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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73화 (73/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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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 73화

역시 이 중에 제일 예의가 바르고 배려심 있는 것은 요하네스였다. 그가 정중히 사과하자 오늘 티 파티의 주최자였던 포메리안 영애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내저었다. 그런 그녀의 뺨은 약간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 온 세 명은 전부 다 영애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그들 모두 무도회나 연회에 즐겨 참석하는 편이 아니라 영애들은 늘 아쉬워하곤 했다.

아까처럼 내게 우리 집 삼 형제와 요하네스와의 만남을 주선해 주기를 바라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그래서 비록 예기치 않은 만남이라고는 하나, 그들을 이 자리에서 만난 것이 영애들은 기쁜 것 같았다.

"그럼 가자, 하리."

하지만 그들의 만남은 길게 지속되지 않았다.

애초에 이곳에 볼일이 없던 세 사람이다 보니, 나를 만난 시점에서 목적을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포메리안 양, 다음에는 제가 에른스트로 초대할게요. 오늘 정말 고마워요."

사과의 표시로 건넨 내 말에 포메리안 영애의 얼굴이 환해졌다.

나는 아직까지도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멍청히 서 있는 카벨을 붙잡고 웃는 낯으로 뒤돌아섰다.

"화, 화났어? 내가 너한테 말도 안 하고 여기에 와서 화났어?"

그 후 정신을 차렸는지, 둘째 진상이 나를 향해 찡찡거렸다. 비 맞은 강아지처럼 끙끙대며 내 눈치를 보는 모습이 퍽 불쌍했다.

아우, 이 바보를 어떻게 하니, 진짜.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보니 화를 낼 마음이 들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둘째 공자님은 간도 쓸개도 다 빼줄 것처럼 군다던데.'

그러다 문득 아까 어떤 영애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마 지금 내 얼굴은 웃는 것도 찡그린 것도 아닌 모호한 표정을 그리고 있지 않을까?

"오빠, 내가 달라고 하면 간도 쓸개도 다 줄 거야?"

그리고 내가 툭 던지듯 꺼낸 말에 카벨이 화들짝 놀라 흠칫거렸다. 그 직후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꽤나 웃겼다.

"너, 너! 그, 그런 게 갖고 싶어? 그, 그런 취향이야? 그걸 줘야 날 용서해 주겠다는 거야?!"

그러면서 오들오들 떠는 꼴이 제법 가련했다. 마치 내 여동생의 숨겨왔던 취향을 알게 되어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 모습이 웃겨서 나는 푸핫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내, 내 간하고 쓸개는 소중한데······."

"당연히 농담이지 뭘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니? 줘도 안 가지니까 걱정 마세요."

나는 덩치에 안 어울리게 배를 감싸며 더듬거리는 둘째 진상을 다독여주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미워할 수가 없는 내 멍청한 오빠였다.

"빨리 와, 둘이서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해?"

먼저 마차에 도착한 에리히가 우리를 향해 약간의 신경질을 부렸다. 참, 요하네스도 아무 말 안 하고 잠자코 기다려 주는데 성화는?

"지금 가!"

나는 카벨을 데리고 두 사람이 기다리는 마차를 향해 걸음을 서둘렀다.

***

나와 두 형제, 그리고 요하네스는 에른스트의 저택에서 같이 저녁을 먹었다. 유진은 오늘 늦는다고 소식을 알려와 그가 없는 자리에서 식사가 이루어졌다.

알고 보니 오늘은 학술원 내부에서 행사가 있어 오전 수업만 하고 끝났다고 한다. 그래서 곧바로 비글 같은 둘째 진상이 내가 참석한 티 파티에 가겠다고 뛰쳐나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저 호위는 언제까지 네 뒤에 거추장스럽게 달려 있어야 하는 거야?"

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하던 중에 에리히가 식당의 문 쪽을 힐끔거리며 물었다. 밖에 있을 에단을 의식하고 질문한 것이 분명했다. 예전부터 셋째 진상은 에단을 참 못마땅해했다.

나는 항상 내 호위를 해주느라 고생하는 에단을 두둔하며 말했다.

"왜, 난 좋은데. 비숍 경이랑 같이 다니면 다들 얼마나 부러움에 찬 눈빛으로 쳐다보는 줄 알아?"

"뭐? 부럽긴 뭐가 부러워?"

"잘생겼잖아."

반은 농담, 반은 진담이었다. 하지만 내 우스갯말에 다음 순간 에리히가 '하!' 기가 막힌 듯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잘생기긴 뭐가 잘생겨? 계집애 같은 얼굴이구먼."

"네가 그런 말을 하기에는 좀······."

"내가 뭘?"

너 자신을 알라!

곱상하고 예쁜 얼굴로는 자기도 만만치 않으면서. 어찌 보면 얘도 참 자기 얼굴에 침 뱉는 솜씨가 수준급······.

"맞아, 저 기사보다 내가 더 잘생겼어!"

둘째 진상아, 너도 너 자신을 알아라! 네 얼굴이 봐줄 만한 건 사실이지만 솔직히 에단만큼 잘생긴 건 아니야!

나는 짜식은 기분으로 두 진상을 외면했다.

"그의 실력은 믿을 만하니까 계속 옆에 두는 것도 나쁘지 않지."

역시 요하네스만이 내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상식적인 반응을 보여주었다.

"요한 오빠,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와."

당신이 있어서 제 숨통이 트이는 기분입니다! 당신은 산소 같은 남자! 크으, 역시 내 남자가 될 뻔했던 남자야.

"그래, 자주 놀러 올게."

요하네스의 무해한 미소에 내 마음이 다 푸근해지는 것 같았다.

우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저녁 식사를 끝마쳤다.

***

결국 요하네스는 오늘 에른스트에서 하룻밤을 묵고 가기로 했다. 손님방은 항시 정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문제는 없었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같이 모여 노닥거리다가 늦은 시간에서야 각자의 방으로 쉬러 들어갔다. 하루 일과를 끝낼 시간이었기에 에단도 내 옆을 떠난 참이었다.

조금 피곤했지만 나는 곧바로 잠자리에 들지 않고 소파에 앉아 책을 읽었다.

그러다 문득 시계를 보니 어느덧 자정이 훌쩍 넘어 있었다.

오늘따라 유진은 늦어지는 모양이다. 이 시간까지 그가 귀가하지 않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밖에서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밤의 정적을 뚫고 귓가에 번져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 그리고 막 에른스트의 정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서는 마차를 발견하고 발길을 돌렸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은은한 불빛이 감도는 복도가 나를 반겼다. 다들 잠자리에 들었는지 밖은 조용했다.

층계참으로 향하는 동안 아래층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걸음을 서둘렀다.

"오빠,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와?"

잠시 후 나는 막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 유진을 볼 수 있었다.

"일이 많았어?"

내 목소리를 들은 유진이 고개를 돌렸다. 마침내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내가 아직 깨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한 눈치였다.

유진은 나를 두 눈에 담은 채로 작게 입술을 벌렸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는 아무런 말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기분 탓일까? 어쩐지 유진의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다.

잠시 후, 그가 나를 향해 나지막한 음성을 흘려보냈다.

"왜 안 자고 있어?"

"오빠가 안 오는데 어떻게 자."

나는 마주한 얼굴을 살피며 그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피곤해 보여."

"조금."

잠깐 유진과 내 주위에 침묵이 맴돌았다. 유진이 이대로 들어가 버릴 것 같아서 나는 약간 초조해졌다. 그래서 입을 열어 되는대로 말했다.

"오늘 요한 오빠가 왔어. 손님방에서 하루 자고 가기로 했고."

"그래?"

어스름한 빛에 물든 유진의 얼굴에는 음영이 져 있었다.

"언제 한번 바스티에에 가자. 아주머니랑 아저씨 뵙고 싶어."

"그래, 네가 가고 싶으면."

내가 말할 때마다 굴곡이 거의 없는 건조한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야깃거리는 얼마 안 가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시간이 많이 늦었다. 들어가서 쉬어."

그렇게 말한 뒤, 마침내 유진이 내게서 뒤돌아서려 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유진에게 손을 뻗었다. 손끝에 약간 서늘한 체온이 닿았다. 내게 손을 붙들린 유진이 제자리에 멈추어 섰다.

그의 시선이 소리 없이 내게로 미끄러졌다.

나는 가만히 숨을 죽이고 마주한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하면 유진의 속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마주한 검은 눈동자 안에는 아무런 감정도 내비치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는 내가 붙잡은 손을 먼저 뿌리치지는 않았다.

짧은 침묵 끝에 고요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왜 그래?"

작게 속삭여지는 목소리가 조금 전보다 부드러운 것처럼 느껴졌다. 그럴 리 없겠지만, 마치 내 불안감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아니······. 그냥."

꼭 당신이 나를 피하려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붙잡았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그저 실없이 웃어 보이자 유진이 또 그런 나를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곧 그의 손이 내 머리카락을 얕게 헤집었다.

"빨리 들어가서 자. 피곤하겠다."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다정한 손길이, 귓가에 흘러드는 나지막한 속삭임이 꼭 나를 안심시키려는 것 같았다.

"응, 오빠도 잘 자."

나는 웃는 얼굴로 유진과 헤어졌다.

그를 먼저 보내고 잠시 동안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데, 문득 옆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진 형이 지금 들어온 거야?"

언제 방에서 나왔는지 모를 요하네스였다.

"오빠, 안 잤어?"

약간 놀라서 묻자, 그가 나를 보며 어렴풋이 웃었다. 잠시 후, 내게 다가온 요하네스가 내 어깨 위로 자신이 입고 있던 카디건을 걸쳐 주었다.

나는 그제야 내가 얇은 잠옷 차림으로 방을 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얼굴에서 당혹감이 느껴졌는지 요하네스가 다정하게 말했다.

"추워 보여서."

"방까지 금방인데."

"그래도."

나는 요하네스의 친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어깨 위에 걸쳐진 옷을 조금 더 제대로 여미자 그가 나를 향해 다시금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그럼 잘 자, 하리."

"요한 오빠도 잘 자."

나는 요하네스를 뒤로한 채 걸음을 옮겼다.

밤이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

어찌 된 일인지 그 후 유진은 도통 얼굴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요즘 매일 너무 늦게 들어오는 게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내 물음에 그는 일이 많아서 어쩔 수 없다고 했지만······.

왜인지 나는 그의 말이 약간 의심스러웠다. 그런 상태가 한 달이나 지속되자 의심은 더욱 불거졌다.

"에른스트 양!"

그래서 나는 다이스의 부름으로 황궁에 갈 일이 생겼을 때 유진이 일하는 외궁에 들렀다. 나를 보자마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지난 1년간 가끔이긴 하지만 몇 번 인사차 들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다들 내 얼굴을 알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정말 잘 오셨습니다!"

어라, 그런데 어째서인지 오늘따라 나를 맞아주는 강도가 다른 날보다 센 것 같았다. 그리고 잇따른 그들의 말에 나는 의문을 느끼고 말았다.

"공작님 좀 말려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러다가는 저희들이 말라 죽을 것 같습니다!"

응? 이게 무슨 소리지요?

"오빠를 말리다니요?"

나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서 반문했다. 그러자 그들이 저마다 앞다투어 내게 자신들의 고통에 대해 피력했다.

"공작님께서 꼭 전생에 일하지 못해 죽은 사람처럼 온갖 일거리를 다 긁어모아 가져오시는데, 이게 벌써 며칠째 계속된 야근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야근하면 진짜 말라 죽을지도 몰라요. 마지막으로 정시 퇴근을 한 게 언제인지 이제는 생각도 안 납니다."

으, 으음. 그러십니까? 그것참 안타깝기는 한데······.

나는 난처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유진은 물론이거니와 평소라면 나를 도와주었을 로웬그린이나, 유진의 비서인 알테도 보이지 않았다.

유진이 집에 늦게 들어오기 시작한 게 거의 한 달 전부터인데 혹시 그때부터 이 사람들도 계속 야근을 했던 걸까?

그러나 그의 동생일 뿐인 내가 뭘 안다고 유진에게 그들의 업무에 이러쿵저러쿵 떠들 수 있단 말인가.

"글쎄, 전 업무에 대한 건 잘 모르니까요."

나는 그냥 애매하게 웃으며 들고 있던 것을 그들에게 떠넘겨 주의를 흐트러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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