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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28화 (28/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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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 28화

"내 사슴뿔에서 불 나오는 거 봐봐."

크흠, 그런데 나도 딱히 이 풍선이 싫은 건 아니었다. 물론 이 나이 먹고 이런 걸 좋아하는 것도 웃기지만······ 그래도 신기한 걸 어떡해!

으흑, 사실 어릴 때 나도 이 풍선이 갖고 싶었었는데 매번 손가락만 빨다가 이렇게 소원 성취를 하게 되니 기분이 좋구나.

"너도 해 봐! 불곰 코에 불 들어오는 거 보고 싶어!"

나는 자꾸만 새침을 떠는 셋째 진상을 마구 재촉했다. 그러자 에리히가 '이런 유치한 짓은 내 취향이 아니지만 네가 자꾸 귀찮게 구는 것도 싫으니까 어쩔 수 없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손에 잡고 있던 실을 두어 번 밑으로 잡아당겼다.

번쩍!

"우어!"

그러자 실에 연결된 채 둥실 떠 있던 에리히의 불곰이 코에서 반짝이는 빛을 냈다. 나는 그걸 보고 신이 나서 내 손에 들린 실도 밑으로 마구 잡아당겼다.

내 풍선은 모가지가 길어 슬픈 짐승인 사슴 모양이었는데, 내가 실을 잡아당기자 뿔에서 요란하게 불빛이 나기 시작했다.

크으, 멋지다! 내가 이 마법 풍선을 이렇게 갖게 되는 날이 오다니, 감격이야!

그런데 풍선의 불빛에 너무 심취되어 있던 탓일까. 어느 순간부터 내 사슴은 뿔에서 빛을 내지 않게 되었다.

"엥?"

"삼십 분도 안 돼서 마력을 다 쓰다니. 너 바보지?"

앗! 마력이 벌써 다 소모된 거야?!

옆에서 에리히가 좌절한 나를 비웃었다. 과연 그의 말대로 내 풍선은 마력을 빠른 속도로 소모해 빛을 내지 않게 된 것 같았다. 으앙, 마력이 완전히 바닥나서 풍선이 떨어지기 전에 얌전히 있어야지.

"······왜 그렇게 쳐다봐?"

그리고 나는 에리히의 풍선을 노리기 시작했다. 물론 나잇값도 못하는 짓이었지만 마법 풍선은 그 정도로 내 탐욕을 불러일으키는 물건이었다!

"너 그 풍선 별로 마음에 안 든다고 하지 않았어?"

"저리 가."

셋째 진상은 내 탐심 가득한 눈빛에 경계심을 드러내며 나를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하리야, 풍선 하나 더 사줄까?"

"아니요!"

하지만 나는 에리히와 나를 흐뭇하게 쳐다보던 에른스트 공작이 내게 슬쩍 하는 말을 듣고 정색하며 대답했다. 이 풍선만 해도 상당히 비싼 건데 하나를 더 사주겠다니? 그건 낭비였다.

"전 다른 사슴은 필요 없어요."

"그럼 토끼나 고양이는 어때?"

"전 다른 동물은 필요 없어요."

하늘이 두 쪽 나도 내 사슴을 배신할 수 없다는 듯 단호하게 말하자 에른스트 공작이 그런 나를 귀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이 나이를 먹고 저런 눈빛을 받으려니 아무래도 영 닭살이 돋아서 나는 방금 전 나를 피해 이동한 에리히를 따라 슬그머니 엉덩이를 뗐다.

"하리, 너도 푸딩 먹을래?"

"앗, 푸딩도 있었어?"

에른스트 부인이 바구니에서 또 뭘 꺼낸다 싶더니 푸딩이었구나! 나는 유진의 부름에 반색하며 다가갔다.

"하리는 무슨 맛 먹을래?"

에른스트 부인이 그런 나를 향해 웃어주었다.

"포도 맛은 내 거야!"

"카벨, 포도 맛은 또 있으니까 그렇게 급하게 달려오지 않아도 돼."

나를 경계하던 에리히도 슬쩍 푸딩을 먹으러 다가왔다.

"네가 오렌지 맛 먹어."

"오빠도 오렌지 맛 좋아하잖아."

내 말에 유진이 두 눈을 약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아니, 뭘 그렇게 놀라십니까? 그러는 당신도 내가 오렌지 맛 좋아하는 거 알고 있었으면서.

"그래도 너 먹어."

유진은 장남으로 태어나 양보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결국 오렌지 맛 푸딩은 내 손에 들어왔다. 나는 입을 약간 삐죽 내민 채 그를 쳐다보았다.

바로 그때, 에른스트 부인이 부드럽게 웃으며 유진의 앞에 놓인 것과 자신의 것을 바꿔 주었다.

"엄마는 둘 다 좋아하니까."

나는 슬쩍 유진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이내 나도 모르게 들썩이는 입꼬리를 꾹 억눌렀다.

"전 괜찮은데요."

"그래도."

당혹감을 표출하고 있는 유진의 얼굴은 처음으로 제 나이다워 보였다. 물론 그것은 금세 사라지기는 했으나 나는 방금 전보다 기분이 좀 더 기꺼워졌다.

원래대로라면 에른스트 부부는 반년 전에 마차 전복 사고로 죽어 오늘 같은 평화로운 날은 오지 않았을 터였다.

내가 8살이었던 해의 가을, 그들은 친척인 레놀드 후작 부처를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났다가 사고를 당했다. 갑자기 마차에 뛰어든 아이를 피하려다 그런 일이 난 것이라고, 후에 에른스트의 친인척인 어른들에게 전해 들었다.

크윽, 그래서 작년에 내가 얼마나 용을 썼는지 아는가? 에른스트 공작 부부의 기일이 언제인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날 두 사람의 외출을 막으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체면도 잊고 카벨 흉내를 내면서 별 발악을 다 했다고! 미친 사람처럼 바닥을 뒹굴며 생난리를 치는 나를 보던 에른스트 부부의 그 아연한 눈빛이란······.

으앙,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아무리 온갖 핑계를 다 대도 꼭 레놀드 후작저에 가야만 하겠다는데! 그래도 내가 울고불고 발작하자 놀란 에른스트 부부가 결국은 외출 계획을 접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물론 나는 그날 에른스트 부부가 저택에 부른 의사에게 진찰을 좀 받아야 했지만······. 으아, 다시 생각해도 창피하다.

"그나저나 이렇게 날씨가 좋으니 내일 야외 행사 때도 걱정은 없겠네요."

아무튼, 그래서 나는 에른스트 부부의 죽음을 막아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쾌거였지만 그래도 나는 뿌듯했다.

하지만 사실 현재의 모든 일이 내 기억대로 흘러가지 않을 가능성도 있으니, 그날 에른스트 부부를 막는 데 실패했어도 실제로 그와 같은 비극은 또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카벨, 네가 졸라서 데려가 주기는 하겠다만 내일은 말썽 피우지 말고 얌전히 있어야 한다."

"난 늘 얌전한데!"

"······."

카벨의 천진난만한 대답에 에른스트 부부가 잠시 동안 침묵했다.

내일은 현 황제의 금지옥엽인 황손의 생일을 맞아 황실에서 주관하는 야외 행사가 있을 예정이었다.

거의 모든 귀족가에서 참석하는 대대적인 행사인 만큼 황실의 든든한 우방인 에른스트가 거기에 빠지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카벨이 자기도 행사에 가고 싶다고 한 달 내내 떼를 써서 결국은 말썽을 피우지 않는 조건으로 에른스트 부부의 승낙을 얻어낸 것이다.

듣기로는 야외 행사 일정 중에 사냥 대회가 있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예전에 바스티에에서 에른스트를 방문했던 이후로 카벨이 사냥에 재미를 들린 것 같다.

본래는 주말을 맞아 학교에서 돌아온 유진이 에른스트 부부와 함께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그는 카벨에게 기꺼이 기회를 양보했다.

음, 아무래도 사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유진의 말은 진심인 것 같았다.

"꽃이 참 예쁘네."

에른스트 부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하늘하늘 흩날리는 연분홍색 꽃들이 과연 화려하게 예쁘기도 했다.

"다 같이 좀 걸을까요?"

"그럽시다."

아, 평화롭구나.

눈앞에서 만발한 봄의 풍경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

"어머, 아가."

그날 저녁 나는 물을 마시고 싶어서 방 밖으로 나왔다가 에른스트 부인을 마주쳤다.

"어디 가니, 우리 아가?"

그런데 기분 탓인지 그녀의 모습이 평소와 좀 달라 보였다. 나는 가까이 다가온 에른스트 부인에게서 술 냄새가 나는 것을 깨닫고 지금 그녀가 취한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내 시선에 맞추어 몸을 숙이자 생글생글 웃고 있는 얼굴이 조금 더 가까워졌다.

"엄마 보고 싶어서 나온 거니?"

에른스트 부인은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다.

그녀가 이렇게 술에 취한 모습을 보는 것도 처음이었지만 그것보다는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호칭이 마음에 걸렸다.

"아가?"

내가 대답 없이 시선만 보내고 있자 에른스트 부인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의 얼굴이 너무 밝아서 굳이 이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충동적으로 입을 열고 말았다.

"전 아리나가 아니에요."

말하고 난 직후 나도 모르게 후회했다.

하지만 사실 에른스트 부인이 술에 취한 상태였기 때문에 나도 이런 말을 입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내 말에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조금 크게 떠졌다.

잠시 후 그녀의 입에서 방금 전보다 잔잔한 음성이 새어 나왔다.

"어머, 미안하구나, 하리야."

하지만 이어진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나는 또 한 번 멈칫하고 말았다.

"하지만 하리도 우리 아가잖니."

"······."

"우리 예쁜 아가."

그녀는 그렇게 속삭이며 나를 안아주었다. 내 머리와 등을 쓰다듬는 손길이 너무 다정해서 기분이 이상해졌다. 방금 전, 한순간이나마 아리나를 질투해 어린아이처럼 반응하고 말았던 것이 약간 부끄러웠다.

"엄마?"

바로 그때, 지금 막 목욕을 마치고 나온 에리히가 우리를 보고 도도도 다가왔다. 그는 에른스트 부인에게 안겨 있는 내가 여전히 조금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1년 전처럼 나를 향해 대놓고 이를 드러내거나, 그녀와 나를 어떻게 해서든 떼어 놓기 위해 애를 쓴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에리히! 이리 오렴. 에리히도 우리 예쁜 아가야."

"어, 엄마?"

에른스트 부인은 에리히를 향해서도 활짝 웃으며 그를 부둥켜안았다. 갑작스러운 애정 공세에 에리히는 당황한 눈치였다. 하지만 그래도 싫지는 않은지 에른스트 부인의 품에서 벗어나려 하지는 않았다.

"어머니, 무슨 술을 이렇게 드셨어요?"

이번에는 유진이었다. 그는 복도에서 들리는 말소리를 듣고 방에서 나온 듯했다.

"오늘 기분이 좋아서 나도 모르게 한 잔만 한다는 게."

에른스트 부인은 후후 웃으며 대답했다. 과연 그녀는 기분 좋게 취한 얼굴이었다. 유진은 그런 제 어머니를 향해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곧 그녀의 손길이 자신을 향하는 순간 움찔 눈매를 떨었다.

"유진, 너도 아직 우리가 보살펴 줘야 할 어린아이인데······."

"어머니?"

"미안하구나. 내가 취하긴 취했나 봐. 너희들을 보니까 자꾸만······."

에른스트 부인의 손이 유진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유진은 낮부터 계속 그녀에게 어린아이 취급을 받는 것이 영 낯설고 쑥스러운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그의 얼굴을 흥미진진하게 구경했다. 아, 이 사람이 이런 표정을 짓는 건 또 처음인데 까먹지 않게 잘 봐 둬야지!

"아니, 멜리사. 설마 취한 거요?"

"아버지, 오셨어요."

봄나들이에서 돌아오자마자 잠시 외출했던 에른스트 공작까지 귀가했다. 그러자 복도가 아까보다 한층 더 복작복작해졌다. 으잉? 그러고 보니 언제 이렇게 여기 다 모였지?

"무슨 술을 혼자 이렇게 마셨소? 내일도 외출해야 하는데 몸에 무리가 가기라도 하면."

"괜찮아요, 한숨 자고 일어나면 가뿐할 테니까. 지금도 이렇게 기분이 좋은 걸요."

"그럼 방으로 들어가 쉽시다."

애처가인 에른스트 공작이 곧바로 부인을 챙기며 방으로 이끌었다.

"어? 나만 빼고 다들 뭐 해!"

그래, 감초 같은 네가 빠지면 서운하지. 어쩐지 너만 없어서 이상하다 생각하고 있었단다.

"카벨 형, 잠깐! 그거 내 장난감 아니야?"

"헉!"

어째 통 안 보인다 했더니 셋째 진상이 씻으러 간 사이 그의 장난감을 털고 있던 모양이다. 에리히가 매의 눈으로 카벨의 손에 들린 것을 포착하자 둘째 진상이 그제야 화들짝 놀라며 제 손을 뒤로 감추었다.

"카벨, 내일 행사 때 따라올 생각이면 일찍 들어가서 자야 한다. 늦잠 자면 두고 갈 거야."

"아앗! 늦잠 절대 안 잘 거야!"

에른스트 공작의 당부에 카벨은 재빨리 부정했지만, 글쎄······. 내일 그가 늦잠을 안 자서 행사에 참석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하늘만 알고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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