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그 오빠들을 조심해 21화
6. 내 남편은 내가 지킨다!
다음 날부터 바로 사냥이 시작되었다.
에른스트 공작과 바스티에 백작은 새벽 일찍부터 준비를 단단히 마치고 저택을 나섰다.
그 일행에는 유진도 속해 있었다. 저택에 남은 에른스트 부인에게 듣기로는 에른스트 영지의 서북부에 위치한 산맥으로 향했다고 했다.
첫날 그들은 은빛 여우 두 마리, 순록 한 마리, 검은 야크 한 마리를 사냥해 왔다.
카벨은 저택 앞에 놓인 커다란 야크를 보고 두 눈을 반짝이며 자신도 다음 날부터 함께 사냥을 가고 싶다고 졸라 댔다.
"우욱."
반면 에리히는 동물의 사체 앞에서 잠깐 동안 굳은 채 서 있다가 이내 구역질을 하며 자리를 떠났다. 어른들은 아직 어린 에리히가 동물의 사체를 보고 충격을 받은 모양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하지만 가장 어린 루이제도 바스티에 부인의 치맛자락 뒤에서 호기심 어린 눈을 빛내던 것을 생각해 보면 확실히 다소 과한 반응이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셋째 진상이 이런 심약한 반응을 보인 것이 그런 단순한 이유 때문이 아니란 사실을 알았다.
"언니, 에리히 오빠 말이야."
내가 알기로, 에리히는 자신의 쌍둥이 여동생인 아리나의 사후부터 '죽음'이란 현상 자체에 지독한 거부 반응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매일 아프기만 해? 원래 몸이 약해?"
그러니 내가 셋째 진상 때문에 추운 날 밖으로 내몰려서 죽을 뻔한 것도 분명 고의가 아니었을 것이다.
에리히는 '죽음'이란 것에 일종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의 어린 에리히는 물론 그 강도가 약하긴 하나, 적어도 내가 20년간 지켜본 그의 증상은 결코 쉬이 나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에리히가 겪어야 했던 것은 쌍둥이 여동생의 죽음만이 아니었으니까.
"으음, 그건 아닌데 그냥 지금 좀 아픈가 봐."
"여우랑 사슴이 죽은 게 충격이었던 게 분명해."
헉. 어린애에게 에리히의 증상을 자세히 설명하기도 좀 그래서 에둘러 말을 돌렸던 건데.
루이제가 나는 다 안다는 듯이 소리 죽여 속삭인 말에 나는 그만 조금 놀라 버렸다. 하지만 이어진 그녀의 말에 나는 다시 안심할 수 있었다.
"에리히 오빠는 강아지도 키우잖아. 그런데 강아지처럼 작고 귀여운 동물이 죽은 걸 보고 마음이 너무너무 아픈 게 분명해. 그렇지? 나도 여우는 예전부터 직접 길러 보고 싶었는데 어제 죽은 걸 보고 슬펐는걸."
아, 역시. 이 순수한 아이들의 세계! 작은 동물 친구들이 죽어서 슬프다니, 어흑. 나만 타락했어.
"에리히 오빠는 말이야. 너무 착한 것 같아."
"컥."
하지만 다음 순간 루이제가 읊조린 말에 나는 그만 사레가 들려서 마구 기침을 하고 말았다.
"난 여우가 죽은 걸 보고도 오늘 점심에 나온 고기가 맛있기만 했는데, 에리히 오빠는 어제저녁부터 내내 굶기까지 하면서 슬퍼하고 있잖아. 지금도 방에서 혼자 울고 있으면 어떡하지?"
루, 루이제. 아냐. 너 그거 잘못된 생각이야! 셋째 진상은 동물 사체에 충격을 받긴 했지만 네 생각처럼 '작은 동물 친구가 죽은 걸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파. 흑흑'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란 말이야!
"에리히 오빠 말이야. 생긴 것도 내가 한 대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이 엄청 연약하게 생겼잖아. 머리도 은발이고!"
머리가 은발인 거랑 연약한 거랑 도대체 무슨 상관인 건지 모르겠다. 뭐, 그놈이 겉모습만큼은 여리고 순수한 천사처럼 보이기는 하지. 나도 처음에는 그래서 속았으니까!
"우음, 아무튼 그래서 걱정이야. 어제부터 밥도 잘 안 먹고. 오늘 점심에 먹은 거 맛있었는데. 또 먹고 싶다."
에리히의 걱정으로 시작된 루이제의 말은 오늘 점심 메뉴를 생각하며 입맛을 다시는 것으로 끝이 났다.
뭐, 뭔가 생각의 흐름이 좀 이상하게 튀는 것 같은데. 아무튼, 넌 지금 에리히에게 속고 있는 거야!
그러고 보니 셋째 진상은 바스티에 사람들이 여기 온 직후부터 내내 저렇게 골골거리고 있으니 루이제가 오해할 만하기도 했다. 어흑. 그래, 뭐. 모르는 게 약이기는 하지. 응, 그래······.
나는 약간 인생에 회의감을 느끼며 루이제를 향해 지나가듯 말했다.
"에리히가 그렇게 걱정되면 방에 한번 가 보는 것도 좋겠지."
"응? 내가? 왜?"
그런데 루이제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나를 향해 반문하는 것이었다. 그 동그란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 나는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뭐, 뭐지? 너 에리히가 어제저녁부터 밥도 못 먹고 동물 친구들이 죽은 것 때문에 혼자서 상심하고 있을까 봐 걱정한 거 아니었니?
"에리히가 혼자 울고 있을까 봐 걱정된다면서?"
"응. 하지만 직접 가서 확인해 보고 싶을 정도로 걱정되는 건 아닌데. 난 그 오빠랑 친하지도 않잖아."
"그, 그래."
어린 루이제는 냉정했다. 나는 천진난만하게 내 인형을 가지고 놀면서 똑 부러지게 말하는 루이제를 보며 '요즘 애들의 생각은 정말 쉽게 따라갈 수가 없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언니, 내가 가져온 미미랑 언니네 비비랑 같이 인형 놀이 하자."
"그럴까?"
"내가 아를란타 공주님 할게. 언니는 오벨리아 공주님 해."
저 '비비'라는 이름은 오늘 아침 내 인형들을 구경하던 루이제가 친히 지어준 이름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머리에 왕관을 달고 있는 긴 금발 머리 인형뿐 아니라 다른 인형들에도 전부 직접 이름을 붙여 주었다.
나는 그 숫자가 다섯을 넘어갔을 때부터 인형들의 이름을 일일이 외우는 것을 포기했다.
뜻밖이라 생각할지 모르나 내 방에는 아기자기한 인형이 아주 많았다. 그것은 에른스트 부부가 내게 사 준 것으로, 이 찬란한 분홍색 방에 아주 잘 어울리는 공주님 같은 인형들이었다. 물론 내가 그걸 가지고 논 적은 없었지만 말이다.
"호호. 어서 오세요, 공주님. 오늘 날씨가 정말 좋네요. 밖에서 같이 차를 마실까요?"
"네, 좋은 생각인 것 같아요."
"언니도 '호호호' 하고 웃어야지. 공주님은 원래 다 그렇게 웃는 거야."
"호호호······."
나는 루이제와 함께 영혼 없는 인형 놀이를 시작했다. 아니, 정말 공주님들은 다 이렇게 닭살 돋게 웃는단 말이야? 내가 언제 공주가 되어 봤어야 알지.
하지만 그걸로 치면 이제 6살인 루이제가 실제 공주님들을 만나 봤을 리도 없었으므로 저 말에는 신빙성이 없었다.
벌컥!
그런데 바로 그때, 누군가 내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야, 쓰······. 아니, 너 나랑 놀아!"
이런 식으로 내 방문을 쾅쾅 밀어젖히고 나타날 위인은 카벨밖에 없었다. 나는 벌써부터 귀찮아져서 문 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나 지금 루이제랑 인형 놀이 하고 있는데. 오빠도 같이할래?"
"싫어!"
대답은 루이제에게서 곧장 튀어나왔다. 하지만 걱정 말렴. 카벨이 미치지 않고서야 인형 놀이를 같이하겠다고 할 리 없으니까.
"나도 싫어! 그딴 거 재미없어. 그거 말고 다른 거 해!"
"다른 거 뭐."
"그건, 그건······."
그래, 아무 생각 없이 다짜고짜 내 방부터 찾아온 걸 줄 알았어. 으이구. 하여간 심심할 때는 그냥 만만한 게 나지.
그래도 사냥도 못 따라가서 집에만 내내 틀어박혀 있었던 것 치고는 저놈 성격에 오래 참았다 싶기도 했다.
"그래! 공 던지기 해. 내가 공 가져올게!"
카벨은 그렇게 외친 뒤 부리나케 다시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아니, 나는 너랑 놀아준다고 한 적 없는데?
"언니, 문 잠그자."
아무래도 첫날 이후 카벨은 루이제에게 단단히 찍힌 모양이었다. 하지만 문을 잠그면 나중에 돌아온 둘째 진상이 또 소란을 피워댈 게 분명했다.
"그냥 우리 다른 방 가서 놀까?"
루이제와 나는 차선책으로 카벨이 오기 전에 이 자리를 뜨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요하네스는 지금 뭘 하고 있지?
"오빠아!"
하지만 나는 오래 궁금해할 필요가 없었다.
"루이제."
"어디 있었어, 오빠?"
"나, 유진 형이 책 봐도 된다고 해서 서재에."
인형을 들고 복도로 나가자마자 때마침 책을 들고 있는 요하네스를 마주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음음. 서재라면 카벨이 절대로 접근할 리 없는 장소이기도 했으니 안전했겠군.
"그런데 하리랑 같이 어디 가?"
"우리 다른 방 가서 놀려고! 오빠도 같이 가."
"나도 같이 가도 돼?"
다음 순간 요하네스가 나를 보며 물어 오자 나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어졌다.
으흑. 내 예비 신랑은 참 바르게 잘 크기도 했지. 여전히 수줍어하면서도 그는 꼭 먼저 내 의사를 물어보고 난 뒤에 행동했다. 그리고 그건 내가 에른스트의 세 진상에게는 일찍이 먼저 받아본 적 없는 친절이자 배려였다.
"당연히 되지. 요한 오빠는 이웃 나라 왕자님 할래?"
오는 말이 고우니 당연히 가는 말도 고울 수밖에!
"아, 공주님 놀이 하는구나."
"응. 내가 아를란타 공주님이고 하리 언니가 오벨리아 공주님이야! 그리고 오빠가 휴에일 왕자님 해!"
우리는 오순도순 사이좋게 이야기꽃을 피우며 복도를 걸었다. 음. 이 정도까지 왔으면 둘째 진상도 우리를 금방 못 찾겠지.
"컹컹!"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우리가 새로운 보금자리에 자리를 잡자마자 문밖에서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곧 벌컥 문이 열렸다.
"찾았다!"
어우, 저 진득한 놈. 우리가 여기 있는지 어떻게 이렇게 빨리 알았지?
"헥헥! 멍!"
아, 페니한테 냄새를 맡게 했구나! 하여간 이럴 때만 비상한 둘째 진상이었다.
"카벨 형! 지금 뭐 하는 거야?"
응? 그런데 둘째 진상은 혼자가 아니었다. 나는 줄줄이 엮인 알사탕처럼 카벨의 뒤를 따라 들어온 셋째 진상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게다가 에리히는 잔뜩 열이 받은 듯이 카벨을 향해 씩씩거리고 있었다.
"페니 이리 돌려줘!"
에리히가 외치는 순간 나는 두통을 느끼며 이마를 짚고 말았다.
아이고, 둘째 진상이 에리히랑 같이 있던 페니를 무작정 그냥 데려왔나 보구먼. 하여간 저 막무가내를 어쩌면 좋아.
"그럼 에리히 너도 우리랑 같이 놀면 되잖아!"
"멍멍!"
쿨럭. 설마 너의 그 '우리' 속에 나도 포함된 거니? 아니, 난 너랑 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거든?
물론 다른 사람의 기분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카벨은 한 손에 공을 든 채로 함박웃음을 지으며 성큼성큼 나한테 다가왔다. 그리고 그대로 내 팔을 잡아끌었다.
나는 밀려드는 짜증과 귀찮음에 인상을 쓰면서 입을 열었다.
"카벨 오빠, 잠깐 이거 놔 봐."
"내가 공도 가져오고 페니도 데려왔어! 그러니까 일어나! 빨리!"
"자, 잠깐만. 하리가 놓으라고 하잖아."
"넌 또 뭐야. 같이 놀 거 아니면 저리 빠져!"
"하리 언니는 나랑 인형 놀이하고 있었어!"
"그딴 거 하나도 재미없어. 너도 빠져."
바스티에 남매가 카벨을 말리려 했으나 애초에 이놈이 다른 사람의 말 같은 걸 들을 리 없었다.
바로 그때, 에리히가 페니를 안아 들고 살금살금 자리를 벗어나려 하다가 카벨에게 그 현장을 딱 들키고 말았다.
"에리히! 페니 내려놔!"
카벨이 셋째 진상을 향해 몸을 반쯤 돌리며 버럭 소리 질렀다. 그 와중에도 여전히 내 팔은 카벨에게 붙잡혀 있는 상태였다.
"으앗!"
내가 아무리 있는 힘껏 버틴다 한들 삼 형제 중 제일 괄괄한 둘째 진상의 힘을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나는 카벨에게 팔을 붙잡힌 채로 카펫 위로 철퍼덕 엎어져 버리고 말았다.
"뭐야, 왜 넘어지고 그래. 빨리 일어나!"
"야,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