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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33화 (33/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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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 33화

9. 그래도 혼자가 아니야

"카벨 오빠!"

드디어 카벨이 돌아왔다.

우리는 막 저택 안으로 들어선 둘째 진상을 맞아주었다.

"왔구나. 슈마하에 한동안 더 있을 줄 알았더니."

"안녕하세요, 고모."

몇 달 만에 본 카벨은 과연 유진의 말처럼 슈마하에서 극진한 보살핌을 받은 것 같았다. 한동안 누워 지냈던 것치고는 살도 빠지지 않았고, 얼굴에서 병색도 엿보이지 않았다.

"형."

웬만해서는 다른 사람들과 말을 섞는 법이 없는 에리히도 카벨을 향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카벨은 그런 에리히는 가만히 쳐다보다가 이내 먼저 시선을 회피했다.

응? 그때에서야 나는 이상함을 감지했다. 그러고 보니 둘째 진상에게서는 이전 같은 활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카벨은 위화감을 폴폴 풍기며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것을 보고 레놀드 부인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유진은 없단다. 그 애도 참, 오랜만에 돌아온 동생인데 따뜻하게 맞아주지 못하고 너무하지. 카벨, 너무 실망하지 말렴. 유진도 널 보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닐 거야."

그 순간 카벨이 입매를 움찔거렸다. 나는 옆에 있는 레놀드 부인을 올려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가만히 듣자 하니 이상했다. 왜 말을 저렇게 하지? 저러면 꼭 유진이 일부러 카벨을 본체만체하는 것 같잖아.

"당연하죠. 카벨 오빠를 제일 많이 기다린 건 유진 오빠인걸요."

나는 레놀드 부인의 말에서 어떤 이상함도 느끼지 못한 척 눈을 순진하게 뜨고 말했다.

"유진 오빠가 요즘 얼마나 바쁜지는 어른인 고모님이 제일 잘 아시잖아요. 그래도 카벨 오빠가 온다고 하니까 오늘은 급한 일도 다 미루고 다른 때보다 일찍 돌아온다고 했어요."

예전부터 눈치 없는 척하고 싶은 말을 하는 건 내 주특기였다.

"아침 일찍 유진 오빠가 고모님께도 말하고 간 거로 아는데, 벌써 잊으셨나 봐요?"

나는 레놀드 부인의 기억력이 걱정된다는 듯이 덧붙였다.

그러자 그녀가 나를 향해 눈매를 꿈틀거렸다.

아줌마, 저 마음에 안 들죠? 그러니까 왜 말을 그렇게 해요? 꼭 진상들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것처럼.

"카벨, 먼 길 오느라 고단하겠구나."

앗, 무시당했다.

"그만 들어가서 쉬렴."

레놀드 부인은 카벨에게 짐짓 다정히 말한 뒤 에리히를 안고 돌아섰다.

"고모, 형이랑 같이······."

"안 돼요. 형은 그렇지 않아도 많이 아팠던 참이라 푹 쉬어야 한단다. 에리히도 아픈 형을 더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지? 그래야 착한 아이지?"

카벨과 좀 더 같이 있고 싶다는 의견을 표현했던 에리히는 곧 잠잠해졌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는 내 얼굴은 굳은 채 펴질 줄 몰랐다.

카벨이 돌아오기 전에는 단순히 나와 에리히를 차별해서 대하는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이건······. 방금 전 이상했던 레놀드 부인의 모습을 되새기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일단은 머릿속의 잡념을 밀어낸 뒤 카벨을 향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카벨 오빠."

내 부름에 카벨의 푸른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나는 예전보다 확연히 어둑해진 그의 눈동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어서 와."

그리고 그가 돌아왔을 때 제일 먼저 해주고 싶었던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봄철의 사냥대회 때 에른스트 부부와 함께 웃으며 저택을 나선 후 몇 달 만에야 겨우 이곳으로 돌아오게 된 카벨에게.

"어서 와, 카벨 오빠."

그러자 카벨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사람처럼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았다.

그런데 별안간 카벨의 얼굴이 확 일그러지는 것이었다. 그는 그 상태로 주먹까지 꽉 쥔 채 일언반구 말도 없이 나를 지나쳐 달려갔다.

아니, 반응이 돼 저래?

기껏 사람이 마중까지 나와서 반겨 줬더니? 너랑 나 사이에 감격적인 재회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았지만 이건 좀 너무하지 않냐? 하다못해 그동안 잘 지냈냐는 대화라도 서로 할 수 있잖아.

나는 왠지 모를 서운함을 느끼며 두다다 뛰어서 계단을 올라가는 카벨을 바라보았다.

***

"카벨은?"

역시 유진은 돌아오자마자 둘째 진상을 찾았다.

"위층에 계십니다."

휴버트의 말에 그는 직접 카벨의 방으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유진이 몇 걸음도 채 옮기기 전에 위에서 카벨이 모습을 드러냈다.

"카벨."

나는 차갑게 얼어붙어 있던 유진의 얼굴이 근래 들어 가장 온화하게 풀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두 사람이 이렇게 얼굴을 맞댄 지도 거의 반년만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유진을 보는 동안 점점 굳어가던 카벨이 돌연 자리를 박차고 뛰어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카벨!"

유진이 급히 그를 불렀으나 소용없었다. 카벨은 금세 우리의 눈앞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나는 유진의 얼굴이 상처받은 듯이 변하는 것을 목격했다. 물론 그것은 한순간이어서 나 이외에는 아무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제가 도련님을 다시 모시고 오겠습니다."

휴버트도 카벨의 행동에 당황한 눈치였다. 하지만 유진은 손을 들어 두어 번 얼굴을 쓸어내리더니, 곧 원래의 차가운 얼굴로 돌아갔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지금은 카벨도 피곤할 테니 그냥 쉬게 내버려 둬."

그렇게 말한 뒤 그는 곧장 집무실로 향했다.

레놀드 부인은 아까 집으로 돌아갔고, 에리히는 제 방에서 페니랑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고, 휴버트가 억지로 카벨을 데려올 수도 없으니. 그럼 남은 건 나밖에 없잖아? 아이고, 내 팔자야.

나는 속으로 한탄하며 둘째 진상을 찾아 천근만근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카벨 오빠."

나 좀 그만 고생시키고 나와라.

"카벨 오빠?"

도대체 어디 숨은 거야, 이 진상은.

나는 방들을 뒤지다가 이윽고 놀이방을 열어젖혔다. 에른스트 부부가 죽은 후로 우리 중 누구도 가지 않게 된 방에서는 한기가 느껴졌다.

처음에는 카벨이 입고 있는 옷이 보호색 역할을 해서 잘 몰랐으나 이제 보니 방의 한구석에 있는 커튼이 약간 볼록했다.

천하의 둘째 진상이 커튼 뒤에 쭈그리고 숨어 있다니.

"저리 가······!"

가까워진 인기척을 느낀 카벨이 소리 질렀다.

나는 급격히 피곤해졌다. 셋째 진상 다음에는 둘째 진상, 너냐?

하지만 동방에 전해져 내려오는 속담으로 세 번은 참아주라고 했다. 게다가 지금 목소리를 듣자 하니 커튼 속에서 뭘 하고 있는지도 짐작이 되었고.

"씨이, 저리 가라고 했잖아!"

나는 꿈틀거리는 커튼을 무시하고 그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난 없는 셈 치고 하던 거 계속해."

내 말에 커튼이 크게 움찔거렸다. 곧 방금 전보다 더 격양된 목소리가 안에서 울렸다.

"나 우는 거 아니야!"

"그래, 오빠 안 울어."

"진짜 우는 거 아니라고!"

"그래, 그래."

그놈의 얼어 죽을 자존심을 빼놓으면 둘째 진상이 아니지.

카벨에게 묻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말도 없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냥 울게 내버려 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우윽, 나 진짜 우는 거 아니야······."

커튼 안쪽에서 들려오는 고집스러운 코맹맹이 소리가 좀 웃겼지만 나는 웃지 않았다.

"카벨 오빠, 뭘 모르네. 우는 건 창피한 거 아니거든."

오히려 울 수 있을 때 실컷 울어두는 편이 좋다. 밖으로 내보내지 못해 계속 안에서만 고여 있는 감정은 결국 속을 곪게 만들기만 하니까.

"울어야 할 때 못 우는 게 진짜 바보인 거야."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말이 조용한 방 안에 울렸다가 곧 내 귀로 되돌아왔다.

"카벨 오빠는 바보 아니잖아."

카벨이 내 말을 들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간헐적으로 이어지던 울음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나는 그냥 귓가를 파고드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척했다.

잠시 후, 카벨이 여전히 코맹맹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난, 윽, 안 울어. 훌쩍."

그런 점이 끝까지 카벨 같아서 나는 상황에 맞지 않게 아주 조금 웃고 말았다.

***

"영애에게 예절을 가르치는 쪽이 빠를지, 회초리가 부러지는 쪽이 빠를지 모르겠네요."

나는 한심스럽다는 듯 말하는 멤마 부인을 속으로 욕하며 겉으로는 유순히 죄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부인. 저도 제 미숙함이 부끄러우니, 부인이 저를 그리 경멸하시는 것도 이해해요."

내 직설적인 말에 멤마 부인이 한순간 당황스러운 낯을 보였다.

"겨, 경멸이라니요? 저는 단지 영애의 부족함이 에른스트에 미칠 불명예가 염려스러울 뿐이랍니다."

"그런가요? 하지만 부인의 눈빛이 하도 겨울바람처럼 매섭고 쌀쌀맞아서 저는 또 부인이 저를 무척이나 끔찍하게 싫어하시는 줄 알았어요."

"당치 않은 소리를. 저는 영애들을 교육하는 데 그런 사사로운 감정을 앞세우지 않습니다."

"아, 역시 그렇겠죠? 하긴, 누구보다 예절에 정통하신 멤마 부인이 설마 저 같은 어린 여자애를 상대로 그런 천박하고 추한 행동을 하실 리는 없겠죠."

나는 방긋 웃으면서 눈앞에 있는 사람을 향해 말했다.

"무슨! 영애, 지금······."

아주 눈치가 없지는 않은지 그녀는 내 말 속에 뼈가 있다는 걸 알아차린 듯했다. 하지만 나는 발끈하는 멤마 부인을 향해 다시금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앗, 죄송해요. 혹시 제 말이 실례되는 것이었나요? 부인도 아시다시피 제가 아직 예절에 능통하지 못해서······. 하지만 멤마 부인이라면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리라 믿어요."

내 표정에 멤마 부인은 방금 전 내 말이 고의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해진 것 같았다. 그녀는 여전히 심기가 불편한 눈치였지만 그 일로 내게 다른 말을 더 하지는 못 했다.

"오늘은 걷는 방법을 공부하겠어요. 책을 머리 위에서 떨어뜨리면 회초리를 들겠습니다."

이제야 걷기 공부라니, 정말 근본 없는 수업이구먼.

턱! 나는 내 머리 위에 다소 거친 손길로 책을 얹어놓는 멤마 부인 몰래 눈을 날카롭게 번뜩였다.

"제가 자리에 앉으면 평소 걸음으로 앞을 가로질러 걸으세요."

어차피 이래도 회초리, 저래도 회초리라면 나도 막 나갈 테야!

"자, 이제 시작하세요."

나는 머리에 책을 얹은 채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헹, 내가 이깟 일 하나 못할 것 같아? 20년간 내가 당신들에게 비웃음당하지 않으려고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서 귀족식 예절을 몸에 익혔는데.

하지만 지난 몇 달간의 수업을 통해, 내가 실수한 게 없어도 멤마 부인이 트집을 잡아 어떻게든 나를 벌준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타앗!

"아앗!"

그러니까 어차피 내가 뭘 해도 때릴 거라면 당신에게도 똥을 한 번 먹여보겠어요.

나는 멤마 부인이 앉은 테이블 앞을 지날 때 장렬히 발목을 삐끗한 척했다. 균형을 잃은 내 몸은 단번에 옆으로 기울어졌다. 머리 위에 얹혀 있던 책이 먼저 떨어지고, 그다음 내 몸이 테이블 쪽으로 풀썩 주저앉았다.

나는 멤마 부인 쪽으로 넘어지기 직전, 무게를 실어 있는 힘껏 테이블보를 잡아당겼다.

촤악! 와장창! 챙그랑!

"으악!"

넘어지는 와중에 중력의 영향까지 받아서 그런지, 테이블 위에 있던 것들이 내가 잡아당긴 천과 함께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나는 귀에 울리는 멤마 부인의 비명에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내 주변은 대번에 초토화가 되었다. 각도 조절을 잘한 덕인지 내 옷에는 찻물만 약간 묻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수업 때마다 혼자서만 제대로 된 다과상을 들던 멤마 부인의 드레스는 앞에 있던 쉬폰 케이크와 홍차, 라즈베리 잼과 설탕 범벅이 되어 있었다.

"영애! 이게 도대체 무슨 짓······."

"헉, 죄송해요, 부인! 제가 그만 발목을 삐끗해서! 이걸 어쩐다지요?"

나는 당황한 얼굴을 한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멤마 부인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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