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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69화 (69/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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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 69화

하리 에른스트가 바스티에에 머무는 동안 바깥출입을 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간의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갔다.

하지만 바스티에의 사용인들과 그녀의 호위 기사의 입에서 나온 말이나, 또 이따금 외출할 때 잠깐씩 보이는 모습을 통해 사람들의 인식은 '하리 에른스트가 사실은 괜찮은 아가씨가 아닐까' 하는 쪽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녀의 이름이 학술원에서부터 퍼져 나갔다.

하리 에른스트가 루이제 바스티에와 함께 오빠들이 재학 중인 학술원에 방문한 것이었다.

그 후 카벨 에른스트가 자신의 여동생에게 반한 남학생들을 곤죽이 되도록 패고 다니느라 유급을 당할 정도의 벌점을 쌓았다는 것은 딱히 비밀도 아니었다.

곧 하리 에른스트는 학술원 내에서 다른 별명으로 유명해졌다.

이름하야 미친개 조련사!

더러운 성질머리로 교수들마저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만드는 카벨 에른스트가 제 여동생의 말에는 껌뻑 죽는다는 사실에 모두가 기함했다.

사실 그는 졸업과 동시에 황실의 제2기사단에 소속되는 것으로 내정되어 있었다. 재수는 없지만 솔직히 카벨의 실력은 아를란타 내에서도 손꼽을 만큼 출중했다.

하지만 역시 그 개 같은 성질머리와 유급의 위기를 겪을 정도로 바닥을 치는 성적이 카벨의 치명적인 문제점이었다.

그런 그가 여동생의 말 한 마디에 얌전히 앉아 공부를 하고, 또 학생들을 쥐어패는 것도 줄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물론 완전히 그만둔 것은 아니고 대놓고 패는 것에서 몰래 패는 것으로 옮겨간 것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학생들은 경악했다).

또 안 어울리게 부드러워진 말투는 어떻고?

물론 그것은 카벨 에른스트 기준의 '부드러운 말투'이긴 했다.

하지만 예전이라면······.

"이 개XX가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네 그 개X 만한 X를 XX해서 XXX한 다음에 네 X 같은 아가리에 쳐 넣어줄까? 꿇어! 뒤지게 쳐 맞기 싫으면!"

······이라고 말했을 것을,

"죽고 싶냐, 이 개······ 구리 같은 새끼야. 내 동생이 폭력적인 오빠는 싫다는 소리만 안 했어도 너 같은 새끼는 벌써 뒤진 목숨이었어, 알아? 아오, 시원하게 욕을 못 하니까 개 답답하네. 시X, 안 되겠다, 너 한 대만 맞아라. 그러니까 왜 내 눈앞에서 알짱거려서 사람을 빡치게 하고 지랄이야. 어디 가서 나한테 맞았다고 소문내면 그땐 진짜 쳐 발릴 줄 알아!"

······라고 순화해 말하기 시작한 것은 믿을 수 없는 변화였다.

크흠, 일단은 저 심의 불가의 X의 숫자부터 엄청나게 줄어들었지 않은가. 게다가 예전 같으면 눈앞에 걸리적거리는 사람을 무작정 패고 말았을 텐데, 이제는 적당히 표가 잘 안 날 정도로만 머리를 써서 때리기 시작했다.

어쨌든, 하리 에른스트가 카벨의 형인 유진에 이어 그를 제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라는 사실은 매우 놀라운 것이었다.

하지만 하리 에른스트가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카젠타 홀에서 열린 연회 이후부터였다.

그녀가 공식적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날, 연회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이 그녀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흘러넘치는 그 기품과 우아함, 그리고 아름다움.

바스티에의 후계자인 요하네스와 함께 연회장 안에 들어선 하리 에른스트는 귀족보다 더욱 귀족 같았다. 그녀를 보는 순간 원래의 출신 같은 건 조금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누구나 기가 죽고 말 정도로 화려한 카젠타 홀의 중심에서도 그녀는 두드러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분명 이런 자리에 참석한 것은 처음일 텐데도, 하리 에른스트는 조금도 긴장하지 않은 듯 여유마저 느껴지는 얼굴로 미소 지었다.

"그대를 황성에 초대하겠습니다. 따분한 궁 생활을 달래줄 내 말벗이 되어주었으면 좋겠군요."

놀랍게도, 황손 다이스마저 그녀에게 지대한 관심을 표했다.

그 후 다이스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직접 에른스트에 방문하는 것조차 망설이지 않았다. 하리 에른스트는 그에게 직접 초대되어 황궁에서 시간을 보낸 첫 손님이 되었다.

그녀가 황손의 마음까지 훔쳐 냈다는 소문이 아를란타 전역에 널리 퍼졌다. 두 사람은 그 후 여러 장소에 함께 모습을 비추며 소문에 확신을 더해 주었다.

마치 동화책 속의 유리 구두를 신은 소녀처럼 하리 에른스트는 순식간에 소문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차기 황제가 될 황손 다이스의 친애하는 벗으로, 또 아를란타의 귀족들을 호령하는 에른스트 공작의 여동생으로, 그리고 또 만인을 매료시키는 고귀한 아름다움을 지닌 소녀로.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지난 시간 동안 앳된 티를 벗어던진 하리 에른스트는 이제 누구나 한 번쯤은 저절로 시선을 멈추고 말 정도로 매혹적인 소녀가 되어 있었다.

그녀의 자색 눈동자가 자신을 스칠 때면 누구나 한순간 숨 쉬는 것을 잊고 말 정도였다.

이제 그녀의 출신 성분 같은 것은 아무런 흠조차 되지 않았다. 누구보다 낮은 곳에 있던 소녀는 이제 그 누구보다 높은 자리까지 올라 혼자서도 고고하게 빛나고 있었으니까.

***

"휴버트, 오늘 중에 바스티에로 이 편지를 보낼 수 있을까요?"

오전 10시 무렵, 위층에서 내려온 하리가 집사 휴버트를 찾았다. 그는 앞으로 내밀어진 봉투를 받으며 입을 열었다.

"일전에 말씀하셨던 파트너 때문입니까?"

"아, 기억하고 있었네요?"

휴버트가 자신의 일을 세심히 기억하고 있는 사실이 기꺼운지 하리가 해사하게 웃었다.

그녀는 얼마 후 있을 연회 때 동반할 파트너 문제로 고민했었다. 물론 그것은 함께 갈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되는 이유 때문이었다.

휴버트가 머리를 쓰다듬어줄 정도로 어렸던 아이는 어느덧 완연한 숙녀로 자라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파티가 열릴 때마다 앞다투어 초대장을 받고, 또 그녀에게 파트너를 청하는 편지도 매일 테이블 위에 산처럼 쌓일 정도였다.

"그날이라면 공작님께 부탁드려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아가씨의 청이라면 공작님도 흔쾌히 반기실 겁니다."

"하지만 그 파티는 로자벨라 양도 참석할 예정이던걸요."

휴버트의 말에 하리는 설핏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오빠는 저보다 약혼녀를 신경 써야죠."

다정하고 상냥한 에른스트의 아가씨는 언제나 지금처럼 주위 사람들을 두루 살폈다. 그러니 아름답고 마음씨까지 고운 그녀에게 시선과 마음을 빼앗기는 사람이 많은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다.

휴버트는 그녀의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듯, 한 차례 고개를 숙여 보인 뒤 편지를 들고 물러났다.

그 후 하리는 고개를 들어 층계참에 시선을 두었다.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 허리춤까지 내려온 은발이 흔들렸다.

그녀의 관심이 향하는 곳은 위층에 있는 집무실이었다. 그곳에는 유진이 있었다.

오늘은 모처럼 황궁에 등청하지 않고 저택에 있는 그였지만 그렇다 해서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하리는 밤새 집무실의 불이 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오늘 아침 일찍 사용인에게 전해 들었다.

그 이후 유진을 찾아간 그녀는 결국 집무실의 문을 두드리지 못했다. 통신석을 통해 대화 중인 듯, 문 안쪽에서 작은 말소리가 새어 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그 내용까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언뜻 들리는 말투로 보아 꽤나 진지한 이야기 중인 것 같았다.

그래서 하리는 유진에게 아침 식사를 하러 내려오라는 말을 전하지 못하고 문 앞을 떠나야만 했다.

그래도 점심까지 거르지는 못 하게 해야지.

하리는 그렇게 혼자 결심하고 걸음을 옮겼다.

해가 뜬 지 한참이 지나서 그런지 사용인들이 저택 안팎으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리는 마주치는 이들과 짧은 인사를 나누며 정원으로 향했다.

오늘은 에단에게도 휴가를 준 참이었기에 그녀는 혼자였다. 그러고 보니 어제저녁에 미리 유진에게 말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오늘은 오전 내내 유진을 보기 힘들 것 같았으니.

그렇게 스스로의 선견지명을 칭찬하며 얼마간 더 걷자 잘 가꿔진 정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초여름을 맞아 곳곳에 싱그러운 풀 내음이 가득했다.

가느다란 발목이 걸음을 따라 하얀 치맛자락 아래로 간간이 드러났다. 주변에 피어난 탐스러운 장미는 강렬한 붉은빛이었다.

정원을 거니는 사람은 그 색채에 대비되어 더욱 새하얀 빛을 발하고 있었다. 허리춤에서 찰랑이는 찬연한 은발도, 이제는 아름답게 성장한 몸을 감싼 드레스도, 햇빛 아래에 드러난 피부도 모두 티 한 점 없이 새하얗다.

그런 만큼 꽃잎처럼 붉게 물든 입술과 오묘한 빛을 발하는 자색 눈동자가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묘한 분위기가 그녀의 주변에 감돌고 있었다.

곧 우아한 느낌을 풍기는 손길이 활짝 피어난 장미꽃 위에 닿았다. 요요한 보라색 눈동자가 살짝 아래로 내리깔리며 우수에 젖은 분위기를 풍겼다.

흐음. 얼마 전에 황궁에 다이스를 만나러 가서 먹었던 장미꽃 잼이 꽤 맛있었지. 옆 나라인 오벨리아에서 건너온 방식이라고 했던가? 우리 집 주방장에게도 한번 만들어보라고 슬쩍 말해볼까?

어차피 잼을 만드는 방식은 다 비슷하니까 따로 알아둬야 할 거창한 레시피는 없지 않을까 싶은데.

하리는 그런 심심한 생각을 하며 식재료를 보는 눈빛으로 탐스러운 장미를 면밀히 살폈다.

그러다 문득 그녀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다.

장미꽃에서 눈길을 떼고 고개를 들자, 곧 저만치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사람이 시야에 비쳤다.

햇빛 아래에서 약간 밝은 색으로 빛나는 갈색 머리카락이 실바람에 모양을 약간 헝클어뜨렸다. 팔꿈치까지 걷힌 하얀 셔츠의 소매 아래로 단단한 팔이 드러나 보였다. 이제 막 집무실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유진이었다.

그를 발견한 순간, 하리의 얼굴에 말간 미소가 걸렸다.

"유진 오빠."

아직 오전이라 해도 초여름의 날씨라 확실히 햇빛이 강하긴 강한지, 유진은 약간이 눈이 부신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하리가 반갑게 그의 이름을 부르며 웃어 보였을 때, 어째서인지 그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문득 유진이 한 발짝 뒷걸음질 쳤다.

분명 그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그녀에게 있을 터인데,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오빠?"

의아함을 담은 물음이 꽃향기 속에 번졌다. 하지만 유진은 그런 그녀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것처럼 굳은 얼굴을 한 채 천천히 걸음을 뒤로 옮기다가······.

이윽고 하리를 정원에 남기고 먼저 자리를 떠났다.

혼자가 된 그녀의 입술이 작게 달싹여졌다.

주변에 그윽한 장미향이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하늘 꼭대기에 걸린 태양이 눈부신 빛을 주위에 흩뿌렸다.

초여름. 새로이 맞이한 계절과 함께 무언가가 변하려 하고 있었다.

21. 짝사랑

"그럼 다녀올게요, 휴버트."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하리 아가씨."

나는 집사 휴버트에게 외출 소식을 알린 뒤 문을 나섰다. 요즘 들어 내 외출이 잦아진 탓인지 그도 익숙하게 나를 배웅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황궁이었다.

본래 약속된 시간은 아직 여유가 있었지만 나는 일찌감치 마차에 올랐다. 뒤따라오던 에단이 그런 내 손을 붙잡아주었다.

"고마워요, 비숍 경."

귀찮은 내색도 없이 꼬박꼬박 동행해 주는 것이 고마워 인사하자 그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크으, 이런 면은 참 일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그, 그래도 예전보다는 많이 친해진 거 아닌가? 겉으로 티가 안 나서 그렇지 심적인 거리는 전보다 좁혀진 게 확실히 느껴진단 말이지? 나 혼자만의 착각은 아닐 거야. 응, 그럴 거야······.

나는 혼자서 눈물을 삼키며 마차에 몸을 실었다.

황궁으로 이동하는 길도 이제는 낯설지 않았다. 처음에는 역시 좀 긴장했었지만 이제는 한두 번 가본 곳도 아니다 보니 적응이 되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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