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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81화 (8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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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 81화

"뭐······."

미지근하게 식은 찻물이 라벤더 코르디스의 얼굴을 타고 흘렀다. 그녀는 설마 내가 이런 짓을 할 줄은 몰랐다는 듯 황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자 그나마 속이 좀 시원해졌다.

"당신의 모욕을 내가 가만히 참고 들어줄 줄 알았다면 큰 오산이에요."

나는 싸늘하게 그녀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더 이상은 그녀가 내 앞에서 쉽게 입을 놀리게 내버려 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우습네요, 코르디스 양. 말에서는 그 사람의 인격이 배어 나온다고 하죠. 당신의 그 입에서 한 마디씩 뱉어져 나올 때마다 아주 지독한 냄새가 나는데, 이래서야 누가 진짜 더러운 사람인지 모르겠어요."

상대방을 깔보고 조롱할 줄 아는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하물며 먼저 나를 공격한 사람에게 보여줄 예우 따위는 없었다.

"그래, 천박한 사람에게 딱 어울리는 천박한 방법이 있다고 했나요? 지금 당신이 보여주는 게 그런 거군요. 직접 알려줘서 고마워요. 이렇게 경박하고 상스러운 방법으로 자기 수준을 증명하다니."

사실 나는 줄곧 그녀에게 이러고 싶었던 것 같다. 나를 천박하다고, 더럽다고, 무시하고 깔보고 비아냥거리는 라벤더 코르디스를 볼 때마다 너 따위가 뭘 아냐고 말하고 싶었다.

"지금 스스로의 모습이야말로 추하다는 건 알아요? 한 번쯤 거울을 보는 게 어때요. 나는 그 뒷골목에 살 때에도 지금의 당신처럼 비열하고 더러운 사람은 본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그때 그러지 못했던 건, 내가 지금보다 더 자신감 없는 겁쟁이여서였겠지.

"확실히 사람의 고귀함이라는 건,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피로 전부 결정되는 건 아닌 것 같네요. 그따위 생각밖에 못 하는 당신이 불쌍할 정도예요."

"뭐라고······!"

내가 하는 말을 넋 놓고 듣고 있던 라벤더 코르디스의 얼굴이 마침내 발갛게 달아올랐다.

자신은 조금 전 내게 그보다 더한 말을 지껄여놓고 이 정도에 얼굴을 붉히며 파들거리는 그녀의 꼴이 우스웠다.

"인정 못 해······!"

별안간 분노를 담은 거친 음성이 귓전을 울렸다.

"에른스트의 성 하나 이름 뒤에 달게 되었다고 길거리를 전전하던 천박한 계집이 진짜 유리 구두를 신은 귀공녀라도 될 수 있을 줄 알아? 당신은 에른스트에 어울리지 않아! 난 인정 못 해! 죽어도 못 해!"

하지만 그녀의 말은 비웃어줄 가치조차 없었다.

나는 라벤더 코르디스가 내게 그랬듯, 마주한 사람을 향한 경멸을 감추지 않은 채 싸늘하게 읊조렸다.

"내가 에른스트에 걸맞은 인간인지 아닌지를 당신 앞에서 굳이 증명해야 할 이유가 있나요?"

그것은 지난 생에도, 또다시 한번 되돌아온 이번 생에도 결코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나는 이미 이 자체로 하리 에른스트인데."

그렇게 말하는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해방된 것 같았다.

'하리는 이미 그 자체로 에른스트입니다.'

오래전 유진이 해주었던 그 말이 맞았다. 나는 하리 에른스트다. 내가 어떤 인간이든, 내가 무슨 일을 하든, 그런 것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당신이 무슨 권리로 내 자격을 운운하나요?"

그리고 내게는 이미 이와 같은 말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 더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나는 당신의 인정을 필요로 하지 않아요. 그런 것 따위 내게 하등의 의미도 가치도 없으니까."

오연한 내 태도에 라벤더가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나 그녀는 말문이 막힌 듯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

"도대체 당신이 뭐기에. 스스로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 같아요?"

나는 마주한 사람을 향해 메마른 비소를 보이며 말했다.

"주제를 알아요, 라벤더 코르디스."

라벤더는 새하얀 얼굴이 되어 밭은 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내버려 둔 채 먼저 응접실을 벗어났다.

"가요, 비숍 경."

안에서의 고성을 들었는지, 에단이 문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여차하면 안으로 들어올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지 않을 이유가 없어요."

그녀가 나를 눈꼴시려 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뒷골목을 전전하던 천한 계집이 운 좋게 에른스트에 들어가 자신과 비등한 위치에 있게 되었으니 일단 그 자체가 싫기도 했겠지. 하지만 그렇다 해서 내가 이런 식으로 취급받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기다려!"

그런데 저택의 복도를 걷는 내 뒤를 라벤더가 따라왔다.

하지만 에단이 가로막았기 때문에 그녀는 내게 일정 거리 이상 접근할 수 없었다. 라벤더는 시뻘게진 눈으로 그를 노려보다가, 곧 이를 악물며 내게 소리쳤다.

"네가 그에 대해 뭘 알아?"

나는 그녀가 말하는 '그'가 누구인지 곧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지금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아? 아니, 모르겠지! 그 사람이 너한테는 전부 숨겼을 테니까!"

하지만 잇따른 말을 듣는 동안 라벤더 코르디스가 지금 입에 올린 사람이 유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생각에 확신을 더해 주듯, 곧이어 그녀가 그의 이름을 명확히 입에 담았다.

"유진 에른스트가 지금까지 죽인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알아?"

라벤더가 독기를 품은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내뱉은 말에 나는 불현듯 숨을 멈추었다. 그런 내 반응을 비웃듯 이어지는 목소리가 더욱 비릿해졌다.

"슈마하, 아델가르, 레놀드를 비롯해서 지난 수년간 씨조차 말라 멸문한 가문이 몇이나 되는지, 왜 그렇게 되어야만 했는지, 그리고 그렇게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깊게 생각해 본 적이나 있어?"

마주한 사람의 입에서 쉬지 않고 쏟아져 나오는 말에 서서히 손끝이 차게 식었다.

그녀는 이제껏 내가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라벤더를 가로막고 서 있던 에단도 한순간 멈칫했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은 제약할 수 있어도, 그녀의 말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그 사람이 이제껏 제 손에 직접 피를 묻히면서 죽인 사람은 거의 제 일가친척들이지. 본보기라도 삼듯이 애도 어른도 가리지 않고 다 죽였어."

악에 받쳐 외치는 음성이 내 고막을 가차 없이 파고들었다.

"오죽하면 에른스트 공작이 아를란타에 시체를 산처럼 쌓으려는 게 아니냐는 소리까지 돌았을까? 지금 옆에 있는 사람한테 한번 물어봐. 앞장서서 제 아버지와 형제들까지 죽인 패륜아인 건 매한가지니까! 안 그래, 에단 슈마하?"

내 시선이 에단의 등으로 날아가 박혔다.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그러나 조금 전 라벤더의 입에서 나온 그의 이름은 너무나 선명하게 내 귀를 파고들었다.

에단은 침묵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새빨간 눈이 나를 향해 미끄러졌다. 그 직후 라벤더가 나를 비웃으며 말했다.

"네가 그에 대해 모든 걸 다 알고도 옆에 있을 수 있을까? 그동안 얼마나 많은 피를 묻혔는지 알고도 아무렇지 않게 그 손을 잡을 수 있어? 이제껏 그 사람이 벌인 끔찍한 죄악들을 알고도 지금처럼 태연한 얼굴로 그 사람을 볼 수 있겠느냐는 말이야!"

여전히 손끝이 차가웠다. 무방비한 상태에서 고스란히 뒤집어쓴 가시 박힌 말이 폐부를 아프게 찔렀다.

악의로 뒤범벅된 라벤더 코르디스의 눈빛이 나를 비웃는 듯했다.

"그래서?"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상관인데."

건조한 목소리가 조용한 복도에 울려 퍼졌다.

"수십 명을 죽였든, 수백 명을 죽였든, 그 대상이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이든 친척이든. 그게 무슨 상관인데?"

내 표정이 바람대로 꽤 무덤덤한지, 라벤더 코르디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라벤더 코르디스, 착각하지 마. 당신 말이 전부 사실이라 해도 나는 아무렇지 않아."

나는 끝까지 냉정하게 말한 뒤 뒤돌아섰다.

"나한테 그 사람은 그냥 유진이야."

조금 전 그녀가 내뱉은 말이 내게 아무런 흠집도 내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내가 죽을 때까지 그건 안 변해."

***

"아무것도 묻지 않으십니까?"

에단의 가라앉은 음성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어쩐 일로 그는 내 방에 먼저 찾아와 문가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라벤더 코르디스를 만나고 온 이후 나는 에단과 아무 대화도 하지 않고 곧장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지금, 그가 내 방문을 두드린 것이었다.

"당신이 내게 말하고 싶은 걸 해봐요."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충분히 내가 먼저 그에게 무언가를 물어도 될 만한 상황이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가 내게 알려주고 싶은 것만 말해주었으면 했다. 만약 내가 알아야 마땅한 일까지 숨기려 한다 해도 그냥 묵인할 셈이었다.

잠시 후 에단의 입에서 나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제 원래 이름은 에단 슈마하입니다."

문득 예전에 그에게 들은 적 있던 말이 떠올랐다. 마치 고해라도 하듯 자신에게는 '자격이 없다'고 했던 그의 말이.

"죽은 슈마하 백작의 사생아였죠."

에단은 여전히 표정 없는 얼굴을 한 채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내게 해주었다.

본래 그의 이름은 에단 슈마하로, 삼 형제의 당숙이었던 슈마하 백작의 사생아라고 했다. 자신의 씨가 바깥으로 나도는 것을 우려한 슈마하 백작은 그를 거두어 슈마하라는 성을 준 뒤 집안에 가두어두었다.

아버지인 그부터가 에단을 그렇게 대했기 때문에 이복형제들은 특히 그를 눈엣가시로 여겨 핍박하고 괴롭혔다고 했다.

"거의 노예나 마찬가지인 삶이었습니다. 배가 고프면 구정물을 받아먹고 한겨울에도 헛간에서 자야 했지요. 우연한 기회로 검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그 이후의 대우가 조금 나아지기는 했습니다만. 그래도 제 자신이 짐승으로 취급받는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에단은 유진을 만나게 되었다.

유진은 슈마하를 멸문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마지막에 에단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었다. 그래서 에단은 망설임 없이 직접 슈마하를 몰락시켰다고 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저는 제 아버지마저 죽인 살인자입니다. 저 스스로조차 단 한 번도 그 일을 자랑스러워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저를 꺼리는 것도 당연합니다."

나는 그동안 내 앞에서 단 한 번도 웃음 지은 적이 없는 에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지금도 모든 감정을 잃은 사람처럼 그저 한없이 무미건조하고 담담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를 곁에 두시면 오늘 같은 일을 다시 겪으실지도 모릅니다. 제게 호위받는 것이 싫으시다면 공작님께 말씀하시면 됩니다."

나는 그런 그를 잠시 동안 말없이 바라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비숍 경. 저는 호위 기사를 바꾸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내 대답에 한순간 에단의 굳은 입매가 움찔거렸다. 그는 내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아마도 제가 당신에게 입바른 소리를 하는 건 주제넘은 짓이겠죠. 저는 당신의 상황을 단편적인 부분만 알고 있고, 또 당신의 마음을 전부 헤아리고 있지도 못해요. 그러니 당신을 완전히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도 오만한 소리일지 몰라요."

사실 이런 말을 하기에도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내가 지난 일로 그를 비난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다른 사람들처럼 살 자격이 없다고······ 그런 생각은 경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쩌면 나는 지금껏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스스로를 옥죄고 있는 그가 안쓰러운 것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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