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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22화 (2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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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 22화

나도 이번에는 단단히 짜증이 나서 둘째 진상에게 한소리 해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누군가 단호한 손길로 내 팔을 잡고 있는 카벨의 손을 강제로 떼어 냈다.

"하리한테 사과해."

귓가에 또랑또랑한 미성이 울리는 순간 나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전에 없이 굳은 얼굴을 한 채 둘째 진상과 나 사이를 차단하듯 가로막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요하네스였다.

나는 깜짝 놀라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카벨 역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요하네스를 보고 있었다.

오, 오잉. 지금 내 앞에 있는 게 그 순둥이 요하네스가 맞아요? 지금 되게 박력 있었는데? 봐, 둘째 진상도 지금 놀라서 주춤하고 있잖아?

하지만 카벨은 곧 퍼뜩 정신을 차렸는지 와락 얼굴을 구기며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요하네스를 노려보았다.

"너 뭐야."

그는 요하네스의 말에 성질이 난 것 같기도 했고, 짧은 순간이나마 요하네스의 기세에 밀려 멈칫했던 것에 자존심이 상한 것 같기도 했다.

물론 어느 쪽이든 내 입장에서는 웃길 뿐이었다. 이놈이 뭘 잘했다고 요하네스를 노려봐?

"내가 왜 사과를 해야 돼?"

"그런 식으로, 아프게 잡아끌고 소리 지르고."

놀랍게도 요하네스는 지금 말조차 더듬지 않았다. 매번 누구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어쩔 줄 몰라 하며 수줍게 뺨을 붉히더니,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당당한 자세가 아닌가? 으앙, 우리 요하네스가 달라졌어요!

"하리가 네 여동생이고 네가 오빠여도 그러면 안 돼. 아니, 오빠니까 더 그러면 안 돼. 그러니까 사과해. 그런 식으로 멋대로 구는 건 네가 잘못한 거야."

나는 감동에 젖어 촉촉해진 눈으로 요하네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 하지만 걱정인데. 이 막가파 둘째 진상이 저런 옳은 말을 듣고 곧이곧대로 '아, 그래? 내가 미안!' 이렇게 반응할 리가 없지 않은가?

"씨이, 웃기지 마. 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역시나 카벨은 붉으락푸르락해서 요하네스를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쏘아보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자신한테 직언하고 사과를 종용하는 사람이 일찍이 또래 중에서는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인지 둘째 진상은 손에 들고 있던 공까지 내던지고 씨근덕거렸다.

카벨이 나에게 삿대질하며 소리 지른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리고 얘는 내 여동생 아니야!"

"뭐라고?"

"얘 내 여동생 아니라고!"

아주 지랄도 풍년이었다. 요하네스의 말에서 따로 걸고넘어질 게 없으니까 괜히 저런 거로 꼬투리 잡아서 더 큰소리는?

나는 둘째 진상이 답 없는 우기기를 시작한 걸 알고 쯧쯧 혀를 찼다.

카벨이 분풀이하듯 우렁차게 외친 소리에 요하네스는 잠시 동안 침묵했다. 하지만 곧 이어진 그의 목소리는 방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차가웠다.

"그럼 뭔데?"

"뭐?"

"네 여동생이 아니면 뭐냐고."

물론 무식한 둘째 진상이 별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 리 없었다. 카벨은 요하네스의 물음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어버버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자신의 여동생이 아니라면 뭐라고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집에서의 내 위치를 명확히 규정할 만한 다른 말이라도 있으면 또 몰라. 물론 정 나를 여동생으로 인정하기 싫다면 동거인이나 식객 정도로 표현해도 되겠지만 둘째 진상의 머릿속에 저런 어려운 단어가 들어 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요하네스도 애초에 다른 답을 기대하고 물었던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슬쩍 고개를 옆으로 비껴들어 요하네스의 얼굴을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곧 시야에 담긴 푸른 눈동자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럼 나 줘."

"뭐, 뭐라고?"

"나한테 줘!"

에른스트에 온 직후 처음으로 요하네스가 언성을 높여 소리 질렀다. 아무래도 그는 방금 전 카벨이 한 말에 더욱 화가 난 것 같았다.

그, 그런데 너한테 달라니? 도대체 뭐를요?

"내가 너 같은 애보다 하리한테 훨씬 더 잘해 줄 수 있어! 그러니까 나한테 줘!"

저기, 이건 설마 해서 묻는 건데. 혹시 지금 카벨한테 달라고 한 게 나인가요? 그 패기가 마치 처가에 가서 장인, 장모님에게 '따님을 저에게 주십시오!' 하는 것 같아서 한순간이나마 조금 설렐 뻔했다. 크흑. 하지만 그런 의미일 리가 없잖아.

"맞아! 우리한테 줘! 오늘부터 하리 언니, 내 언니 할 거야!"

심지어 옆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루이제까지 요하네스를 응원하듯이 덩달아 외치기 시작했다.

에리히는 카벨의 눈을 피해서 도망가려고 했던 자세 그대로 페니를 안은 채 황당하게 우리를 관망하고 있었다.

카벨은 예상치 못한 바스티에 남매의 공세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 지금만큼은 진상들의 심정이 이해된다. 나도 지금 꽤 당황스럽거든. 아니, 물론 저렇게 카벨에게 맞서서 내 편을 들어주는 건 조금 감동이긴 하지만 말이야.

그런데 뒤이어 요하네스가 싸늘히 읊조린 말에 카벨의 눈빛이 급변했다.

"넌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제일 비겁하고 치사한 애야. 지금 네가 한 말도 분명히 후회하는 날이 올 거야. 너 같은 애한테는 하리가 백배는 더 아까워!"

앗! 둘째 진상놈 지금 눈이 맛이 갔어!

"너 지금 말 다 했어? 이 샌님 같은 놈이!"

미처 내가 입을 열 새조차 없이 카벨의 몸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퍼억!

"악!"

"오빠아!"

헉! 둘째 진상이 지금 내 미래 신랑을 때린 거야? 그런 거야?

"카벨 오빠,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카벨의 주먹을 맞고 나자빠진 요하네스에게 루이제와 내가 허겁지겁 달려갔다.

"으윽."

다행히 크게 다친 건 아닌 것 같은데, 이 개진상이 진짜!

"요한 오빠를 왜 때려!"

"너 지금 내 앞에서 걔 편드는 거야?"

얼씨구. 그럼 내가 이 와중에 네가 예쁘다고 어화둥둥 해주겠니? 뭘 '어떻게 네가 그럴 수 있어?' 하는 표정을 짓고 앉았어?

나는 카벨을 찌릿 째려보며 쏘아붙였다.

"그럼 내가 오빠 편을 들어야 해? 난 오빠 동생도 아닌데, 왜?"

"그, 그건."

카벨은 설마 내가 그걸 따지고 들 줄은 몰랐다는 듯이 한껏 당황해서 두 눈동자를 흔들기 시작했다. 뚫린 입이라고 내키는 대로 다 내뱉을 때는 언제고 이놈이.

"그리고 요한 오빠가 틀린 소리 한 것도 아닌데 카벨 오빠가 때렸잖아!"

"걔가 틀린 소리 한 게 왜 없어!"

"그럼 뭐가 틀렸는데?"

"그, 그건······. 다, 다 틀렸어! 에잇! 넌 왜 그 자식 편만 드는데!"

둘째 진상은 내가 제 뜻대로 되지 않자 또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떼를 쓰듯 우기기 시작했다.

"저 오빠 나빠! 맨날 우리 오빠 괴롭히고! 으아앙!"

그 와중에 루이제까지 울음을 터뜨리자 완전히 방은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진정한 난장판은, 요하네스가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키며 카벨에게 달려든 뒤에 시작되었다.

퍽!

"으억!"

눈앞에서 무언가가 순식간에 지나간다 싶더니, 다음 순간 카벨이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며 카펫 위에 벌렁 나자빠졌다.

나와 루이제, 그리고 에리히는 온실 속의 화초 같던 요하네스가 둘째 진상에게 주먹을 날린 뒤 숨을 고르며 서 있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카벨도 지금 막 얻어맞은 뺨을 감싸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더듬거렸다.

"너, 너 지금 날 쳤어?"

"먼저 때린 건 너야."

"야아! 너 죽었어!"

그때부터 방 안은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었다. 나는 잠깐 멍해진 채로 생각했다.

지금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카, 카벨 형! 그만해!"

"우리 오빠 때리지 마아! 으앙!"

카펫 위에서 하나로 뒤엉켜 먼지가 날리게 싸우고 있는 건 분명 둘째 진상인 카벨과 요하네스였다.

에리히와 루이제가 옆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외치는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어느덧 에리히의 품에서 벗어난 페니도 그들을 향해 컹컹 짖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둘 다 그만해!"

나는 두 사람을 말리기 위해 난장판 속으로 끼어들었다.

응? 그런데 왜인지 내가 두 사람을 말리는 게 아니라 요하네스를 도와서 둘째 진상을 같이 때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크헹. 원래 인생이란 틈새시장을 노려야 하는 것!

"아이참, 그만하라니까!"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싸움을 말리는 척하며 카벨을 골고루 때려 주었다. 내가 이날을 위해 그동안 쓴 보약을 하루에 몇 첩씩 들이켜며 손힘을 길렀지! 얍얍! 내 야무진 손길을 받아라!

"엄마아!"

"멍멍!"

에리히인지 루이제인지, 누군가 엄마를 부르며 문밖으로 뛰쳐나간다 싶더니 잠시 후 두 명의 부인이 방으로 헐레벌떡 달려 들어왔다.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니!"

"둘 다 그만두지 못해?"

예상외로 요하네스는 카벨과 대등하게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른들의 목소리에 요하네스가 주춤한 것과 반대로 카벨은 이미 고삐가 풀려 눈에 뵈는 것이 없는지 오히려 요하네스를 제 아래에 깔아뭉개 버렸다.

"카벨!"

그런 둘째 진상의 만행을 보고 에른스트 부인이 기함하여 소리 질렀다. 나도 요하네스의 위기에 이번에는 진짜 카벨을 말리기 위해 움직였다.

"오빠, 이제 그만해!"

"비켜!"

하지만 카벨은 완전히 눈이 뒤집혀서 내 손을 화악 뿌리쳤고, 바로 그 순간 나는 엄청난 반동을 입은 놈의 팔꿈치에 얼굴을 맞고 말았다.

퍼억!

"하, 하리야!"

어억, 내 코!

나는 바닥에 장렬히 쓰러진 채로 얼얼한 코를 붙잡았다. 응? 그런데 웬 뜨뜻한 게······.

후두둑.

"코, 코피."

문가에 서 있던 에리히가 입을 쩌억 벌린 채 멍청하게 중얼거렸다. 나는 그 말에 방금 전까지 코에 대고 있던 손을 확인해 보았다.

"맙소사, 하리야! 괜찮니?"

"머리를 뒤로 젖히게 하면 안 돼요! 여기 손수건이 있어요!"

에른스트 부인과 바스티에 부인이 차례로 외치며 허둥지둥 내게 달려왔다. 방금 전까지 치고받고 싸우던 두 사람도 어느덧 돌처럼 굳은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건 에리히와 루이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왜, 왜 피가 멎지를 않죠?"

"의사, 의사를 불러야! 휴버트!"

그런데 내 코피가 멈추지 않자 두 명의 부인은 한껏 당황해서 휴버트를 불렀다. 그 와중에 루이제는 내 치맛자락을 붙잡고 펑펑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으아앙! 언니, 죽지 마!"

아니, 코피 좀 난다고 안 죽어. 하지만 셋째 진상까지 넋 나간 사람처럼 동공지진을 일으키고 있는 걸 보면 확실히 지금 내 몰골이 장난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하, 하리야. 괜찮아? 미, 미안해. 내가······."

"우으. 아니, 나 갠차나."

하지만 다시 순둥이로 돌아온 요하네스까지 사색이 되어서 울먹이며 사과하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겨우겨우 대답했다. 둘째 진상은 자신이 한 짓에, 혹은 피투성이가 된 내 모습에 충격을 받았는지 멍청히 서서 입만 뻐끔거리고 있었다. 그때 소란을 듣고 휴버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르셨습······. 아니, 하리 아가씨!"

"휴버트, 당장 의사를 불러요! 아니, 그전에 일단 지혈을!"

"으아앙! 언니이이!"

아이고. 나는 그만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이건 완전히 방금 전보다도 더한 아수라장······.

도대체 이 집구석에서 내 평온은 언제 찾아오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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