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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68화 (68/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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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 68화

다이스가 한발 양보했다. 여전히 해사한 얼굴에서는 기분 상한 티가 조금도 나지 않았다.

그가 유진을 포함한 우리 가문에 호의적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인 듯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유진의 얼굴은 싸늘했다.

나는 그가 또다시 황손의 권유를 단칼에 거절하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카벨이 선수를 쳤다.

"안타깝게도 제 동생은 너무 인기가 많아서 제발 얼굴 한 번만 보여 달라고 사정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요. 그러니 제 동생을 정 만나고 싶으시다면 최소한 오늘부터 일 년은 기다려야 할······ 어억!"

으앗, 잠깐 단속을 게을리한 사이에 이놈이 대형 사고를 치려고! 나는 또다시 카벨의 발을 콱 밟으며 웃었다.

아무래도 이쯤 해서 상황을 빨리 정리해야 할 것 같아!

"하해와 같은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전하. 그럼 다시 뵙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유진은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 된다고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자리에서 몇 번이나 황손의 청을 거절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을 것 같았다.

내 대답에 유진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내 의사가 그렇다면 존중하겠다는 듯이 이번에 그는 침묵했다.

"그럼 나중에 에른스트로 만나러 가도록 하죠."

"황공합니다."

다이스는 나를 향해 또 한 번 흥미 가득한 눈빛을 보내더니, 곧이어 자리를 떠났다.

***

다이스의 폭탄선언 때문인지 그 후 주위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려서 연회 내내 정신이 없었다.

"난 벨론티아에 들렀다 갈게."

연회가 파한 후, 유진은 로자벨라를 에스코트하며 먼저 자리를 떠났다.

"하리, 그럼 나중에 만나. 오늘은 들어가서 푹 쉬고. 미리 생일 축하해."

요하네스와 루이제는 우리에게 인사를 남긴 뒤 함께 바스티에로 돌아갔다. 그 후 나도 카벨과 에리히와 함께 마차에 올랐다.

"왜 만나겠다고 했어? 그냥 싫다고 뻥 차버리지!"

마차에 오르기 무섭게 카벨이 불만 어린 목소리로 원성을 터뜨렸다. 그래도 내가 주지시킨 대로 연회장 안에서는 그 이상 소란을 피우지 않아 다행이었다.

"꼭 내가 있을 때 불러야 돼! 알겠지?!"

"오빠는 주말에만 집에 오잖아."

"그깟 수업, 하루쯤 안 들어도 돼!"

"형 벌점 지금 간당간당한 수준일 텐데? 어쩔 수 없지, 날짜 정해지면 나한테 편지 보내. 내가 특별히 시간 내 볼 테니까."

"나도, 나도! 나한테도 꼭 편지 보내! 그깟 벌점 따위, 내가 알 바 아냐!"

"형, 진짜 유급당하고 싶은 거야? 위기의식 좀 가져."

아이고, 피곤해라.

나는 두 형제의 등쌀에 이마를 짚으며 등받이 깊숙이 몸을 기댔다.

오늘 너무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카젠타 홀에서 연회를 연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심지어 황손에게 말벗이 되어달라는 청을 받기까지 하다니.

나는 흥미로 반짝이던 소년의 눈동자를 떠올렸다. 설마 내게 황족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눌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연회장에서 있었던 일이 어쩐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나는 조금 전 내 귀를 스쳐 지나간 말을 상기해냈다.

"잠깐, 그런데 카벨 오빠.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벌점이 간당간당한 수준이라는 거야?"

"어, 어, 아니······. 따, 딱히 그렇지는 않아! 에리히가 잘못 안 거야!"

"내가 뭘 잘못 알아? 입학식 날부터 누적된 형의 벌점이 얼마나 대단한지 지금 내가 읊어줘?"

카벨이 뻘뻘거리며 변명했지만 이미 거짓말인 게 두 눈에 훤히 보였다.

그 후 집까지 돌아가는 길은 둘째 진상을 추궁하는 자리가 되었다.

***

따단.

며칠 후 나는 피아노 방에 있었다. 어릴 때의 놀이방을 완전히 개조한 이곳은 이제 거의 나 혼자만의 공간이라 해도 좋았다.

따단딴단.

맑은 피아노 음이 오후의 햇빛 속을 마음대로 유영하며 헤엄쳤다. 유진이 준 피아노는 햇빛을 받아 더욱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크으, 내 피아노. 너무나 예쁜 것. 소리도 맑고 깨끗하고, 어쩜 이렇게 내 취향에 딱 맞는다지요?

나는 한참 심취해서 건반을 두드렸다.

지금 내가 연주하고 있는 곡은 고양이 왈츠였다.

혹시 지금 내가 이 대단한 피아노로 고작 고양이 왈츠나 연주한다고 비웃고 싶나? 흥, 하지만 상관없어. 여긴 나밖에 없으니까.

따단단딴. 따단!

나는 양껏 고양이 왈츠를 친 뒤 긴 숨을 내쉬며 뻐근한 손을 내렸다.

아이고, 힘들다. 오늘 갑자기 피아노가 치고 싶어서 너무 열심히 연주해버렸네.

"휴우."

나는 잠시 동안 가만히 앉아 있다가 이윽고 건반 위에 그대로 엎드렸다. 내 팔에 눌린 건반에서 뒤섞인 음이 토해져 나왔다.

나는 그 상태로 얕은 숨을 내쉬며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문득 복도를 걸어오는 작은 발걸음 소리가 조용한 공간 속에 울렸다.

똑똑.

"하리."

문밖에서 새어드는 나지막한 목소리에 나는 건반 위에 기대고 있던 상체를 일으켰다.

"들어와."

창밖을 보니 어느덧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유진이 안으로 들어섰다. 지금 막 귀가한 것이 아닌지, 그는 가벼운 셔츠 차림을 하고 있었다.

"오늘 일찍 왔네."

"네 생일이잖아."

그 말에 기분이 좋아져서 나는 조금 웃었다. 유진은 그런 나를 내려다보다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를 내밀었다.

"뭐야?"

"황궁에서 온 서신."

아, 다이스 전하가 보낸 건가? 에른스트에 방문하겠다는 이야기를 꺼낸 게 바로 며칠 전인데 빠르기도 하지.

나는 손을 내밀어 유진이 내민 봉투를 잡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빼내 가지 못했다. 유진이 서신을 든 손에 지그시 힘을 준 탓이었다.

내가 유진을 올려다보자 그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만약 싫으면 억지로 수긍할 필요 없어. 누구도 너한테 강요 못 해."

그래, 그럴 것 같긴 하더라. 황손이 직접 사람들 앞에서 말한 건데 그 자리에서 막 단칼에 거절하고 말이야.

어쩐지 조금 웃음이 나와서 나는 눈매를 약간 찡그리며 대답했다.

"뭐, 싫은 건 아니야. 혹시 내가 실수할까 봐 그게 걱정이긴 하지만."

크흑, 하지만 난 평범한 인간이라 간이 그렇게 크지 않아서······. 솔직히 진짜 싫었어도 그 자리에서는 거절 못 했을 거야.

마침내 유진의 손에서 서서히 힘이 풀렸다. 나는 이번에야말로 그의 손에서 다이스가 보낸 서신을 건네받았다.

"그런 거라면, 설령 네가 무언가를 실수한다 해도 책잡을 사람은 없으니까 부담 갖지 마."

어제 연회장의 분위기를 생각해 보면 확실히 내가 아무리 큰 실수를 저지른다 해도 쉽게 그것을 책잡을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문득 한 달 전 내 손에 뜨거운 물을 부었던 하녀를 유진이 얼마나 냉정히 대했었는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유진이 바로 그날 그녀를 해고한 사실을 이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한테는 어떤 실수를 저질러도 상관없다고 말해주는구나.

"응, 그럴게."

이런 사실에 내심 남모르게 기뻐하고 있는 나는 나쁜 사람인 걸까?

"오빠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굉장히 믿음직스럽네."

하지만 사실은 예전부터 줄곧 그랬던 것도 같다. 다른 이에게는 한없이 차갑고 무심해지는 사람이 내 앞에서는 그 냉기를 한풀 꺾고 온기를 담은 눈으로 나를 봐주는 것이 좋았다.

"빈말이 아니야."

"알아."

"알면 좀 더 의지해도 돼."

허영심에 가까운 우월감 같은 감정은 아니었다. 단지 나는 다른 누구도 쉽게 침범하지 못하는 그 단단한 벽 안에 비록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내가 속해 있다는 그 결속감이 좋았던 것 같다.

"그래, 내 머리 쓰다듬게 허락해 줄게."

나는 유진을 올려다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동문서답에 가까운 내 말에 유진이 슬쩍 눈썹을 추켜올렸다. 나는 너니까 특별히 허락해 준다는 듯이 새치름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어딘가 한숨 같은 웃음이 귓가를 간질인 직후, 내 머리 위에 온기가 내려앉았다.

"다이스 전하가 어떤 사람인지 얘기해 줘봐."

나는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을 느끼며 말했다. 그러자 나직한 음성이 뒤를 이었다.

"나이는 너보다 한 살이 더 많고, 세간에서 말하는 대로 차기 황제로 적합한 인물이지만 아직 완전히 성장한 건 아니야."

현 황태자인 다이스의 아버지는 성품이 온화하고 인자하나 다소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대범하지 못해 일국을 이끌 황제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인식이 박혀 있었다.

그래서 노쇠한 현 황제의 서거 후 황태자 대신 황손이 곧바로 제위에 오를 것이라 예상하는 이가 많았다.

"제법 어린애 같은 구석이 있어서 가끔은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 어려울 때가 있어. 이번처럼."

그리고 실제로 10년 뒤 차기 황제가 될 것은 황손 다이스였다. 나는 기억 속에 화려하게 남아 있는 그의 계승식을 떠올렸다.

"그래도 에른스트에 대한 호의는 진심이니 아마 너를 따로 만나려 한 것도 다른 꿍꿍이가 있어서가 아니라 친분을 쌓고 싶어서일 거야."

그런 그가 우리에게 큰 호의를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었다. 물론 전 에른스트 부부가 그런 식으로 죽은 것은 아직까지도 가슴에 아프게 맺힌 일이었지만······.

"그는 우리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하니 네게도 함부로 굴지 못할 테지. 너도 그냥 적당히 상대해 준다고 생각하면 돼."

유진은 그렇게 말하며 아무 걱정 말라는 듯이 내 머리를 부드럽게 헤집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남아 있던 약간의 불안한 마음이 귓가에 스미는 그의 목소리에 떠밀려 공기 중에 흐트러졌다.

나도 이 사람에게 의지가 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남몰래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그를 향해 웃어 보였다.

20.5. 하리 에른스트

현재 아를란타의 제도를 가장 뜨겁게 달구는 이름은 바로 '하리 에른스트'였다.

그녀가 누구이던가.

현 에른스트 공작의 누이, 그러나 길거리에서 꽃을 팔던 소녀였던 그녀가 에른스트의 양녀가 되어 신분 상승을 한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아를란타 내에 아무도 없었다.

아를란타에서 둘째라면 서러울 권세를 지닌 에른스트 공작가의 일이었기에 그 당시의 제도는 더욱 떠들썩해질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은 하리 에른스트에 대한 꺼림칙한 소문이 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출신조차 모를 뒷골목의 아이가 하루아침에 귀족이 된 것이 아닌가. 에른스트의 비호로 처음 2년간은 쉬쉬했으나 그녀를 양녀로 들였던 전 에른스트 공작 부부가 비명횡사하며 판도는 달라졌다.

특히 전 에른스트 공작의 누이인 레놀드 부인과 하리 에른스트의 가정교사인 멤마 부인의 증언이 은연중에 퍼져 나갔다.

하리 에른스트는 과연 비천한 출신답게 예절의 '예' 자도 모르고 마치 자신이 태어났을 때부터 귀족이기라도 했던 것처럼 끝 모르고 오만방자하다고.

하지만 그러한 소문은 레놀드 후작가가 실각되고 마침내는 그 이름마저 아를란타 내에서 완전히 지워진 후 덩달아 잠잠히 가라앉았다.

게다가 자세한 내막은 모르나 하리 에른스트의 전 가정교사였던 멤마 부인이 바스티에 부인에게 큰 수치를 당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녀가 가정교사로서 해서는 안 될 아주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그 직후 멤마 부인이 소문을 인정이라도 하듯 낙향했기에 사람들은 평소 그녀의 행동거지를 두고 수군거렸다.

그 후 하리 에른스트의 새로운 가정교사가 된 플로라 부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지금까지와 완전히 다른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리 에른스트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우치고, 또 놀라울 정도로 다재다능하여 다도, 악기, 자수, 예절을 포함한 레이디의 소양을 이미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기타 학문에도 발군의 실력을 자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언제나 스스로를 뽐내는 일 없이 겸손하고 성격 또한 다정다감하여 누구나 한 번이라도 직접 그녀를 본다면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고 하니, 사람들의 호기심이 나날이 커져 가는 것도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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