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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27화 (27/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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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 27화

"아싸, 이제 내 세상이다!"

그들이 사라지자마자 카벨은 신이 나서 폴짝폴짝 뛰어댔다.

"페니, 간식 먹으러 가자."

"왈왈!"

예민한 에리히도 손님이 돌아가고 나자 마음이 한결 편해진 눈치였다. 아니, 사실 셋째 진상은 사냥철이라 예민했던 것 같기도 한데.

"멜리사, 피곤하지 않소?"

"괜찮아요. 이번에 바스티에를 초대하기 잘한 것 같아요. 그렇죠?"

에른스트 부인의 말에 에른스트 공작이 설핏 미소 지었다. 나는 두 사람이 서로를 다독이는 느낌으로 맞닿은 손을 한 번 힘주어 잡는 것을 지켜보았다.

으음, 역시 이번에 바스티에를 초대한 건 그런 의미였나······. 그래, 이 두 사람도 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친구가 둘이나 생겨서 좋겠네."

이 사람도 그렇고.

"통신석이 있으면 잠깐이나마 얼굴도 직접 볼 수 있으니 잘됐다."

나는 내 어깨를 가볍게 짚은 뒤 나를 지나쳐 가는 유진을 올려다보았다. 놀랍게도 그는 나를 향해 옅게 미소 짓고 있었다. 비록 그것이 아주 실낱같아, 겨우 흔적만 알아볼 수 있는 미소였다고 해도.

"하리 아가씨, 선물을 방까지 옮겨다 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집사 아저씨!"

생각해 보면 참으로 평화로운 날들이었다.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오래오래 이런 날들만 계속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참, 얘들아. 오늘 간식은 너희들이 좋아하는 거로 준비할 테니 먹고 싶은 걸 말해보렴."

"당신도 힘들 텐데."

"전 괜찮아요."

"전 아무거나 다 좋아요, 어머니."

"오예! 호두 파이, 호두 파이!"

"엄마, 난 딸기 타르트!"

"왈왈!"

손님이 떠나서 분명 사람 수가 줄었는데도 어째서인지 저택 안은 여전히 시끌벅적했다.

"하리는?"

에른스트 부인이 세 형제 틈에서 부드럽게 웃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한순간 그런 그들의 모습이 그 자체로 너무 완벽해 보여서 내가 저 안에 끼어들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넌 마카롱 먹어! 나 마카롱도 먹고 싶어!"

"카벨, 하리는 다른 게 먹고 싶을 수도 있잖아."

"간식 먹기 전에 페니랑 산책하고 와도 돼요?"

"그래, 에리히. 하리야?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 말해보렴."

나는 에른스트 가족의 모습을 멀찍이서 바라보다가 그들의 부름에 못 이긴 척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 보니 우리 하리, 키가 조금 컸나?"

"어머, 그렇네요. 옷을 새로 맞춰야겠어요. 에리히도 지난번에 봤더니 바짓단이 조금 짧아졌더라고요."

"엄마, 페니 옷도 사 주고 싶어요."

"날이 풀리면 또 다 같이 외출하는 게 어떨까요?"

"엄마, 나 지난번에 못 먹은 도마뱀 구이!"

"하리는 어때?"

나는 소란스러운 틈바구니에서 대답했다.

"저도 다 좋아요."

좀 시끄럽고 정신 산만하고 가끔은 귀찮기는 해도······. 이런 왁자지껄한 날들이 계속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

에른스트 가족의 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문득 그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어째서인지 가슴 한구석에서부터 묘하게 간지럽고 따뜻한 느낌이 조금씩 번져 나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1년 뒤 에른스트 부부는 죽었다.

7. 부고와 함께 한 봄

"우다다다다! 내가 페니보다 더 빠르다고오오오오!"

"왈왈!"

나는 오늘도 저 멀리 뛰어가고 있는 카벨을 보며 쯧쯧 혀를 찼다.

아이고, 놀아주기도 힘들구먼. 되도록 오래 있다가 와라!

하지만 내 팔심이 부족했던 탓인지 공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다가 아까보다 더욱 가까운 곳에서 낙하하기 시작했다.

"이욥!"

"왈!"

오, 그래도 이번에는 둘째 진상의 손이 먼저 공에 닿았다. 하지만 공은 카벨의 손에 잡히는 대신 그의 손가락에 맞고 튕겨 나갔다.

"헥헥헥!"

"페니, 잘했어. 아이, 예쁘다."

잔디 위로 통통 튀어가는 공을 물고 온 것은 이번에도 페니였다. 나는 페니의 멋진 금색 털을 마구 쓰담쓰담하며 칭찬해 주었다.

"으악악! 이번엔 진짜 내가 이길 수 있었는데에!"

둘째 진상아, 네가 아무리 발악을 해봤자 이미 승부는 난 거란다.

"한 번 더 던져!"

"딱 열 번만 하기로 했잖아."

"아직 열 번 안 했어!"

"아까부터 오빠가 우겨서 내가 다섯 번이나 더 던져 준 거 알아?"

"아, 몰라, 몰라, 몰라! 몰라아아!"

둘째 진상이 떼쓰기를 시도했다. 아니, 그런데 얘가! 지금 나이가 몇인데 엄마한테 장난감 조르는 애처럼 바닥에 드러누워서 발버둥을 치고 있는 거야! 주위에서 우리를 힐끔거리고 쳐다보는 게 안 보이냐!

"열 번 안 채웠단 말이야아아아!"

"왈왈!"

그런데 둘째 진상의 발버둥이 새로운 놀이라고 생각했는지 급기야 페니까지 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몸을 굴리면서 우렁차게 짖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이목이 더욱 집중되었다.

으악, 도대체 왜 부끄러움은 내 몫인 겁니까!

"오빠가 자꾸 그렇게 우기면 내가 어떻게 한다고 했더라?"

나는 잔디에 드러누운 두 멍멍이를 보다가 음산하게 속삭였다. 그러자 버둥거리던 카벨이 한순간 몸을 흠칫하더니 잠시 후 두말하지 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알았어! 알았다구! 나 지금 우긴 거 아니야. 그러니까 나랑 안 논다고 하면 안 돼!"

둘째 진상은 투덜거리면서도 내 눈치를 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내가 그런 소리를 왜 하겠어? 이렇게 멋있는 카벨 오빠인데!"

"흥, 난 원래 멋졌다구!"

영혼 없는 내 칭찬에도 둘째 진상은 좋다고 헤벌쭉해졌다. 나는 내친김에 페니에게 해주는 것처럼 카벨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둘째 진상이 아닌 척하면서 내 쪽으로 슬그머니 머리를 들이밀었다.

오구오구. 그래, 우리 둘째 진상 칭찬받고 싶었어요?

그래도 이제는 이렇게 내 말도 잘 듣고 페니처럼 더 만져 달라고 머리통을 직접 나한테 들이미는 걸 보니 지난 1년간 나름대로 중요한 변화가 있긴 했구나 싶었다.

그럼 더 칭찬해 줘야지. 우쭈쭈쭈.

"카벨 오빠, 동생을 괴롭히지도 않고 동생 말도 잘 듣고 동생한테 잘해 주는 오빠는 어떤 오빠라고?"

"세계 최고로 멋진 오빠!"

"맞아. 그리고 카벨 오빠는 내가 아는 오빠 중에 제일 멋있어!"

"맞아, 난 그 샌님보다 멋있어!"

아니, 그건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네가 요하네스보다 멋있기는 좀.

그래도 나는 굳이 둘째 진상의 환상을 깨지는 않기로 했다.

"페니, 왜 바닥에서 그러고 있어!"

그렇게 내가 한참 둘째 진상을 조련하고 있을 때,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셋째 진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나, 지지야."

그는 아직까지도 바닥에 드러누워 헥헥거리면서 우리를 올려다보고 있는 페니를 향해 한달음에 달려왔다. 에리히를 본 페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으흠, 저렇게 반갑게 꼬리를 흔들고 셋째 진상한테 가는 걸 보니 역시 페니의 트루 러브는 에리히로구나.

게다가 바닥에 뒹구는 것을 지지라고 했으면서도 망설임 없이 페니를 부둥켜안는 것을 보았을 때, 에리히의 트루 러브도 페니인 셈인가.

그는 둘째 진상과 내가 페니를 훔쳐 가기라도 했던 것처럼 경계하며 말했다.

"이제 페니 밥 먹을 거야."

저기, 셋째 진상아. 네가 그렇게 페니를 품에 숨기지 않아도 이제 슬슬 노는 건 그만두려고 했단다. 일단 여기서 공놀이를 더 했다가는 내 손목이 아작 날 테고.

"너희도 와서 점심 먹어."

그때, 에리히와 함께 우리를 찾으러 온 유진이 말했다.

"밥! 나 배고파!"

둘째 진상은 그 말을 듣자마자 신이 난 듯 껑충껑충 뛰면서 요란을 떨었다.

우리는 에른스트 부부가 기다리고 있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해마다 꽃 축제가 열리는 라수스의 경치 좋은 들판이었다. 그리고 에른스트의 가족들은 오늘 이곳으로 다 함께 봄나들이를 온 참이었다.

아를란타에서도 꽤나 규모가 큰 꽃 축제라 그런지 지금 이곳에는 다른 관광객도 굉장히 많았다.

퍽!

으앗, 말이 끝나기 무섭게 때마침 옆을 지나가던 사람에게 부딪혀 버렸다. 아이고, 어깨야. 저런 비매너 같으니!

"괜찮아?"

"여기 사람 너무 많아."

나는 어깨를 부비적거리면서 유진에게 투덜거렸다. 그래도 아까 놀던 곳에서는 이렇게까지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지금 여기는 꽃나무들 바로 아래라 그런가?

"응?"

그런데 바로 그때 내 손에 뜬금없는 온기가 와 닿았다. 나는 도르륵 시선을 내렸다가 내 손을 잡고 있는 유진의 손을 발견했다. 그 직후, 나는 약간 당황하고 말았다.

"에리히, 페니는 이리 줘. 내가 안고 갈게. 카벨, 사람이 많으니까 에리히 손을 잡아. 그리고 이리 와서 한 손은 하리 손을 잡고. 도착할 때까지 놓으면 안 돼."

"알았어!"

그렇게 우리는 줄줄이 알사탕이 되었다.

유진을 선두로 그다음에 나, 그다음에는 카벨, 마지막은 에리히 순으로 우리는 사이좋게 서로의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그, 그런데 왜 이렇게 민망하지? 다른 진상들은 정작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난 왜 이렇게 지금 이 상황이 뻘쭘한 거지?

"응? 왜 이렇게 꼼지락거려? 똥 마려워?"

"형, 더러운 소리 하지 마."

내가 불편하게 손을 꼼지락거리자 둘째 진상이 옆에서 눈치 없는 헛소리를 해댔다.

"서로 잃어버리면 찾기 힘들어지니까 불편해도 조금만 참아."

오직 유진만이 내 고뇌를 안다는 듯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나는 내 한 손을 잡고 있는 그를 약간 낯선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내가 에른스트에서 보낸 또 한 번의 겨울이 지나고 어느덧 해가 바뀌어 봄이 되었다.

나는 이제 9살이 되었고, 유진은 14살, 카벨은 11살, 에리히는 나와 함께 9살이 되었다.

7살의 겨울날 추운 거리에서 내 손을 놓고 떠났던 유진이 어렴풋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그 잔상은 곧 눈앞에 번지는 분홍색의 꽃잎들에 떠밀려 사라졌다.

"거의 다 왔어."

나는 한 팔로 페니를 안고 있는 유진의 옆모습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시선을 내려 우리의 포개진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잠시 후 슬그머니 그의 손을 아주 살짝 힘주어 잡았다.

"얘들아 왔니? 늦어서 걱정했단다."

"그새 사람이 이렇게 늘어나다니. 이제부터는 각자 흩어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조금 더 걷자 그리 어렵지 않게 목적지를 찾을 수 있었다. 꽃나무 아래에 자리를 펴고 있던 에른스트 부부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우리는 미리 준비해 온 초호화 7단 도시락을 먹고, 후식인 레몬 에이드를 쭉쭉 빨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솔직히 말해봐, 너도 갖고 싶었지?"

"흥, 웃기지 마. 네가 하도 귀찮게 해서 하는 수 없이 들고 있는 거야."

잠시 후, 에리히와 나는 상인에게서 구입한 풍선을 사이좋게 하나씩 나눠 들고 있었다.

그것은 마력이 담긴 풍선으로, 신기하게도 일반적으로 공기를 불어 넣은 풍선과 달리 저절로 하늘에 둥실 떠 있었다. 그래서 풍선의 입구 부분을 실로 단단히 묶어서 들고 있어야 했는데, 상당히 고가의 풍선이라 그런지 실을 밑으로 잡아당기면 풍선에서 번쩍번쩍 빛이 나기까지 했다.

그래서 꽃 축제에 온 아이들은 모두 홀린 듯이 마법 풍선을 파는 행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런 거 유치해. 9살이나 먹고 이런 거나 좋아하다니 믿을 수가 없어."

헤헹, 괜히 말로만 그러기는. 너 좋아서 입꼬리가 사정없이 꿈틀거리고 있는 거 다 보이거든? 그래서 내가 일부러 아저씨한테 사달라고 한 건데 아닌 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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