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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49화 (49/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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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 49화

이런 날에는 통신석을 통해서라도 유진과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사실 지금도 그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연락할 수 있기는 했다. 예전에 사용하던 통신석도 아직 내 방에 있었고, 또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바스티에 부부가 신경 써 주지 않을 리 없었으니까.

하지만 나도, 다른 형제들도 그러지 않았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통신석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은 건 3년 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 무렵, 유진은 에른스트로 귀가하던 길에 습격을 당했다. 범인은 곧바로 검거되었지만 유진은 칼에 찔려 꽤 오래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사건이 있던 이틀 뒤, 아무렇지 않은 척 통신석을 통해 우리에게 얼굴을 내비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그의 소식을 알게 된 것은 그보다 시일이 어느 정도 더 지난 뒤였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제일 먼저 카벨이 유진이 우리를 만나러 바스티에에 오는 것을 반대했다. 에리히와 나도 거기에 동의했다.

유진이 그동안 우리 때문에 알게 모르게 무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자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이후로 유진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일단 제한된 횟수가 있는 통신석을 이용하는 것보다 더 자주 연락할 수 있었고, 또 시시콜콜하지만 보다 자세한 일상 이야기도 원하는 대로 적어 보낼 수 있었으니까.

물론 내가 편지를 5번 보내면 유진은 1번 답장을 보내는 정도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것이 굳어져 언젠가부터는 통신석을 아예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오늘 양고기가 아주 부드럽네요."

"이번에 바꾼 소스도 풍미가 아주 깊군."

학술원의 방학을 맞은 후부터 바스티에의 식탁도 전보다 시끌벅적해졌다.

"그래서 이제키엘은 이번에 졸업하는 게 맞아?"

"맞······ 기는 한데, 네가 왜 내 친구 일에 관심을 가져?!"

"같은 학술원 동기인데 궁금해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네가 그 친구와 제일 가까우니까 물어본 거야."

"내가 제일 가까운 친구······. 흥! 그걸 이제 알았냐? 또 궁금한 거 있으면 나한테 다 물어보라고! 난 이제키엘 절친이니까!"

나는 금세 기분이 좋아져서 입꼬리를 꿈틀거리는 카벨을 보며 그만 측은한 눈빛을 보내고 말았다.

둘째 진상아······. 너 지금 요하네스한테 요리 당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 식탁에 앉은 사람 중에 너만 그 사실을 모르는 것 같은데?

"형, 그만 조용히 하고 밥이나 먹어."

카벨의 호구스러움을 보다 못한 에리히가 차게 식은 얼굴로 말했다.

"카벨은 언제 봐도 참 씩씩하구나."

다만 바스티에 부부만이 흐뭇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너희가 있어서 우리 애들도 좋은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

쿠, 쿨럭. 진심이십니까?

물론 같이 지낸 세월이 있으니 서로서로 영향을 받은 건 맞겠지만······. 그게 정말 좋은 영향인 걸까?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처음 만났을 때부터 바스티에 부부는 카벨의 진상스러움을 좋게 봐주었다. 심지어는 요하네스와 주먹질을 하고 싸웠다는 소식을 들어도 호탕하게 웃으며 만족스러워했지.

그러니 놀랍게도 지금 저 말은 빈말이 아니라 진심일 수 있었다.

"제가 좀 그래요!"

하지만 둘째 진상, 너는 좀 양심이 없는 것 아니니!

나는 한껏 의기양양한 얼굴의 카벨을 보며 방금 전의 에리히가 그랬듯 차게 식은 표정을 짓고 말았다.

바스티에 부부는 그런 카벨을 향해 또다시 하하호호 웃어주었다.

"너희가 없으면 분명 빈자리가 크게 느껴질 테지."

바로 그 순간, 식탁에 둘러앉아 있던 우리들의 손이 일제히 멈추었다. 방금 전과는 상반되는 적막감 속에서 나는 고개를 들었다.

바스티에 부부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우리의 부재에 대해 이야기한 건 처음이었다. 무언가를 직감한 내 가슴이 서서히 빨리 뛰기 시작했다. 나뿐만 아니라 카벨과 에리히도 같은 것을 느낀 눈치였다.

"오래 기다렸다, 얘들아."

바스티에 부부는 그런 우리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곧 에른스트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구나."

***

그날 저녁 나는 그동안 유진이 보내 주었던 선물을 모두 꺼내 보았다.

그가 내게 준 것은 드레스나 구두, 실크 장갑과 공단 리본을 비롯한 장신구들부터 인형, 오르골, 책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나는 이제는 안 맞게 된 옷이나 구두들까지 하나도 버리지 않고 상자에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벌써 바스티에에 온 햇수가 올해로 6년째. 그래서인지 유진이 그동안 보내 준 것들을 이렇게 모아 놓고 보자 그 양이 상당했다.

나는 이번에 받은 옷을 펼쳐 놓고 보다가 이내 그것을 끌어안고 풀썩 침대 위로 쓰러졌다. 하얀 이불보 위에 내 긴 머리카락이 어지럽게 흐트러졌다.

나는 느리게 숨을 내쉬며 두 눈을 길게 감았다 떴다.

"꿈 아니겠지."

드디어 에른스트에 돌아간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바스티에 부부에게 들었던 말을 상기하자 다시금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이제는 만날 수 있어······.

그리운 내 집. 그리운 내 가족.

"만날 수 있어······."

나는 침대에 누운 채로 꽉 끌어안고 있던 옷에 얼굴을 묻었다.

바스티에에 온 이후 처음으로 슬퍼서가 아니라 행복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

똑똑.

"하리 언니."

웬일로 루이제가 내 방에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루이제, 무슨 일이야?"

보통 때라면 잠자리에 들고도 남았을 시간이기 때문에 나는 조금 놀랐다. 더군다나 그녀는 잠옷 차림으로 내 방에 온 것으로도 모자라 품에 베개까지 안고 있었다.

"나랑 같이 자자."

루이제의 모습을 보았을 때부터 예상했던 말이었다. 보아하니 자리에 누웠다가 잠이 오지 않아 내 방에 온 모양이었다.

루이제는 평소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잠을 자는 편이었기 때문에 이런 일은 극히 드문 것이었다.

"그래, 이쪽으로 와."

나는 그녀가 이러는 이유를 알 것 같아서 흔쾌히 허락했다.

잠시 후, 우리는 머리맡에 있는 조명 하나만 틀어 놓고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은은한 불빛 아래에서 루이제의 물빛 머리카락이 주황색으로 물들었다.

"있잖아, 난 언니가 바스티에에 와서 좋았어. 물론 이런 말, 철없는 소리라는 건 알지만."

자그마한 목소리가 내 귓가에 울렸다. 나는 물끄러미 나를 응시하고 있는 그녀의 짙은 푸른색의 눈동자를 마주하며 옅게 웃어주었다.

"아니야. 나도 네가 있는 바스티에라 좋았어."

나는 진심으로 우리가 이곳에 오게 되었던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다른 어디를 가도, 우리를 바스티에의 사람들처럼 이만큼이나 진심으로 따뜻하게 대해 주지는 못하겠지.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내 진짜 집이 될 수 없었을 뿐이다.

"에른스트에 돌아가도 자주 놀러 와야 돼."

"지금 당장 갈 것도 아닌데."

"그래도. 언니 방 안 치우고 그대로 놔둘 거니까."

그날 밤 나는 루이제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도란도란한 말소리가 잦아들 무렵, 나는 곤히 잠든 루이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이불을 잘 덮어준 뒤 침대에 다시 제대로 누웠다. 그런데 시간이 가도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나가서 따뜻한 차라도 마실까.

나는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를 들으며 뒤척이다가 결국 조용히 방을 나섰다. 다행히도 루이제는 깊게 잠들었는지 내가 움직이는 소리에도 깨어나지 않았다.

복도를 걷던 나는 층계참을 올라오는 에리히를 마주쳤다.

으헉, 깜짝이야. 순간 귀신인 줄 알았네.

"에리히, 왜 안 자?"

하지만 나를 보고 깜짝 놀란 건 에리히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를 보고 반사적으로 흠칫 뒷걸음질 쳐 놓고 곧 멋쩍게 서로를 향해 물었다.

"그러는 너는."

"잠이 안 오네."

추측하건대, 아마도 에리히 역시 나처럼 곧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잠들지 못한 것 같았다.

"카벨 오빠는 자?"

"자겠지. 원래도 눕기만 하면 자잖아."

크흑, 루이제와 카벨의 닮은 점은 또 있었다.

"너도 빨리 들어가서 자."

나는 에리히를 향해 말했다. 그런데 에리히는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너, 요하네스 좋아해?"

잉, 이게 갑자기 무슨 질문이랍니까?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단순히 사람 대 사람으로 좋아하냐는 의미는 아니겠지? 그래도 나는 모르는 척 대답했다.

"당연하지. 좋은 사람이잖아."

"그런 거 말고 이성적인 의미로 좋아하냐고."

이 자식,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나 보다. 그런데 너랑 나랑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기에는 좀 그렇지 않냐?

"그러니까, 요하네스랑 손을 잡고 싶다거나 뽀뽀를 하고 싶다거나, 아니면 끌어안고 싶다거나 더 나아가서 맨살을······."

"야, 거기까지만 해!"

이놈이 음란마귀가 끼었나? 가만 보자 하니까 점점 더하네!

"그런 얘기를 하기에는 너나 나나 아직 어리잖아!"

내가 사춘기 동생을 보듯이 소리 낮추어 힐난하자 그가 콧방귀를 뀌었다.

"벌써 나이가 몇인데 어리긴 뭐가 어려?"

뭐라? 난 널 그렇게 키운 기억이 없거늘!

"어쨌든 그럼 아직 그런 생각은 없다는 거네."

"당연하지!"

아니, 물론 나는 정신연령이 이미 성숙한 성인이지만 말이야. 요하네스는 아직 아니잖아! 미성년자인 요하네스를 상대로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범죄라고!

"그럼 됐어."

내 말에 에리히는 만족한 듯했다. 다음 순간, 내 머리 위에 그의 손이 터억 올라왔다. 잇따라 흘러든 말에 나는 발끈해서 에리히의 손을 쳐냈다.

"잠 안 온다고 쏘다니지 말고 빨리 들어가서 자. 그래야 쑥쑥 크지."

"지금도 크고 있거든?"

커흑, 이놈이 내 키가 작다고 무시하는구나. 봄이 되면 나도 더 클 거야!

물론 아무리 내가 폭풍 성장한다 해도 삼 형제보다 키가 커질 리는 없었다.

나는 괜히 분해져서 에리히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14. 다시 봄, 만나다

계절이 바뀌어 봄이 되었다.

바스티에의 정원에는 진한 노란빛을 내는 매리골드가 만개했다. 활짝 핀 봄꽃으로 집 안을 장식하는 것은 바스티에 부인의 새로운 취미가 되었다.

봄이 오면서 요하네스와 카벨, 그리고 에리히는 또다시 학술원으로 돌아갔다. 나는 카벨의 성화로 그에게도 거의 이삼 주에 한 번씩 편지를 써 주고 있었다.

[카벨 오빠, 도대체 학교에 다닌 지 몇 년인데 아직도 졸업 시험을 봐야 하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거야? 요한 오빠한테 물어보니까 검술학부라고 해도 실기 시험만 봐야 하는 건 아니라고 하던데? 참, 오빠 방에 가 보니까 방학 때 산 책들을 죄다 두고 갔더라. 아무래도 오빠가 깜빡 잊고 간 것 같아서 내가 대신 챙겨 보냈어. 설마 우리 멋지고 대단한 카벨 오빠가 유급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난 조금 걱정돼. 만약 오빠가 졸업을 제때 못 하면 원래 예정보다 더 오래 떨어져 있어야 하잖아. 그럼 난 오빠가 보고 싶어서 어쩌지? 물론 그런 일은 없겠지만 말이야.]

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편지를 도 닦는 심정으로 써야만 했다.

둘째 진상은 이제 졸업이 코앞인데 자기가 졸업 시험을 봐야 하는지 아닌지도 모를뿐더러, 새 학기를 시작하자마자 첫 시험에서 전 과목 낙제를 받는 기염을 토했다.

물론 지금까지 둘째 진상에 대한 나의 교육관(?)은 '오구오구, 우리 둘째 진상, 공부는 좀 못 해도 좋으니까 부디 사고만 치지 말아다오!'였다.

하지만 막상 바스티에로 날아온 전 과목 낙제의 화려한 성적표를 받아 보자 절로 눈앞이 깜깜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작년까지 전 과목 낙제는 아니었는데, 갑자기 왜 이렇게 되었지? 아무래도 이놈이 매일 검을 휘두르고 몸을 단련하느라 뇌까지 근육질이 되어가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늦어서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전에 둘째 진상을 갱생시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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