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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18화 (18/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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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 18화

나는 방금 전 에리히가 내게 한 말을 고대로 다시 돌려주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의 다리에서는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것에 겁을 먹은 건지 아니면 다친 곳이 아파서 그런 건지, 에리히는 나를 노려보면서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다.

그래, 나도 방금 전에 넘어져서 다리 까진 데가 얼마나 아픈지 잘 알지. 그러니까 너도 한번 당해 봐라, 요놈아!

나는 에리히를 향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깐족거렸다.

"에리히, 너 설마 지금 울려고 하는 거야? 고작 이거 가지고? 난 네가 하루에 다섯 번 발 걸어서 넘어졌을 때도 한 번도 안 울었어. 그런데 넌 우는 거야? 진짜? 진짜로 진짜?"

"이잇!"

에리히는 내가 얄미워서 죽으려고 했다.

고작 이런 도발에 저렇게 팔딱 뛰는 것을 보니 애는 애였다. 그리고 아무리 애여도 똥 덩어리는 똥 덩어리지!

"휴우. 다음부터는 꼭 좀 조심해 줘. 내 발목은 연약해서 네가 제대로 피하지 않으면 나까지 타격을 입는단 말이야."

그리고 네가 나한테 똥을 주면! 난 너한테 엿을 주겠어!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앞 좀 잘 보고 다녀, 응?"

나는 에리히를 향해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인 뒤 먼저 계단을 올랐다.

뒤에서 약이 올라 발악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조금 후련해진 기분으로 도도하게 앞만 보며 걸었다.

***

촤악!

"어머, 하리야!"

내 옷을 적시며 흘러내리는 빨간 액체에 에른스트 부인이 소리쳤다. 하지만 정작 이 대형 참사를 일으킨 당사자는 태연자약할 뿐이었다.

"미안해. 갑자기 팔에 힘이 빠져서."

"에리히! 그러니까 가만히 앉아서 먹으라고 했잖니. 이를 어째. 하필 토마토 주스라 닦아도 자국이 남겠네."

나는 에른스트 부인의 뒤에서 메롱 혀를 내미는 셋째 놈을 향해 뿌득 이를 갈았다.

이 자식! 오늘 드디어 내 예비 남편이 온다고 해서 고르고 골라 입은 제일 예쁜 옷인데!

"하는 수 없지. 다른 옷으로 갈아입어야겠구나, 하리야."

나는 에른스트 부인을 따라 걸으며 희희낙락하고 있는 에리히를 째려보았다.

지난 일 이후 셋째와 나는 유치한 쌈박질을 계속하고 있었다. 에리히가 내게 무슨 짓을 하면 나도 똑같이 갚아주고, 그럼 놈이 약이 올라서 또 내게 보복을 가하는 순이었다.

물론 그가 나한테 보복을 하면 나도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고 두 배로 복수해 주었다.

당연하게도 나는 절대로 이런 유치한 짓거리를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그냥 당하기만 하자니 셋째 놈이 영 괘씸했다.

하지만 역시 어른들에게 고자질을 해 에리히를 혼나게 만드는 것에는 다소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도 맨몸으로 녀석에게 맞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니 우리 둘 다 온몸에 자잘한 상처가 끊일 날이 없었다. 그래서 에른스트 부부도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상태를 알아차리게 됐고, 예상했던 대로 나보다는 에리히가 더 많이 혼이 났다.

그 후로 셋째는 내 몸에 위해를 가하는 행동을 줄인 대신 좀 더 교묘하고 좀 더 유치한 방식으로 나를 괴롭혀 댔다.

물론 그런 에리히의 행동은 나를 잠깐 신경질이 나게 만들지언정 진심으로 분노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으으! 하지만 이런 식으로 내 예비 남편과의 신성한 첫 만남을 망치려 하다니, 오늘만큼은 용서할 수 없다!

나는 저놈에게 어떤 크고 아름다운 엿을 먹여 주면 좋을지 이를 갈며 고민했다.

"이 옷도 예쁘구나. 응. 우리 하리는 뭘 입어도 다 귀엽고 예뻐."

그나마 에른스트 부인이 내 새 옷을 보고 칭찬해 줘서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쓰읍, 그래. 일단 복수는 나중으로 미루자. 으아, 잠깐 심호흡 좀 하고. 내 미래 남편을 처음 만나는 자리라고 생각하니 이거 은근히 긴장되네.

"바스티에의 마차가 지금 막 정문을 들어섰다고 합니다."

으악! 왔다, 왔어!

집사 휴버트가 바스티에의 도착을 알려 온 순간 나는 서둘러 다시 한번 내 옷차림을 점검했다.

내 미래 시댁이니까 일찍부터 잘 보여 둬서 나쁠 것 없지! 옆에서 에리히가 '도대체 쟤가 왜 저러는지는 몰라도 웃기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지금만큼은 셋째 놈 따위 내 안중에도 없었다.

유진은 일찌감치 에른스트 공작과 함께 자리를 비운 참이었고, 카벨은 그 와중에도 테이블 위에 있는 쿠키를 열심히 주워 먹고 있었다.

"자, 얘들아. 일어나자."

우리는 에른스트 부인과 함께 복도로 나섰다.

에른스트의 온 가족이 1층에 모이고 나서 시간이 얼마 지나기도 전에 벌컥 문이 열렸다. 그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호쾌하게 웃고 있는 바스티에 백작이었다.

"이거 참, 에른스트의 경치는 언제 보아도 참 절경이군요."

내 미래 시아버지가 될 예정이었던 바스티에 백작은 20년 전이나 후나 일관되게 호탕한 성격이었다.

짧게 자른 금발 머리에 녹색 눈동자를 가진 30대의 남자가 에른스트 부부를 보고 반가운 듯이 활짝 웃었다.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분 다 이렇게 만나 뵙는 건 참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반면 바스티에 백작 부인은 한 떨기 꽃처럼 수줍은 미소를 간직한 미인이었다.

나는 그녀의 단아한 이목구비와 어딘가 낯이 익은 옅은 하늘색 머리카락, 그리고 짙푸른 눈동자를 보고는 이내 혼자서 흐뭇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음, 내 미래 남편이 어머니 쪽을 닮아서 다행이야.

"그래, 네가 유진이구나. 아버지를 닮아 벌써부터 훤칠하군그래."

"감사합니다."

바스티에 백작은 에른스트 부부와 얼추 인사를 끝낸 후 우리에게 관심을 돌렸다.

"둘째는 방금 전까지 과자를 먹고 있었구나. 뺨에 부스러기가 묻은 걸 보니."

"헉."

카벨은 장난 섞인 바스티에 백작의 말에 슬쩍 에른스트 부인의 눈치를 보다가 급히 얼굴을 털기 시작했다.

그다음 타깃은 에리히와 나였다. 우리는 손님이 오기 전 교육받은 대로 바스티에 백작 부부를 향해 먼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러자 바스티에 백작이 우리를 향해 호탕하게 웃어 젖혔다.

"허허허! 둘 다 한창 유치가 빠질 때군요. 나란히 앞니가 없는 걸 보니 우리 애 어릴 때가 생각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지."

쿠궁! 일타쌍피!

바스티에 백작은 에리히와 내 콤플렉스를 동시에 건드리는 발언을 해 우리를 함께 충격에 몰아넣었다.

제, 제길. 그러고 보니 앞니가 없는 상태로 내 예비 남편을 만나야 하다니! 이런 수치스러운 일이! 그런데 왜 바스티에 백작 부부만 안으로 들어오고 애들은 없지? 혹시 같이 안 왔나? 으앙.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이렇게 보니 둘이 정말 쌍둥이 같군요."

엇.

하지만 곧 이어진 바스티에 백작의 말에 나는 흠칫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건 다른 에른스트의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모두의 시선이 에리히에게 못 박혔다.

"에리히!"

셋째는 순식간에 표정을 변화시키더니 에른스트 부인의 손을 확 놓고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그쯤 되자 깨달은 바가 있는지 바스티에 백작이 멋쩍게 사과했다.

"이거 아무래도 제가 실언을 한 것 같습니다."

"셋째가 아직 어려서 그렇습니다."

어른들은 다 같이 입맛이 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바스티에 부인이 옆에서 슬쩍 남편의 팔을 꼬집는 것을 보고 말았다.

아, 아앗! 마냥 청초하고 수줍은 귀부인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그러고 보니 바스티에의 아이들은?"

"아아. 밖에 있는 멋진 눈사람에 정신이 팔려서요. 너희들 중 누가 만들었지?"

"내가!"

"카벨. '제가 만들었어요'라고 해야지."

"하하. 그럼 밖에 나가서 우리 애들과 잠깐 놀아주지 않겠니. 첫째는 너와 동갑이란다."

카벨은 좋다고 신이 나서 밖으로 막 달려 나갔다.

앗, 뭔가 눈앞에서 정신없이 막 휙휙 휘몰아치는 것 같은 느낌인데.

"우리 예쁜 꼬마 숙녀님 이름은 하리라고 했나. 에른스트에 있는 동안 우리 딸에게 언니가 되어주지 않으련? 그 아이는 하리보다 한 살이 어리단다."

이번에는 바스티에 백작 부인이 여전히 미소 지은 얼굴로 내게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나는 그 얼굴에 넘어가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헉! 그러고 보니까 진상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어째서인지 바스티에 백작 부부한테 막 휩쓸리고 있어.

"하리야. 밖에 나갈 거면 겉옷을 입고 나가자. 카벨에게도 코트를 가져다주겠니?"

"네. 그럴게요."

나는 에른스트 부인의 말을 듣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카벨의 코트까지 챙긴 뒤 잠깐 망설이다가 놀이방에 먼저 들렀다.

"멍멍!"

"페니."

페니가 나를 보고 반갑게 꼬리를 흔들며 달려왔다. 나는 보드라운 금색 털을 쓰다듬으면서 페니에게 속삭였다.

"착하지. 방에서 내보내 줄 테니까 에리히한테 가 있어. 응?"

"멍!"

똑똑한 페니는 내가 줄을 풀어주자마자 곧장 에리히의 방을 향해 뛰어갔다.

나도 그제야 방금 전보다 조금 가벼워진 마음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이번에는 둘째 놈에게 코트를 가져다줄 차례였다.

아니,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왜 내가 저 녀석들의 보모 같은 짓을 하고 있냐. 아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약간 거칠게 문고리를 확 잡아당겼다.

"앗!"

그런데 바로 그때, 열린 문 사이로 새하얀 눈송이와 함께 무언가가 같이 떠밀려 들어왔다.

"으억!"

나는 우아하지 못한 단말마를 내지르며 뒤로 넘어져 버렸다.

으윽, 내 엉덩이야! 아잇, 그런데 도대체 누구야? 안에서 누가 열지도 모르는데 위험하게 문에 기대 서 있다니!

나는 인상을 쓰면서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직후 시야에 들어온 얼굴에 그만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말았다.

투둑.

솜사탕처럼 옅은 하늘색 머리카락을 타고 미끄러진 눈송이가 내 위로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당황스러운 듯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눈동자는 심해처럼 깊은 푸른색이었다.

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내 위에 떨어져 내린 것은 어린 남자아이였다. 그리고 나는 분명 이 얼굴을 알고 있었다.

"아, 저기."

그야, 이 아이는 나와 결혼할 예정이던 요하네스 바스티에의 축소판인 얼굴을 갖고 있었으니까!

"미안······ 윽!"

"얍! 이거나 먹어라!"

퍽!

지금 나를 덮치고 있는 것이 내 미래 남편이라는 사실에 일차적으로 놀랐던 나는 그다음 순간 그의 머리로 날아와 부서지는 눈덩이에 또 한 번 깜짝 놀라고 말았다.

시선을 돌려보니 신들린 듯이 이쪽으로 눈덩이를 던지고 있는 건 카벨이었다.

아앗! 저놈이! 내 (미래) 남편을 괴롭히지 마!

"으하하하! 이거 하나 못 피하고 완전 바보 아니야?"

카벨의 경박한 웃음소리를 듣는 동안 점차 내 이마에는 핏대가 서기 시작했다.

둘째 놈은 일견 미친 듯이 우리 두 사람을 향해 눈덩이를 던져 댔다. 우리 중에 혼자만 실내복 차림이었는데도 추위 따위는 하나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활달한 몸짓이었다.

아니, 저건 활달함을 떠나서 솔직히 좀 정신 나간 사람 같았다. 저 멀리서 하늘색 머리카락을 가진 어린 여자애 하나가 공황 상태에 빠진 것 같은 얼굴로 카벨과 우리들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까 바스티에 부인이 말한 나보다 한 살이 어리다던 딸인가 보다. 그런데 저 눈빛을 보아하니 카벨을 미친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으악, 왜 부끄러움은 내 몫이죠! 둘째 놈이 털북숭이 설인처럼 날뛰든 말든 왜 내가 이렇게 창피해야 하냐 이 말이야!

"으헤헤! 바보같이 꼼짝도 못 하고 다 맞고 있네!"

앗, 둘째의 외침을 듣고 다시 보니 요하네스 바스티에인 것이 확실해 보이는 소년은 혹시라도 내가 눈에 맞을까 봐 자리에서 꼼짝도 못 하고 카벨의 공격을 그대로 받고 있는 것 같았다.

헉. 이, 이건 좀 감동인데. 역시 내 남자! 봐, 어린 시절에도 숨길 수 없는 이 멋짐을······.

"이, 이제 그만해 줘!"

하지만 내 위에 있는 소년에게서 울먹이는 목소리가 새어 나온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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