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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56화 (56/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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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 56화

앗, 그런데 이상하네. 원래 볼따구니를 이렇게 눌러서 압축시키면 굴욕이 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얼굴이 왜 이렇게 멀쩡해!

나는 잠깐 의구심을 느끼다가 곧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짧게 한숨을 내쉰 뒤 유진의 얼굴에 대고 있던 손을 뗐다.

그 후 돌연 이어진 내 행동에 유진이 숨을 멈추는 것 같았다. 한순간 움찔하던 그의 몸이 미묘하게 경직되다가 이윽고 작게 미동하는 것이 팔 안에서 여실히 전해져 왔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뭐긴 뭐야, 포옹이라고 모르십니까?

지난번 밖에서 만났을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둘 다 앉아 있었기 때문에 눈높이의 차이가 전보다 줄어들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의 허리가 아니라 목을 끌어안을 수 있었다.

그 결과 이번에는 진짜 내가 그를 안아주는 것 같은 모습이 형성되었다.

그래도 유진이 워낙 키가 커서 그런지 지금 상태가 마냥 편한 건 아니었다. 아니면 지금 유진이 나한테 안겨서도 워낙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어서 그럴지도 몰랐다. 크흑, 알아서 허리를 좀 숙여 주는 센스는 없는 거니?

"고개를 조금만 더 내려 봐."

목을 끌어안고 있어서 그런지 유진의 귀가 바로 옆에 있었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내 팔에 둘러싸인 그의 어깨가 움칫했다.

하지만 유진은 내 요구대로 따라 주는 대신 나에게서 벗어날 시도를 했다. 앗, 하지만 그렇게는 안 되지!

"어허, 가만히 있지 못해?"

나는 뒤척이는 유진을 더욱 꽉 붙들었다.

내가 생긴 건 연약해 보여도 은근히 힘은 좀 세단 말이지!

팔에 힘을 줘서 껴안고 있는 목을 세게 조이자 유진의 상체가 나한테 좀 더 바싹 기대졌다. 유진은 졸지에 나한테 안겨 아까보다 더 깊숙이 내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게 되었다.

아, 이제야 좀 자세가 편안하네. 어라, 그런데 이 사람, 왜인지 지금 숨을 안 쉬는 것 같잖아? 내가 목을 너무 세게 졸랐나?

나는 갑자기 뜨끔해서 팔에서 슬쩍 힘을 뺐다. 그러자 내 어깨 위로 야트막한 날숨이 날아들었다. 그래도 방금 전에 으름장을 놓은 것이 효과가 있는지 이번에는 유진이 벗어나려고 시도하지 않아서 만족스러웠다.

"그래, 얌전히 있으니까 얼마나 좋아."

진작 말을 좀 잘 들을 것이지. 처음부터 이렇게 온순하게 안기고 그러면 좀 좋아?

"놔줬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유진은 아직 포기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딱딱한 목소리가 살갗 바로 위를 스쳐서 조금 간지러웠다. 그는 지금의 상황이 아주 불편한 눈치였다.

"왜, 기분 나빠?"

"기분이 나빠서가 아니라······."

유진답지 않게 말꼬리가 희미했다. 그는 내 물음에 목소리를 흐리다가 이윽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뭐, 어쨌든 기분이 나쁜 건 아니라는 말이렷다? 물론 그렇다고 했어도 오기가 들어 놔주지 않았을 테지만, 싫은 게 아니라면 더더군다나 사정을 봐줄 이유가 없었다.

사실 나는 그동안 유진을 한 번쯤 이렇게 안아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이 넓은 집에서 아침에 혼자 눈을 뜰 때, 또 아무도 맞아주는 사람 없는 빈집에 혼자 돌아올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슬플 때, 힘들 때, 그리고 울고 싶을 때 마음을 의지할 사람도 위로해 줄 사람도 아무도 없었을 텐데.

"오빠는 우리가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물론 이 집에는 사용인들이 아주 많이 있었지만 그들은 제외하도록 하자.

"오빠가 자랐듯이 그동안 우리도 이만큼이나 많이 자랐으니까, 오빠가 우리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주려고 무리할 필요는 없어."

그러고 보면 에른스트 부부가 살아 있을 적에도 이런 식으로 유진을 안아주는 모습을 별로 보지 못한 것 같다.

태어났을 때부터 아버지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교육받고 자라서 그런가?

카벨과 에리히는 그래도 어머니에게라도 꽤 응석을 부리는 편이었던 것 같은데, 유진은 부모님에게 도통 무언가를 먼저 요구하는 아이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오빠는 좀 더 오빠를 위해서 살아야 해."

그래서 나는 유진이 더욱 신경 쓰이고 마음에 밟혔다. 그에게 짐이 되는 사람이 아니라, 그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만약 내가 그렇게 될 수 없다면, 유진이 기댈 수 있을 만한 다른 누군가라도 그의 앞에 나타났으면 했다.

하지만 유진은 나의 갸륵한 이 마음도 모르고 말했다.

"네가 무슨 의미로 말하는지 알겠어. 하지만 난 이미 충분히 나를 위해서 살고 있어. 그러니까 네가 그런 생각을 할 필요도 없어."

기껏 열심히 말한 보람도 없이 도돌이표처럼 돌아온 이야기에 나는 빠직했다.

"그리고 난 이런 식으로 위로받아야 할 만큼 어리지도, 약하지도 않아."

그러면서 덧붙인 말은 일견 단호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그는 마지막에 옅은 한숨까지 곁들였다. 나는 속으로 탄식했다.

아, 이 사람은 도대체 어느 나라의 고집쟁이지요? 내가 무슨 의미로 말하는지 안다는 사람이 이럽니까? 네?

나는 고구마 백 개가 얹힌 것 같은 이 마음을 가득 담아 유진의 머리통을 꽉꽉 짓눌렀다.

"내가 언제 그런 말이 듣고 싶대?"

"하리, 잠깐."

그러자 유진이 또다시 몸을 뒤틀며 입을 열었다. 흥, 숨 막히지?

"지금 너무 가깝······."

"내가 아무 말 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그랬지? 그런데 왜 말을 안 들어, 응?"

실로 오랜만에, 그것도 꽤 어렵사리 다시 만난 첫째 진상이니만큼 나도 계속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해 주고 싶었는데. 그런데 유진은 다른 두 진상과는 다른 의미로 내 속을 썩였다.

나는 유진이 뭐라고 하든 말든 그의 머리를 꾹꾹 누르면서 괴롭히는 데 열중했다.

"크흠."

똑똑.

바로 그때 저 멀리서 헛기침 소리가 나더니, 곧바로 누군가가 문을 두드려 왔다.

"저기, 모처럼의 우애 깊은 시간을 방해해서 정말 죄송합니다만. 일단 저희도 시간이 많지가 않아서요."

헉, 누구지? 그러고 보니까 아까 문을 닫는 걸 깜빡한 것 같기는 한데!

나는 흠칫해서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곧 시야에 들어온 남자의 모습에 그대로 굳고 말았다.

"하리, 잠깐만 놔봐."

귓가에 울리는 유진의 목소리에 나는 엉거주춤 팔을 풀었다.

"실례지만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문가에 서 있는 사람은 지난번에 만난 적이 있던 로웬그린 스왈로츠였다. 그는 방금 전 아주 요상한 장면을 목격하기라도 한 것처럼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침내 나에게서 벗어난 유진이 로웬그린을 향해 잠깐 눈살을 찌푸리다가 이윽고 나를 향해 물었다.

"지금 잠깐 괜찮아?"

"으, 응."

나는 여전히 엉거주춤한 자세를 한 채 엉겁결에 대답했다.

허락이 떨어지자 로웬그린과 다른 한 사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들에게 못 볼 것을 보였다는 생각에 당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로웬그린은 방금 전 그가 본 광경에 대해 말하는 대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또 뵙는군요. 덕분에 요즘 정시 퇴근을 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네? 아, 딱히 제가 한 일은 없는데요."

"존재만으로도 아주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십니다."

그, 그렇습니까?

그는 생글거리는 얼굴로 나를 향해 진심으로 고맙다는 듯이 말했다. 유진이 요즘 저녁때마다 집에 와서 밥을 먹어서 덩달아 퇴근 시간이 빨라져 그러는 모양이었다.

"로웬그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유진이 서늘히 일갈하자 로웬그린이 어련하겠냐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실은 너한테 누구를 소개해 주려고 들렀어."

"혹시 지금까지 잊고 계셨던 건 아니죠?"

"에단."

으, 으음. 이제 보니 로웬그린 씨는 조금 깐족거리는 성격인 것 같다. 하지만 유진은 익숙한 듯이 그냥 로웬그린을 무시하고 그의 옆에 서 있는 남자를 불렀다.

"이름은 에단 비숍. 오늘부터 널 호위할 거야."

앗, 날 호위할 거라니, 그럼 기사겠네.

나는 유진의 말을 듣고 앞에 있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에단 비숍입니다.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가 나를 향해 정중히 인사했다.

와, 미인이다.

에단 비숍은 검은 머리카락과 회색 눈을 가진, 꽤 예쁘게 생긴 청년이었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니 그는 생각보다 진중하고 과묵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첫인상은 약간 도도하고 까칠해 보였는데.

그나저나 이제부터 이 사람이 날 호위해 줄 거라고? 하긴, 바스티에에 있을 때도 밖에 나갈 때마다 늘 호위를 옆에 붙이고 다녔었는데 여기에서라고 다를 건 없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내가 인사하자 그는 나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특히 외출할 때 꼭 데리고 다녀."

유진은 그렇게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려고?"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 있어서 다시 가 봐야 해. 나오지 마."

오늘은 어쩐 일로 이렇게 이른 시간에 귀가했나 했더니, 그냥 호위 기사만 소개해 주려고 잠깐 들렀던 모양이다. 아까 그를 보자마자 이유를 물어보려고 했는데, 손 때문에 그만 깜빡 잊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나를 보고 유진이 극구 말렸기 때문에 나는 문밖으로 나가지 않고 안에서 그를 배웅했다.

"그럼 다음에 다시 뵙겠습니다."

로웬그린이 나를 향해 웃으며 인사한 뒤 유진을 따라 방을 나섰다. 에단은 오늘부터 내 호위였기 때문에 그들을 쫓아가지 않았다.

"오늘은 외출할 일이 없으니까 그냥 쉬어도 돼요."

"알겠습니다."

그는 내가 불편해할 것을 예상했는지 한 번 작게 묵례해 보인 뒤 곧바로 문밖으로 나갔다.

방에 혼자 남은 나는 창가로 이동했다. 이곳에서는 저택의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나는 유진이 탄 마차가 정문을 나서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다시금 자리에서 발길을 옮겼다.

지금 이곳에는 하녀가 내 방을 치울 동안 손을 치료하기 위해 잠깐 온 것뿐이었으니 슬슬 아까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었다. 지금쯤이면 내 방도 청소가 다 끝나 있겠지.

하지만 나는 복도로 나서자마자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비숍 경."

아까 전 방을 나섰던 에단 비숍이 문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 여기에 서 있었던 거예요?"

내 물음에 그는 동요 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제 의무이니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신경을 안 쓰겠는가? 설마 유진이 이렇게 밀착 호위하라고 시킨 건가?

그때 내 얼굴을 본 에단 비숍이 덧붙였다.

"최대한 기척을 지우고 조용히 있겠습니다."

으, 음. 표정 변화 없는 얼굴로 정색하고 말하니까 왠지 거절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어차피 복도를 걷는 잠깐 동안이니까 상관없으려나.

결국 나는 난처한 마음을 안고 내 방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는 정말로 기척을 거의 없애고 내 뒤를 따랐다. 하지만 아무리 날고 기는 기사라 한들, 귀신처럼 존재감이 아예 없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최대한 등 뒤를 의식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걸음을 옮겼다.

"비숍 경, 잠깐 들어와서 같이 차라도 들지 않겠어요?"

"괜찮습니다."

하지만 내 방에 다다라서, 그는 또다시 문 앞에 둥지를 틀었다. 오래 서 있는 게 힘들 것 같아서 잠깐이라도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지만 그것 역시 거절당했다.

그러고 나서 잠시 후, 나는 문 앞에 서서 또다시 거절당할 걸 알면서도 그에게 한 번 말해보았다.

"그냥 잠깐 서재에 가는 거예요. 따라오실 것 없어요."

"이번에도 조용히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역시 예상했던 것처럼 통하지 않았다. 나는 진심으로 의아해져서 그에게 물었다.

"지금처럼 제 옆을 한 시도 떠나지 않는 게 경의 역할인가요?"

이번에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대답을 하기에도, 하지 않기에도 약간 곤혹스러운 것 같았다. 윽, 왠지 미인을 괴롭히는 나쁜 사람이 된 느낌이다.

"미안해요. 비숍 경을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데 조금 불편해서요.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는 호위를 부탁드린 적이 없어서 익숙하지가 않네요."

그 얼굴을 보니 조금 미안해졌지만 그래도 불편한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나는 물러나지 않았다.

"그럼······."

마침내 에단 비숍의 입술이 다시 열렸다. 아, 그래도 타협의 여지가 있는 건가?

나는 기대감을 품고 아주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뒤이어 귓가에 파고든 목소리에는 그만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제부터 익숙해지십시오."

아, 예······.

나는 오늘 저녁에 곧바로 유진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어야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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