면 다이스는 어서 자리를 비키라는 듯이 나를 향해 열심히 눈짓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내심 혀를 찼다.

"하리, 갑작스럽게 미안해요."

"전 괜찮으니 개의치 마세요. 그럼 두 분 천천히 이야기 나누세요."

로자벨라는 미안함이 담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괜찮다는 듯이 웃어 보이며 발길을 돌렸다.

***

"이제 나오십니까?"

"네. 황손 전하께서 오셔서요."

천막을 나서자마자 에단이 나를 맞아주었다. 그는 내가 밖으로 나올 줄 알고 있었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기야 그 역시도 천막 앞에 서 있는 동안 다이스를 보았을 테니 당연했다.

으아, 그럼 이제 내 고생도 끝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지금 막 내가 떠나온 곳을 살짝 뒤돌아보았다.

솔직히 그동안 다이스가 나를 만날 때마다 오죽 성가시게 굴었는지 몰랐다.

하지만 조금 전에 보아하니 두 사람도 슬슬 화해할 분위기였고, 그럼 이제 나를 데리고 귀찮게 굴 일도 없어지겠지.

나는 조금 시원한 기분으로 천막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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