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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20화 (2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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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 20화

크흑, 나 저거 알아. 나도 에른스트의 세 똥 덩어리들을 볼 때마다 저렇게 말문이 덜컥 막히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이렇게 보니 아저씨한테 왠지 동병상련의 정이······.

"카벨은 평소에도 기운이 넘치는 편인데 그래서 아까 밖에서 놀 때도 과했던 부분이 있는 것 같네요."

"아닙니다. 오히려 요한이 사내아이치고 숫기가 없어서 우려되는 면이 있었지요. 뭐, 원래 아이들이란 다들 치고받고 하면서 자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니야, 아저씨! 아까 그건 '치고받고' 같은 대등한 싸움이 아니었다구요! 아저씨 아들이 카벨한테 당하면서 얼마나 가련하게 울먹였는데! 그래서 내가 막, 나도 모르게 지켜 준다고 그러고! 으헉. 또 생각했더니 가슴이 아프다.

"그래. 우리 애들이 하리를 특히 좋아하는 것 같으니 여기 있는 동안 계속 잘 놀아주렴."

"으음. 네에."

앗. 자, 잠깐! 반짝반짝 공격하지 마! 그런 식으로 날 쳐다보지 마!

바스티에 부인의 말에 대답하자마자 또다시 양쪽에서 보내지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나는 그만 손을 들어 눈 앞을 가릴 뻔하고 말았다. 으허헝. 저런 과도한 반짝이 공격이라니, 심장에 좋지 않아.

"내일은 에리히 오빠도 같이 놀면 좋겠다. 그렇지, 루이제?"

그러고 보니 셋째 놈은 이제 좀 괜찮은가?

아까 전에 혼자 방으로 뛰쳐 들어간 이후 에른스트 부인이 따로 잘 달래 주었는지 에리히는 저녁 식사 시간에 모습을 드러낸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식사 내내 여전히 조용해서 그렇지 않아도 내심 신경이 쓰이던 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에른스트 부인도 마찬가지인 듯, 그녀는 옆에 앉은 에리히를 다른 때보다 살뜰히 보살피고 있었다.

"에리히, 이것 좀 더 먹으렴."

나는 아래로 내리깔린 에리히의 푸른 눈동자를 잠깐 살펴보다가 다시 내 앞에 놓인 접시로 눈길을 돌렸다.

"야, 내일 눈싸움 또 하자. 오늘 진짜 재미있었어, 그치?"

저녁 식사가 끝나고 식당을 나오는 길에 둘째 놈이 부른 배를 두드리며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옆에서 주춤거리며 걷던 요하네스가 흠칫하는 것을 보고야 말았다.

"카벨 오빠, 입에 오리 기름 묻었어."

그러니까, 내 미래 남편 좀 괴롭히지 말라고!

나는 스윽 요하네스의 앞으로 나서며 카벨에게 지나가듯 말했다. 크, 크흑. 어쩔 수 없지. 내가 지켜주겠다고 했으니까!

"뭐? 어디?"

"거기 말고 왼쪽."

"여기?"

"아니, 좀 아래."

"이제 됐지?"

"어휴, 그냥 내가 닦아줄게. 집사 아저씨!"

나는 식사 시간마다 항상 그렇듯 식당 앞 복도에 그림자처럼 서 있는 집사 휴버트를 불러 그의 손수건을 빌렸다.

"자. 오빠, 머리 좀 숙여봐."

나는 둘째에게 머리를 내리게 한 뒤 손을 들어 그의 입을 박박 문질렀다.

"뭘 이렇게 많이 묻히고 먹었어, 오빠."

"아, 아! 야, 너 아프······."

"미안해. 내가 손힘이 약해서 여러 번 문질러야 겨우 닦이네."

그렇게 말하자 카벨은 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혼자서 끙끙거리는 둘째 놈에게 계속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는 가차 없이 놈의 입을 마구 문질러 댔다.

결국 카벨은 붕어 입술이 되어서 자리를 떠났다.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어리벙벙한 얼굴로 계단을 오르긴 했지만 그래 봤자 네가 괜히 호구겠니. 에비에비. 그냥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렴.

"집사 아저씨! 이거 하리가 깨끗하게 만들어서 줄게요."

사실 카벨의 입에 기름 같은 건 없었기 때문에 휴버트에게 빌린 손수건은 깨끗했다. 하지만 그건 나 혼자만의 비밀이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무뚝뚝함의 대명사이던 휴버트가 놀랍게도 나를 향해 푸근히 미소 짓는 것이었다.

"하리 아가씨께서는 둘째 도련님을 많이 좋아하시나 보군요."

바로 그 순간 나는 내 두 귀를 의심하며 자리에 돌처럼 굳어지고 말았다.

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좋아해요? 누가 누구를요? 내가? 저 둘째 녀석을?

휴, 휴버트 아저씨. 내가 아무리 아저씨를 좋아한다 해도 그 말은 용납하기 어려운데······!

"하리 아가씨도 아직 어리신데 벌써부터 오빠를 챙기시고. 아가씨는 참 착하고 다정하신 분입니다."

헉. 이, 이번에는 양심 공격? 휴버트가 드물게도 포근히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기까지 하자 나는 바보같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말았다.

"맞아, 하리 착해!"

게다가 옆에 있던 요하네스까지 또다시 두 눈을 빛내며 외쳤다. 당연하게도 나는 양심이 마구마구 쿡쿡쿡 쑤시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휴버트가 내 머리에서 손을 떼고 자리를 떠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휴버트와는 언제 그렇게 친해진 거지?"

응? 그런데 문득 귓가를 스치는 음성에 고개를 돌려 보니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유진이 보였다. 언제부터 거기 서 있던 거니?

"휴버트는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아니야. 집사 아저씨 엄청 친절한데?"

"그래······. 그렇게 머리까지 쓰다듬어줄 정도로."

뭐지? 또 착한 척, 얌전한 척하면서 이번에는 휴버트를 꼬여 냈다고 나한테 한 소리 하려고 저러나?

하지만 유진의 얼굴은 나한테 시비를 걸려고 하는 사람의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실로 오묘한 표정을 지은 채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기분 탓인지 왜인지 아래로 늘어뜨려진 유진의 손이 움직일 듯 말 듯 혼자서 움칫거리는 것 같았다. 그런 유진은 뭔가를 망설이는 것 같기도 하고 고민하는 것 같기도 했다.

당연하게도 나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어 의문을 느끼고 있었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할 말이 있으면 속 시원히 할 것이지, 왜 저렇게 이상하게 쳐다보기만 하지?

"나한테 볼일 있어?"

"아니."

결국 참다못해 내가 묻자 유진은 또 칼같이 대답한 뒤 언제 답답하게 굴었냐는 양 깔끔하게 뒤돌아섰다.

응?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나는 멀어지는 유진의 뒷모습을 의뭉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내 머리 위에 무언가가 내려앉은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쓱쓱.

익숙한 감촉에 고개를 돌리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방금 전 휴버트가 그랬듯이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요하네스였다.

나는 대뜸 내 머리에 손을 올리고 있는 그를 보며 약간 황당하게 입을 벌리고 말았다.

저기······. 우리 불과 몇 시간 전에 처음 만난 걸로 알고 있는데, 이건 좀 진도가 너무 빠른 것 아니니?

알고 보니 내 남편이 될 사람이었던 요하네스는 손이 빨랐다!

······라기엔 나랑 얘 나이가 지금 고작 7살, 9살이긴 했다. 커흑. 아무튼 요하네스가 상당히 서슴없이 내 머리를 만지고 있어서 나는 약간 당황스러워졌다.

"지금 뭐 해?"

"앗!"

그런데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불현듯 요하네스가 내 머리에서 손을 떼며 화악 뺨을 붉히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저 홍조는 조건반사적인 건가 보다. 자동으로 빨개졌다 하얘졌다 하는 걸 보니.

게다가 방금 내 머리를 쓰다듬었던 것도 거의 무의식중에 한 행동이었던 듯 요하네스는 오히려 자신이 더 깜짝 놀라서 허둥지둥하고 있었다.

"이, 이거 같아서."

그러더니 그는 뜻 모를 말을 했다. 나는 눈을 가늘게 좁히며 반문했다.

"뭐가?"

"방금 저 형이 하고 싶어 한 거."

그 소리에 나는 한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잠시 후 내 입에서는 허허허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쩜. 어린 요하네스는 참으로 해맑기도 하지. 방금 전 유진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빤히 쳐다봤던 이유가 휴버트처럼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어서라니! 이게 말입니까, 방구입니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요하네스의 어깨를 토닥토닥했다.

"으, 응? 왜?"

"절대 그거 아닐걸."

응. 만약 네가 지금 한 말이 맞으면 방금 전 휴버트가 나한테 투하하고 간 말도 맞는 거야! 내가 둘째 놈을 좋아한다는 것도 사실인 거라고! 그 정도로 지금 네 생각은 말도 안 돼!

"어, 아닌데. 이거 맞는 거 같은데."

"그건 말이야. 음. 요한 오빠? 아무튼 오빠가 유진 오빠를 잘 몰라서 그래."

나는 잠시 요하네스의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눈매를 미묘히 찌푸리다가 말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어째서인지 요하네스의 얼굴에 화악 꽃물이 들었다.

으, 응? 이 반응은 또 뭐지요?

"다, 다시 한번만 말해주면 안 돼?"

"뭐, 뭘? 유진 오빠를 잘 몰라서 그렇다고?"

나는 얼굴을 발갛게 붉히며 웅얼웅얼 요구하는 요하네스를 따라 함께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그런데 요하네스는 그게 아니란 듯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거 말고. 그전에······."

"뭐, 요한 오빠?"

미심쩍은 내 부름에 요하네스가 푸른 눈동자를 휘며 방긋 웃었다. 그가 활짝 미소 짓는 순간 나는 그의 주위에 뾰로롱 꽃이 피어나는 환영마저 보고 말았다.

아니, 아니! 이 생물체는 도대체 뭐랍니까? 으윽. 뭐 이런 온몸으로 무해함을 주장하는 생명체가 다 있지요?

그동안 내 주위에 있던 남자애들이라고는 진상 셋이 전부여서 그런지 이건 적응이 안 되어도 너무 안 된다!

그, 그런데 왜 내가 이렇게 쑥스러운 건지 모르겠네. 나는 공연히 헛기침을 하며 요하네스의 어깨에 놓여 있던 손을 떼어 냈다.

"커흠. 난 이제 내 방에 갈게."

"아, 나도 같이 가."

아까 지하실에서 술을 꺼내 오게 한 걸 보니 어른들은 늦게까지 밖으로 나오지 않을 것 같고. 세 형제는 먼저 뿔뿔이 흩어진 데다 요하네스의 동생인 루이제는 저녁 식사 시간 도중 잠들어서 미리 손님방으로 옮겨진 상태였다.

그러고 보니 어른들도 은근히 무책임하잖아? 진상들이나 나는 원래 여기가 자기 집이니까 그렇다 쳐도 요하네스는 다른 애들이랑도 데면데면한 상태인데 이렇게 식당에서 내보내고 나 몰라라 하다니.

끄응. 아까부터 드는 생각인데 바스티에 백작 부부는 혹시 자유 방임주의인가.

게다가 이런 상황이라면 유진이라도 나서서 형제들과 요하네스를 한 자리에 모아 놓고 친해질 구실을 만들어줄 법도 한데 그것도 아니고.

아, 혹시 방금 전에 그래서 가까이 왔던 건가? 그런데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가 버렸지?

타박타박.

저벅저벅.

나는 방금 전 이상한 행동을 보인 유진이 또다시 생각나 혼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타박타박.

저벅저벅.

내 뒤를 따라오는 발걸음 소리가 선명하게 고막을 파고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저기, 왜 따라와? 우린 가야 할 방향이 다를 텐데?"

요하네스의 가족이 사용할 방들은 내 방이 있는 곳과 정반대 방향에 위치해 있었다. 내가 걸음을 멈추고 묻자 요하네스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을 뻐끔거렸다.

그걸 보니 아무래도 내가 방까지 데려다줘야겠다 싶었다. 음. 내 미래 남편은 알고 보니 허당인 데다 길치이기까지 한가 보다. 그, 그래. 사람이 뭐든 다 잘하고 완벽할 수는 없지······.

나는 다시금 요하네스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괜찮아. 길 좀 모를 수도 있지. 내가 방까지······."

"아, 아니. 나 방 어디 있는지 알아. 혼자 찾아갈 수도 있고."

응? 그럼 방금 전에는 왜 우물쭈물한 거야?

그리고 이어지는 요하네스의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헉 숨을 들이켜고 말았다.

"그게 아니고 나, 난 너랑 좀 더 같이 있고 싶어서."

요하네스는 구름 같은 하늘색 머리카락이 두 눈을 가릴 정도로 머리를 푹 수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발갛게 달아오른 뽀송뽀송한 뺨이라던가, 머리카락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발그스름한 귀가 더욱 눈에 띄었다. 그 상태로 요하네스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재차 웅얼거렸다.

"저어, 나 방해 안 하고 조용히 있을 테니까. 네 옆에 같이 있으면 안 돼?"

"돼."

커헉. 나도 모르게 즉답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어떻게 거절을 하라구요! 나, 나는 못 해! 그런 짓 절대 못 해!

"정말?"

"윽."

내 살아생전 이렇게 제 감정을 곧이곧대로 표현하는 사람은 만나 보지를 못했다.

물론 둘째 녀석이 있지만 그놈은 워낙에 단순 무식하니 그냥 제쳐 두고. 이번에도 요하네스는 내가 대답하자마자 고개를 번쩍 들며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사정없이 빛내기 시작했다.

"있지, 그럼 손잡고 가도 돼?"

"그, 그래······."

으아, 그냥 다 네 마음대로 하세요. 어차피 난 네가 그런 얼굴로 물어보면 거절할 수 없으니까 말이야. 으어엉.

요하네스가 헤헷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결국 나는 그와 함께 사이좋게 손을 붙잡은 채로 복도를 걷게 되었다.

"있잖아. 하리 넌 평소에 뭐 하고 노는 걸 좋아해? 나는 루이제랑······."

촛불로 밝힌 복도를 걷는 동안 귀에는 해맑은 요하네스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나는 나보다 약간 큰 말랑한 손이 내 손을 꽉 움켜잡고 있는 것을 느끼며 기이한 쑥스러움에 잠깐 마른세수를 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다음에는 루이제랑 같이 셋이서 놀자!"

복도를 지나던 하녀들이 우리 두 사람을 소꿉놀이하는 애들처럼 쳐다보는 것은 그냥 모른 척하자. 으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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