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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23화 (23/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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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 23화

카벨은 대로한 에른스트 부인에게 따끔하게 혼이 났다. 그리고 일층 복도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드는 굴욕적인 벌을 받았다.

"아니, 카벨? 왜 그러고 있는 거니?"

"아빠아!"

하지만 그는 그 벌을 오래 받지 않아도 되었는데, 그 이유는 사냥을 떠났던 일행이 날씨의 급격한 변화 때문에 일찌감치 저택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때 에른스트 부인은 막 당도한 의사와 함께 내 방에 머물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나는 카벨의 팔꿈치에 맞아 코피가 났던 것이기 때문에 일단 지혈을 한 뒤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코뼈도 멀쩡하다고 했다.

에른스트 부인은 그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솔직히 나는 이런 일로 의사를 부를 것까지 있나 싶어 조금 겸연쩍어졌다.

"맙소사, 하리야!"

그런데 카벨에게 얼추 소식을 듣고 나를 보러 올라온 에른스트 공작이 기절할 듯이 놀라는 것이었다. 그를 따라온 유진 역시 경악한 표정으로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알고 보니 내가 입고 있던 옷은 방금 전까지 흘렸던 피로 온통 축축이 젖어 있는 상태였다. 어, 음. 아무래도 내가 생각보다 피를 많이 흘린 모양이었다.

나는 의사가 돌아가고 난 뒤 곧장 옷을 갈아입었고, 카벨은 에른스트 부인에 이어 엄청나게 화가 난 에른스트 공작에게 2차적으로 혼이 난 뒤 다시 1층 복도에서 손을 드는 벌을 받았다.

그리고 내일부터 방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말라는, 카벨에게 있어서는 청천벽력 같은 명령을 받았다.

"아니, 우리 첫째가 에른스트의 둘째와 주먹질을 하고 싸웠다고요?"

반면 바스티에 백작은 이 엄청난 소식을 들은 직후 잠시 동안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더니, 놀랍게도 폭소를 터뜨렸다.

"으하하! 그것참 신기하네요. 제 아들이 친구를 때릴 줄도 아는 녀석이었다니, 전 처음 알았지 뭡니까. 역시 아이들은 싸우면서 크는 법이죠. 이거, 요한을 에른스트에 데려오길 잘했군요."

의원이 떠나기 전 상태를 살피긴 했지만 그래도 제각각 얼굴에 퍼런 멍 자국을 달게 된 카벨과 요하네스를 보고서도 바스티에 백작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반응했다.

그것은 에른스트에 있어서는 퍽 다행인 일이었다. 어디로 보나 먼저 잘못한 것은 카벨이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그래도 에른스트 부부는 거듭 괜찮다고 말하는 바스티에 부부에게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사과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아이들 간의 일이니 카벨을 너무 심하게 혼내지는 말라는 말을 할 뿐이었다.

"하리 아가씨. 만일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언제든 괜찮으니 꼭 저를 불러 주십시오. 아가씨가 직접 나서시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응, 알았어요."

나는 내 머리를 쓰다듬는 휴버트의 손길에 약간 멋쩍어져서 헤헤 웃었다.

크, 크흠. 사실은 둘째 진상을 같이 때려 주고 싶어서 끼어들었다가 얻어맞은 거라고 하면 황당해하겠지. 아무래도 나 이거 맛 들일 것 같아서 큰일인데. 둘째 진상을 때리는 감촉이 생각보다 좋단 말이지!

"이제 피 안 나?"

아, 깜짝이야! 한참 휴버트가 쓰다듬어주고 있는데 갑자기 유진이 나타나서 놀랐다.

휴버트는 오누이 간의 단란한 자리를 만들어주려는 듯 먼저 자리를 떠났다. 그래서 나는 주위 시선을 신경 쓸 것 없이 얼굴을 구기며 대답할 수 있었다.

"지금은 안 나는데 아까는 엄청 많이 났어."

이제 피는 멈추었지만 아직도 내 콧대는 약간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아까 카벨의 팔꿈치에 가차 없이 가격당한 증거였다.

"내일부터는 나도 저택에 있을 거야."

내 말에 유진은 잠깐 멈칫하더니 말했다.

"사냥 안 가?"

"안 가려고. 원래 좋아하지도 않았어."

확실히 유진이 저택에 있으면 좀 안심이긴 했다. 두 진상이 그래도 큰 형이라고 유진의 말은 잘 듣는 편이었으니까.

"코가 아직 좀 빨갛네."

유진은 잠시 동안 내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럼 그 정도로 피를 쏟았는데 이렇게 금세 멀쩡해질까.

"빨갛기만 한 게 아니야. 아직도 아프다고."

나는 코를 만지작거리며 투덜거렸다. 나도 이런데 카벨이 작정하고 때린 요하네스는 더 아프겠지. 아, 진짜. 그나마 아직도 둘째 진상이 1층에서 벌을 받고 있다는 게 일말의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걔는 좀 더 혼이 나야 돼. 벌을 다 받고 나면 방에서 근신하라는 게 에른스트 공작의 명령이니까 그래도 한동안은 저택이 조용하겠네.

"그래, 미안."

그런데 잠깐 머뭇거리는가 싶던 유진이 나에게 사과를 해왔다. 그 말에 나는 한순간 멈칫하다가 콧잔등을 움찔거리며 입을 열었다.

"오빠가 그런 것도 아닌데 왜 사과해?"

"카벨이 그런 거니까."

물론 장남으로서 동생의 일에 대신 책임감을 느낄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이럴 때는 그냥 '아픈 데가 빨리 괜찮아졌으면 좋겠다'라거나 '카벨이 철이 없어서 큰일이다' 정도로 말하면 되는 거야."

예전부터 둘째, 셋째 진상이 사고를 칠 때마다 일일이 그 뒷수습을 하는 것은 모두 첫째 진상의 역할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게 조금 마음에 안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나도 녀석들의 극성이 지나칠 때는 유진이라도 나서서 어떻게 해주었으면 하고 바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장남이란 이유로 그가 동생들의 모든 뒤치다꺼리를 전부 다 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끄응, 솔직히 말해서 내일부터 유진이 사냥을 가지 않는단 사실에 안심한 주제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좀 위선 같기는 하지만 말이야.

그, 그래도 진상들의 일을 전부 다 그에게 떠넘기려는 속셈인 게 아니라 마음으로 좀 의지가 된다는 의미니까.

"어쨌든 카벨 오빠가 저지른 일을 유진 오빠가 대신 사과할 필요는 없다는 거야."

나는 혼자서 합리화하듯 괜히 속으로 그렇게 변명한 뒤 고개를 주억거렸다.

흑, 그렇다 한들 12살의 유진에게 의지할 구석이 있다는 것 자체가 나로서는 부끄럽지 않을 리 없었지만.

"사과를 해도 카벨 오빠가 직접 하는 게 맞는 거고."

"그래······. 그건 네 말이 맞지."

유진은 내 말에 잠시 멈칫하더니 곧 순순히 대답했다. 그런데 표정이 왜 저렇게 묘하지?

"혼자서 애들 상대하느라 고생 많았어."

하지만 내 의문은 곧바로 사그라지고 말았다. 바로 그 순간, 내 머리 위에 뜬금없이 웬 무게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응? 이게 뭐지?

나는 의아한 마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내 머리 위에 내려앉은 것의 정체를 깨달은 뒤 곧바로 돌처럼 굳어버렸다.

"내일부터는 무슨 일이 있으면 날 불러."

내가 경직되어 있는 사이 유진은 마음대로 내 머리를 약간 어색한 움직임으로 두어 번 쓰다듬기까지 하고 홀연히 자리를 떠났다.

쟤, 지금 뭐 하고 간 거니······?

혼자 남은 나는 당황해서 입을 벌린 채 어버버거렸다. 지금 유진이 설마 내 머리를 쓰다듬고 간 거야? 그게 맞는 거야? 진짜?

저, 저 사람이 뭘 잘못 먹었나?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려는 걸까?

나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상황에 크게 동요해서 한참 동안이나 자리에서 입만 뻐끔거리고 말았다.

***

"하리, 미안해. 나 때문에 다쳐서······."

"요한 오빠 때문이 아니라 카벨 오빠 때문이지."

요하네스는 한껏 풀이 죽은 모습으로 내게 사과했다. 나는 까맣게 피딱지가 앉은 그의 입가를 보면서 둘째 진상에 대한 분노를 더욱 불태웠다.

이 예쁜 얼굴에 피딱지라니! 푸르딩딩한 멍이라니! 정작 잘못한 건 카벨인데 애꿎은 사람이 사과를 하지 않나. 저 둘째 개진상을 정말 어찌하면 좋다지?

카벨은 에른스트 공작의 엄명에 따라 어제 하루 동안 벌을 선 데 이어 오늘부터는 정말 제 방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이놈이 아버지의 명이라고 해서 얌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카벨의 탈주에 대비해 문 앞에 에른스트 소속의 기사들을 둘이나 세워 놓았기 때문에 둘째 진상이라고 한들 별다른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었다.

나는 바로 한 시간 전에만 해도 방문을 나서려고 시도하다가 다시 안으로 잡혀 들어가던 카벨을 상기하고 쯧 혀를 찼다.

"그리고 그것만이 아니라, 또······."

그런데 요하네스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잠깐 우물쭈물하다가 별안간 고개를 푹 숙이고 나한테 다시 사과했다.

"넌 물건이 아닌데 내 마음대로 달라고 해서 미안."

한순간 나는 '그게 무슨 소리지?' 싶었다.

그래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돌연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어제의 기억에 놀라고 말았다.

'내가 너 같은 애보다 하리한테 훨씬 더 잘해 줄 수 있어! 그러니까 나한테 줘!'

요하네스는 방금 전보다 한결 더 시무룩해져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에게 또다시 감탄하고 말았다.

이, 이럴 수가! 도대체 어떻게 교육을 받으면 사람이 이렇게 반듯하고 훌륭하게 잘 자랄 수 있는 거지? 아무래도 요하네스 부부의 교육방침을 에른스트에 도입하는 일이 시급한 것 같습니다!

"괜찮아, 오빠! 그런 의미로 말한 거 아니잖아. 나도 알아."

사실 어제 카벨과의 일이 있을 때도 지금까지 이렇게 내 편을 들어서 대신 싸워 준 사람은 처음이라 뭉클했었는데.

"약 발랐어?"

"으, 응."

나는 멍든 요하네스의 얼굴에 마음이 짠해져서 나도 모르게 손을 올렸다. 하지만 내가 닿자마자 요하네스가 불에 덴 듯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흔들었기 때문에 나는 그냥 손을 다시 원상복귀했다.

그냥 손이 스치기만 한 건데도 이러다니, 아무래도 많이 아픈가 보네.

그런 생각에 내가 속으로 둘째 진상에게 이를 갈고 만 것은 당연했다.

"하리 언니가 불쌍해."

그런데 문득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큰 토끼 인형을 끌어안은 채 뚱한 얼굴을 하고 있는 루이제가 눈에 들어왔다. 아, 맞아. 그러고 보니 방에 요하네스만 있는 게 아니었지.

"그 오빠 진짜 나빠. 바보 멍청이 똥개야."

부, 부정할 수가 없구나. 둘째 진상이 확실히 바보 멍청이 똥개이긴 하지.

"언니, 진짜 우리 집에 오면 안 돼? 그 오빠보다 우리 요한 오빠가 훨씬 훨씬 좋은데! 그리고 나도 언니가 우리 집에 오면 내 토순이랑 곰곰이도 빌려주고 언니랑 싸우지도 않고 사이좋게 지낼 거야!"

루이제는 그동안 카벨이 보인 행태에 단단히 질린 모양이었다. 자신의 토끼 인형과 곰 인형을 빌려주면서까지 나를 둘째 진상의 손아귀에서 탈출시키겠다는 그 의지의 표현에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애매한 기분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잇따른 그녀의 말에 그만 나는 흠칫하고 말았다.

"언니는 원래 '밖'에서 살았다며? 언니네 오빠는 언니가 살았던 데 버리고 오자."

나뿐만 아니라 요하네스까지 동생의 말에 멈칫하는 것이 느껴졌다. 다만 루이제만이 그런 우리들의 반응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여전히 천진난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베키는 내가 마리안이랑 싸울 때마다 그랬는데. 밖에는 엄청 무서운 괴물이 살아서, 나쁜 애는 거기에 데리고 가서 혼내 달라고 할 거라고. 그러니까 언니네 오빠도 거기에 버리고 오자."

그동안 루이제와 인형 놀이를 하다가 들은 바에 의하면 베키는 루이제의 유모이고, 마리안은 루이제와 동갑인 친구였다.

"그런데 밖에 진짜 괴물이 살아? 그럼 언니는 지금까지 계속 괴물이랑 같이 살았던 거야?"

어린애가 충분히 생각할 법한 일이었고, 또 어른들이 말 안 듣는 아이를 겁주기 위해 충분히 할 법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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