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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35화 (35/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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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 35화

"형들 어디로 갔어?"

"어, 나도 같이 가."

나는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레놀드 부인을 힐끔 본 뒤 방금 전 두 사람이 사라진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밖으로 나와 얼마 걷기도 전에 뒤쪽에서 느껴지는 숨소리가 색색 가빠지기 시작했다.

어라? 설마 이 정도 걷고 지친 건 아니겠지······ 가 아니라 정답이었다.

레놀드 부인의 치마폭에 싸인 채 하루 종일 실내에만 있는 데다가 남모르게 몽유병까지 앓고 있는 에리히는 벌써 체력의 한계를 느끼는 것 같았다.

"힘들면 들어갈래?"

"필요 없어."

짜식, 매몰차게도 말하네.

셋째 진상은 내가 자신을 걱정하는 걸 아는지 예민하게 반응하며 나를 노려보았다.

"이쪽으로 간 거 맞아? 아무 데도 없잖아."

"그새 다른 데로 갔나 봐."

"넌 저쪽으로 가. 난 이쪽으로 가서 찾을 테니까."

"괜찮겠어? 그러다가 혹시 너 혼자 있을 때 쓰러지기라도 하면······."

"시끄러워! 쓰러지긴 누가 쓰러져?"

벌써부터 힘들어서 색색거리는 주제에 에리히는 발끈했다. 그래도 우울증에 걸린 사람처럼 무기력하게 있을 때보다는 훨씬 나았다.

나는 에리히와 헤어져 두 진상을 찾기 시작했다.

들려오는 소리가 없는 걸 보면 혹시 유진이 카벨을 놓쳤나? 어릴 때부터 하도 괄괄하게 여기저기 쏘아 다녀서 그런지 뜀박질에는 일가견이 있는 둘째 진상이었으니까.

어디 보자. 둘째 진상이 갈 만한 곳이 어디가 있더라?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예전에 카벨과 함께 술래잡기를 하고 놀았던(이라고 쓰고 '고통받았던'이라고 읽는다) 후원으로 향했다.

부스럭.

내 예감이 맞았다. 나는 꽃 덤불 뒤에 숨은 카벨을 찾아냈다.

"카벨 오빠!"

눈앞에 나타난 나를 보고 카벨이 두 눈을 부릅떴다.

"너, 너 뭐야!"

지난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자신을 찾아낸 나를 보며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곧 그는 정신을 차리고 나를 향해 협박 비슷한 말을 내뱉었다.

"형 부르지 마!"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그렇게 유진 오빠를 피해 다녀?"

이전 생에서는 없던 일이었기 때문에 카벨의 기행이 더욱 이상하게 여겨졌다. 내 물음에 그의 입술이 고집스럽게 다물려졌다. 나는 카벨의 푸른 눈동자에 점차 물살이 일기 시작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내가······."

마침내 그의 입술이 다시 벌어졌다. 마음속에 있는 말을 꽁꽁 숨기고 싶은 마음과 누구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잇따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마음대로 돌아와서 형이 화났을 거야."

뭐? 지금 내가 제대로 이해한 건가?

"카벨 오빠가 집으로 돌아와서 유진 오빠가 화가 났다고?"

나는 귀가 의심스러워서 반문했으나 카벨은 입을 꾹 다물기만 했다. 어디로 봐도 그건 긍정의 의미였다.

"카벨 오빠, 유진 오빠가 보낸 편지 받고 오기로 한 거 아니야?"

"무슨 편지? 형은 나한테 한 번도 그런 거 보낸 적 없어."

뭐······.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유진이 바쁜 시간도 쪼개서 카벨에게 틈틈이 안부 편지 겸 집으로 돌아오라는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니? 그럼 그 편지는 어디로 실종됐단 말이야?

"그냥 내가 오고 싶어서 멋대로 온 거야. 형은 내가 오는 거 싫어했는데, 나도 알고 있었는데······."

"유진 오빠가 왜 카벨 오빠가 오는 걸 싫어해?"

카벨은 벌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땅바닥만 노려보며 말하다가 내 물음에 이를 악물며 소리 질렀다.

"형은, 형은 날 미워하니까······!"

두 번째로 말문이 막혔다.

카벨은 그런 나를 뒤로한 채 계속해서 언성을 높여 횡설수설했다.

"형이 날 보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 날 미워하니까, 그래서 나는······!"

"그게 무슨 소리야? 유진 오빠가 왜 오빠를 미워해?"

카벨이 하고 있는 생각은 말도 안 되는 오해였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절대 아니라고 말해주려 했다. 하지만 카벨의 비명 같은 외침이 한 발 더 빨랐다.

"나 혼자만 살았잖아!"

그 소리에 나는 그만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내, 내가 혼자만 살아서, 아빠랑 엄마가 날 감싸다가 그렇게 돼서······ 그때 난 바보같이 겁에 질려서 안겨 있는 것밖에 할 줄 몰랐는데······."

귓가에 흘러드는 카벨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을 새하얗게 만들었다.

"살려 달라고 소리쳤으면 구하러 와 줬을지도 모른단 말이야······. 그런데 난, 난 혹시 내가 소리 내면 그 사람들이 다시 올까 봐······. 그래서 겁쟁이처럼 아무 소리도 못 내고······."

카벨이 무서워하는 그 사람들이란, 사냥터를 피습했던 암살자들이 분명했다.

그들을 처리하고 부서진 마차의 문을 열었을 때, 에른스트 부부는 이미 죽어 있었다고 했다. 나는 카벨이 살아남은 것만 중요하다고 생각했지, 그 현장에서 구출된 카벨의 심정이 어떨지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카벨의 말대로라면 그는 마차가 전복된 후에도 의식이 있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공포에 질려서 차마 살려 달라고 소리 지르지도 못한 채, 그 당시 이미 죽은, 혹은 거의 다 죽어 가던 부모님과 함께 그 좁은 공간 안에 다른 누군가가 구출하러 와 줄 때까지 갇혀 있었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난 형이 나를 미워한다는 걸 알고도 집에 오고 싶어서, 나한테 왜 돌아왔냐고 할까 봐 무서운데도······."

언제나 위풍당당하던 카벨이 꽃 덤불 뒤에 작게 웅크리고 앉아 울먹이는 모습이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었다.

"아니야, 카벨 오빠······."

나는 지금 그가 말한 것이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고 말해주려고 했다.

"누구야?"

등 뒤로 낮은 목소리가 흘러들지만 않았다면.

풀잎 밟는 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유진이었다. 카벨은 설마 유진이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는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너한테 그딴 헛소리를 지껄인 게 도대체 누구야?"

유진의 분노는 매서웠다. 다시금 귀청을 때린 목소리는 그의 기분을 대변하듯 사납고 거칠었다.

카벨은 또다시 도주를 시도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유진이 그를 봐주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듯, 이번에는 그의 손이 카벨의 어깨를 단단히 붙들었다.

"도망가지 말고 똑바로 말을 해! 너한테 그런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지껄인 게 누구냐고 묻잖아!"

"이, 이거 놔!"

카벨은 몸부림쳤지만 유진은 오히려 더욱 세게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이 멍청아!"

나는 유진이 그렇게까지 흥분해서 소리 지르는 모습을 생전 처음 보았다.

"이 집에 널 원망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네가 살아 돌아왔다고 널 탓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단 말이야! 그걸 왜 몰라!"

그의 말은 절절하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유진의 진심이 나에게까지 느껴질 정도였으니, 아마 카벨에게도 무리 없이 닿았을 터였다.

"네가 이렇게 무사히 돌아온 건 우리한테 기적이나 마찬가지인데!"

그 순간 카벨의 몸부림이 멈추어졌다.

그는 태엽이 다 된 인형처럼 서서 제 형을 향해 멍하니 반문했다.

"내, 내가 안 미워?"

"너라면 어떨 것 같아?"

유진의 얼굴도, 카벨의 얼굴도 전부 다 엉망이었다. 둘 다 울고 싶은 것 같은 얼굴이었지만 고집스럽게 그것을 참고 있다는 게 형제다웠다.

"살아 돌아온 게 만약 나였다면, 넌 그런 나를 원망해서 얼굴조차 보고 싶어 하지 않았을 거야?"

그 말에 카벨은 속에서 울컥 치솟는 것을 참듯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붕붕 고개를 저어 유진의 말을 부정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왜 내가 너를 미워한다고 생각해?"

"나, 나는······."

"만약 그 자리에 부모님과 함께 있던 게 우리 중 다른 한 사람이었어도 똑같아. 원망 같은 걸 할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유진이 카벨의 시선에 맞추어 몸을 낮추었다.

"잘 들어, 카벨."

그리고 그는 그렁그렁한 동생의 눈을 마주하며 말을 이었다. 아마도 카벨이 이 집에 돌아온 첫날, 그의 얼굴을 마주한 채 직접 해주고 싶었을 말이었다.

"우리는 네가 이 집에 돌아와 줘서, 정말 너무나도······."

잠시 목이 메는지 유진의 목소리가 잦아들었지만 그래도 그는 끝까지 말을 멈추지 않았다.

"너무나도 기쁘고, 너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어."

카벨은 얼어붙은 것처럼 그의 말을 가만히 서서 듣고 있었다. 나도 코가 약간 매워지는 것을 느끼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무사히 돌아와 줘서, 우리에게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와 줘서."

누가 보아도 그 안에 깃든 애정이 여실히 느껴지는 손길이 카벨의 머리를 쓸었다.

"정말 고맙다, 카벨."

아버지인 에른스트 공작과 똑같이 빼닮은 검은 눈동자에도 동생을 향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으······."

카벨의 얼굴이 다시금 일그러졌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가 저렇게 얼굴을 찌푸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으아앙!"

눈물을 참는 데 실패한 카벨이 마침내 소리 내 울음을 터뜨렸다.

오래 참아왔던 만큼 서러움 가득한 울음이었다.

나는 앞에 있는 두 사람을 보며 그래도 그들은 혼자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

"어차피 형들끼리 알아서 할 텐데 내가 있을 필요 없잖아."

에리히는 어느덧 방으로 돌아가 페니를 끌어안고 있었다.

짜식, 아닌 척하더니 역시 힘들었던 모양이다. 형들의 우애 넘치는 감동적인 장면을 너도 봤으면 좋았을걸.

레놀드 부인은 그사이 돌아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유진은 안으로 들어올 새도 없이 또다시 곧장 외출을 했다.

"카벨 오빠한테 안 가 볼래?"

"이따가."

그래, 너 진짜 힘들어 보인다. 좀 쉬어라.

저렇게 약골이 되어서 어쩐다지? 억지로라도 운동 좀 시켜야 할 것 같은데.

"페니, 이거 먹어."

"멍!"

나는 간만에 준비한 간식을 페니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대번에 페니가 침을 흘리며 꼬리를 흔들었다. 그래도 에리히가 안고 있어서 그런지 나한테 달려오지는 않았다.

몇 달간 에리히는 집에 있으면서 고모님이 없을 때면 내내 페니와 붙어 다녔다. 강아지를 끌어안고 하루에도 몇 시간씩 오도카니 앉아 있는 걸 보면 절로 마음이 쓸쓸해졌다.

에리히는 페니가 나한테 꼬리를 흔드는 모습이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내가 간식을 주는 걸 막아서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까 진상들이 지난 생의 이맘때쯤보다 나한테 훨씬 유한 것 같았다.

지난번에는 에른스트 부부가 죽은 게 마치 나 때문인 것처럼 엄청 괴롭혀 댔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소리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니.

'누가 네 엄마, 아빠야?'

에른스트 부부의 사후 식음을 전폐하는 그들에게 우물쭈물하며 내가 먼저 다가갔던 적이 있었다. '오빠들이 이러면 엄마, 아빠가 걱정하실 거야'라는 내 말에 카벨이 나를 쏘아보며 일갈했다.

'여기에 네 엄마, 아빠가 어디 있어? 죽기 싫으면 두 번 다시 내 앞에서 그딴 말 꺼내지 마!'

'형!'

'죽는다'는 단어에 예민하게 구는 에리히의 비명과 카벨이 주위에 있는 물건을 거칠게 집어 던지고 걷어차는 소리가 뒤섞여 나한테 악몽 같은 기억으로 남은 날이었다.

뭐, 날 괴롭히지 않는다면 나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이번에는 지난 생보다 함께 보낸 일 년의 시간이 더 있기 때문인가. 혹시 그래서 예전보다 나한테 정이 들어서?

"뭘 쳐다봐? 눈 치워."

개뿔이다.

나는 여전히 기력 없는 모습이면서도 쌀쌀맞게 말하는 셋째 진상을 보며 속으로 쯧 혀를 찼다.

그래도 요즘은 너도 힘들 테니까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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