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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58화 (58/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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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 58화

"휴버트."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문득 이상한 점을 깨닫고 휴버트를 찾았다. 당연히 내 방문 앞에 대기 중이던 에단도 나를 따라왔다.

그는 내가 직접 자신을 찾아오자 조금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노련한 집사답게 곧 그는 평소와 같은 단정한 모습을 하고 내게 말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하리 아가씨."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무엇이든 물어보시지요."

"계속 제 시중을 들어주던 하녀 중에 사라라고 있는데, 며칠 전부터 안 보이네요."

사라는 얼마 전 유진이 보는 앞에서 내 손에 뜨거운 물을 붓는 실수를 한 적이 있는 하녀였다.

그날 그녀는 꽤 놀라고 당황했는지 그 후로도 내 앞에만 서면 안절부절못했다. 내가 몇 번이나 괜찮다고 말하고 나서야 그녀는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오늘 문득 생각해 보니, 그날 이후로 그녀를 저택 내에서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그녀의 이름을 입 밖에 낸 바로 그 순간, 주위의 공기가 어째서인지 약간 변한 느낌이었다. 나는 기민하게 그런 낌새를 눈치챘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마주한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휴버트는 방금 전 내가 느낀 기이한 분위기가 착각이라는 것처럼, 동요 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사라 양이라면 잠시 고향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머니의 병환 때문에 옆에서 간호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아, 어머니의 병세가 중한가요?"

"걱정하실 정도는 아닙니다. 고향에서의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다시 돌아올 예정이니 마음 쓰실 필요 없습니다."

그는 여전히 내게 정중하고 친절했지만, 지금의 목소리는 어딘가 평소와 약간 달랐다. 아마 어지간히 예민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런 것을 눈치채지 못했을 확률이 높았다. 휴버트는 마치 이 이상 내가 묻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요, 병세가 중하지 않다니 다행이네요."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어 보인 뒤 몸을 돌렸다.

그때 드러난 내 얼굴을 에단이 조용히 살피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속내를 감출 줄 아는 것은 그들뿐만이 아니다. 나는 궁금증이 해소되어 마음이 가벼워졌다는 듯이 미소 띤 얼굴로 뒤돌아섰다.

에단이 계속해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지 등 뒤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는 내게서 이상한 점을 찾지 못한 것 같았다. 곧 내 등 뒤에 못 박혀 있던 시선이 떨어져 나갔다.

그렇게 복도를 걷다가 나는 문득 창밖을 응시했다. 때마침 정문으로 마차가 한 대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유진이 출퇴근을 할 때 매일 보는 마차였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자리에 가만히 서서 창밖의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마차 안에서 내린 유진이 저택을 향해 걸어오는 것을 보며 비로소 멈추었던 발길을 다시 뗐다.

"오빠."

나는 웃는 얼굴로 유진을 맞아주었다.

"어서 와."

서리 낀 얼음처럼 냉랭하던 유진의 얼굴이 서서히 변해 가는 모습은 언제 봐도 인상적이었다. 저택의 문턱을 넘어 그를 반겨 주는 나를 시야에 담을 때면, 차가운 겨울 같던 그의 분위기는 언제나 은은한 봄 같아지곤 했다.

내 인사에 유진도 입을 열었다.

"다녀왔어."

마치 하나의 의식처럼 우리는 매일 같은 인사를 주고받았다.

"오늘 에리히가 집에 왔어."

"그래? 카벨은?"

"카벨 오빠는 보충수업 때문에 못 온대. 시험 기간이라 모처럼 공부하려나 봐."

"그래······."

나는 평소처럼 밝게 말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유진이 그런 내 얼굴을 잠시 동안 말없이 내려다보는 것이었다.

혹시 지금 내 표정이 이상한 걸까? 그런 의심이 생기자 얼굴에 지어 보이고 있던 미소가 순간적으로 흔들릴 뻔했다.

"형."

하지만 뒤이어 에리히가 위층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나는 자연스럽게 유진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릴 수 있었다.

"생각보다 일찍 왔네?"

"넌 언제 왔어?"

"점심때."

"일찍 일어났겠네."

"난 원래 평소에도 일찍 일어나. 딱히 오늘 집에 빨리 오려고 일부러 신경 써서 일찍 일어난 건 아니라고."

유진이 별말을 한 것도 아닌데 에리히는 괜히 찔리는 게 있는 사람처럼 발끈해서 말했다. 유진도 나와 같은 것을 느꼈는지 계단을 내려오는 동생을 향해 오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데 완전히 계단을 내려온 에리히가 나를 보며 돌연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표정이 왜 그래?"

나한테 하는 소리인 줄 알고 한순간 움찔했으나 에리히가 보고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호위 기사 씨, 내가 웃겨?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어?"

내 뒤에 서 있던 에단이 그의 말에 두 눈을 깜빡였다.

"제 얼굴 말입니까?"

"그래, 방금 웃었잖아."

내가 봤을 때는 에리히가 괜히 시비를 거는 것 같았다.

지금 본 에단은 여느 때와 같은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어진 에리히의 말에 뜻밖에도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웃지 않았습니다."

"아니긴 뭘 아니야, 방금 나 보고 웃었잖아."

"잘못 보신 겁니다."

에단이 거듭 강하게 부정하자 에리히는 짜증이 난 기색이었다. 에리히는 원래 성격이 좀 그렇다 쳐도, 에단이 의외로 날 선 반응을 보이는 것이 희한했다.

"그만해."

그때,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던 유진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에리히. 어차피 웃은 게 맞다고 말해도 기분 나빠할 거잖아."

그의 말이 맞았다. 설령 에단이 방금 전 진짜 웃은 게 맞다고 인정해도 에리히는 불쾌해할 것이 분명했다. 유진의 말을 들은 에리히의 얼굴이 슬쩍 구겨졌다. 하지만 그는 에단에게 더 이상 무어라 하지는 않았다.

"그래, 오빠도 왔으니까 그만 가자."

나는 유진과 에리히의 팔을 한 짝씩 붙잡고 1층의 로비를 벗어났다.

"요즘 호위는 거짓말 잘하는 순으로 뽑기라도 하나 봐? 내 눈이 삔 것도 아닌데 아니라고 우기면 다인 줄 알아?"

에리히가 들으란 듯이 투덜거렸지만 에단은 묵묵히 입을 다문 채 그런 우리의 뒤를 따랐다.

그날 밤, 나는 내 방에 있는 소파에 앉아 무언가를 생각했다. 어쩐지 머릿속이 조금 복잡했다. 어쩌면 괜한 기우일 수도 있지만, 아까 전 휴버트와 나눈 대화가 마음에 걸렸다.

잠시 후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테이블 위로 손을 뻗었다.

그곳에는 오늘도 수북이 쌓인 편지와 초대장이 있었다. 나는 봉투를 들고 뒷면에 적힌 발신인을 대충 눈으로 훑어보았다. 유진이 나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으니 지금껏 받은 편지들을 천천히 살피고 앞으로의 일을 결정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그 사이에서 발견한 이름에 손을 멈추었다.

"아."

내 입에서 미처 삼키지 못한 작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금테가 둘린 하얀 봉투에 정갈한 글씨체로 적힌 익숙한 이름.

유진의 약혼녀인 로자벨라 벨론티아의 초대장이었다.

15.5 그 오빠들

"왜 피아노를 사준 거야?"

에리히는 앞에 있는 책장을 눈으로 훑으며 등 뒤에 있는 사람을 향해 지나가듯이 물었다.

지금 그가 있는 곳은 유진의 집무실이었다.

저택 내에 있는 이 집무실은 원래 에른스트의 가주들이 대대로 사용하던 곳이었다. 그래서 구석구석을 잘 살피면 죽은 그들의 아버지인 전대 에른스트 공작의 흔적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하리가 선물로 받았을 때 제일 좋아할 만한 게 뭔지, 기껏 힌트까지 줬더니만."

에리히는 아버지의 취향으로 보이는 작은 은 세공품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말했다.

지난겨울 그는 하리의 선물을 고민하는 형에게 그녀가 좋아할 만한 것을 알려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유진은 에리히가 기껏 말해준 것 대신 다른 선물을 준비했다.

"하리가 갖기에는 너무 위험하니까."

에리히의 물음에 유진이 나직하게 대답했다.

뒤를 돌아보자, 장식장에서 술병을 꺼내 드는 유진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형뿐이야. 우리가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에리히는 여느 때 같은 형의 반응에 미간을 찌푸리다가, 이윽고 그를 도발하듯이 덧붙였다.

"그럼 나중에 내가 사 주지, 뭐."

"안 돼."

유진은 그의 도발에 넘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에리히를 향한 유진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엄격했다. 그런 태도에 오히려 자극받은 것은 에리히였다.

"내가 형 말을 안 들으면 어쩔 건데?"

"글쎄, 너한테 화가 나겠지."

어른이 된 유진은 정확히 형언하기 어려운 어떤 여유로움을 온몸에 두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분명 그들이 헤어졌던 14살의 유진에게는 없던 것이었다.

물론 그때도 그는 동생들에게 늘 어른스러운 모습만 보이긴 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당시의 유진은 항상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쫓기듯이 남몰래 조급해했고, 그에게서 풍기던 분위기는 어딘가 불안정하고 위태로웠다.

에리히는 유리잔에 술을 따르는 유진을 보며 잠시 침묵했다.

자신에게 화를 내는 형이라니, 어쩐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어릴 때 그가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유진은 그를 타일렀을지언정 언성을 높이며 화를 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에리히가 생각했을 때, 지금 유진이 한 말은 진심이었다. 그러니 만약 에리히가 그의 뜻을 거스르고 제 마음대로 행동한다면 이번에야말로 형의 분노를 두 눈으로 목격할 가능성이 컸다.

물론 겪어본 적도 없는 형의 분노가 두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는 모처럼 좋아 보이는 유진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에리히는 유진이 있는 테이블로 다가가 그 맞은편에 있는 의자에 비스듬히 걸터앉았다.

"그 애, 아까 보니까 손 다쳤더라."

주말인 오늘, 그는 아침 일찍 학술원을 떠나서 집으로 돌아온 참이었다. 그런데 그를 맞아주던 하리의 손에는 불그스름한 화상 자국이 옅게 남아 있었다.

"집사한테 들었는데 하녀가 뜨거운 물을 손에 부었다며? 어떻게 하면 그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지?"

에리히가 삐뚜름하게 입꼬리를 비틀며 빈정거렸다.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초보도 아니고, 에른스트에서 몇 년이나 일했다고 하는 하녀가 그런 일을 벌였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쩌다 한 실수니까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지 마."

하지만 유진은 에리히의 말에 동조하는 대신 담담히 말했다. 그 목소리가 마치 철없이 흥분한 동생을 조근조근 달래려는 것 같기도 했다.

에리히는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그런 형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실은 그는 집사 휴버트에게 사실을 전해 듣자마자 문제의 하녀를 찾아갔다. 보나 마나 하리는 화 한 번 내지 않고 하녀의 실수를 너그럽게 용서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대신 그가 하녀를 만나 한소리를 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에리히가 찾는 사람은 이미 저택에 없었다.

휴버트는 그 하녀가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고향에 갔으며, 차후 다시 에른스트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지만······. 사라라는 이름의 하녀가 해고를 당한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렇다면 그런 명령을 내린 것은 분명 자신의 큰형일 텐데······. 지금 유진의 얼굴에서는 그런 흔적이 조금도 엿보이지 않았다.

에리히는 마주한 얼굴을 조용히 응시했다.

어릴 때부터 언제나 크게만 보이던 형이었지만, 그는 이제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조차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는 나이가 되어 있었다.

"나도 줘."

그러다 에리히는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왜 이렇게 당당하게 요구해?"

유진은 동생의 뻔뻔한 태도에 조금 황당한 눈치였다.

"아직 술 마실 나이 아니잖아."

"형은 몇 살 때 처음 마셨는데?"

"뭐, 나도 꽤 어릴 때긴 했지만."

유진은 그때를 생각하는 듯 미비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에리히는 그것 보라는 듯한 표정을 지은 뒤, 대뜸 테이블 위로 손을 뻗었다.

"잠깐······."

그러고는 유진이 말릴 새도 없이 병을 집어 들어 그 안에 든 액체를 호기롭게 목구멍으로 들이부었다.

"······!"

그 직후, 에리히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가, 곧 새까맣게 죽었다.

"우읍, 컥! 쿨럭······! 쿨럭!"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병을 테이블 위에 집어 던지듯이 내려놓고 급히 허리를 굽혔다. 곧 에리히의 입에서 격렬한 기침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게 잠깐 기다리라고 했잖아."

유진은 고통스러워하는 에리히를 보며 쯧 혀를 찼다.

"쿨럭······ 크흡."

잠시 후 어느 정도 진정이 된 에리히가 입가를 손으로 훔치며 버럭 소리쳤다.

"뭐 이딴 걸 마셔?! 이게 무슨 술이야! 자학하는 취미라도 있어?"

방금 전 추태를 부린 것이 창피한지 에리히는 테이블에 놓인 술병을 철천지원수처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유진은 그런 동생을 웃긴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아, 진짜. 오늘은 되는 일이 없어. 아까도 호위 기사 따위한테 비웃음을 당하지를 않나."

에리히는 아까 전에 있던 일을 떠올리며 바득 이를 갈았다.

사실은 하리의 뒤에 서 있는 호위 기사를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겉가죽만 기생오라비처럼 반지르르해서는.

"에단 비숍이라고 했나? 그딴 자식을 왜 하리 옆에 붙여둔 거야?"

"이유는 간단한데. 실력이 제일 출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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