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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80화 (80/138)

# 80

그 오빠들을 조심해 80화

따끔따끔.

겉인지 속인지 모를 곳이 어째서인지 조금 따가웠다. 꼭 종이에 베인 날카로운 상처에 물이 스미는 것처럼, 아픈 곳이 정확히 어디인지 알 수가 없는 그런 쓰라림이었다.

······그래도 먼저 손을 놓고 싶지는 않아서, 나는 다른 누군가가 마차의 문을 두드릴 때까지 계속 유진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

"전하, 괜찮으신가요? 전하?"

나는 아까부터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다이스를 불렀다. 그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내가 유리 온실에 도착했을 때부터 계속 이렇게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사람 진짜 왜 이래? 신년제의 여파인가. 아니면 마차 공포증의 후유증?

내가 그의 눈앞에 대고 손을 흔들 때쯤에야 다이스는 정신을 차렸다.

"아, 양. 언제 왔어?"

"아까 인사도 나누었잖아요."

"그랬었나······."

나는 여전히 머리에 구멍이 난 것 같은 다이스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참, 양은 괜찮아? 그때 호수에 빠졌다며."

"예, 금방 빠져나와서 괜찮았어요."

"어쩌다가 그런 거야?"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그냥 대수롭지 않은 이유라는 듯 말했다.

"실수로 발을 접질러서요."

"양도 은근히 덤벙거리는 성격인가 봐?"

큭, 사실은 아니지만. 그래도 라벤더 코르디스가 홧김에 나를 밀어서 떨어뜨렸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기는 좀 그랬다. 물론 만약 라벤더가 자신을 호수에 떨어뜨린 게 루이제라는 사실을 퍼뜨리고 다니면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만.

"그래서 신년제 행사에 참가를 못 했어요. 송구합니다."

"아니, 아니야. 그럴 만한 사정도 있었는데 뭘. 신년제라고 해도 뭐 대단한 걸 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지금으로 봐서는 그러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이틀 전 내 앞으로 온 편지를 떠올리며 눈매를 좁혔다.

그것은 라벤더 코르디스에게서 온 편지로, 신년제 때의 일을 내게 정식으로 사과하고 싶으니 조만간 꼭 코르디스의 저택에 들러달라고 적혀 있었다.

어쩌지, 가야 할까? 사과하고 싶다는데 그냥 무시하기도 좀 그렇고. 게다가 그날, 나를 데리고 호수에서 나가는 유진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던 그녀의 얼굴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끄응. 나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고민을 끌어안은 채로 지나가듯 다이스에게 물었다.

"그날 로자벨라 양을 만나셨죠?"

"푸읍!"

그런데 내 말에 다이스가 마시던 찻물을 입 밖으로 뿜었다. 나는 갑자기 허둥지둥하는 그를 보며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왜 그렇게 당황하세요?"

"야, 양이, 그걸 어, 어떻게 알아?!"

"로자벨라 양이 전하가 계시는 제단 뒤쪽으로 가는 걸 봐서요."

다이스는 금방 정신을 차린 듯, 곧 헛기침을 하며 의연히 대답했다.

"크흠, 그래. 그냥 짧은 담소를 나누었을 뿐이야."

"그러신가요?"

나는 말끝을 흐리며 마주한 얼굴을 살폈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서는 아무것도 드러나 보이지 않았다.

뭔가 미심쩍었지만 곧이어 다이스가 화제를 돌렸기 때문에 나는 무언가를 더 물어보지 못했다.

***

"이쪽으로 와서 앉아요, 양."

이틀 뒤, 나는 라벤더 코르디스를 마주하고 있었다.

결국은 코르디스의 저택에 방문하고 말았다. 딱히 사과를 받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그냥 뭐라고 말하나 한번 들어보기는 하자는 생각에서였다.

이번 생에서의 라벤더는 지난 생처럼 내게 꾸준히 직접적인 위해를 끼치지 않았기에 마음을 돌린 것이었다.

물론 얼마 전의 신년제에서 나를 호수에 빠뜨리기는 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충동적인 심술에서 비롯된 일인 것 같았고, 또 그날 충격을 받은 듯이 유진을 올려다보던 라벤더의 얼굴이 묘하게 계속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오늘 나를 이렇게 불러 사과하려고 한 이유도 내가 유진에게 진실을 밝혀 혹여나 자신이 그에게 미움받게 될까 봐 우려되어서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내게는 그녀의 불안감을 해소해 줄 의리도 이유도 없었으므로 그에 대해 라벤더에게 무어라 말해줄 생각은 없었다.

"오래 있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 본론만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비록 지금 이렇게 라벤더와 마주 보고 있기는 하지만 그녀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없었다.

"그래요, 나도 양과 오래 마주 보고 있을 생각은 없어요."

그런 마음은 그녀 역시 마찬가지인 듯했다. 하기야 지난번에 호수에 나를 밀쳐 빠뜨리기까지 했는데 이제 와서 친해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라벤더 역시 하고 있지 않을 터였다.

"도대체 비결이 뭔가요?"

그런데 이어진 그녀의 말은 퍽 놀라웠다.

"그 많은 남성분을 치마폭에 감싸 휘두르고 다니는 비결이요."

그 순간 찻잔을 들고 있던 손이 허공에서 멈추어졌다.

나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내 맞은편에 앉은 사람을 바라보았다. 라벤더는 꽤 양순해 보이는 얼굴로 미소 짓고 있었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조롱의 의미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둔하지는 않았다.

"에른스트의 세 공자님뿐만 아니라 바스티에의 공자님도, 그리고 다이스 전하도 양에게는 사족을 못 쓰잖아요. 난 전부터 그게 참 신기하고 이상했어요. 당신이 뭐가 그렇게 잘났기에 그 대단하신 분들이 앞다투어 매달릴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는 거예요."

아, 그렇구나.

오늘 그녀가 나를 부른 것은 지난 일을 사과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나도 참 어떻게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했을까. 이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당신이 다른 영애들에 비해 나은 점이 뭐 하나라도 있어요? 난 모르겠던데. 그나마 봐줄 만한 거라고는······ 그 정도면 나름대로 반반한 축에 드는 얼굴인가? 사실 그것도 난 잘 모르겠지만."

나는 라벤더의 목적을 깨닫고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에른스트의 권세가 무서워 대놓고 떠드는 사람은 없다지만 난 나처럼 생각하는 이가 많다는 걸 알아요."

앞으로 이어질 라벤더 코르디스의 말을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지난 생에서도 그녀에게 이와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래요, 천박한 사람에게는 그에 딱 어울리는 천박한 방법이 있는 거겠죠. 그래서, 다른 사람들 몰래 몸이라도 굴리고 다니는 건가요, 에른스트 양? 나한테만 솔직히 말해봐요."

이제껏 내게 가식을 떨며 살가운 척하던 라벤더 코르디스는 어디에도 없었다.

"양이 그나마 갖고 있는 게 그런 것밖에 없잖아요. 값싼 몸뚱이. 한 번 대준다고 해서 티가 나는 것도 아니고, 얼마든지 재활용이 가능한 부분이니 내세우기도 참 쉬웠을 거야."

그러나 이런 모습이 차라리 그녀다웠다. 내게 접근하며 어떻게든 환심을 사려 애쓰던 중에도 그녀는 이따금 나를 향한 경멸과 불만의 눈초리를 숨기지 못하곤 했다.

어쩔 수 없이 어울려준다는 듯 내게 손을 내밀기는 했지만, 차라리 지금 그녀가 가감 없이 내뱉고 있는 말들이 본래 그녀의 속에 품고 있던 진심에 가까울 것이다.

"하긴, 그 더러운 습성이 어디 가겠어요? 양은 예전에 살던 곳에서 꽃을 팔고 다녔다면서요? 내가 듣기로 그게 뒷골목의 은어라고 하던데······."

다만 하루아침에 돌변한 그녀의 태도가 다소 의아했다. 그녀는 마치 더 이상은 내 존재를 참아줄 수가 없다는 듯 나를 공격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라벤더가 보였던 태도와 사뭇 다른 행동이었다. 로자벨라와 관련된 일의 연장선으로 이런다고 하기에도 무리가 있어 보였다. 도대체 무엇에 자극받아 내게 이러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사창가에서 창녀들이 몸을 팔 때 '꽃을 판다'고 표현한다면서요? 혹시 양도 그런 건가요?"

라벤더는 말 그대로 눈에 뵈는 게 없는 사람처럼 나를 어떻게든 모욕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곧 그녀가 나를 향해 눈살을 찌푸리며 날카로운 웃음을 터뜨렸다.

"세상에. 어쩐지 양의 근처에만 가면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는 것 같더라니. 거리에서 살던 때의 버릇을 아직도 버리지 못했나 봐요?"

예전에도 삼 형제의 눈을 피해 라벤더 코르디스가 내게 했던 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동요 없이 마주한 얼굴을 바라볼 수 있었다.

"전 에른스트 공작 부부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당신 같은 사람을 가문에 들인 건지 모르겠네요. 맙소사, 사창가에서 구르던 창녀라니."

전혀 새로운 상황, 하지만 예전의 반복이었다.

"하기야 지금 하고 다니는 짓을 보면 알 만하긴 하네요."

······아, 슬슬 좀 지겹다.

나는 무미건조한 눈으로 눈앞의 조롱 어린 미소를 응시하며 생각했다.

"그런 게 양의 비결이라면 확실히 내가 따라 할 수는 없겠어요. 너무 추잡하다고 생각 안 해요?"

그러고 보면 나는 다른 사람들이 지금의 라벤더 코르디스처럼 나를 생각하는 것을 조금 두려워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내 처지가 이렇기 때문에, 내가 더 열심히 다른 사람들의 환심을 사지 않으면 저런 꼬리표가 항상 내 뒤에 붙어 다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남의 이목을 의식하며 소문을 겁내고, 혹시 누가 나를 오해해 악담을 퍼뜨리지 않을까 걱정하고. 늘 그런 하루하루를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것도 지겹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문득 언젠가 유진이 내게 해주었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어디든 가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뭐든지 해도 좋아.'

'전에도 말했지만 만약 싫으면 억지로 수긍할 필요 없어. 누구도 너한테 강요 못 해.'

그는 몇 번이나 흔들림 없이 곧은 목소리로 내게 그렇게 말해주었다.

나는 지금까지 라벤더 코르디스가 내게 이런 식으로 말할 때 바보처럼 그런 게 아니라고 해명하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도 정말 그녀와 같은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을까 봐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그랬던 걸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전부 다 부질없었다.

내가 어떤 행동을 보이고 어떻게 변명하건, 나를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은 그와 상관없이 얼마든지 나에 대해 저런 식으로 말할 수 있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내 과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설령 내가 아를란타에서 가장 고귀한 신분이 된다 해도 나를 두고 저런 말을 떠드는 사람들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라벤더 코르디스가 말하듯, 거의 모든 사람이 나에 대해 저렇게 악의적인 생각을 품고 있는 것도 아닐 터였다.

그렇다면 그런 소리들에 일일이 상처받고 신경 쓰는 것은 어떤 의미로 시간 낭비가 아닐까? 스스로가 고고한 줄 아는 저런 치졸한 사람들이 어차피 저 좋을 대로 떠드는 소리쯤은 코웃음 치며 무시해도 되었던 것이 아닐까?

사실 나는 나와 아무런 관련도 없고, 또 내게 아무런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은 그들이 나를 이런 식으로 함부로 상처 입히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었던 게 아닐까.

'그런 게 무슨 상관이야. 지금 그대는 에른스트잖아.'

그리고 다이스의 단호한 말까지 어렴풋이 귓가에 울리는 순간, 나는 결정했다.

그냥 다 그만두자. 나는 잘못한 것이 없었고, 그렇다면 남들이 뭐라 하건 내가 당당하고 떳떳하면 되었다.

드륵.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라벤더 코르디스가 마치 꼬리를 말고 달아나는 개를 보는 것처럼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 해명도 안 하는 걸 보니 자기 자신을 잘 알긴 하는군요? 하긴, 그 더러운 몸뚱이로 할 줄 아는 거라고는 그런 것밖에······."

하지만 나는 곧바로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촤악!

그리고 내 앞에 있는 찻잔을 들어 그 안에 있는 액체를 가차 없이 앞에 있는 사람에게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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