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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90화 (9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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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 90화

"혹시 내가 양을 놀라게 할지도 모르는데, 미리 사과할게."

내 의아한 눈빛에 그는 어쩐지 곤혹스러워 보이는 얼굴을 한 채 웃음 지었다.

"그래 봤자 자세한 이야기는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지만."

그러고 나서 다이스는 언제 내게 수상쩍은 말을 했냐는 듯, 다시금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 되어 나를 배웅했다.

나는 또다시 머릿속이 복잡해진 채로 궁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다이스가 그런 말을 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놀랍게도, 유진과 로자벨라가 파혼을 했다. 나는 예상치 못했던 일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약 2년간의 약혼 기간에 종지부를 찍고 두 사람은 파혼을 선언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둘 다 서로가 좋은 결혼 상대자라고 생각하지만 성격이 맞지 않아 더 이상은 인연을 이어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소식이 아직 남아 있었다. 얼마 후 아를란타 전역에 알려진 황실의 중대 발표에 나는 그만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황손 다이스와 로자벨라 벨론티아의 약혼 소식이었다.

***

"에른스트 양, 오늘은 카벨 경만 동행하신 건가요?"

"혹시 에른스트에서 조만간 만찬회라도 열 계획은 없으신지요?"

"이번 야유회 때 오라버니들과 함께 방문해 주세요!"

연회장 안에서 나는 내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바쁘게 상대했다.

평소에 비해 오늘은 나한테 접근하는 영식들보다 영애의 수가 월등히 많았다. 짐작하기로 아마도 그것은 유진 때문일 터였다.

로자벨라와의 파혼 후 에른스트 공작의 약혼녀 자리는 이제 공석이 되어 있었으니까.

'소식 들었어?'

유진과 로자벨라가 파혼한 것은 봄. 그런데 계절이 바뀌어 여름이 되자마자 황손 다이스의 약혼 소식이 파다하게 번졌다. 그것을 듣고 나는 놀라서 유진을 찾았다.

'괜찮아?'

'괜찮지 않을 이유가 없지.'

하지만 유진은 몹시 담담한 얼굴을 한 채 나를 맞았다.

'그녀와 나는 이미 정리된 관계야. 그러니 그 후에 누구와 약혼을 하든 나와는 상관없어.'

물론 그건 그랬다. 유진의 말마따나 다이스와 로자벨라의 약혼은 순서상으로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비록 유진과 로자벨라의 파혼은 아를란타를 한바탕 시끄럽게 만든 일이었지만, 파혼의 원인이 어느 한쪽에 결격 사유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으니 황손과 로자벨라의 약혼에 크게 문제 될 것은 아닐 터였다.

또한 유진과 로자벨라 모두 아무리 뜯어보아도 결함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인물들이었고, 또 파혼 이후에도 서로 당당하게 대외적인 활동을 해서, 얼마간 돌던 근거 없는 소문들도 서서히 가라앉았다.

하지만 나는 계속 유진의 파혼과 다이스의 약혼이 마음에 걸렸다. 지난 생에는 없던 일이라 그런 걸까?

게다가 나를 본받기로 했다는 다이스의 말. 설마 그게 이제부터는 하고 싶은 대로 막 나가는 삶을 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면······ 혹시 이번 일에 본의 아니게 내가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혹시 에른스트 공작님께서 따로 만나시는 여성분은 아직 없으신지······."

어쨌든, 그런 이유로 혹시 하는 마음을 품고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네는 영애들이 수두룩했다.

유진과의 파혼 이후 나는 단 한 번도 로자벨라를 만나지 못했다. 그러니 그녀와의 만남은 지난 황성에서가 마지막이었던 셈이다.

물론 어느 한쪽에서 먼저 만남을 청했다면 또 모르지만 로자벨라도 나도 그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빠의 전 약혼녀'와 '파혼한 약혼자의 여동생'이란 관계는 아무래도 애매한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내 마음에 망설임이 있었던 것처럼 로자벨라 역시 그러지 않았을까 하고 나는 추측하고 있었다.

유진의 파혼 이후 오늘처럼 영애들이 몰려드는 일이 연달아 일어났기 때문에 나는 외출하는 것을 피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자리에서 로자벨라와 우연히 마주치는 일도 생기지 않았다.

"잠시 실례하겠어요."

나는 웃는 얼굴로 혼자서 사람들을 상대하다가 가까스로 자리를 빠져나왔다.

아니, 그런데 둘째 진상은 왜 이리 안 오는 거야? 음료수를 주방에 가서 만들어 오나?

오늘 연회에서 나는 카벨을 파트너로 두고 있었다. 그런데 마실 것 좀 가져다 달라는 내 말에 신이 나서 달려간 둘째 진상이 영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에른스트 양! 오늘 연회에 참석하셨군요!"

"안녕하세요, 페드나 양. 오랜만에 뵙네요."

모처럼 참석한 연회이니만큼 오래간만에 얼굴을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하하 호호 웃으며 반가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잠깐, 지금 뭐 하는 거야?"

"아얏!"

그런데 잠시 후 등 뒤에서 카벨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 음성이 바로 옆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무척 가깝게 느껴졌기 때문에 나는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내 시야에 들어온 광경에 두 눈을 크게 떴다.

"뭐야, 무슨 일이야?"

아니, 카벨이 왜 라벤더 코르디스의 팔을 붙잡고 있는 거지? 하지만 이어지는 카벨의 말에 나는 대략적인 상황을 눈치챘다.

"아니, 지금 이 여자가 손에 들고 있는 걸 너한테 뿌리려고 하는 것 같아서."

그러니까 라벤더 코르디스가 소리도 소문도 없이 나한테 접근해서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샴페인을 내 옷에 뿌리려고 했다, 이 말이냐?

물론 그녀는 카벨의 말을 부정했다. 그에게 붙잡힌 팔이 아픈지 미간을 구기고 있던 라벤더 코르디스가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호호······!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전 그저 에른스트 양이 반가워서 인사하러 왔을 뿐인데요."

그 모습이 꽤 자연스러웠지만 나는 속지 않았다. 당연하지. 우리가 어디 서로를 반가워할 만한 사이입니까?

"아닌데, 손목 각도가 겁나 수상했는데?"

카벨이 끈질기게 걸고넘어지자 라벤더 코르디스의 입매가 꿈틀거렸다. 그녀가 놓으란 듯이 손목을 잡아 뺐지만 카벨은 억센 손에서 힘을 풀지 않았다.

"오빠, 그러지 말고 놔줘."

"그래."

하지만 내가 말하자마자 카벨은 매우 쉽게 라벤더 코르디스의 팔을 놓았다. 오구오구, 우리 둘째 진상 말도 참 잘 듣지.

"마실 거 가져왔어! 너 이거 좋아하지?"

"고마워. 역시 오빠밖에 없어."

"으헤헤!"

나는 앞에서 분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라벤더 코르디스를 보란 듯이 무시한 채 카벨과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무시하고 있을 때 그냥 가면 좋을 텐데. 어차피 댁과 나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사이인데 피차 피곤하게 굴지 맙시다.

하지만 라벤더 코르디스는 곧바로 자리를 떠나지 않고 질척하게 굴었다.

"오늘따라 에른스트 양에게 다가오는 영애가 많네요. 아마 양의 첫째 오라버니 때문이겠죠?"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운을 떼는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마주한 얼굴을 싸늘히 응시했다. 나만 있는 자리에서라면 또 모를까, 카벨과 다른 사람들이 다 같이 모인 이런 곳에서까지 지난번 코르디스 저택에서 했던 것과 같은 이야기를 또 하지는 못 할 텐데.

"예상치 못했던 파혼 소식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분명 어딘가에 벨론티아 양이 아닌 다른 더 좋은 인연이 그분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어요. 혹시 이 연회장 안에 계신 숙녀분 중 그 인연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에른스트 양도 너무 거절만 하지 말고 영애들에게 기회를 줘 보시는 건 어때요?"

아마도 오늘 연회장 안에서 내게 벌떼처럼 꼬이는 사람들을 보았던 모양이다. 노골적인 그녀의 말에 주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 대부분은 아까 전 내게 유진에 대한 관심을 표했던 영애들이었다.

"보세요, 주위에 꽃처럼 아름다운 숙녀분들이 이렇게 많아요. 게다가 양의 오라버니들은 당신을 동생으로서 참 많이 아끼잖아요. 양의 추천이라면 아마 귀담아 들어줄 거예요. 혹시 알아요? 그렇게 선택받은 영애가 정말 양의 오라버니와 연이 닿아 한 가족이 될지."

옆에 있던 카벨이 '얘, 아까부터 도대체 뭐라는 거냐?'라고 묻듯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라벤더 코르디스는 꿋꿋이 나를 향해 말을 이었다.

"만약 그렇게 되면 하나뿐인 여동생으로서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니겠어요? 그렇지 않아요, 에른스트 양?"

그렇게 말하며 라벤더 코르디스는 웃었다. 여전히 악의로 가득 찬 싸늘한 눈빛이 나를 꿰뚫었다.

가시를 품은 말이 내 고막을 뚫고 들어오는 동안 서서히 가슴이 선득해졌다.

라벤더 코르디스의 얼굴을 마주하며 그녀의 말을 듣는 동안, 어떤 깨달음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라벤더 코르디스가 지금 내게 이런 말을 하는 이유를 어쩐지 알 것 같았다.

아마도 이 여자는 유진에 대한 내 마음을 알아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든 비난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비록 피는 섞이지 않았다 해도, 오빠인 사람에게 어떻게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있느냐고.

지난번 코르디스의 저택에서 나와 유진의 과거사를 들먹이며 독기 품은 눈빛을 보였던 것도, 지금 이런 식으로 내가 유진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그의 짝에 대해 운운하는 것도 그런 맥락인 것이 분명했다.

아, 그렇다면 혹시 갑작스럽게 내게 적대감을 보인 이유가 그런 내 감정을 눈치챘기 때문이었을까? 혹시 지난 생에서도 같은 이유였나. 그런 것이라면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물론 그때의 내 마음이 지금과 완전히 동일했던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그를 볼 때마다 이렇듯 애달프고 사랑스러운 마음이 흘러넘칠 듯이 밀려와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면 나도 모르게 그를 눈길로 좇고 있었다. 그를 보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이유를 알 수 없게 슬퍼졌다.

혹시 라벤더 코르디스는 그런 나를 보고 무언가를 눈치챘던 것일까? 그래서 그런 나를 경멸하고 싫어했던 것일까?

그런 것이라면 이해가 되었다.

"죄송하지만 코르디스 양."

하지만 그녀가 이런 식으로 나한테 알려 주려고 애쓰지 않아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제게 바라시는 게, 다른 영애들과 오빠들의 만남을 제 손으로 주선하도록 하는 것이라면 그 바람은 이루어드릴 수 없을 것 같네요."

이건 나 혼자만의 마음이다. 유진에게는 이런 감정을 알릴 생각도 없고, 그의 옆자리를 욕심낼 마음은 더더욱 없었다.

"양의 말대로 오빠들은 제게 늘 다정해서 제 작은 말 한마디나 사소한 행동 하나도 세심하게 신경 써 주거든요."

그리고 그가 나와 같은 마음이 될 리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근래 들어 내게 보이는 그의 행동이 다소 미묘해졌다고 해도······.

"그래서 저도 오빠들에게 혹시나 조금이라도 강요의 의미로 내비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아요."

그것은 내가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지, 다른 의미의 애정을 품은 대상이어서가 아닐 것이다.

"영애들은 모두 선량하고 이해심이 넓으시니 이런 제 마음을 이해해 주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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