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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72화 (7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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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 72화

요하네스와의 대화는 언제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이제까지 내가 안고 있던 고민과 불안도 잠시 잊을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침대에 누워 멀거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무거운 눈꺼풀이 반쯤 감겼다. 그러나 이상하게 정신은 맑아 잠이 오지 않았다.

문득 아까 전의 기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마치 나를 밀어내듯이 자신에게서 떼어냈던 유진.

하지만 그 후 그의 태도는 여느 때와 다름이 없었다.

역시 기분 탓인가······?

그러나 그 일이 이상할 정도로 마음에 남아서 나는 그 후로도 한참 더 기억을 되새기다가 잠이 들었다.

***

"하리 양, 어서 와요!"

금요일의 오후, 나는 일전에 초대받았던 티 파티에 참석했다.

오늘의 티 파티는 여자들끼리 모여서 담소를 나누는 자리였다. 그런데 나를 보자마자 라벤더 코르디스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안녕하세요, 코르디스 양."

"아이, 라벤더라고 이름을 불러 달라니까요?"

쿨럭.

그녀는 여전히 나에게 친한 척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이제는 나도 그런 그녀의 생각을 굳이 이해하려 하는 것을 포기했다.

사실 라벤더 코르디스는 내게 무척 호의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나도 그런 그녀를 무턱대고 거부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솔직한 말로, 예전에 나한테 노골적인 적대감을 표출했던 사람을 한 치의 거리낌도 없이 대하기란 어려웠다.

물론 그것은 지난 생의 기억일 뿐, 지금의 그녀는 내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다. 그래도 이 꺼림칙함은 여전히 사라질 줄을 몰랐다.

게다가 지금 라벤더는 진짜 나를 좋아해서 친분을 쌓으려 하는 게 아니었다. 이따금 나를 향해 드러내는 마뜩잖은 눈빛이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라벤더는 나름대로 숨긴다고 하는 것 같았으나 그런 태도에 익숙한 나는 속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에른스트 양."

"오늘 초대해 줘서 고마워요, 포메리안 양."

주위를 한번 둘러본 나는 슬쩍 눈매를 찌푸렸다. 라벤더 코르디스를 보았을 때부터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 이곳에는 로자벨라 벨론티아가 없었다.

라벤더 코르디스가 에른스트 공작을 열렬히 사모해 그 약혼녀인 로자벨라 벨론티아에게 이를 갈고 있다는 사실을 제도 내에 모르는 이가 없었다.

물론 로자벨라는 고고하고 당당한 여인답게 그런 라벤더를 상대조차 하지 않고 무시했다. 그리고 라벤더는 그 사실이 더욱 분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모임이 있을 때마다 로자벨라를 따돌리는 식으로 적개심을 표출하곤 했다.

하지만 로자벨라는 콧방귀를 뀔 뿐, 라벤더의 이런 유치한 행동에 가렵지도 않다는 듯이 반응했다.

그리고 실제로 사교계에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로자벨라 벨론티아 쪽이어서, 만약 그녀가 진지하게 상대한다면 라벤더는 깨갱 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어쨌든, 라벤더 코르디스는 오늘 모임에서 로자벨라를 보지 않아도 되어 기분이 상쾌한 눈치였다.

"하리 양은 바스티에 공자님과 언제 약혼하시나요? 두 분 참 다정하고 보기 좋던데 말이에요."

라벤더 코르디스의 말에 나는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작년부터 그녀는 내가 요하네스와 함께 있을 때면 우리 두 사람의 모습을 유심히 살피곤 했다. 그러더니 저렇게 그와 나의 약혼이 기정사실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었다.

물론 지난 생에 우리는 결혼 직전까지 갔던 사이였다. 비록 그때의 그와 나는 교류가 없는 사이였기 때문에 정략결혼에 가깝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러니 먼 훗날에는 어떻게 될지 몰랐지만, 일단 지금 바스티에와 에른스트 사이에 약혼 이야기는 오가지 않고 있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에른스트 양에게는 다이스 전하가 계시잖아요."

"맞아요. 전하께서 에른스트 양이 다른 공자와 약혼을 하게 그냥 두시겠어요?"

하지만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영애들이 먼저 반박했다.

아이고, 그런데 왜 하필 다이스 얘기를 꺼내는 거니? 그 소문 사실 아니라구요! 그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로자벨라인데.

"다이스 전하께서는 저를 그런 식으로 보고 있지 않으세요. 섣부른 오해로 그분의 이름에 누를 끼치게 될까 염려스럽네요. 바스티에 공자님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그런 얘기를 시시콜콜하게 할 수는 없었다.

영애들은 무어라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였지만 내 단호한 태도에 더 이상 그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지는 못 했다.

"하리 양, 다음에 같이 뱃놀이라도 가지 않을래요? 얼마 전에 저희 별장 청소를 새로 했는데, 주변 경치가 아주 멋지답니다."

그때, 라벤더 코르디스가 또다시 나한테 친한 척을 하며 작업을 걸어왔다. 그러면서 은근히 덧붙이는 말이 이랬다.

"저희끼리 가면 재미없으니 양의 오빠들도 부르면 어때요?"

크으, 속 보인다. 나는 그녀의 권유를 에둘러 거절했다.

"글쎄요, 오빠들이 바빠서 시간이 될지 모르겠네요."

"하리 양이 말하면 당연히 같이 가주겠죠."

하지만 그녀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요, 에른스트 공작님과 공자님들이 양을 끔찍하게 아낀다는 소문이 자자한걸요."

그, 그건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소문이랍니까? 물론 삼 형제가 나한테 많이 신경 써주고 잘해 주는 건 맞지만 끔찍하게 아끼기까지······?

"맞아요, 양이 원하는 건 다 해준다면서요? 특히 둘째 공자님은 간도 쓸개도 다 빼줄 것처럼 군다던데."

"전 공작님이 제일 의외였어요. 지난번 무도회 때 직접 양을 데리러 왔었잖아요? 다이스 전하께서 양을 붙잡고 안 놔주시니까 어찌나 냉정하게 떼어버리시던지."

"셋째 공자님은 어떻고요? 원래 결벽증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 닿는 걸 혐오하는데 양에게만 선뜻 먼저 손을 내밀고 그러신다면서요?"

"게다가 기본적으로 세 분 다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느낌이잖아요. 좀 무섭기도 하고······."

나는 그녀들의 말을 들을수록 기분이 묘해졌다.

왠지 지금 내가 들은 이야기 속에 그녀들의 환상이 첨가되어 있는 것 같은데, 내 착각인가? 그리고 우리 집 진상들이 원래 다른 사람들에게 살가운 면은 없어도 그렇게까지 다가가기 어려운 성격들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런데 에른스트 양만 여러모로 특별 취급이긴 하죠."

"솔직히 세 분의 평소 모습을 보면, 양에게 보이는 태도가 믿기지 않기는 해요."

"뭐, 여동생이라 그런 거겠지만요."

"친동생은 아니긴 하지만······."

영애들은 자기들끼리 그렇게 말하다가 이내 말꼬리를 흐렸다. 그들의 얼굴과 목소리에는 은근한 부러움과 질투가 뒤섞여 있었다. 예전처럼 나를 무시하거나 배척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점은 여전하구나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을 느끼지 못한 사람처럼 방긋 웃으며 말했다.

"다들 모르셔서 그래요. 오빠들이 원래 수줍음이 많고 낯을 많이 가려서 종종 그런 오해를 받곤 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상냥하고 다정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는걸요. 그냥 다른 사람들보다 쑥스러움을 많이 타서 그래요."

나는 호호 웃으며 약을 팔았다. 예전에 유진이 다이스 앞에서 나를 두고 뻥을 칠 때 했던 말을 똑같이 되갚아주는 기분은 산뜻했다.

"푸읍!"

"커흡, 쿨럭!"

내 말을 상상조차 못 했는지, 영애들이 곳곳에서 찻물을 뿜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영애들은 사레가 들리기까지 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런 덩치가 산만 한 다 큰 애들을 두고 수줍음이 많다느니, 낯을 많이 가린다느니, 쑥스러움을 탄다느니 하는 소리를 거침없이 했으니 당황스러울 만도 했다.

"수, 수줍음이 많······."

"그, 그분들이 낯을 많이 가리신다고요?"

"쑥스러움을 타요? 도대체 누가······."

저마다 귀를 의심하는 듯한 어투로 되물었다.

그런 그녀들을 향해 나는 진심으로 통탄하는 듯이 한숨을 폭 내쉬며 말했다.

"오빠들이 이렇게 오해를 많이 받아요.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다들 얼마나 부끄럼쟁이들인지 모르겠다니까요."

"부, 부끄럼쟁······."

내 놀라운 단어 선택에 그들은 아연한 기색이었다.

자고로 웃는 얼굴로 눈치 없는 척을 하는 것은 어디에서나 통하는 법이었다. 게다가 그건 지난 생에서부터의 내 주특기이기도 했고.

영애들은 내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어버버거렸지만 차마 이 이상 무어라 더 말하지도 못했다. 나는 그런 그녀들을 향해 여전히 오빠들이 오해받아 정말 슬프다는 듯이 수심 가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오늘 즐거웠어요, 포메리안 양."

"저야말로 와주셔서 고마워요."

시간이 흘러 모임을 파할 때가 되었다.

나는 오늘 티 파티의 주최자에게 인사한 뒤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하리 양,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봐요. 양하고 꼭 같이 가고 싶어서 그래요, 네?"

"고마워요, 코르디스 양. 오늘 돌아가서 꼭 생각해 볼게요."

으흑, 알겠으니까 이제 좀 그만하고 가라. 물론 라벤더랑 같이 사이좋게 여행을 갈 마음은 없었지만 너무 단칼에 자르는 것도 매정하니 일단 대답은 이렇게 해둬야지.

나는 여지없이 내 옆에 달라붙어 오는 코르디스를 향해 웃으며 마차로 가는 걸음을 서둘렀다.

"어머? 저기 저분들은······!"

그런데 갑자기 앞서 걷던 영애 중 한 명이 무언가를 보고 놀란 듯 목소리를 높였다.

응? 뭐야, 누구를 봤는데 저래? 저택에 손님이라도 왔나?

나도 의아하게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내 앞에 있는 영애에게 가려져 맞은편에 있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두어 걸음 더 앞으로 내디뎠을 때, 매우 익숙한 사람이 내 시야에 뛰어들었다.

"앗, 찾았다!"

나를 발견한 직후, 그가 환히 웃으며 양손을 붕붕 흔들었다. 커다란 음성이 고막을 울리며 파고들었다.

"우오오, 하리야, 오빠 왔다아아아!"

그는 다름 아닌 둘째 진상이었다.

카벨을 보고 나는 저도 모르게 두 눈을 부릅뜨고 말았다.

뭐야! 쟤가 왜 여기에 있어?! 오늘 티 파티는 여자들만 초대받아 온 자리인데? 게다가 오늘은 금요일이잖아! 평일인데 학술원은 어쩌고!

그러다 문득 나는 어젯밤 통신석을 통해 그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외출한다고? 나도 갈래!'

'올 수 있으면 와보던가.'

바로 그 순간 내 동공은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억, 저 멍충이가!

올 수 있으면 와보라고 했다고, 설마 진짜 온 거야?!

"오빠가 여기 왜 있어?"

나는 빠른 걸음으로 둘째 진상에게 다가가 소리 죽여 물었다. 역시나 그는 태평하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네가 오라며!"

"내가 언제, 이 바보야!"

쿠콰콰쾅!

내 말에 둘째 진상은 엄청난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설마 자신이 나한테 혼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이놈아, 그럼 내가 이 상황에서 설마 널 칭찬이라도 해주겠니? 초대도 안 받아놓고 남의 집에 덜컥 들이닥쳤는데?

게다가 지금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포메리안 양의 얼굴을 보니, 미리 기별조차 안 하고 정말 무작정 온 게 분명했다.

"거봐, 내가 그냥 얌전히 집에 가 있자고 했잖아."

다행인지 불행인지 카벨은 혼자 온 것이 아니었다. 그의 뒤에 서 있던 에리히가 혀를 쯧쯧 차며 말했다. 그 직후, 요하네스가 곤혹스러운 얼굴을 한 채 내게 사과했다.

"미안해, 하리. 말리려고 했는데 카벨이 무작정 마차를 출발시켜서 그러지 못했어."

크흑, 아니에요. 죄라면 대책 없이 행동부터 앞서는 카벨과 그런 그의 성격을 알면서도 어젯밤 생각 없이 빈말을 던진 나한테 있지.

"아니야, 카벨 오빠가 우겼으면 아무도 못 말리는 게 당연하지."

나는 골치가 아파져서 다시 한번 둘째 진상을 찌릿 째려보았다. 그러자 카벨이 마치 하늘이 두 쪽 나기라도 한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포메리안 양.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라셨을 텐데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금일의 무례는 차후 정식으로 다시 사과드리겠습니다."

"아, 아니에요. 공자님들이라면 언제든 환영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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