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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57화 (57/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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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 57화

"뒤에 뭘 붙이고 있는 거야?"

다가온 주말, 막 저택에 들어선 에리히가 한쪽 눈썹을 추켜 올리며 물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이 어디인지 아는 나는 속으로 끄응 신음했다.

"내 호위 기사인 에단 비숍 경이야."

"호위라고?"

에리히의 푸른 눈동자가 내 뒤에 선 남자에게 못 박혔다. 그 직후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형이 데리고 있던 사람이네."

"아, 넌 본 적 있어?"

에리히는 전에 에단을 본 적이 있는 모양이다.

지난번에 수상함을 느끼고 카벨을 심문해 보니 두 진상은 나보다 앞서 에른스트의 저택에 왔던 적이 있다고 한다. 게다가 나만 홀랑 빼놓고 유진과 만난 적도 있다고 들었다.

둘째 진상이 처음에 그 사실을 나한테 말하지 않으려고 얼마나 용을 썼는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 완전한 비밀이 어디에 있겠는가? 더군다나 다른 사람도 아닌 둘째 진상에게 진실을 캐내기란 나한테 있어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다.

결국 카벨은 내 회유와 닦달에 넘어와 우물쭈물 그 사실을 나에게 말했다. 그러면서 얼마나 안절부절못하며 식은땀을 뻘뻘 흘리던지.

진실을 밝힌 직후 열심히 내 눈치를 살피는 것으로 보아, 그는 내가 배신감을 느끼거나 화를 낼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았다. 솔직히 그들이 학술원에 입학한다고 했을 때부터 유진과 따로 연락을 주고받을 것이라고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도 카벨이 하도 나에게 미안해하며 쩔쩔매기에 나는 속내를 숨기고 그가 나에게 마음의 빚을 느끼게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크, 크흠. 솔직히 둘째 진상이 비 맞은 강아지처럼 끙끙거리는 게 좀 불쌍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굳이 나한테 양심의 가책을 느끼시겠다는데, 뭐.

하지만 첫날에 무심코 비밀을 발설하려 하는 카벨의 옆구리를 가격했던 에리히는 그날 이후로 내 앞에서 자신들의 과거를 숨길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지금처럼 내가 수상함을 감지할 만한 말도 툭툭 내뱉고 말이지. 아무래도 카벨이 나한테 모든 진실을 다 불어버린 걸 눈치챈 모양이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는 우리 가엾은 둘째 진상만 쓸데없이 죄책감에 몸부림치고 있는 셈이었다.

"뭐, 형 옆에 있던 사람이니까 실력은 확실하겠지만."

나는 에리히의 말에 내 뒤에 서 있는 에단을 힐끔 뒤돌아보았다.

그래, 지금도 내 옆에서 밀착 호위를 하고 있는 그를 보면 알겠지만······. 으흑, 나는 유진과의 대화에서 승리를 쟁취하지 못했다.

'그냥 그림자라고 생각해. 딱히 나설 일이 없으면 그냥 조용히 뒤에 서 있기만 할 테니까.'

귀가한 유진에게 내 생각을 말했을 때,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반응했다. 하지만 나는 집 안에서까지 호위를 붙이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영 불편해서 거듭 그를 설득했다.

바스티에에서도 외출할 때만 호위 기사를 대동하곤 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바스티에에서는 이러지 않았다고?'

내 말에 유진은 잠깐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한동안은 옆에 데리고 있어.'

하지만 그는 단호했다. 유진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그가 이 문제에 한해서만큼은 양보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유진이 나를 과보호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저렇게 바늘 하나 안 들어갈 것처럼 단호하게 말하는 것을 보니, 아무리 말해봤자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실망에 젖은 내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유진이 이윽고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에단이 마음에 안 들면 다른 사람으로 바꿔 줄게.'

그의 검은 눈동자가 내 뒤에 서 있던 사람에게 미끄러졌다.

'불과 반나절 만에 불편하다는 소리를 듣는 걸 보니 그 짧은 시간 동안 도대체 뭘 어떻게 했던 건지 궁금한데.'

바로 그 순간 에단의 몸이 한차례 흠칫 떨리더니, 곧바로 경직되는 것이 나에게까지 느껴졌다.

유진은 단지 내 어깨 너머에 있는 사람을 힐끔 쳐다보았을 뿐인데, 마치 불호령을 당하기라도 한 것 같은 반응이었다.

그, 그런데 여전히 무표정한 에단의 얼굴이 기분 탓인지 꽤 처량하고 불쌍해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등 뒤로 남몰래 식은땀을 흘리며 변명했다.

'아니야, 비숍 경은 충분히 잘해 주셨는데 그냥 내가 이런 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

그런 소리까지 나온 마당에 내가 뭘 어쩌겠는가?

결국 나는 에단 비숍을 데리고 다시 방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리고 오늘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혼자 뭐 하고 있었어?"

그래도 그 후 나름대로 나를 배려해 주는 건지, 호위하는 동안 처음보다 다소 거리를 두게 되어 그건 다행이었다. 지금도 에단은 에리히와 나한테서 약간 멀찍이 떨어져 걷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카벨 오빠랑 통신석으로 얘기했어."

오늘은 주말이었지만 카벨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건 바로 둘째 진상이 답도 없는 낙제생이었기 때문이다.

듣자 하니, 상황의 심각성을 느낀 학술원의 교수들이 시험 기간을 맞아 낙제생을 위한 특별 보충수업에 카벨을 긴급 투입시켰다고 했다.

방금 전 통신석으로 얼굴을 본 카벨은 공부를 하기 싫다며 징징거렸다.

하지만 나는 학술원의 인류애에 감동했다! 이 답도 없는 둘째 진상을 포기하지 않고 보충수업까지 시켜 주다니! 크으, 진짜 훌륭한 학교구먼. 그래, 이것이 바로 참된 교육관이지!

"형이 징징거리는 거 너무 받아주지 마. 버릇 나빠져."

에리히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네 형인데 너무 건방지게 말하는 것 아니냐?

"어쨌든 그럼 점심은 아직 안 먹었겠네."

그리고 에리히가 지나가듯 하는 말에 나는 가볍게 대답했다.

"아니, 난 카벨 오빠랑 연락하기 전에 먹었어. 넌 아직이지?"

오기 전에 연락을 했으면 분명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에리히가 집에 올 줄 몰랐다. 시험 기간이라 바쁘다고 들었는데 에리히는 그래도 카벨과 달리 여유가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내가 대답하자마자 에리히가 나한테 홱 고개를 돌렸다.

"벌써 먹었다고?"

나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응, 먹었어."

응? 그런데 셋째 진상 표정이 갑자기 왜 이래?

"나도 아직 안 먹었는데 왜 네 마음대로 혼자 먹고 난리야?"

그 순간 나는 조금 황당해졌다.

아니, 이놈이? 지금 그게 무슨 뜻이죠? 지금 너도 밥을 굶고 있는데 나 혼자 먹어서 그게 불만인 거야? 내가 밥 한번 먹는데 네 허락이라도 받아야 하냐?

"내가 왜 오늘 아침에 잠도 못 자고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서······."

바로 그 순간 어라, 싶었다.

하지만 그는 말하다 말고 짜증이 난다는 듯이 얼굴을 구기더니, 곧 나한테서 팽 고개를 돌렸다.

"아, 됐어. 먹었으면 말아."

"너는? 아직 안 먹었으면 식당으로 가야지."

"배 안 고파. 안 먹어. 필요 없어."

그러더니 에리히는 나를 홱 지나쳐 갔다. 척 보기에도 대번에 삐진 티가 났다.

나는 방금 전 셋째 진상이 흘린 말에서 무언가를 깨닫고 쪼르륵 그의 뒤를 쫓아갔다.

"너 나랑 같이 밥 먹으려고 일부러 일찍 온 거야?"

"웃기지 마, 누가 너랑? 내가 그렇게 한가한 줄 알아?"

하지만 내가 바보도 아니고, 에리히가 괜히 아닌 척하는 걸 여기서 눈치채지 못할 리가 있겠는가?

지금은 한창 점심때였고, 생각해 보면 에른스트가는 바스티에가처럼 학술원과의 거리가 가까운 편도 아니니 아마 이 시간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준비해야 했을 터였다.

그럼 잘은 몰라도, 오늘 나랑 같이 점심을 먹고 싶어서 굳이 일찍 서둘렀다는 거잖아?

엄머나, 이 셋째 진상이 웬일로 깜찍한 짓을 다 하네.

"에리히, 나랑 식당 가자."

나는 자신의 방을 향해 앞서 걷고 있는 에리히의 팔을 붙잡았다.

"안 먹는다고."

하지만 셋째 진상은 단단히 삐졌는지 재차 쌀쌀맞게 거부했다.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무슨 밥을 화났다고 굶기까지 하냐?

"사실은 식당에 있다가 카벨 오빠한테 갑자기 연락이 와서 나도 먹다 말았어. 그러지 말고 가자."

"괜히 하는 소리잖아."

"아니야! 자, 빨리 가자."

하지만 그러면서도 에리히는 자신을 잡아끄는 나를 뿌리치지는 않았다.

그래, 그래. 이럴 때는 그냥 못 이긴 척하고 따라오는 게 좋은 거지. 네가 여기서 버티면 괜히 분위기만 더 어색해지고 괜히 서로 얼굴 보기만 민망해지고 그런 것 아니겠니.

결국 나는 셋째 진상을 식당으로 데려가는 데 성공했다.

에리히는 '난 밥 같은 거 먹고 싶은 생각이 없지만 네가 그렇게 부탁을 하니 어쩔 수 없이'라는 얼굴로 내 맞은편에 자리 잡았다. 사용인들은 내가 다시 식탁 앞에 앉자 의아한 기색이었다.

"비숍 경도 같이 식사해요."

"괜찮습니다."

그래, 거절할 줄 알았다. 에단은 한 차례 묵례해 보인 뒤, 식당 밖으로 나갔다.

"금방 준비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저, 그런데 하리 아가씨도 식사를······."

"저도 같이 먹게 주세요. 아까 전에 먹다 말았잖아요."

식당에서 일하는 사용인이 미묘하게 말끝을 흐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아까 전에 멀쩡히 밥을 다 먹고 일어났던 내가 냅킨을 펼치고 다시 식사할 준비를 하는 것이 이상해 보이기는 했을 터다.

하지만 그녀는 내 대답에 가타부타 다른 말을 더 하지 않고 그냥 군말 없이 내 몫까지 식사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크흑, 점심을 두 끼째 먹다니. 혹시 식당 사람들이 나를 돼지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과식은 몸매 관리의 독인데. 하지만 셋째 진상이 모처럼 귀여운 짓을 했으니 어쩔 수가 없구나. 그냥 이따가 소화제나 챙겨 먹어야겠다.

에리히는 손에 턱을 괴고 내가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는 사용인이 자리를 떠나기 전에 입을 열었다.

"오늘 후식이 뭐야?"

"연유를 곁들인 오렌지 셔벗과 체리 클라푸티입니다."

"난 식사, 얘는 후식. 음료는 됐어."

오잉. 나는 뜬금없는 에리히의 말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나도 같이 먹는다니까?"

"아까 밥 먹다 말았다는 거 뻥이잖아. 내가 바보인 줄 알아? 괜한 짓 해서 체하지 말고 오렌지 셔벗이나 먹어."

에리히가 웃기지 말라는 듯이 코웃음 치며 나한테 말했다.

역시 셋째 진상은 눈치가 빨랐다. 카벨 같았으면 내 말이 진짜인 줄 알았을 텐데. 역시 이 집에서 속이는 보람이 있는 사람은 둘째 진상뿐이었다.

사용인이 떠나고 난 뒤 나는 내 앞에 있는 에리히의 얼굴을 아련히 쳐다보았다.

그나저나 우리 셋째 진상, 전에 비하면 진짜 순하고 착해졌단 말이지?

"역시 사람은 학교를 다녀야 하나 봐."

"뭐래."

에리히는 또다시 내 말에 코웃음을 쳤지만 나는 우리 진상들을 참된 교육관으로 갱생시키고 있는 학술원을 생각하며 혼자 뿌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비숍 경."

그리고 잠시 후, 나는 식당을 나서는 길에 에단을 불렀다. 그는 식당 앞에 서 있다가 밖으로 나오는 나와 에리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거 드세요."

왠지 평소처럼 '이거 드실래요?'라고 의문형으로 물으면 또 대번에 '됐다'는 대답이 돌아올 것 같았다. 아니, 그럴 것 같은 것이 아니라 그럴 것이 확실했다. 요 며칠간 에단과 내 대화 패턴이 계속 그랬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학습이란 걸 하는 사람이지! 나는 에단이 거절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대뜸 손에 들고 있는 걸 그에게 떠넘겼다.

그러자 에단이 얼결에 내가 준 것을 받아 들었다. 역시, 내 생각대로!

"배고프실 것 같아서요."

내가 식당에서 가지고 나온 것은 쿠키나 비스킷 같은 것을 담은 작은 꾸러미였다. 물론 이런 것이 요깃거리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간단히 배를 채울 정도는 될 것이었다.

전에 물어보자 에단은 내가 안 볼 때 알아서 식사를 챙기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며칠간 나는 그가 무언가를 먹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정말 에단이 하루 종일 굶는 것은 아닐 터였다. 하지만 나는 그가 내 호위를 맡으면서 밥도 제대로 못 먹는 것 같아 계속 신경이 쓰였다.

에리히는 별짓을 다 한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지만 그래도 마음에 걸리는 것을 어쩌겠는가?

에단은 묵직한 꾸러미를 손에 들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호리호리하게 생긴 것치고 손이 꽤 컸다. 과자를 좀 더 넣을 걸 그랬나? 내가 들었을 때는 꾸러미가 저렇게 작아 보이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런데 왜 이렇게 아무 말이 없어? 혹시 받아 놓고 또 거절하는 건 아니겠지? 에잇, 그럼 나도 이제는 진짜 신경 끌 테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는 곧 내게서 시선을 떨어뜨리며 짤막하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앗, 됐다! 에단이 꾸러미를 든 손을 내리자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이것은 마치 주위에서 어슬렁거리며 나를 경계하던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데 처음으로 성공한 기분이라고나 할까.

"볼 일 다 봤으면 빨리 와."

무언가가 마음에 안 드는지, 불만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에리히가 뒤에서 독촉했다.

나는 아까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에리히의 뒤를 따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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